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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후예
이 범 선
미술 선생인 홍(洪)선생, 그와 딱 마주치기만 하면 이혜화(惠花) 선생은 훌렁 옷을 벗고 알몸뚱아리가 되곤 하는 것이었다. 그건 참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혜화선생은, 어쩌면 아직도 자기는 병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고 이렇다 하게 몸에 무슨 이상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홍선생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고 나체가 되곤 하는 그것만이 병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얼른 자기 책상 앞으로 가서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자리에 가 앉으면 그래도 앞에 놓인 책상으로 벗은 몸의 하체만이라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공교로운 것은 교무실 책상 배치가 저만큼 홍선생과 마주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그래 혜화선생은 아침 직원조회 때라든가 점심 도시라을 먹는 때면 자기의 벗은 아랫도리를 그의 앞에서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몰라 공연히 두 다리를 책상 밑에서 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도 그건 전혀 허사였다. 그녀는 별수 없이 홍선생 그 앞에서는 홀랑 발가벗은 나체였다.
혜화선생이 남해안 조그마한 읍의 지금 여학교 국어 선생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해 봄이었다. 모 은행 과장으로 이 읍에 전근을 한 남편을 따라 내려오고 보니 읍내 여학교의 미술 선생인 홍선생이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그 홍선생의 아버지가 여학교의 이사장이라 마침 자리가 하나 비었던 국어 교사로 그녀는 아주 쉽게 취직이 되었던 것이다.
“박과장 잘 있죠?”
“예. 왜 요즈음 안 들르세요?”
“한번 가겠습니다. 냉장고에 맥주는 많이 지장돼 있겠죠?”
“예. 언제든지요!”
홍선생은 소탈한 성격이어서, 이사장의 아들이라는 자칫하면 경원당하기 쉬운 처지이면서도 여러 선생들과 잘 어울렸다. 혜화선생과도 곧잘 농지거리를 했다. 혜화선생 편에서도 남편의 동창이란 것으로 그와 제법 스스럼없이 대하였다. 학교 바로 옆 과수원 안에 집이 있는 홍선생은 아침 저녁으로 셰퍼드를 끌고 산책을 나왔다가도 친구 박과장을 찾아 종종 혜화선생네 셋방엘 들르곤 했다. 때로는 개를 마루기둥에 매어놓은 채 박과장과 어울려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지방 조그마한 읍내에 그렇게 동창이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정답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들 둘은 비록 직장은 달랐지만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그렇게 꼭꼭 만나서 허물없이 농담을 던지며 술을 마시곤 했다.
“자네도 이제 결혼을 해야잖나.”
혜화선생의 남편인 박과장이 그렇게 던지면
“그런데 나 같은 무명 화가한테 누가 와주어야지.”
하고 그는 껄껄 웃었다. 그는 부자집 아들에 나이 서른 셋이면서 아직 미혼이었다.
“너무 미인을 고르니까 그렇지.”
“미인? 그야 …… 아내는 모름지기 미인이어야지! 하하하.”
“그림 그리는 친구들은 미에 대한 눈이 너무 높아. 세상에 그림처럼 그렇게 예쁜 여자가 어디 있나.”
“결코 눈이 높은 건 아니고. 허지만 아내는 역시 예뻐야 할 거야. 하하하. 어떻습니까 이선생님, 좋은 신부감 하나 소개해주십쇼. 이선생 같은 미인을요!”
그는 옆에 앉아있는 혜화선생까지도 그렇게 자연스럼게 대화 속으로 끌어들일 줄도 아는 것이었다. 그처럼 그는 대하기 스스럼없는 좋은 사이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혜화선생은 홍선생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졌다. 그와 마주치기만 하면 도무지 어떻게 자기 몸뚱아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전과 다름없이 빙그레 웃으며 대하는 홍선생과 복도 같은 데서라도 마주치면 그녀의 옷이 스르르 벗겨지며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두 손을 공연히 부채살처럼 펴서 사타구니께를 가리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알몸뚱아리로 벗은 채 도립 병원 응급치료실에 누워있었다. 남편도 함께.
