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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유러피언 콘서트,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 / 97분>
베를린 필 &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및 피아노
모리스 라벨 <쿠프랭의 무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13번 KV415>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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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2년 8월 2일 네이버캐스트 / 박제성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라벨, 쿠프랭의 무덤
라벨의 피아노 솔로를 위한 마지막 작품인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은 1917년 작곡가가 서거하기 20년 전에 출판되었고 1919년 마르그리트 롱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모음곡은 프랑스의 위대한 바로크 작곡가인 프랑수아 쿠프랭의 모음곡 형식인 오르드르(Ordre)에 대한 오마쥬이자 18세기 프랑스 음악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으로서 프렐류드, 푸가, 포를랑, 리고동, 미뉴엣, 토카타와 같은 고전적인 무곡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로움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예리한 자아성찰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간결하지만 그 안에 완벽한 내적 완결성과 리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담고 있는 걸작이다. 라벨은 이 마지막 피아노 솔로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피아노 미학에 대한 굳은 신념과 더불어 신고전주의에 대한 관점 및 참담했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내면에 대한 반영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 대부분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인 1915년경에 스케치되었지만 라벨이 자원입대를 한 탓에 전쟁이 끝난 뒤에야 완성되었다. 여섯 곡으로 구성된 쿠프랭의 무덤은 전장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각각 헌정되었는데, 악보의 첫 페이지에 라벨은 전쟁으로 희생된 그들에 대한 헌사를 적어놓았다.
또한 작품이 출판된 1917년에는 라벨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작곡가는 이 충격에서 평생토록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무덤’이라는 명제는 선배 작곡가들, 전장의 동료, 어머니를 포함하여 라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프랑스인들에 대한 추모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그 어떠한 영광스러운 기념물도 명료한 동시에 유연함을 머금고 있는 이 빛나는 멜로디와 리듬들보다 프랑스에 대한 추억에 더 높은 경의를 표할 수 없다. 우리(프랑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실로 완벽한 표현이다.” 높은 인기를 얻었던 이 쿠프랭의 무덤은 1919년 작곡가 자신이 푸가와 토카타를 제외한 나머지 네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여섯 가지 색을 띤 선율
제1곡: 프렐류드(Prelude)
첫 곡은 전주곡(Prélude)으로서 섬세한 무궁동이며 극도로 평탄한 터치와 템포를 요구한다. 서정적인 터치들이 16분음표들을 거품처럼 방울방울 솟아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제2곡: 푸가(Fugue)
그다음 곡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푸가(Fugue)다. 라벨이 화성법에서 벗어나 작곡한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3분여의 짧은 곡이지만 3성부로 구성된 이 푸가에서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정확하게 짚어내며 바로크적인 분위기와 라벨 특유의 감수성을 동시에 표현해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라벨은 이 작품을 초연한 마르그리트 롱에게 이 푸가를 틀리지 않고 외워서 잘 연주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단순해 보이지만 표현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이 푸가의 마지막 부분은 태엽식 뮤직 박스가 작동을 멈추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평소 정교한 기계제품에 열광했던 라벨의 성격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곡가 특유의 무균질적인 결벽증과 옛 양식에 대한 탐미적인 현대화를 통해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반영하는 듯한 이 푸가는 연약하지만 강렬한 흡인력을 발산한다.
제3곡: 포를랑(Forlane)
포를랑(Forlane)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무곡(Frioule)으로서 그 생동감 넘치는 리듬 때문에 교회로부터 금지 당하기도 했다. 라벨이 살던 당시에 포를랑은 탱고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무곡으로 널리 퍼졌던 만큼 쿠프랭의 무덤에 바치는 새로운 시대의 무곡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한 만큼 연주 시간도 여섯 작품 가운데 가장 길다. 첫 주제에 등장하는 연속하는 붓점 리듬은 지루해지지 않게 미묘한 역동성을 띄도록 연주해야 하는 동시에 매력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방종적인 퇴폐미도 은유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두 번째 주제는 냉정하고 세 번째 주제는 순결하며 네 번째 주제는 어딘지 호전적이다. 화성에 대한 라벨의 특별한 감수성이 드러나는 명장면이다.
제4곡: 리고동(Riguadon)
에너지 넘치는 리고동(Riquadon)은 전원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무곡으로서 가운데 부분에 순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트리오가 위치하고 있다. 오케스트레이션 버전에서 이 트리오 부분은 오보에와 플루트, 클라리넷, 잉글리시 호른 등등이 교대로 멜로디를 주도하며 음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나간다. 이러한 측면에 대해 코르토는 이 무곡을 샤브리에의 마을 사람들의 춤(danse villageoise)에 비교하기도 했다.
