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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벌써 삼 년째였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도전한 임용 고시. 휴대폰까지 중지시키고 하루 12시간씩 꼬박 도서관에 앉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기에 실망은 더 컸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답을 찾지 못하자, 애꿎게 하느님께로 원망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10년 넘게 새벽 미사 오르간 반주 봉사도 해 왔고, 주일미사도 거르지 않았으며, 남에게 크게 해가 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 저는 우연히 이냐시오 성인의 묵상기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특별히 마음이 머무는 구절을 묵상하고 나 자신은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긴 시련에 대한 풀리지 않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1시간씩 성경 말씀으로 묵상을 했고 기도 중 성찰했던 것을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묵상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딴생각에 빠져 한 시간을 다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도 습관이었습니다. 두 달쯤 지나자 조금씩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둘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고통만 보이던 전과는 달리, 말씀 안에서 저는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지금 닥친 고통에도 주님의 사랑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말씀이 새삼 와 닿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세 번이나 시험에 떨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지요. 미워하셔서 떨어뜨리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셔서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 후 저의 기도는 바뀌었습니다. 다시는 시험에 합격시켜 달라고 떼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교직에서 저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 쓰시고자 한다면 붙여 주시고, 그 길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온전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곧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합격이었습니다. 기뻤습니다. 합격 자체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제가 바라는 삶과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삶이 일치했기에 더 기쁘고 신이 났습니다.
거친 세상으로 나가기 전 저의 영성을 굳건히 준비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빨리 합격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찔했습니다. 그저 내가 똑똑해 합격했다고 자만했겠지요. 교직에 들어와서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는 소명의식 없이 일했을 것입니다. 조금 힘들어지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 선택했기에 확신과 소명의식을 갖고 교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세 번의 실패는 제게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저처럼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그 친구와는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기다리던 합격이었지만 어쩐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한데 결코 나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원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지구를 “둥글게” 만드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서로 손을 잡으면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이 됩니다. 원 위에서는 잘나고 못난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똑같이 사랑받아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둥근 지구를 만드신 거라면,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원을 만들어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행복만 좇을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도 적극적으로 함께 찾아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림으로써 그것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구의 중심에서 우리를 꼭 붙들어주고 계시는 분이 다름 아닌 바로 “주님”이시니까요. 이렇게 하느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하나둘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묵상 노트 맨 첫 페이지에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소망을 써나갔습니다. 둘러보니 제 주변에 한때는 천주교 신자였으나 냉담 중인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기도도 함께 적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늘 털어놓게 되는 지혜로운 대학원 선배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성당을 못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주님을 찾으면 더 큰 힘을 주실 텐데’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었기에 기도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또 아끼는 후배는 7년 넘게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함께 다니던 성당에 더이상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상처가 깊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주님의 이끄심으로 그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믿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8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그간 두 사람의 삶에 거센 풍랑이 일었습니다. 선배 언니의 첫째 아들에게 백혈병이라는 병마가 찾아와 언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쓰러뜨리는 분도 또한 살리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믿고 언니에게 주님의 힘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저의 체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언니를 포함한 제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을 적어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노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후 언니에게서 문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언니는 그 날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언니도 그 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 심지어 앞집 아주머니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에 꼭 덧붙인단다. 주님, 혹시 미처 제가 알지 못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돌보아 주시라고. 언니는 요즘 너를 통해서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내게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아.”
언니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이웃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하기에는 무거워 보였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를 올리는 것만큼이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는 일” 또한 중요함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참례해 주님의 말씀에 귀를 열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갔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성당에 나갈 것을 권했을 때 언니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정말 하느님이 내 머리 위로 은총을 쏟아 부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런데도 이상하게 성당으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정작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어떻게든 언니의 마음을 주님께로 다시 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말이 언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머리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날 언니를 위해 기도해오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분명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순간 머리에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반드시 이 순간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벅찬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 성령께서 제 마음에 오셔서 풀어놓고 가신듯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언니, 내 얘기 좀 한 번 들어봐. 어떤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급 담임교사를 하면서 심성이 곱고 재능도 출중해서 크게 될 것 같은 제자 하나를 만났어.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았지. 덕분에 그 아이는 좋은 대학에 입학도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어. 그런데 있지 그 아이가 더이상 선생님을 찾아오지 않는 거야. 언니, 그때 그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실까?”
언니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언니는 품고 있던 의문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렴풋이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저의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끄심이 분명 있었습니다. 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언니에게 지금 닥친 시련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축복이었음을 고백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임을 말입니다.
대학원 후배도 교사 임용 고시에 몇 번 실패하자,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시험을 변경하였으나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시련 속에서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더욱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한 번 성당에 나갈 것을 권했을 때 보였던 완강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 잠시 화살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제 입술을 통해 당신의 지혜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멘.’ 용기를 내어 저의 체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후배를 위해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다는 말도 함께 전했습니다.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후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언니는 대체 내가 뭐라고 날 위해 그렇게 기도를 하고 애를 써?”라고 물어왔습니다.