“정신이 듭니까. 이선생님?”
홍선생의 얼굴이 바로 그녀의 얼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알몸으로 벗은 채 홍선생 앞에 누워있다는 생각만은 들어서 두 손으로 아래를 가리려 했다. 그러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터져왔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날 일을 자세히 들은 것은 남편과 함께 입원실로 옮겨진 오후, 집 주인 아주머니 한테서 였다.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홍선생이 아니더면 두 내외가 고스란히 죽었지!”
그녀와 그녀의 남편 박과장의 침대 사이에 걸상을 놓고 앉은 집주인 아주머니가 그날 아침 이야길 했다.
밤 사이에 눈이 하얗게 쌓였었다. 일찍 일어난 아주머니는 앞마당의 눈을 쓸어 대문까지 길을 내고 뒤뜰도 쓸까 했지만 젊은 부부가 아직 자고 있는데 수선을 떨기가 안되어서 뒤켠으로 돌아가기는 그만두었다. 그런데 홍선생이 셰퍼드를 끌고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아주머니. 눈이 참 잘 내렸죠?”
“어서 와요. 홍선생은 부지련도 하지.”
“눈이 하도 좋아서요. 이 친구 일어났나요?”
홍선생은 커다란 셰퍼드 목에 건 가죽끈을 한층 더 짧게 감아잡으며 뒤뜰쪽으로 돝아갔다. 그런데 곧 그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
“아주머니, 좀 돌아와 보세요!”
주인 아주머니는 신발의 눈을 떨고 마악 마루로 올라서다 말고 뒤켠으로 돌아갔다 .
“아주머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네요.”
홍선생은 한 손에 개끈을 말아쥐고, 한쪽 주먹으로 뒤켠 마루 유리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흑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요.”
“글쎄 여느 날 같으면 일어났을 텐데. 그리구 그렇게 요란스레 문을 두들기는데도 대답이 없는…… 혹…… !”
“혹 연탄가스라도……!”
주인 아주머니와 홍선생은 동시에 같은 생각이 퍼뜩 들며 한층 더 세차게 유리문을 흔들었다. 유리가 떨어져 나갈 지경으로 흔들었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잠잠하였다.
“가만…….”
홍선생은 언제나 그렇게 했듯이 개를 마루기둥에 묶고, 그리고 마루끝의 유리문을 밖에서 들어올렸다. 안에서 고리로 걸어 잠갔지만 유리문은 과히 힘들이지 않고 들렸다.
“박과장! 이선생님!”
홍선생은 다급하게 부르며 마루로 올라섰다. 역시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따라 올라갔다.
“아무래도 수상한데요!”
홍선생은 방문 앞에서 주인 아주머니를 돌아보았다. 당황한 얼굴이면서도 홍선생은 정작 방문을 여는 것은 주저하고 있었다.
“새댁!”
주인 아주머니가 홍선생 앞으로 나서며 한번 더 불러보았다.
그래도 잠잠하다. 주인 아주머니는 드윽 문을 열었다.
“……아니!”
“……!’
주인 아주머니와 홍선생은 순간 숨이 꽉 막혔다. 한쪽 머리 맡에 놓인 책상 위의 전기 스탠드가 아직도 켜진 채 빨갛게 비추고 있는 방 안 광경은 주인 아주머니와 홍선생을 잠깐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두 육체가 이불은 한쪽으로 밀어내고 하얀 요 위에 박과장은 머리를 방 안쪽 혜화선생의 발께로 두었고, 혜화선생은 머리를 문께로 두고 둘이 다 베개도 안 벤 채 번듯이 누워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연탄 가스를…….”
홍선생은 문을 활짝 밀어 열며 소리질렀다.
