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오륙도문학 30호 P240~
<소설 >
문패 달아드리려고 왔습니다.
黙泉 김용빈
이사를 했다.
평생 살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출가시키려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고 아내가 우겨서다. 층수가 높고, 뷰가 좋다고 프리미엄도 만만찮게 주었다. 유명한은 집보다 현금이 있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딸도 아파트를 원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다 늙어 빚까지 졌다. 아내는 빚을 갚아야 한다고 식당에 일 나가고 집에 없다. 그래서 이삿짐 정리를 유명한이 하고 있다. 이삿짐센터에서 이삿짐 정리를 해주고 갔지만, 뒷일이 많았다. 그는 박스를 하나하나 풀어 붙박이장으로, 창고로 옮겼다. 마지막 박스를 풀고 짐을 꺼내는데 뭐가 툭하고 떨어졌다. 제법 묵직하다. 신문지에 싸여 있다. 문패다. 주택에 달았던 대리석 문패다. 아내가 떼어온 모양이다. 아크릴 문패도 함께 있었다.
유명한은 공부를 잘했다. 학교생활도 모범생이었다. 그는 그 바람에 운 좋게 특채로 취직도 했다. 중소기업이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회사였다. 회사생활도 성실해서 인정받았다. 승진도 빨랐다. 그는 유명한이란 이름값대로 회사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김 과장이다. 그가 대리를 달고 총무과로 발령이 났다. 하필이면 그 김 과장이 총무과장이었다. 김 과장은 유명한만 보면 시시콜콜 간섭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 하면 못하는 대로. 그래도 그는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유명한도 도저히 참지 못할 일이 생겼다.
퇴근 시간에 총무과 전 직원이 회식을 했다. 그는 출장 갔다가 늦게 도착하여 김 과장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김 과장은 유명한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하면서 술을 권했다. 이제 마음 편히 근무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유명한은 기분 좋게 처음부터 주는 대로 김 과장 술을 다 받아 마셨다. 그게 탈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술집이 빙글빙글 돌았다. 못 먹는 술을 다 받아 마셨으니 속이 이겨낼 리 만무하였다.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吐)하고 나오려니 설사 기미까지 보였다. 그때, 밖에서 김 과장과 최 대리가 소변보면서 나누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야, 최 대리!”
“네. 과장님.”
“내가 왜 유 대릴, 싫어한지 아나? 꺽!”
“잘 모르겠는데요.”
“저놈이……. 너무 잘나가. 잘나가도 너~무.”
“저놈이 나를 밟고 올라갈 거야……. 분, 명, 히.”
“싹은 어릴 때 잘라버려야 해……. 그래야 내가 살아……. 꼭 내가 그렇게 하고 말 거야……, 최 대리! 내가 한다? 꺽!”
김 과장 혼자 떠들고 있었다.
유명한은 술이 확 깼다.
‘저 자식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술을 권했구나!’
그는 바지도 채 올리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김 과장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한 손은 멱살을 잡고 또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김 과장, 이 개새끼!”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최 대리가 뒤에서 붙잡지 않았으면 김 과장 면상이 날아갔을 거다.
다음날, 유명한은 출근하자마자,
“내가 여기 아니면 밥 못 먹을 줄 알아?”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보면서 사직서를 김 과장 면상에 던지고 나왔다. 유명한 마음은 내가 아직 젊은데 어딘들 못 갈까 하고, 자신이 있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회사를 나오더라도 미리 일자리를 알아보고 나왔어야 했다. 모집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지만, 가는 회사마다 앞에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두었냐고 물었다. 과장하고 싸우고 나왔다고 할 수도 없고, 뭐라 핑계 댈 수도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취업이 어렵다는 걸 실감하자, 유명한은 아내 보기가 제일 미안했다. 대리를 달던 날, 오랫동안 사귀던 아내에게 달려가 청혼했었다. 그리고 평생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하면서 결혼했다. 그랬는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본인이 생각해도 난감했다.
그는 쉽게 취업할 수 있는 곳인 세일즈 파트를 선택했다. 이력서, 사진, 주민등록등본만 준비하면 쉽게 취업이 되었다.
