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세요. 당신의 아내에게,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의 아이들 에게,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세요. 그가 누구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미소는 당신에게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을 갖게 해 줍니다. <마더 테레사> 어린왕자를 쓴 프랑스의 작가 생떽쥐베리에 대해선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 책은 아이들을 위한 작품일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동화이다. 하지만 생떽쥐베리가 쓴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산문과 중단편 소설들 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생떽쥐베리는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싸운 전투기 조종사였으며, 전투 참가중 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스 페인 내란에 참여해 파시스트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생떽쥐베리는 그때의 체험 을 바탕으로 <미소>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썼다. 오늘 내가 들려 주 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소설의 내용이다. 이것이 실제 자신의 체험을 바탕 으로 한 것인지 허구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작가 자 신의 진실한 체험일 것이라고 믿는다.
<미소>에서 생떽쥐베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전투중에 적에게 포 로가 되어 감방에 갇힌 적이 있었다. 간수들의 경멸어린 시선과 거친 태도로 보 아 그가 다음 날 처형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여기에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보겠다. 나는 죽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를 찾아 호주머니를 뒤졌 다. 몸 수색 때 발각되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다행히 한 개비를 발견했다. 나는 손이 떨려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데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빼앗아 가 버린 것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과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 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자와 누가 눈을 마주치려고 하겠는가. 나는 그를 불러서 물었다.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 주겠소?"
간수는 나를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기 위해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성냥을 켜는 순간 무심결에 그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 다. 바로 그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신경 이 곤두서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까 어색 함을 피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 그 상황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우리들 두 인간 영혼 속에, 하나의 불꽃 이 점화되었다. 물론 나는 그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 의 미소는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가 피어나게 했다. 그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명의 간수가 아니라 살아 있 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새로 운 차원이 깃들여 있었다. 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구말구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 허둥지둥 나의 가족사진을 보여 주 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했다.
내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다시는 내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될까 봐 난 두려 웠다. 난 그것을 간수에게 고백했다. 내 자식들이 성장해 가는 걸 지켜볼 수 없 는 것이 무엇보다 슬프다고. 이윽고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렸다.
갑자기 간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일어나더니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나 를 조용히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소리 없 이 감옥을 빠져나가 뒷길로 해서 마을 밖까지 나를 안내했다. 마을 끝에 이르러 그는 나를 풀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뒤돌아서서 마을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렇다. 미소는 사람 사이에 꾸밈 없고 자연스런 관계를 맺어 준다. 나는 강연 을 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생떽쥐베리의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곤 한다. 우리가 비 록 자기 주위에 온갖 보호막을 둘러친 채로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누구나 그 밑바닥 깊은 곳에는 진정한 인간이 살아 숨쉰다고 난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당신의 영혼과 내 영혼이 서로를 알아본다면 우리는 결코 적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서로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두려워할 수가 없다. 생떽쥐베리의 <미소>는 두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는 기적의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한 예이다. 사랑을 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가식적인 껍질을 깨고 서로의 영혼과 연결된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를 볼 때 우리는 왜 미소를 짓는가? 아마도 그것은 아무런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은 한 인 간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아무런 속임수 없이 순진무구함 그 자체 로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 한 인간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안 에 있는 아기의 영혼이 그것을 알아보고 환하게 미소짓는 것이다.
<하녹 맥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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