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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문을 열면 놀고있는 아이들 너머로 쪼끄만 늠이 "아빠"하고 소리지르며 내달려온다. 다섯살 서호다.
40대 한창 시절 나는 뜻하지 않은 일로 휘청거렸다. 뒤이어 덮친 IMF로 또 주저앉았다.
대학 연구실에만 나가던 나는 백수나 다름없었다.
애 엄마는 일나가고, 유치원에서 얼라 픽업하는 일은 주로 내가 맡았다.
고통스런 나날이었지만, 얼라 데리고 올때는 좋았다.
"오늘 뭐했어" 하고 물으면
"그림그렸어요, 선생님하고요, 공원에 갔어요" 등등
수퍼에서 하드나 과자 몇개 사갖고 집으로 오거나,
시장골목에서 라뽁기(라면+떡뽁기) 하나 시켜 둘이 묵고 오기도 했다
-- 그 라면집 여중생들 단골이었는데, 얼라 보고 "제좀봐" 하며 이뿌다꼬 탄성을 질렀다--
어느날 짜장면 집에 짜장곱배기 주문하고 있는데, 다섯살 서호가 고개를 숙이면서 살며시 웃었다.
어떤 날은 애엄마나 나도 일이 있어 19시까지 겨우 올수도 있다. 그럴때면 안절부절한다.
오후 6시면 대부분 애들은 집으로 가고, 한두명만 남는데, 어떨때는 서호혼자
눈이 까맣게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은 데리러 갔더니, 자고 있어서 나왔다가, 한참뒤에 갔더니, 가방메고 있었다.
"아빠가 데리러 왔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가방메고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당시 나는 오후 5시경이 되면 안절부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애 데리고 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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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뜬지 오랜데 자고 있는 늠 허벅다리 밑으로 시커먼 털이 쑹쑹 나있다. 나도 제 엄마도 털은 별로 없다.
다섯살 서호는 헐크같이 변했다.
한달전부터 나와 말도 안한다. 내가 나갈때는 현관문으로 빼꼼히 내다보면서 "잘갔다와" 하던 늠이다
등록금 대출받아 내라고 한뒤부터다.
"너하고 네엄마가 결정했으니 알아서 해라, "
재수하라고 그토록 사정했었다.
우리집에서 내말은 혼자 지껄이는 라디오나 다름없다.
저 인간이 군에라도 갔다와야 제정신이 들까,
아니면 내가 아직 인간이 덜 되었을까.
"해군지원하면 편한데 보내주께, 후배들이 대령급이다. 공군가도 좋다. 아니면 기무사 보내주께,"
나로선 이렇게 구라 쳐놓고, 전방 좆빠지는 부대로 보내어 고생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할말을 잃었다.
하루종일 스맛폰쭈물딱 거리다가, 오후되서야 거울앞에서 머리만지고, 남방입고 폼을 재며 한참을 삐질거리더니 기어 나간다.
모른척 하지만 동네 스타벅스 가는 줄 알고 있다. 거기서 공부한댄다. 우쨌기나 거기라도 가니 다행이다 시푸다.
저녁 늦게 올때는 제엄마하고 컨택하여 같이 들어올때도 많다.
"나만 왕따시켜놓고 연늠들 잘 놀아나는구나"
이런 집구적에서 내가 살아야 하나.
전반적으로 집구적에서 아부지란 위상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추세라 보면
당연하게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억울한 생각은 왜 자꾸 날까.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행복은 바로 다섯살 서호를 데리고 오던 떄가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된다
* * *
갑자기 아래 글이 생각난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 바꾸겠다며 눈꼬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
놓았습니다. 뭘 들고 계세요?
-- 조정민 목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1/2011090102745.html?news_Hea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