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쿵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하지만 봄은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다.
봄을 기다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희망을 접어놓고 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 다가온 새싹은 그냥 잡풀에 불과하고, 그가 만난 새봄의 진달래꽃은
한가한 봄날에 그냥 넋 놓고 웃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나긴 겨울 아침과 저녁을 헤아리며
새봄, 새싹, 찬란히 빛나는 황매화 꽃,
겨울이 다하기 전에 피어나는 동백의 붉은 미소를 기다린 사람에게는
봄은 희망이요, 설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올라가면 내려올 산(山)을 뭐 하러 올라가느냐고 말이다.
어디 한 번 전문 등산객에게 물어보라.
산에 다니는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간다하고 어떤 사람은 산이 부르니 간다.
산이 거기 있어 간다 하고, 어떤 이는 내려오기 위해 올라간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산이 거기 있어서 산에 간다고도 한다.
나는 산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고 꽃피어 열매 맺게 하고
시내가 흐르는 곳에 꾀꼬리 같은 산새를 두신 이의 아름다움과
지혜, 그리고 그 품의 너그러움과 선함을 맛보기 위해 간다.
작년부터 계획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못가고 올봄 들어 계획했던
하롱베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롱베이는 베트남 북부에 있는 만(灣)으로 1,969개의 크고 작은 섬과
석회암 기둥 등을 포함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명승지 이다.
‘하(Ha)'는 '내려온다', ‘롱(Long)'은 ‘용'이라는 뜻으로,
‘하롱'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행 중에 사정이 있어 취소한 사람도 몇 분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우리의 길에 몸을 실었다.
겨우 열 명이다. 부부 셋, 나머지는 홀로다.
여행하기 딱 좋은? 숫자다.
하노이 공항에서 내리니 베트남 현지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사회주의 국가 사람들은 확실히 자유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얼굴 표정이다.
입국심사 하는 사람이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 웃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 하느라 한 번도 웃지도 않는다.
친절? 그건 모르는 단어다.
그냥 기계처럼 이랄까 군인처럼 자신들의 업무에만 충실했다.
가벼운 인사마저 없다.
우리는 다 이해한다.
사회주의 국가니까. 우리도 한때 표정이, 태도가 그들을 닮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 표정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현지가이드를 보니 수수한 청년이다.
나이를 잘 가늠할 수 없지만 착하고 얌전하게 보였다.
버스는 한국에서 물 건너온 대형버스다.
조금 가다보니 한국인가이드가 올라탔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베트남 간에 문제가 있어서
한국가이드들을 단속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다른 곳에서 있었던 가이드들을 얘기하며 어떤 사람일까 하고
기대하며 깔깔대며 여행이 주는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그가 마이크잡고 우리 앞에 서서 얘기하기도 전에,
그의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마치 1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이 떠들다가
담임선생님이 오시면 갑자기 조용해지는
바로 그런 모습을 오륙십 대인 우리들이 연출하고 말 줄이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키는 1m 65정도 될까? 머리는 갓 해병대 입대한 군인,
아니 베테랑 산전수전 다 겪은 진짜 군인의 모습이다.
가이드 생활 이십 몇 년, 베트남에서만 팔 년 째란다.
피부는 거무 잡잡하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부리부리 하다.
그가 우리 앞에 서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 조용해졌다.
이 깜짝 놀란 분위기 때문에 사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는 깍두기 닮았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다.
그가 없을 하는 말이었지만, 그는 조폭 비슷하게 생겼다.
위아래 옷도 모두 검은 색이다.
나는 눈을 내리 깔고 그의 신발을 보았다.
눈치 챘을 것이다. 역시 검은 양말에 검은 구두다.
그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더럽게 생겼죠? 한다.
조폭 비슷하게 생겼죠? 우리는 우리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심장이 울렁술렁 하고 뒤에서 약간의 신음 비슷한 소리가 나왔다.
70년대 가끔 버스 타면 큰 집에서 바로 나온 사람이 물건 팔러 와서
얘기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외모로만 사람을 보고 판단하려 하지 않으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때는 기도가 부족해서인지 외모(外貌)와 내모(內貌)?가 비슷할 때도 종종 있다.
우리는 노랑풍선타고 이곳에 왔다.
그 여행사에서 일정을 만든 표를 주어서 대충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만든 새로운? 안내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체대 나와서 국가대표 태권도선수를 했고, 국제대회에서 메달도 땄다고 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이런 저런 사연이 있어 스페인에서도 살았고
현재는 태국에 가족과 집이 있고 이곳 베트남에서 혼자 가이드 생활하고 있단다.
그가 만든 안내지 중에 모터보트, 전통마사지, 씨푸드+활어회,
센레스토랑 등을 패키지로 일인당 170 달러라고 했다.
이것은 실속 상품은 못된다. 기본도 아니다.
기본 아래 있는 알뜰 패키지인데 170 달러다.