“어쩌면 좋아! 이걸 어쩌면 좋아!”
주인 아주머니는 그지 방 안을 빙빙 돌며 젊은 부부의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머니, 빨리 전화를 걸어주세요.”
홍선생이 소리쳤다. 주인 아주머니는 정신없이 밖으로 달러나갔다. 홍선생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마루에 던지고 방 안으로 달러 들어갔다. 혜화선생부터 안아올렸다. 평소에는 아주 여윈 몸매로 보았던 그녀이면서 두 팔안에서 축 늘어진 그녀는 무척 무거웠다. 마루로 나왔다. 거기 반듯이 눕혔다. 마루기둥에 매인 셰퍼드가 컹컹 짖었다. 홍선생은 다시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박과장을 안아올렸다. 축 늘어진 그의 팔이 홍선생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역시 거기 마루에 혜화선생과 나란히 눕혔다. 홍선생은 온몸에 땀이 주욱 배어나왔다. 개가 또 컹컹 젖었다. 홍선생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홈치며 거기 나란히 하늘을 향해 누운 젊은 부부의 나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박과장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고, 혜화선생은 하얀 이마 미간을 약간 접고 있었다. 홍선생은 그들을 내려다보고 서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물에 빠진 사람은 가슴을 누르고 코를 빨아 인공호흡을 시켜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탄가스 중독은 어떻게 손을 써야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홍선생은 박과장 옆으로 가 끓어앉으며 그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았다. 잘은 알 수 없으나 아직 심장은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돌아와 혜화선생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돌려 귀를 바꾸었다. 역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그는 얼굴을 들었다.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일까. 그러던 홍선생은 혜화선생의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커다란 유방을 보았다. 순간 그 솟아오른 유방 때문에 그 밑의 심장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얼른 다시 엎드리며 그 커다란 유방에 귀를 꽉 눌러대었다. 눈앞에 그녀의 턱이 하얗게 보일 뿐 역시 심장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얼굴을 돌러 또 귀를 바꾸었다. 역시 심장소리는 잘 안 들렸으나 분명히 귀에 온기는 느껴졌다. 그는 좀더 귀를 유방에 꼭 대어눌렀다. 혜화선생의 허연 복부의 선을 내려가던 홍선생의 시선이 그 어느 점에 이르자 흠찔 눈을 감아버렸다. 분명히 유방의 체온이 홍선생의 귀에 전달되어 왔다.
“여기, 여기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돌아왔다. 의사와 꺼먼 가방을 든 간호원이 따라 들어왔다. 의사는 청진기를 꺼내어 가슴을 짚어보고 눈꺼풀을 까뒤집어 보고 하더니 일어섰다.
“연탄가스를 먹었군요. 도립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곧 전화를 걸어드리죠.”
의사와 간호원은 뭐 별로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혜화선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머리가 여전히 빠개지는 것 같았다. 옆 침대의 남편 박과장은 나직히 신음소리를 내었다.
혜화선생이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 건 두 달도 더 뒤 삼월 신학기부터였다. 동료 선생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그만하기 참 다행이지 뭐에요.”
“그래요. 목숨을 건지고도 정신이 흐릿해지기가 쉽다는데 그렇게 깨끗이 회복되었으니 정말!”
“천만 다행이에요. 정말.”
“여러 선생님들 염려 덕택입니다.”
