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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Ⅳ/김명인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성을 받아 비로소 이가든 김가든가
박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시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강변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합중국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시 읽기> 동두천 Ⅳ/김명인
김명인이란 이름을 가진 문인은 우리 문단에 둘이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시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문학평론가입니다. 둘 다 각자의 분야에서 문학적 입장을 달랐지만 왜곡된 시대사의 장벽을 뚫고 넘어가기 위하여 치열하고 고뇌한 문인들입니다.
여기서 제가 다루고자 하는 사람은 시인 김명인입니다. 그는 1973년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시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사람입니다. 이렇게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그는 여러 권을 시집을 꾸준히 출간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동두천에서 국어 교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경기대학교 국문학과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생활을 하였고, 얼마 전부터는 고려대학교에 새로 생긴 문예창작과에서 시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3.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3.
저는 김명인의 여러 시집 중에서 첫 시집 《동두천》을 가장 사랑합니다. 저는 방금 좋아하나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분단된 이 작은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 없이는 이 시집 속의 작품들을, 그 가운데서도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감상해보고 싶은 작품 《동두천 Ⅳ》를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 감상적이 되었나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우주사 곳에서 본다면 인간이라든가 조국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아주 작은 하나의 흔적 같은 것일지 모르나, 지금 이곳에서 목숨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것들이야말로 중요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간과 조국 ‘사랑’해야 비로소 이 시집 속의 《동두천 Ⅳ》는 물론 그 연작을, 더 나아가 다른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고,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 그 <동두천> 연작 중의 한 편인 <동두천 Ⅳ>의 전문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성을 받아 비로소 이가든 김가든가
박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시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강변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합중국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동두천 Ⅳ> 전문
저는 지금(2000년 5월) 미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충북대학교의 배려로 1년간 교환교수로 미국에 온 지 다섯 달째 접어든 시점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른 목적도 많이 있지만 ‘재미 한인문학’을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눈길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재미 문인들은 물론 재미 한인들을 늘 향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이곳에서 많은 돈을 벌어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샀어도, 그들의 가슴을 열면 까만 그을음과 숯 검댕이 같은 어둠이 숨어 있다는 한 재미 한인 시인의 시구가 말해주듯이 재미 한인들, 그중에서도 제1세대 재미 한인들의 삶은 대체로 고달프고 고단해 보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부는 바람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것 같은 폭풍의 진원지가 미국입니다. 그러나 과거 소련에 바쳤던 숭배가 한갓 허상이었듯이, 어쩌면 요즈음 미국에 바치는 전 세계인의 숭배감도 허상이나 환각의 기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상이나 환각도 힘을 발휘한다면, 더욱이 현실적인 힘이 이런 힘이 덧붙여져 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그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세계 최강국, 세계 최고의 선진, 세계 최고의 중심국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 미국 땅 한구석에서, 저는 자존심 강한 한국문학자로서 선뜻 이런 말에 동의하고 싶지만은 않은 착잡한 마음을 갖고 김명인의 <동두천 Ⅳ>를 읽습니다. 이 시가 쓰여진 지 30여쯤 되었지만 아직도 이 시는 유효하고, 아직도 이 시는 제 가슴을 때리고 있습니다.
위 시의 화자는 동두천에서 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위 시를 김명인이 직접 겪은 실화의 산물로 읽습니다. 실제로 김명인은 동두천에서 국어 교사를 하였고, 그때의 체험에서 잉태된 시가 위 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국어 교사란 어떤 사람입니까? 아니, 국어란 어떤 존재입니까. 영어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할 수 없이 초라해지는 이 땅의 국어를 보면서 국어 교사와 국어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봅시다. 이 점에 대한 생각이 깊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위의 시의 첫 행을 읽는 일부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형식적으로 보자면 국어는 국가주의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국어는 국가주의가 절대화된 이후 정책적으로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통제 장치를 거두어버리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모어 혹은 국어)는 국가라는 제도적 장치 이전에 놓여 있는, 보다 본질적이고 생래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뭉쳐진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 자신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들 속에서 나 자신을 표출하며 그들과 연대감을 갖게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이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 자신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들 속에서 나 자신을 표출하며 그들과 연대감을 갖게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이 그 공동체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 있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존재입니다. 요컨대 국어는 그러므로 도구 이전에 한 인간을 주체로 확립시켜주는 존재 그 자체이고, 한 인간의 사회적 정체감을 확립시켜주는 원형질입니다. 