얼른 계산해 보니 내가 머리가 나쁘지 않다면 일인당 약 20만원,
열 명이니 200만원 정도의 경비다.
난 속으로 재빠르게 생각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빠져야지. 뺀 돌이처럼.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말도 하기 전에 맨 뒷줄부터 돈을 걷겠다고 다가온다.
난 그래도 일행 중 앞에 앉아 있었다.
달러 없으면 한 화도 되고, 카드도 된단다.
카드도 없으면 빌려 주겠단다.
나중에 한국 가서 통장으로 넣어 주면 된단다.
얼마나 친절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 순간 힘깨나 쓰게 생긴 천하장사 강호동 닮은 L씨가
“지금 우리에게 강매하는 거요?”했다.
그 짧은 순간, 긴장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밤밤밤밤, 밤밤밤밤…….’하고 흘렀다.
어쩌지? 그만두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 강매는 아니 구요, 이것이 그나마 제일 싼 것이니 베트남 왔으면
꼭 체험하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그가 한 발 물러서자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 좀 나눠보고 얘기해 주기로 하고
대형 버스 뒤로 어제의 용사들이 모였다.
처음 노랑풍선 안내지에는 추천 선택 관광이라고 되어 있었다.
선택이라는 것은 이용자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 그대로 개인의 선택 아닌가.
난 오직 전우들과? 교제하고 주님의 지으신 세계적인 자연 유산인
그 바다에 서 있는 바위섬들을 보기 위함이다.
내 마음에 누워 있는 감동을 그 하롱베이의 기막힌 절경을 보고
깨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 분위기를 어쩌지? 처음엔 의견을 잘 내지 못했다.
살살 눈치를 보며 이 얘기, 저 얘기가 오갔다.
난 그런 돈도 없고, 있다 해도 그런 비싼 호사를 누릴 수 가 없다.
이런 저런 얘기 오가더니 씨푸드(seafood), 일인당 30달러짜리 하나만 하기로 했다.
서로 미루다 시찰장이 총대를 메기로 하고 맨 앞으로 갔다.
한참 우리 입장을 얘기하는 것 같더니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그 가이드가 일어나 말하기를 선택 관광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분위기가 싸 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그 분위기에 젖어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눈싸움으로 지지 않을 해병대 출신 육십 대인 K씨도 있다.
키도 그 사람보다 크다.
K 씨 : 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렇게 인상을 쓰며 말해요?
가이드 : 원래 인상이 그래요.
그러시는 분은 왜 인상 쓰고 말하세요?
K 씨 : 나도 원래 인상이 이래요…….
가이드 : …….
말로 안지는 저 유명한 H목사 조카도 있다. 신방과 출신이란다.
젊었을 때 산업 전사로 열사의 땅 중동에 갔다 온 분도 있다.
또 있다 공수부대 출신이고, 내일 모레면 칠십인 분도 있다.
합신 교단 축구 대표 선수인 K씨도 있고, 이 중에서 탁구 제일 잘하는 나도 있다.
사모님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별 웃을 거리도 아닌데,
분위기도 웃을 일이 아닌데 잘도 웃는다.
에라, 우리도 웃자.
그래서 그리 크지 않게 웃으며 우리의 길을 갔다.
점심은 공항 식당에서 그 유명한 베트남 칼국수를 먹고
오후에 옌뜨 국립공원에 올라갔다 내려와 제육볶음을 먹는데 꿀맛이다.
사장도 한국인데다, 더 달라면 더 주었다.
난, 밥 두 공기를 먹어치웠다.
보통 집에서는 반 공기 정도 먹는데 이곳에서 먹으니 더 맛있었나 보다.
하노이 시내를 지나는데 그 퇴근하는 모습이 과연 장관이다.
하늘은 뿌옇다. 그럴 때도 있겠지.
그런데 하롱베이 갔을 때도 같은 하늘이고 배 타고 섬을 돌 때도
마치 안개가 짙게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렸다.
습도는 높고 퇴근길에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집으로 가느라
마치 개미군단이 집단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잘도 간다.
선진국인? 한국에서 온 우리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하다.
대단하다. 대단해.
연신 우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다.
도로에는 차보다도 오토바이가 훨씬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자유자재로 차도,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가고 있다.
소위 고속도로에도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가고 사람들이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가끔 소들도 지나갔다.
역주행하는 대형트럭이나 자동차도 있어서 살 떨렸는데 그러려니 하고
자기들끼리 멈추고 비켜주고 잘도 다녔다.
하노이 시내에 퇴근길을 보는데 그 정경이 대단하다.
조그만 오토바이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아이도 태우고 달린다.
곧 부딪힐 것 같은데 아슬아슬하게 비키고 스치고, 멈추고 잘도 지나갔다.
우리 중에 신방과 출신 K씨는 시내를 빠져나가는 내내 중계 방송했다.
이것 보라, 저것 보라하며 놀라고 웃고 감탄하기도 했다.