제5곡: 미뉴엣(Menuet)
그다음 다섯 번째 곡은 귀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뉴엣(Menuet)이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와도 비슷한데, 조성도 G장조로 서로 동일하다. 가운데 부분에 등장하는 뮤제트(musette)에서는 피아노의 소프트 페달을 사용하여 고결한 음향을 유지하다가 갑작스럽게 크레센도가 등장하여 응축된 클라이맥스의 힘을 발산한다. 이어지는 재현부는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하여 화음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그의 앞선 고전적인 미뉴엣(Menuet antique)이나 소나티네(Sonatine)의 미뉴엣 악장에서의 작법과 동일하다. 우아한 멜로디로부터 기인하는 깊은 감동의 층위를 만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6곡: 토카타(Tocata)
마지막 토카타(Tocata)는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의 스카르보(Scarbo)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고도 기교적인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음악 전통에 대한 경의라기보다는 리스트 악파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현란함 가운데에서도 간헐적으로나마 등장하는 비극적인 암시와 시종일관 군대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진행은 이 작품이 전쟁에서 쓰러져간 전우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음을 다시금 각인케 해 준다. 라벨 특유의 세공력과 바로크 양식 특유의 구축력이 빚어낸 이 비르투오소 아크로바틱의 향연은 승리를 약속하는 듯한 폭발적이고도 고양감 높은 마지막 코다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추천앨범
두 장의 모노널 레코딩이 라벨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석을 담고 있다. 하나는 발터 기제킹의 고전적인 연주(EMI)이고 다른 하나는 라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냈던 로베르 카자드쥐의 권위적인 연주(SONY)가 그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작곡가와 악기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는 이들의 연주는 피아노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역설하는 듯하다. 코르토의 제자인 블라도 페를레무터(Nimbus)는 아름다운 음향과 낭만적인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고, 루이 로르티에(Chandos)는 현대적인 감수성에 의한 탐미적이고도 표현주의적인 관점을 이상적으로 해석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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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2년 11월 2일 네이버캐스트 / 황장원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13번 C장조 KV315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장르로 오페라와 더불어 협주곡을 꼽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특히 그의 완숙기인 빈 시절(1781~1791)에 탄생한 열일곱 편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예술적 발전의 선명한 궤적이자, 18세기 협주곡사의 가장 빛나는 기념비로 추앙되고 있다. 그런데 이 피아노 협주곡들은 빈 시절 모차르트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그는 대개 자신이 주최하는 예약연주회에서 직접 연주할 요량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썼으며, 그 공연을 통해서 연주회 수입뿐 아니라 제자들도 확보했던 것이다. 아울러 피아노 협주곡은 그와 빈 청중들 간의 주요 소통창구이기도 했다.
빈 시절 모차르트의 첫 피아노 협주곡들은 1782년 말에서 1783년 초 사이에 나왔다. 그 세 작품은 제11번 F장조(K.413), 제12번 A장조(K.414), 제13번 C장조(K.415)이다. 사실 이들의 작곡 및 초연은 제12, 11, 13번의 순서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훗날 ‘쾨헬 번호’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번호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 중 마지막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제13번 C장조]를 살펴보자.
모차르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제10번 E♭장조(K.365)] 이후 약 5년여 만에 다시 피아노 협주곡에 손을 댔던 이유는 당시 빈의 음악적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당시 빈에서 신흥 악기였던 피아노(포르테피아노)의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빈 청중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도 피아노 협주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모차르트도 다소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협주곡들을 쓰면서 그는 빈 청중의 취향을 살피면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그들 사이에 성공리에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1782년 12월 28일,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쓴 유명한 편지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협주곡들은 너무 쉬운 것과 너무 어려운 것 사이에서 행복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매우 화려하고 듣기에 유쾌하고 자연스러우며, 지루한 구석이 없지요. 