나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거나, 그 언어를 체득하여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내 집이 없어 셋방살이하며 2등 시민의식을 갖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국수주의자가 아닙니다만, 미국에서 몇 달 생활하다 보니 제 언어를 갖지 못한 민족과 제 언어를 가꾸고 존중하지 않는 민족은 영원히 2등 시민의식 속에서 셋방살이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심 언어의 횡포는 폭력적 실체에 가까운 것입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변화무상하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영어가, 아니 미국어가 세계를 제패하고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지만 무엇이 계기가 되어 어느 순간 세계사의 역학 관계와 그 흐름이 바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과도한 영어 콤플렉스는 수정되어야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꾸고 존중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대신 그 일을 해주지 않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언어,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원형질로서의 언어, 그것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꾸고 존중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계몽적인 색조를 띠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이 혼란스러운 정체성 와해의 시대에 모국어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 김명인의 <동두천 Ⅳ>를 함께 읽어나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경기도 저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 ‘동두천’에 가보셨는지요? 휴전선과 가까운 곳, 6ㆍ25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이 들어와 진을 친 기지촌, 양공주라 불리는 공주 아닌 공주들이 미군을 상대로 술과 몸을 팔며 돈을 벌던 곳, 그 돈으로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도 하던 곳,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미제 물건 앞에서 사람들이 군침을 흘리던 곳, 미군 병사와 눈이 맞아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혼혈아가 양산되던 곳, 그 군인 신분의 아버지들이 무심하게 굿바이하며 손을 흔들고 떠난 후 고아들로 고아원이 넘치던 곳, 다행히도 미군 병사를 따라 태평양을 사이좋게 건넜지만 건너자마자 버림받아 어른 고아가 된 여성들의 땅…… .
세계 제2차 대전이 종결된 후, 두 쪽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여러 쪽으로 나누어져야 마땅했던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아무 죄없이 일본의 식민지로 고통받는 것만 해도 억울한 이 대한민국이 두 동강으로 나누어져야 하는 불행을 안아야 했는지요? 그야말로 제2차 대전 당시의 강대국들이 무슨 ‘내고’를 했기에, 죄인의 나라이자 더 큰 나라인 일본은 분할 점령하지 않고 죄도 없고 땅도 작은 나라를 분할 점령한 것인가요? 그 결과 우리나라에는 6ㆍ25한국전쟁이 터졌고, 모든 것이 폐허로 변했고, 그 전쟁은 미군의 한국 주둔을 불러왔고, 다시 그 결과물로 ‘동두천’의 비애 같은 것이 곳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역사란 냉정하고 타산적인 것이기에 어약한 국력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강대국의 ‘네고’와 그들의 권력에 휘둘리며 시작된 20세기의 한국사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위 시의 화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어 교사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칩니다. 위 시의 정황으로 볼 때 작품 속의 화자인 국어 교사는 학생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너희들은 한국말을 쓴 한국인이고, 너희들은 한국말을 쓸 줄 아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고, 너희들이 2등 시민의 설움을 받지 않으려면 너희들만의 언어를 가져야 하고, 너희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혈연적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듯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렇게 가르침을 주어야 할 학생들의 대부분이 혼혈아이자 고아라는 점입니다. 사실 혼혈아가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인종을 넘어선 결혼이 얼마든 가능하고, 그것 자체가 인간의 관계성을 열린 장으로 이끌어갈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엄밀히 말한다면 이 세상에 혼혈아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이라는 단일민족 국가에서 혼혈아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과 그 혼혈아들의 출생이 사랑과 책임이 부재한 남녀의 순간적인 정욕에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혼혈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고아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혼혈이 고아들이 모여든 동두천의 한 학교에서 위 시의 화자이자 시인인 김명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어 교사입니다. 20세기 한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인 땅, 그 땅에서 시인은 국어 교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저의 이런 말을 듣는 동안, 여러분들은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지 그 준비를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함께 첫 연부터 감상해보기로 하지요.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위의 인용된 제1연을 보건대 위 시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혼혈 고아의 아버지는 흑인 병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흽니다. 위 시의 화자는 이렇게 얼굴만 흰 흑인 미군 병사의 딸, 그러나 이미 혼혈 고아가 된 아이에게 이 땅의 ‘국어’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것이 이 나라 교육공무원인 국어 교사가 이 땅의 학생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위 작품 속에서 화자인 김명인은 이미 못 본지 오래된, 기억 속에만 살아 있는 이 아이를 회상합니다. 그의 회상 속에 남아 있는 혼혈 고아인 이 여자 아이는 “연애를 하고/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갔던 학생입니다. 이 혼혈 고아의 집은 그가 고아였기에 고아원이었고, 그는 당연히 고아원을 집으로 삼아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이 혼혈 고아는 연애를 하였고, 그것이 죄가 되어 퇴학을 맞았으며, 마침내는 고아원조차도 뛰쳐나가 거리의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혼혈 고아인 여자 아이는 한마디로 인생 전반에서 퇴학 인생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먼저 부모로부터 퇴학을 당했고, 이어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고, 마지막으로는 고아원으로부터 퇴학을 당한 셈입니다.
