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
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차이점
- 연경남선교사 -
오늘날 교회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두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이고, 다른 하나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입니다. 이 두 표현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교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선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방향성을 지니게 됩니다.
먼저 '선교하는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가 선교를 사역의 한 부분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교는 보통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단기 선교팀을 보내고, 선교 헌금을 모으거나 선교 주일을 지키는 활동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교회는 ‘선교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교육, 예배, 봉사, 친교, 그리고 선교. 이렇게 나열된 사역 가운데 선교는 단지 한 항목일 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도들에게도 선교를 특정인의 소명이나 교회 내 특별한 부서가 감당하는 영역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선교를 자신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특별한 영역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각 없이, 소수의 선교 담당자들이 프로젝트처럼 선교 사역을 실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쉽습니다.
반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개념은 단순한 교회 운영 방식의 변화나 선교 전략의 차원을 넘어서는, 매우 본질적인 신학적 통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서구 교회의 쇠퇴와 사회 전반의 급격한 문화 변화 속에서 교회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다시 묻는 흐름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8년에 출간된 『Missional Church: A Vision for the Sending of the Church in North America』라는 책은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 책에 참여한 신학자들은 교회를 단지 선교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영국 국교회의 신학자이자 오랜 기간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레슬리 뉴비긴입니다.
그는 인도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복음을 전하며,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장 큰 통찰 중 하나는, 오히려 서구 사회야말로 이제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선교지’가 되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는 서구 사회가 기독교적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복음의 능력과 진리를 상실해버린 상태임을 지적하며, 복음이 문화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기 위해서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보냄 받은 공동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교적 교회라는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교회는 단지 특정 사역이나 활동으로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세상 속에 보냄 받은 존재입니다. 교회의 정체성 자체가 선교적이며, 그 삶의 방식 전체가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언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모든 사역 -예배, 교육, 양육, 돌봄, 봉사, 심지어 재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 모두가 외부를 향한 선교적 목적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단지 모이기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흩어지기 위한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사회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목회자의 설교와 리더십, 교회의 프로그램과 구조, 성도의 공동체 생활 전반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적 교회’는 단어 하나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과 방향성은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선교를 교회가 수행하는 수많은 사역 가운데 하나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존재 자체가 이미 세상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교회란 본질적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받아 세상으로 파송된 공동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셔널 처치’라는 이름은 단순히 새로운 교회 모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다시 규정하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교회는 스스로를 모이는 공동체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교회는 그 존재의 시작부터 세상 속에 보냄 받은 공동체로 존재하며, 그 파송의 사명은 오늘날과 같은 세속화된 문화 속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 성도 역시, 그 공동체 안에서 함께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소명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