여기저기에 감식가들만이 만족할 만한 패시지들도 있지만, 감식력이 떨어지는 이들조차 왜 그런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작곡되었답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심사 숙고했던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세 작품은 기본적으로 빈 청중의 보수적인 기호를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무리되었으면서도 모차르트 특유의 개성은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11번 F장조]와 [제12번 A장조]가 다분히 살롱적 취향인 수수한 표정과 온건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데 비해, 마지막 작품인 [제13번 C장조]는 보다 과감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앞선 두 작품을 통해서 빈 청중의 취향을 충분히 파악한 모차르트가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이 [피아노 협주곡 제13번 C장조]를 빈 시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창작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아폴론적인 장대함을 지향하다
이 협주곡에서 우선 주목할 부분은 기본 조성이 ‘C장조’라는 점이다. 18세기의 작곡가들은 각 조성마다 고유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에 대한 규정은 작곡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C장조는 ‘아폴론적인 장대함’을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단적인 예로 유명한 [주피터 교향곡]을 들 수 있는데, 그 교향곡에서처럼 이 협주곡에서도 당당하고 화려한 울림, 군대행진곡 풍의 리듬, 밝고 쾌활한 표정을 만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이 협주곡의 관현악 파트에 파곳, 트럼펫, 팀파니를 추가했는데, 이러한 편성은 당시 그가 고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규모였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부분은 대위법의 적극적인 부각이다. 무엇보다 곡의 첫머리부터 카논풍의 진행이 나타나며, 첫 악장에 나타나는 여러 주제들도 거의 대위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빈 시절에 모차르트는 유력한 음악애호가이자 후원자인 판 스비텐 남작을 통해서 바흐와 헨델의 작품세계에 새로이 눈을 떴고, 그 대가들의 음악을 연구하여 자신의 양식을 발전 심화시키는 동력으로 삼았다. 비록 이 협주곡은 그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던 탓에 조금은 불균형한 듯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첫 악장의 활기찬 추진력과 마지막 악장의 생생한 색채 등에서 모차르트 특유의 진취성과 독창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1악장: 알레그로, C장조, 4/4박자
흡사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위풍당당한 울림과 흥미진진한 흐름이 돋보이는 악장. 이탈리아풍 서곡을 연상시키는 밝은 색채와 행진곡풍 리듬, 경쾌하고 유려한 선율, 그리고 곳곳에서 감상자의 의표를 찌르는 모차르트 특유의 재치 가득한 전개 등이 시종 유쾌한 흥분을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대위법적이 요소들이 인상적인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분히 관습적인 피아노의 비르투오소적인 활약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제2악장: 안단테, F장조, 3/4박자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서정적인 노래가 흐르는 순수하고 담백한 느낌의 느린 악장. 트럼펫, 팀파니 등 이른바 ‘군악대풍’ 악기들은 침묵하고, 현악기들의 섬세한 연주가 다정다감한 배경을 조성하는 가운데 피아노가 오페라 아리아 풍의 칸타빌레 선율을 유유히 노래한다.
제3악장: 알레그로, C장조, 6/8박자
이 변화무쌍한 론도 악장은 풍부한 아이디어와 대비 선명한 흐름으로 감상자에게 작은 경이를 안겨준다. 처음에는 앞선 악장의 다소 정체된 기분을 가뿐히 날려버리는 피아노의 경쾌한 독주로 출발하지만, 이어지는 부분은 돌연 c단조의 아다지오로 전환하여 사뭇 진지하고 비극적이기까지 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 부분은 원래 이 협주곡의 제2악장으로 구상되었던 스케치가 되살려진 것으로서 모차르트의 왕성하고 집요한 표현 욕구를 대변한다. 이후 음악은 장조와 단조를 수시로 오가며 다채롭고 화려한 흐름을 이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목가풍의 아름다운 시정을 환기시키며 은은한 피아니시모로 조용히 사라져가듯 마무리된다.
추천음반 및 DVD
[음반] 마르틴 헬름헨(피아노) / 네덜란드 챔버 오케스트라 <PeantaTone>
[음반] 올리버 슈뉘더(피아노) / 카메라타 베른 <RCA>
[음반] 수전 톰즈(피아노) / 고디어 앙상블 - 실내악 편곡판 <Hyperion>
[DVD] 미츠코 우치다(피아노, 지휘) /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DG ·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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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2월 9일 네이버캐스트 / 노태헌 글>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Op.55 'Eroica 영웅'
특성 :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소식에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신포니아 에로이카'로 수정
초연 : 1803~1804년 사이에 작곡. 1804년 12월에 초연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당당한 자기 확신이며 거칠 것 없는 외침과도 같은 곡이다. 베토벤은 1802년 고질적으로 앓아오던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거의 들을 수 없었으며, 그해 10월 6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작성하여 두 동생에게 남긴다.