혜화선생은 그렇게 웃어보였다. 그러던 그녀는 선생들 어깨 너머로 저만큼 자기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선생을 보았다. 홍선생은 그동안 거의 날마다 병원에 들르는 터라 새삼스럽게 다른 교사들 틈에 끼어 수다를 떨 필요가 없었다. 멀리 그녀와 홍선생의 시선이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혜화선생의 그 야릇한 병 ―홍선생만 보면 스르르 옷을 벗고 알몸이 되는 그런 병을 얻은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그녀는 갑자기 도망치듯이 선생들을 헤치고 나와 자기 자리로 가 걸상에 웅크리고 앉았다.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동안 병실에서 홍선생을 대할 때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알몸으로 홍선생 앞에 누워있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확 달아오르도록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처럼 옷을 훌훌 벗고 턱하니 그의 앞에 마주 버티고 서는 그런 환각은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날부터 혜화선생은 학교 내에서 홍선생과 마주치는 것을 극력 피했다. 쉬는 시간 같은 때 긴 복도 끝에서 마주 걸어오는 홍선생을 멀리 보기만 해도 혜화선생은 옆의 아무 교실로나 얼른 피해들어가 일도 없이 서성거렸다. 그러면 학생애들은 좋아라 와 하니 그녀에게 달려들어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어대곤 했다. 그러나 아침 직원조회 때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만큼 마주 바라보이는 자리의 홍선생은 꼭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혜화선생은 그래도 알몸이 되며 책상 밑에서 공연히 두 다리를 오므리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가는 또 금시 하얗게 핏기를 잃곤 했다.
“이선생, 기분이 안 좋은가봐?”
옆자리의 여선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녜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얼굴이 하얗게 됐는데. 아직 좀 무리 아닌가?”
“아네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녀는 애써 웃어보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며 학교 교정에는 노랗게 개나리가 피었다. 혜화선생의 건강도 차츰 원기를 되찾았다.
“이젠 전과 같아졌어. 이선생! 난 은근히 걱정했는데. 가스중독은 그 후유증이 염려되거던. 이젠 아주 혈색이 전보다 더 좋아졌어!”
“그래요. 나도 사실은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지 뭐에요. 이선생이 후유증이라도 일으키면 어찌나 하고.”
동료 여교사들의 말이었다. 그릴 때마다 혜화선생은
“고마와요.”
하고 그지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러나 야릇한 후유증이 이미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 박과장까지도 그녀의 일을 전혀 몰랐다. 사실 그건 몇 마디의 설명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녀는 애당초에 남편에게 자기의 묘한 증상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달라졌다면 밤 자리에 들 때 전과 달리 잠옷을 아주 단단히 챙겨입는 그 점이었다. 사실 그들 신혼부부는 결혼하고 그때까지 주욱 잠옷을 입지 않고 자리에 들곤 했다. 입고 앉아서 차도 마시도 담배도 피우고 하던 잠옷을 정작 자리에 들어갈 때면 둘이 다 훌훌 벗어던지는 것이 그들의 즐거운 습관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 사고 후로 그녀는 자리 속에 들 때 결코 잠옷을 벗으려 하지 않았다. 박과장은 그련 그녀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날 홍선생 앞에 몽땅 드러내놓은 둘의 벌거벗은 모습을 상상하면 박과장 자신도 얼굴이 좀 달아올랐지만,
“아, 누군 안 그런가. 다 마챤가지지 .”
하고 수월하게 넘겨버리려 했다. 하기야 박과장의 말대로 젊은 신혼부부가 알몸으로 한 자리 속에서 뒹굴었다는 것이야 당연하다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혜화선생도 그렇게 생각은 했다. 어떤 외간남자와 그짓을 하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 하고 제법 태연한 체 하려 했지만 막상 홍선생 그를 딱 마주치기만 하면 무슨 마술에라도 걸린 듯 그녀는 스르르 옷을 벗고 알몸뚱아리가 되며 공연히 사지를 뒤틀었다.
“건걍이 좋아졌어요!”
“뭐 별 이상은 없조?”
“박과장도 여전하고요?”
