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태 다룬 일본 드라마 한국서 개봉 안돼
넷플릭스 “자체 심의 준비하다 잘못돼” 해명 미흡해
6월1일 다른 나라 개봉 예정인데 왜 준비 안했나
사이트서 관련 정보 검색해도 찾을 수 없어 의문
넷플릭스 평소 매출 미공개 등 비밀주의로 논란 키워
‘더 데이스’는 3·11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7일간의 긴박한 상황을 극화한 8부작 드라마로 야쿠쇼 코지(왼쪽) 등 일본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게 그 예고편만 존재한다는 환상 속 영상이군요.”
“왜 대한민국에서 개봉을 못하게 되었는지 넷플릭스 관계자는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전 검열 받았나?”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의 ‘더 데이스’ 공식 예고편에 달린 댓글들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이 드라마에 대해 최근 여야가 한바탕 공방을 벌였다. 정치권 공방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누리꾼의 의구심이 아직 크다. 넷플릭스 코리아가 ‘더 데이스’의 한국 미개봉과 관련해 각종 매체의 질문에 답했지만, 입장문이나 보도자료 등을 내지 않으면서 정치적 외압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누리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개봉이 미뤄지는 이유에 의문을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7일간 벌어진 실제 상황을 그리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산리쿠 연안에서 약 130km 떨어진 지점에서 매그니튜드 9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지진 발생 후 약 1시간 뒤, 최대 높이 15m의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덥친다. 냉각기능을 상실한 원전은 폭주하기 시작했고,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버린다.
특히 대통령의 4월 방미 당시 투자 성과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적극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커진다. 당시 넷플릭스가 투자 금액을 과장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드라마 관련 의문점을 정리했다.
① 왜 넷플릭스는 영상물 등급 심의 의뢰도, 자체 등급 준비도 하지 않았나=국내서 영상물을 개봉하려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서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6월 1일 개봉이 예정된 ‘더 데이스’에 대해 넷플릭스 코리아는 등급 판정 신청을 하지 않았다.
넷플릭스 측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자체 등급 분류를 하기 위해 신청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법 개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에 선정되면 영등위 심사 없이 자체 등급을 메겨 개봉할 수 있다. 문체부와 영등위는 올해 3월부터 자체 등급 분류 사업자 선정 절차에 들어가 5월 31일 넷플릭스가 이에 선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처럼 거대 기업은 당연히 자체 가능 그룹에 포함될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측은 “선정될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선정될지 알 수 없었다면 이전처럼 영등위에 신청하거나, 자체 심의를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심의 의뢰도, 자체 심의 준비도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개봉이 6월 1일 예정돼 있었는데도 말이다. 넷플릭스는 자체 등급 분류를 할 수 있도록 회사 내부 시스템을 개선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작품의 공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자체 등급 분류로 공개하려는데 작업이 지연돼 글로벌 공개일을 넘겼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에서 ‘더 데이스’를 검색하면 ‘대한민국에서 현재 시청 불가’란 자막만 뜬다.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② 왜 ‘더 데이스’ 관련 정보는 사라졌나=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더 데이스’는 최근까지 한국 넷플릭스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다. 또 ‘내가 찜한 콘텐츠’ 목록에 표시가 가능했다. 하지만 13일 현재 ‘더 데이스’ ‘the days’로 검색해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찜한 콘텐츠’ 목록에서도 사라졌다는 시청자의 지적도 있다. ‘더 데이스’의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넷플릭스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도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다. 시청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해외에서 시청한 누리꾼들이 각종 사이트에 올린 후기뿐이다. 현재 ‘더 데이스’는 남극을 비롯해 70개국 이상에서 볼 수 있다.
③왜 개봉 날짜에 관한 정보가 없나=넷플릭스 유튜브에 ‘더 데이스’의 공식 예고편이 공개된 것은 5월 12일이다. 첫 티저 예고편을 2월 16일에 올리는 등 이때까지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언제 개봉한다는 공지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공식 예고편을 띄운 다른 콘텐츠들은 개봉을 마쳤거나 최소한 개봉에 관한 정보를 게시했다. 5월 9일 예고편을 올린 ‘네버해브 아이 에버’, 5월 11일 올린 ‘한마 비키’, 5월 16일 올린 ‘사이렌: 불의 섬’ ‘내 이름은 마더’ ‘익스트랙션2’는 이미 개봉됐다. 5월 9일 올린 ‘버드 박스: 바르셀로나’는 2023년 7월 14일 공개한다는 친절한 안내문이 올라 있다. 5월 18일 올린 ‘니모나’는 6월 30일 공개라고 안내문이 뜬다. 하지만 ‘더 데이스’는 2023년 공개 예정이라고만 나온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 코리아의 투명하지 못한 정보 공개가 의구심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4월 대통령 방미 때 넷플릭스는 3조 3400억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투자 금액을 부풀려 공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그동안 매출액이나 수익 등의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다. 기업 공시 사이트 등에서 관련 정보를 기자들이 찾아내 추측할 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의 기업 관련 제도의 허점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정보를 숨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현재 한국 콘텐츠 시장의 절대 강자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넷플릭스 앱 국내 사용자는 4월 기준 1156만 명에 이른다. 공영방송 KBS보다 넷플릭스가 힘이 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영화, 드라마 제작사들은 자금력이 풍부한 ‘큰 손’ 넷플릭스의 투자에 목을 매고 있다. 콘텐츠 자금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갑 중의 갑’이 됐다. 그럴수록 사회적 책임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