그 퇴학 인생의 혼혈 고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위 시의 화자인 김명인이 갖고 있는 궁금증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상상을 하루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밑바닥으로 밑바닥으로만 기던 인생이니, 역시 밑바닥 인생을 기며 살고 있지 않겠느냐고, 그 밑바닥의 인생의 상징인 그야말로 미국식으로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다방 ‘레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그럴 확률이 아주 높겠지요.
그런데 위에 인용한 <동두천 Ⅳ> 제1연의 압권은 그 혼혈 고아의 웅변 내용이 담겨 있는 뒷부분 2행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로 이 시를 읽는 우리들의 가슴을 때립니다.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시인은 위의 두 행에서 혈연으로 유혹사는 가난한 엄마(한국)와 돈과 힘으로 유혹하는 부강한 아빠(아메리카)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사실상 얼굴이 흰 한국의 엄마도, 돈이 많은 미국의 흑인 아빠도 그를 소용없는 물건처럼 버린 처지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그의 개인사를 규정지어버린 운명적이 존재입니다. 아직 철부지인 이 혼혈 고아 학생은 교내 웅변대회에서 소리 높여 외칩니다.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나는 돈 많은 아빠의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라고 말입니다. 가난한 엄마 대신 돈 많은 아빠의 나라 아메리카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 눈물나게 현실적인 말을 누가 그로 하여금 하게 해줬을까요? 그는 어디서 이 말을 들었을까요? 가난한 엄마의 나라 한국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기 연민에 눈물이 나고, 돈 많은 흑인 아빠의 나라 아메리카를 생각하면 우리는 돈에 휘둘리는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사실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에서 그 감격스러운 ‘아메리카의 꿈’을 이루고 힘있는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야말로 더부살이라도 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이민 행렬에 나섰습니까? 두 주먹 불끈 쥐고 도착한 이민자들에게, 내가 언제 ‘아메리카의 꿈’을 말한 적이 있느냐고 미국사회가 오리발을 내밀어도, 그들은 할말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수록 ‘아메리카의 위대한 드림’을 자식대에라도 이루어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꿈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약소국가라고 말하기 싫습니다.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 앞에서 도저히 주눅들 수 없다는 결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나를 버린 가난한 엄마의 나라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를 순식간에 바람 앞의 낡은 지붕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국문학과 교수인 저는, 아니 한국인인 저는 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할 것입니다. 가난만을 남겨준 조상들을 원망하면서도 그들이 남겨준 가난한 유산 앞에서 허리끈을 동여매고 밭을 다시 갈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한 어조로 역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 김명인과 같은 심정이 되어. ‘그래, 동두천의 혼혈 고아야, 내놓은 것 하나 없어도 웅변을 잘했던 혼혈 고아야 , 지금쯤 다방 레지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혼혈 고아야!’,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밖에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돈 많은 아메리카처럼 이 나라를 만들어 너희들을 튼튼하게 보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죄하듯 고백조의 말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 이 땅을 버리고 다 아메리카로 떠나버린다면 , 몸도 떠나도, 마음도 떠나고 언어도 떠나버린다면, 이 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전히 그 혼혈 고아를 향해 ‘미안하다’는 말과 ‘용서해다오’라는 말을 되뇌고 싶으면서도, 저는 그로 하여금 이 땅을 사랑하게 만들도록 하고 싶은 것입니다.