“언니가 하느님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야.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의 뜻을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언니 혼자만 이 행복을 느끼면 안 될 것 같아 너에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은 거야.”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는 사는 게 참 재밌겠다. 나도 한 번 하느님을 만나고 싶네.”
곧바로 저는 후배를 성당으로 안내했고 12년간의 냉담을 깨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을 위한 기도를 올렸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일하시기를 원하는 때가 있음을, 또 그때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기도해야 함을 두 사람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저에게 최고의 선교지는 학교였습니다. 신자인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손을 잡고 함께 학교 운동장을 돌며 묵주기도를 바쳤고, 수능을 앞두고는 묵주 고리 기도를 바치자고 제안하면서 신앙을 키워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교사로서 훈육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달되도록 애썼습니다. 복음전파는 다름 아닌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느님은 형편이 어렵거나 사랑이 결핍된 학생들에게 저의 눈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던 중 수원의 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한 아이와 특별한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범상치 않은 안경을 쓴 모습에서 영락없이 예술가의 기질이 묻어나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였습니다. 계산하지 않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유머와 인격까지 갖춰 ‘저 녀석 정말 커서 뭐하나 크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픔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었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서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어느덧 고3이 된 아이는 대입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 쓰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제자의 몫이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제가 보고 느낀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습니다.
“수지(가명)야, 선생님은 디자이너를 꿈꾸던 네가 1학년 때, 불가능해 보였던 ‘수학·과학 영재학교’에 도전해서 결국 당당히 선발되었을 때, 편견과 두려움을 깨고 뛰어든 너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냈었어. 그리고 지난여름 밤 공원에서 우리가 나누던 대화 기억나니? 부족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그 ‘결핍’이 널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던 너의 말. 선생님은 그런 모습에서 너의 희망을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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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자기소개서를 나름대로 잘 완성해 제출했다는 말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비밀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저의 내면 깊이 있는 생각들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밖에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통찰력과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 주시는 선생님의 관심은 자신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한 번 더 그 아이를 만나며 마음에 품지 못했던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사실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지만 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천주교 신자랍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제가 만난 것도, 또 이렇게 가까이에 살면서 자주 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주부터 당장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저도 성당에 나가야겠어요.”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전교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다가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자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이 아이와의 인연에도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정말 오묘하신 신비로 저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장 그 주에 아이의 손을 잡고 제가 다니는 성당에 가 고해성사를 보게 하고 신부님, 수녀님께도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주님의 도구로 쓰시려고 저를 교직에 보내셨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3주가 흐른 후 아이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지원한 대학에 1차 합격을 한 것입니다. 이제 면접 통과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을 잘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아이와 조용한 찻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면접에 자주 등장하는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제 예상을 비껴갔습니다. 평소의 모습대로라면 당차고 개성 넘치는 답변을 해 저를 놀라게 했을 터인데 잔뜩 주눅이 들고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하느님의 기쁜 영이 충만했을 텐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선생님이랑 성당 간 이후로 주일미사 거르지 않고 잘 나가고 있지?”
아이는 쭈뼛쭈뼛 대답을 못 했습니다. 순간 아이에게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을 보고 시작한 신앙생활이 단단하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욕심이었습니다. 일대일로 하느님을 만나고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체험담과 함께 묵상기도 하는 법을 아이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설명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미사 책을 꺼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 그 날의 복음 말씀을 펴고 찬찬히 함께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와 닿는 구절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치 않구나’라는 구절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지야, 선생님은 이 구절이 꼭 주님께서 너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구나. 주님께서는 너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주시고, 너의 재능을 발현시켜 너를 도구로 쓰시고자 밝은 앞날을 이미 다 마련해놓고 계신데, 그 잔치에 가지 않고 있는 너에게 하시는 말씀 말이야.”
아이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무릎에 떨구고는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일에도 미사를 하나요?”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성당에 갈 것임을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아이는 신앙생활을 잘 이어 나가고 있고, 대학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도 들려주었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부정적인 상황에도, 지나고 보면 모두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저는 다시금 체험했습니다.
저는 평소 아이들에게 점을 보러 가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점집에 가는 이유는 대체로 불안한 미래 때문이거나 혹여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굿이나 부적으로 액운을 막아볼 요량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살면서 매일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다고. 다만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받아들이는 자세,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본 시련 안에는 하느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분이 마련해 놓으신 영광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련을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마저도 기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 하느님은 진정 “기쁨”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이름을 한자 알 지(知)와 즐거울 흔(欣)을 써 지어주셨습니다. 알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 겸손하게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저는 제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주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지으신 이 둥근 세상 속에서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하나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신 주님, 이제와 영원히 사랑하겠나이다.
첫댓글 신앙인으로서 받아드리는 자세
보는 자세가 달라야 함을 배웁니다
명오가 열리어 지혜와 슬기와 통달함을 성령으로 받아 들임을 절실히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글읽으면서 어쩜 제 지난 삶을 잠시 들여다 보는 느낌 이였습니다. 모두가 우리들 현실에 한번쯤은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이유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