아름다운 소리 문화원에서 교회에 방문하여 찬송가 테이프, 레미콘 회사에 방문하여 흘러간 가요 테이프도 팔아 보았고, 스터디 교육 상담실에서 밤 11시가 넘어 가정 방문하여 이제 막 귀가한 고3 학생을 붙잡아 놓고 교재에 딸린 강의 테이프를 틀어 주면서, 선생님에게는 두 번, 세 번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못 하지만 이것은 이해할 때까지 돌려서 듣고 또 듣고 할 수 있다며 “이것으로 공부하면 쉽겠제?”하고, 학생에게 동의를 구한 후, 교육은 장기적인 투자라고 강조하면서 부모를 설득하고, 그렇게 쫓아 다녔으나 밤늦은 택시비 내고 나면 빈털터리였다. 그래서 그의 양복 속주머니는 언제나 다른 데로 날아갈 수 있는 이(履), 사(寫), 주(住)가 들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이 방에서 이력서를 쓰고 있는데, 누가 찾아왔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니 건장한 남자가 수첩을 들고 서 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문패 다시라고 왔습니다.”
“무슨 문패를요?”
남자는 가방에서 아크릴 문패를 꺼냈다.
유명한은 취업 준비로 합격통지서를 우편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문패가 없다.
“달아 주세요.”
남자는 이름을 묻고 아크릴 문패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면서,
“재료비 주시겠습니까?”
“얼마인데요?”
“천 원입니다.”
남자는 아크릴 문패 뒷면에 접착제를 칠하고 입으로 후후 불어 굳힌 후 출입문 위에 붙이고 돌아갔다.
유명한은 방에 들어와 다시 이력서를 쓰다가 멈추었다.
‘나도 문패나 달아 주러 다녀 볼까?’
그는 밖에 나가 금방 단 문패의 가로세로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전화기 밑에 깔린 큼지막한 직업별 전화번호부를 펼치고 스크린인쇄소를 찾아 전화해서 금액을 물어보았다. 빨강, 검정 2도 색상으로 가로 13×세로 9cm로 1,000장을 기본으로 견적을 냈다. 한 군데만 아니고 전화번호에 나온 인쇄소마다 전화를 다 했다. 한 장당 100원 전후로 가격은 다 달랐다. 그는 제일 싼 인쇄소로 버스를 타고 달려갔다. 철물점에서 접착제도 10개들이 1박스 사고 문방구에서 네임펜도 한 다스 샀다.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는 인쇄소에서 문패를 찾아오자마자 곧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머리에 새마을 모자를 썼다. 점퍼를 단정하게 입고 넥타이도 맸다. 크로스백에 수첩, 볼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패를 30장 넣고 네임펜도 챙겼다. 참, 지우개도 필요했다. 약국에 들러 물파스도 샀다.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집에서 나오는데, 임신한 아내가 걱정을 했다. 잘할 수 있겠냐고.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세일즈를 해 보았지 않았는가. 세일즈맨.
그가 찬송가, 흘러간 가요 카세트테이프를 팔러 다닐 때 일이다. 처음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누구한테 팔아야 할지 대상도 찾지 못했다. 헛다리 짚기 일쑤였다. 하루는 약국에 팔기로 했다. 대학병원 앞에는 약국이 많았다. 그는 약국만 차근차근 들어갈 모양으로 제일 끝에 있는 약국 앞에 섰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 심호흡을 몇 번 한지 모른다. 그래도 못 들어갔다. 그러다 약사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더욱 못 들어가고 다음 약국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약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여러 약국 앞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한 약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카세트테이프는 말도 못 꺼내고 속이 쓰린데 약하나 주세요. 하고 약만 사서 나왔다.
그런데, 그는 확실히 달라졌다.
한 동(洞)을 정하고 문패를 달기로 했으면 확실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갖고 일에 임했다. 우선 동네 맨 끝으로 가서 첫 집부터 차근차근 경상, 전라 사투리로 더트기(표준말: 더듬기) 시작했다.
“문패 달아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는 첫 집에 들어가 문을 두드리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왜냐면, 첫 집에서 노(no)하면 전체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패 달아 주신다고요?”
“네.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그는 크로스 가방에서 아크릴 문패를 한 장 꺼내 네임펜으로 적을 준비를 했다. 이쯤 되면 50%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세일즈맨 유명한도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그는 대문을 두드리고,
“문패 다십시오.”
“아니요.”
다음 집에 가서도 아니요. 그다음 집에서도 아니요. 번번이 거절당했다.
“문패 다세요!”