그녀와 마주치면 홍선생은 호인스러운 웃음을 띠며 그렇게 인사를 하곤 했다. 정말 조금도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혜화선생˙은 그와 마주치는 것이 괴로웠다. 사실이야 홍선생 그와 마주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들, 특히 남선생들과 시선이 마주쳐 상대방이 빙긋이 웃기라도 하면 그녀는 어쩐지 그들 앞에 자기의 알몸을 훌렁 드러내는 것 같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날 아침 천혀 의식 없이였다고는 해도 홍선생에게 부부 사이 그 장면의 알몸을 추하게 펴보였고, 뿐 아니라 그에게 안기고, 젖가슴에 얼굴을 비비우고 한 사실을 딴 남선생들까지 다 상상하고 또 더러는 분명히 풍문으로 듣기까지 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혜화선생은 정말 얼굴에 불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꼴을 직접 보지 못한 다른 선생들 앞에서는 그런 대로 시침을 떼고 어찌어찌 평온을 가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홍선생 앞에서만은 아무리 태연해보려 해도 그게 되질 않았고 옷이야 아무리 두꺼운 옷을 몇 겹 꿰어입었건 간에 그 앞에선 언제나 완전한 나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정녕 괴로운 일이었다. 여자가 어쩌다 외간남자 앞에 온전히 벗은 몸을 활짝 드러내어 보였다는 그 수치만도 견디기 힘드는 일인데다 그것을 오히려 큰 은혜로 받아들여야 하논 처지는 정말 더할 수 없는 괴로움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또 요즈음 와서 홍선생의 태도가 그 사건 직후보다 어쩐지 차츰 달라지는 것이 혜화선생을 도리어 한 겹 더 괴롭게 만들었다. 사건 직후에는 오히려 홍선생의 태도가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 박과장 잘 있느냐, 맥주 마시러 가도 좋으냐, 이선생 요즈음 뭐 좋은 일이 있느냐 아주 혈색이 좋아졌다 하며 농지거리도 여전했었다. 그런데 그런 홍선생의 태도가 근자에 와서 차츰 달라지던 것이다. 어쩌면 홍선생은 혜화선생이 자기 앞에서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심중을 눈치채었고, 그로해서 도리어 심상히 잇어버려 가던 그날 아침의 그 흐트러졌던 부부만의 장면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홍선생은 그녀 집에 들르는 일이 적어졌고, 뿐더러 학교에서도 혜화선생과 정면으로 얼굴을 대하기를 그 편에서도 분명히 피하는 듯했다.
“어째 홍선생이 통 안 들르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박과장도 궁금히 여겨 그렇게 물었다.
“아뇨.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녀는 아주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러나 홍선생이 그렇게 그녀의 증세를 눈치채고 될 수 있으면 그녀 앞에서 얼씬거리지 않으려고 마음 써주는 그것이 도리어 그녀의 증세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홍선생 한 사람 앞에서만이 아니라 아주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 앞에서까지 자기가 훌렁 벌거벗고 어기적거리며 걸어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간간이 느꼈다. 그렇게 되자 혜화선생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공연히 화를 버럭 내는 일이 잦았다. 어떤 날 그녀의 스커트자락에 묻은 분필가투를 어느 여선생이 떨어주었다고 팩 돌아서며 화를 낸 일이 있어 그 여선생을 무안하게 만든 일도 있었고, 또어느 뱐엔가 들어가선 수업을 하던 중, 여학생 하나가 옆의 학생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했대서 학부형까지 불러다 야단을 친 일이 있어 그애들의 어머니들뿐 아니라 다른 선생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교정의 개나리가 떨어지고 신록이 차츰 짙어지는 초여름이 되었건만 혜화선생은 봄철 옷 그대로에 봄코트까지 꿰어입고 땀을 흘리며 출근하는 것이었다.
“이선생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글쎄. 가스중독이 됐던 사람은 몸이 추운가 보지 .”
“그런가?”