“…… 만일 죽음이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기회를 갖기도 전에 찾아온다면, 아무리 내 운명이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해 할 것이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테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베토벤은 이 비장한 유서에 담긴 각오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음악적으로도 1801년~1803년 사이엔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어법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그의 특징적 작법은 매우 건축적이며, 장대한 기상과 함께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들 중 하나인 [영웅 교향곡] 역시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베토벤은 그의 창작 시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시기로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귓병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 새로운 창작시기
물론 참담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가득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처럼 베토벤이 목숨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유서에 담겨있는 예술가로서의 투쟁과 불굴의 의지는 당시 베토벤의 창작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 무렵에 작곡한 작품들에서는 투쟁, 갈등, 대립이 화해되며 종결되는 양식이 드러난다. 특히 [영웅 교향곡]에서 나타나는 개별 악장들의 확장된 스케일, 50여 분에 이르는 긴 연주시간, 내용적 심화는 습작적인 면모를 보이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요소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나타난 비장한 각오가 [영웅 교향곡] 전 악장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02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804년 봄에 완성되었고 18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의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대중들은 이 곡의 거친 형식미, 광폭하고 야수적인 음향, 긴 연주시간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때부터 자신의 내면을 담은 열광적인 작품들을 미친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3번 교향곡]을 통해 비로소 베토벤만의 세계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작곡을 시작한 교향곡
베토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제 군주정치에서 비롯된 폐해를 누구보다도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베토벤에게 프랑스 혁명의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일으켜 세운 나폴레옹에게 강하게 이끌리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에 따르면 당시 빈 주재의 프랑스 공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이런 의지를 촉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은 베르나도트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위대한 교향곡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화주의의 이상과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이 이 교향곡에 대한 최초의 발상을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영웅 교향곡]의 음악적 실체는 베토벤이 이 작품의 형태를 구상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기존에 완성한 자신의 작품인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시골풍 무곡 WoO 14-7],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Op.35]을 [영웅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에 인용했다. 이 3개의 곡 중에서 [영웅 교향곡]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작품은 1801년에 작곡한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이에 관해서는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의 주장이 다소 설득력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플로로스는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에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은밀한 찬사가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구심점을 이루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의 서사시인 [프로메테오]이다. 베토벤은 이 서사시를 통해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공화주의자’에 비유하면서 나폴레옹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 자신의 새로운 예술을 불멸의 프로메테우스에 빗대고 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낸 베토벤
나폴레옹에 대한 베토벤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영웅 교향곡]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갖지도 못했고, 헌정되지도 않았다. 베토벤은 완성된 악보에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써넣었고, 그를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으로 비유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소식을 듣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도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혀있던 악보의 표지를 찢어서 내팽개친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전기 작가인 페르난디트 리스에 의해 전해지는 이 유명한 일화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애꿎게도 당시 나폴레옹을 깎아내리고 싶어 했던 영국의 속셈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사건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에 크게 실망한 베토벤은 작품의 제목이었던 “보나파르트 교향곡”을 빼버리고 [신포니아 에로이카 – 한 위대한 인물을 추념하기 위해]라고 제목을 수정했다. 이 흔적은 현재 사본 악보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보존되어 있다. 한편, 이 혁신적인 교향곡에 대한 인상은 공개 연주회를 본 하이든의 전기 작가인 카를 아우구스트 그리징어가 당시 출판사에 보낸 서신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 여기 한 편의 교향시는 더 높은 대지로 다가왔다!”
1악장 - 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해 풍부한 악상을 지닌다. 1주제는 저음역의 현악기에 의해, 2주제는 온화한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 같은 음악학자는 1주제의 선율을 ‘영웅 주제’로 명명했으며 음악학자 쾨르너는 이 ‘영웅 주제’를 군대적 심상을 지닌 동기로 간주하였다. 또한 1악장에서는 반음계적인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악장 - Agadio assai
유명한 ‘장송 행진곡’ 악장이다. 현악기에 의한 주제는 영웅의 장중한 걸음걸이를 나타내는것 처럼 느껴진다. 중간부에서 나타나는 C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생전의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시 어두운 분위기의 ‘장송 행진곡’으로 마무리 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쉼표는 절뚝거리는 영웅의 걸음걸이를 그려내고 있다.
3악장 - Allegro vivace
3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을 보인다. 가벼운 악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키워가며 무거운 움직임을 보인다. 트리오에서 사용되는 코랄풍의 호른 선율은 위풍당당하며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의 행진을 보는것 처럼 느껴진다.
4악장 - Allegro molto
이 악장의 주된 주제는 베토벤의 작품 [영국풍 시골 무곡] 선율이다. 1주제인 피치카토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평온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후 대위법적 기교들이 얽히면서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닫게 된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코다가 등장하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 한다.
추천음반
명성만큼 뛰어난 연주가 많아 4장 외에도 명연이 수두룩하다. 칼 뵘(DG)의 연주 중에는 베를린필과의 연주가 뛰어나다. 베를린필의 중후한 음향과 공격적인 진행이 인상적이다. 줄리니(DG)의 연주는 유려한 흐름과 서정적인 전개가 돋보이인다. 카라얀(DG)의 80년대 녹음 역시 디테일한 표현력과 특유의 화려한 색채감각, 박력으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이팅크와 LSO의 연주는 명확함이 빛나는 연주로 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작품을 지휘했다. 이외에도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의 명연도 빼놓을 수 없다.
노태헌 음악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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