채소 장사처럼 외치고 다녀 보았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1주일을 허비하고 다녔다. 돈 한 푼이 아까운 처지에 교통비도 무시 못 했다. ‘아하, 이거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인쇄한 문패만 다 달면 그만둬야겠다.’ 생각하고 또 한 집에 들어갔다.
“문패 달아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도 모르게 나온 소리다.
“네. 달아 주세요.”
그런데 하나도 거부감 없이 바로 달아 주세요. 하는 거다. 다음 집도 그다음 집도, 그래서 그는 문패 달아 드리려고 왔습니다. 가 인사가 되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달랐다. ‘다세요.’ 가 ‘달아 드리려고 왔습니다.’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게 그리 쉽게 접근할 줄 몰랐다. 그 뒤로 그는 누구 집에나 가서 문패 달아 드리려고 왔습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 첫 집은 속삭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아크릴 문패를 다는 집은, 번듯한 주물 문패나 대리석 문패를 다는 돈 많은 집이 아니라, 서민들이 사는 집이라 여러 집이 함께 살았다. 다가동 같은 경우에는 한 울타리 안에 33집이 살고 있었다. 거의 다 월셋 집이었다. 그런데도 문패를 다 달았다. 그게 다 문패를 달아 드리려고 왔습니다. 로 통했다.
“세 들어 사는데 문패가 필요하나요?”
“네. 세 들어 살수록 더 문패가 필요하죠.”
“왜죠?”
“이제 막 이사 온,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주소가 정확하지 않을 때는 집배원 아저씨가 아무개 씨! 하고 외쳐도 당사자가 듣고 나오지 않으면 편지가 되돌아가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우리 문패 관리본부에서는 아이들 이름까지 다 새겨 드립니다. 아이들 이름도 집배원 아저씨들이 어른 이름처럼 아무개 씨! 하고 부르기 때문이지요.”
그는 문패에 남편, 부인, 아이들 이름까지 꼼꼼하고 정확하게 써서 문 위에 접착제로 붙여 주었다. 유명한은 군 복무 시절 차트 병(兵)이었다. 그래서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
“아, 좋네요.”
부인이 보고 좋아라. 한다.
첫 집이 성공하면, 다음 집도 그다음 집도 자동으로 문패를 달았다. 그리고 빠진 집은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달았다. 문패 관리본부라는 이름값을 해야 하기에 한 집도 빠짐없이 다는 걸 목표로 삼았다. 문패를 달아 주고 재료비 조로 돈을 받았고, 통, 반장 집은 무료로 달아 주었다. 그러면 통장이나 반장은 가가호호 다니면서 문패를 달라고 앞장섰고, 유명한은 뒤따르며 아크를 문패에 이름만 적으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포도도, 사과도 사다 줄 수가 있어서 그는 귀가 시간이 제일 좋았다. 아내도 좋아했다.
참, 옛날 일이다. 유명한은 그때 일을 생각하니 불현듯 술 생각이 났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오늘은 왠지 한 잔하고 싶었다. 그는 아파트 상가 편의점에 내려가 막걸리 한 병 사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놓고 한 잔 마셨다. 아내가 만든 김치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짐 정리도 노동이라고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막걸리가 목이 짜릿하고 시원하니 맛이 좋았다. 그는 한 잔 또 한 잔 그렇게 홀짝홀짝 마셨다. 기분이 알딸딸해졌다.
그는 비싼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니 이제 문패를 달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패를 들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 문패를 달아 보았자 누가 보겠는가.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자동문 앞 기둥에 문패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둘러보았다. 아직 아무도 문패를 단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先占)할 수 있으니 하고, 대리석 문패를 기둥에 대어 보았다. 길쭉하니,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아크릴 문패에 접착제를 칠하고 적당한 장소에 붙이려 하는데, 경비가 달려와서 말린다.
“아니, 내 집에 문패를 달려고 하는데 왜 말리는 거요?”
“여기는 개인 집이 아니라서 문패를 다시면 안 됩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다른 사람들도 달면 될 게 아니요?”
경비와 다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별 이상한 사람이 이사를 왔나 봐요.”
“아파트에 문패를 달겠다니 제정신이 아닌 게지.”
유명한 귀에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거 뭐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는 몸을 수그리고 사람들 틈을 빠져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문패 달아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멀리멀리 도망쳤다.
아호: 黙泉(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