여선생들은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 외엔 이렇다 할 별 이상도 없었다. 혜화선생 자신도 그녀대로 자기의 옷이 계절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덥고 무거웠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딴 여선생들처럼 원피스를 홀가분하게 걸치고 나설 수가 없었다. 모처럼 그렇게 갈아입고 나섰다가도 단번에 원피스가 훌렁 위로 들어올려질 것만 같아 대문 앞에서 다시 돌아들어가 두꺼운 옷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혜화선생은 그날 치른 시험답안을 채첨하느라 딴 선생이 다 퇴근한 후까지 늦게 있다가 혼자 교문을 나섰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살읕 받은 과수원의 사과나무잎들이 가는 바람에 나부끼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비탈진 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사장네 과수원 입구였다. 그녀는 사과나무 밑으로 난 하얀 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날도 철에 안 맞는 봄코트를 입고 있던 그녀의 하얀 이마에는 땀이 소록소록 맺혀있었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 하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안에서 셰퍼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래야 해! 차라리 그래야 해. 내 편에서!”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과수원 안의 그 하얀 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또 셰퍼드가 짖었다. 과수원 안에는 일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언젠가 한번 교사들이 초청되어 갔던 일이 있는 이사장네 집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백 미터쯤 걸어 들어간 곳에서 왼쪽으로 꺾인 거기에 꽤 큰 한국식 기와집이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둘러치고 있었고, 그 기와집 오른편에 삼십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슬라브 양옥이 별당처럼 하얗게 달려있었다. 혜화선생은 그 기와집과 하얀 슬라브 양옥으로 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만큼 슬라브집 앞 사과나무에 묶어놓은 셰퍼드가 그녀를 발견하고 길길이 뛰며 요란스레 짖어대었다. 그녀는 주춤거리며 들고 있던 핸드백을 뒤로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하얀 페인트 칠을 한 문을 열고 홍선생이 나왔다.
“왜 그래. 시끄럽다!”
얼룩얼룩한 남방셔츠를 입은 홍선생 이 개를 향해 소리치다 말고 이쪽을 보았다. 혜화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얼른 핸드백을 앞으로 돌려 아랫배를 가렸다. 그녀는 사과나무 밑에서 또 벌거벗었던 것이다.
“아니! 이선생이 웬일이십니까?”
홍선생은 흰 고무신을 질질 끌며 혜화선생 쪽을 향해 걸어나왔다.
“혼자 오셨습니까?”
홍선생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혜화선생의 등 뒤 길을 살폈다. 혜화선생은 굳은 표정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홍선생은 좀 이상하다는 투로 머리를 약간 기웃했으나 얼른 웃음을 띠며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들어가시죠.”
하며 한 걸음 앞서 걸었다. 그는 우선 짖어대는 개에게로 가서 끈을 조여잡았다.
“이 녀석아, 늘 보는 이선생님인데 뮐 그리 극성이야…… 자, 어서 지나가십쇼. 워낙 사람이 안 드나드는 집 이 라서 사람만 보면 이럽니다.”
홍선생이 그렇게 개를 붙들고 있는 앞을 혜화선생은 약간 걸음을 빨리해 지나쳤다.
“정말 웬일이십니까, 이선생님?”
홍선생이 뒤따라왔다. 혜화선생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현관 쪽으로 걸으며 슬며시 우유색 코트를 벗었다.
“날씨가 덥죠? 이젠 여름이 다 된 것 같슴니다.”
“…….”
혜화선생은 그 말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벗은 코트를 어깨너머로 훌쩍 넘겼다. 뒤도 안 돌아본 채.
홍선생은 얼떨결에 그녀의 코트를 받아들었다. 현관에까지 다 왔다. 홍선생은 얼른 앞으르 나서며 문을 밀어 열었다. 혜화선생은 홍선생의 팔 앞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섰다. 걸음걸이가 어째 스르르 미끄러지는 것처럼 이상하였다.
“ 아 이거, 혼자 쓰는 화실이라 지지분합니다. 슬리퍼를 신으십쇼. 평생 가도 청소 한번 제대로 안 해놔서. 하하하.”