매연은 또 어떤가. 사실 숨쉬기가 불편했다.
마스크 쓴 사람도 있지만 그냥 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얼굴 표정들도 거의 무표정이다.
저 아래 호치민(전(前) 사이공 ) 시민들은 훨씬 자유롭고 표정도 더 밝다고 했다.
그런데 부딪힐 듯 뒤엉켜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아가씨 두 사람이 한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어서
내가 차창으로 손을 흔들었더니
의외로 웃으면서 한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게 아닌가.
뒤에 타고 있는 아가씨도 밝은 얼굴에 미소를 얹었다.
나는 요즘말로 심쿵 했다.
우리의 버스가 가는 속도나 오토바이가 엉켜서 가는 속도나 비슷해서
계속 따라오기를 은근히 바랐다.
길이 한 번 바뀌나 하더니 그 아가씨들이 사라지고 없다.
그 무수한 무표정한 사람들 속에, 그 흐릿한 매연 속에,
마치 뻘 속에 연보랏빛 찬란하게 피어난 연꽃처럼 그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그것은 천사의 얼굴이요, 천사의 미소였다.
아!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구나.
꽃 향에서 보았던 임의 얼굴, 그 품격, 그 인자(仁慈)하심을 다시 보고
내 마음에도 꽃피어 향내 나도록 가꾸어야지.
여러 일정이 좀 빠르게 진행되다보니 목요일 저녁을 일찍 먹었다.
잘된 일이다. 하노이에서 사역하는 Y선교사가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통화할 때 옆에서 소리 질렀다.
‘사모님도 함께 오세요.’ 하고.
저녁 6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 좀 늦는다.
통화를 시도해도 잘 연결이 안 됐다.
몇 번 만에 연결되었는데 10분 정도 후면 숙소에 도착한단다.
안산 시찰에서 사역하다 갔기에 더욱 반가웠다.
2009년 한국을 떠나 하노이로 갈 때 눈발이 날리는 2월 어느 새벽이었다.
우리 교회차로 그 가족들을 모시고
살림살이 챙긴 짐을 싣고 인천공항에 내려드렸다.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손에 손 잡고, 저들의 앞길을 위해
내가 기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들은 작은 정성을 모아 전해드리고
선교사님 사역을 위해 서로 합심해서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밖에 나가 열대과일을 좀 사가지고
우리 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돌아오는 금요일 오전 일정이 있었는데 가이드는
바로 공항으로 간다 하고는 도착 전에 내렸다.
잘 가라는 인사도 없었다.
선상에서 미리 주문한 씨푸드도 설마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전날 ‘내가 뭘 잘못 했기에 이렇게 하느냐’며
오히려 우리에게 섭섭하다 했다.
아무 말 없이 버스에서 내린 그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자기 길을 갔다.
꼭 저래야 할까?
자신이 할 것만 하고 받을 것만 받으면 되지 않을까.
가이드 비도 1인당 50달러였다.
사실 우리는 그래도 가이드에게 팁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맘속에 흐르는 분위기는 아니올시다 였다.
한국인 가이드가 내리고 난 후 현지 가이드를 불렀다.
각자 1만원씩 걷어놓은 돈을 절반쯤 주고
교대로 운전한 두 기사에게 전해주라 했다.
그는 고맙다 며 꾸벅 절을 했다.
참 순박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가 가는 곳에 함께 가고 거친 태도나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그에게 팁을 주자고 결정했다.
적지만 한국인 가이드에게 갈 팁이 그들에게 갔다.
드디어 공항이다.
출국심사를 받기 위해 좀 전에 나눠 받은 여권을 가지고 줄을 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금 우리에게 강매하는 것이냐’고 항의했던
L씨 여권에 문제가 있어서 비켜서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여권 두 장이 찢어져 있어서 다른 곳(공안)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냥 찢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찢은 것이 분명하다.
그 노랑풍선 여행사 관계자와 전화하고 이리저리 신경 쓰며 일을 처리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해결되어 귀국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난 아직도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신기하다.
놀랍다. 기적 같다.
옛날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기적도 아니다.
낯선 땅에서 경험한 일들이 자꾸 비행기를 앞으로 밀어내더니
반가운 인천공항까지 무사히 왔다.
아마 천국 갈 때도 주님 주신 여권을 가지고 기적같이 이 땅에서 떠올라
저 천국에 갈 때 천사들과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둘러서서 우리를 반겨 주리라.
난, 아직도 심쿵 한 그 기쁨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나하고 뒤돌아본다. 혹시?
2016. 4. 2. 토.
하노이 다녀와서 / 야화 김영배
|
첫댓글 한참 읽었네요..ㅎ
감사합니다
탱큐!
네 봄은 누강나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건 부명합니다.
좋은 글 저도 한참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미님 다녀가신처럼,처럼
발걸음에 감사합니다.
이 봄날에
아름다운 봄
빛나는 봄
님만의 이야기
수놓는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