홍선생이 먼지 마루로 올라서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과연 거긴 꽤 넓은 마루방으로 사방에 무질서하게 그림 액자들이 걸렸고 또 더러는 그대로 벽에 기대어 세워있기도 하고, 또 방 한가운데는 그림물감통에 그림붓·결레 등이 아무렇게나 닐려있어 거의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혜화선생은 잠깐 망설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지만큼 창문 앞에 이젤이 버텨져있었고 그 옆에 일인용 침대가 놓였다.
“정말 도깨비집 같죠?”
홍선생은 뒷걸음을 치며 자기도 새샴스럼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혜화선생은 그때까지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저분하게 널린 물건들 틈을 골라 디디며 지쪽 창문께로 갔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는 무성한 사과나무 잎의 진초록색이 가득히 밀려들었고, 한쪽엔 빨간 커튼이 늘어쳤다.
혜화선생은 거기 창문 아래 침대 위에 핸드백을 던지듯이 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까만 투피스 웃저고리를 천천히 벗었다. 그 밑의 흰 블라우스가 창문의 진초록색과 커튼의 빨간색에 어울려 유난히 정결하다.
“오늘은 참 덥습니다.”
이쪽에 선 채 그녀의 그런 행동을 멍청히 바라보던 홍선생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래도 혜화선생의 그 몽유병자 같은 행동을 합리화시켜주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뿐 아니라 결코 홍선생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마치 자기 방에서 침대에 옷을 벗듯이 그녀는 이번엔 블라우스를 벗었다. 브래지어만 걸친 희뿌연 어깨와 두 팔이 드러났다.
“이선생님!……?”
홍선생은 비로소 그녀의 이상을 분명히 느끼며 그렇게 불렀다. 혜화선생은 처음으로 홍선생을 한번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입술은 여전히 꼭 다물고 있었다. 이번에는 스커트 혹을 벗기고 스르르 끌어내렸다. 삼각팬티가 나타났다.
“이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
홍선생은 소리쳤다.
그래도 그녀는 못 들은 체했다. 손을 등 뒤로 돌려 애써 브래지어를 끄르고, 그 다음은 침대 한 끝에 걸터앉아서 양말을 벗었다.
“이선생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홍선생은 이쪽 현관 바로 안에 엉거주춤 그녀의 코트를 들고 서서 그렇게 간간이 소리를 지를 뿐 발은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으로 혜화선생은 삼각펜티까지 밑으로 밀어내렸다. 이제 완천히 알몸뚱이였다.
“이선생님!”
홍선생의 목소리는 애원조였다. 그는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꿈이어야 했다. 도저히 현실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부신 듯 그녀의 벗은 몸뚱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혜화선생은 그 터질듯이 풍만한 젖가슴을 두 손으로 슬쩍 한번 밀어올리며
“자아. 이제 보세요! 얼마든지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선생님. 정말 왜 이리십니까!”
모델들의 나체야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오던 홍선생이었지만 지금 그런 혜화선생 앞에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마음껏 보세요! 그래야 해요! ”
그녀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상체를 약간 뒤로 젖혀 배를 슬쩍 내밀었다. 창문의 녹음과 빨간 커튼읕 배경으로 이쪽을 향해 선 그녀는 두 손으로 자기의 그 하얀 나체를 젖가슴께서부터 천천히 마치 애무하듯 쓸어내렸다. 이윽고 그녀의 두 눈에 치령하니 눈물이 고이는가 하자 마침내 풀석 마룻바닥에 무릎을 끓으며 침대에 상반신을 걸치고 쓰러졌다.
그녀는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하였다.
초여름의 석양빛이 빤히 화실 안을 비추었다.
하얀 나체가 소리없이 꿈틀꿈틀 들먹거렸고, 홍선생은 그지 이만치 서서 마치 무슨 조각을 감상하듯이 그녀의 그 잘 균형잠힌 몸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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