김명인의 위 시 <동두천 Ⅳ>의 제2연은 시인의 체험을 조금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이어갈 기색을 보입니다. 제2연 여기에 한번 옮겨보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성을 받아 비로소 이가든 김가든가
박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시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혼혈 고아, 사실상 군혼群婚이 유행하던 원시시대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누구의 아이를 낳든 어머니가 낳으면 모두 합법적인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부권사회가 정착되면서 성이 생기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성문법으로 정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파격적으로 말해봅시다. 사실 성이 없고 이름만 있는 세상, 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 훨씬 자유롭지 않습니까? 굳이 인간의 역사성이 성을 통하여 그것도 아버지의 성을 통하여 확립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이 혼혈 고아의 성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사실보다 그의 탄생이 무책임한 성욕놀이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강자와 약자의 사랑 없는 야합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성이 없으면 어떻고, 또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어떤 성을 따르든, 아니며 아예 창조해내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위의 시에서 무책임한 욕정 혹은 야합의 산물로 물건처럼 세상에 나온 한 인생의 비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그런데 시인 김명인은 갑자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명 탄생의 문제를 모든 이의 문제로 확대시켜 보편화를 꾀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야 혼혈 고아의 슬픔과 아픔이, 그리고 시인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이 조금 희석될까요? 아니면 더욱더 커지게 되는 것일까요? 어쨌든 그는 말합니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 속에, 너와 나로 표상되는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사는 세상치고 ‘욕된 세상’ 아닌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이든, 태평양 가의 작은 나라 한국이든, 해가 지지 않는다고 거만을 떨던 저 대영제국이든 간에 세상은 얼마나 욕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런 세상에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들은 ‘던져진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인이란 마구잡이로 굴러가는 이 욕된 세상에 태어난 존재 속에서도 한줄기 진실의 빛을 찾아올려 그들을 아름답게, 의미있게, 살려내려고 합니다. 김명인의 시 <동두천 Ⅳ> 제3연을 읽으면 이 점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이 강변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시인의 헛된 강변이 진실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혼혈아의 슬픔 삶 속에 숨은 진실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 진실의 채점표는 세속의 잣대로는 도저히 작성될 수 없는 것이지만, 시인의 잣대로라면 작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있는 자가 강변하는 세상의 채점표 앞에서 약자들은 몸을 웅크리고 패배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인인 작성한 또 다른 채점표 안에서 그들은 생전 받아보지 못했던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친 불명의 혼혈 고아, 고아원의 아이, 방탕한 생활, 학교에서의 퇴학, 다방 레지…… 어디 하나 세상의 채점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구석이 없는 이 아이에게도 시인은 좋은 점수를 줄 인간적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모습을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확대시킵니다.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너의 삶이 더욱 외롭게 보인다고, 이 시인은 말하면서 그가 가르친 혼혈 고아에게 애정을 보냅니다.
이 세상에서 시인이 귀한 것은 세상의 채점표를 뒤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명인의 위 시가 감동적인 것도 그 세상의 강력한 채점표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인인 만든 채점표 속에서는 패배한 자와 죽어가던 자들이 새롭게, 의미 있게 살아납니다. 그때 시인은 패배한 자를 승리한 자로 바꾸는 사람, 죽어가던 자를 살아나게 하는 신비한 사람입니다.
이제 마지막 연만 남았군요. 글이 좀 길어졌지만, 김명인의 위 시가 전해주는 역사적 비극과 인간적 비야,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시인의 진지성 앞에서 쉽게 글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합중국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시인 김명인은 마지막 연에서 미국에 대한 역설적 태도와 냉소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마지막 연인 제5연의 첫 행에서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가지 말아야 한다’고, ‘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저의 착각일까요? 그것은 결코 아메리카가 그를 무작정 환영하지만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는 너그러운 꿈의 나라만은 아닙니다. 그곳은 냉정한 현실세계입니다. 그곳에 이 혼혈 고아가 가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그를 버린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찾아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통사정하겠다는 것입니까?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또 다시 김명인은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합중국이고”라고 말하며 냉소적인 미국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오부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미국의 공식 명칭이 ‘미국美國’으로 차음됨에 따라 미국은 이름 자체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름만 본다면 아름다운 일만 일어나고 아름다운 일만 지향하는 나라 같습니다. 게다가 ‘합중국’입니다. 누구든 올 수 있는 나라, 모든 인종이 만든 나라라고 해석됩니다. 그러니 이 한국에서 태어난 혼혈 고아, 너는 그 아름다운 미합중국으로 가는 것이 좋았지 않겠느냐고 시인은 슬쩍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의 속마음이 결코 아닙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도 아이고, 그 나라가 진정 평등한 합중국도 아니라는 걸 이 시인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혼혈 고아가 미국으로 갔을 때, 그는 여전히 열등 시민으로 바닥을 헤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이 시인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20세기 후반의 한국인을 뒤흔들어놓았습니다. 그뿐입니까? 지금도 미국에 대한 곰플렉스는 역시 한국인에게 회오리바람같이 강렬하게 작용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을 통해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습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 바람이 부는 이 시점에서 미국의 회오리바람은 날마다 한국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사람들의 미국 콤플렉스도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져갑니다.
시인은 위에 인용한 <동두천 Ⅳ>의 제5연 후반부에서 민족애를 한껏 표출합니다. 민족이 가정의 확대판이라면 가장 본능적이고 심정적인 애정 공동체가 민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단일민족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단일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가난해서 죽더라도 몸을 팔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어째서 당신들은 동두천에 들어가 몸을 팔아 우리의 상처를 들쑤셔놓느냐고, 왜 그토록 어두운 곳에서 싱싱한 당신들의 몸을 죽어가게 만들었느냐고, 그런 어머니의 딸인 너는 지금 혹시 어두운 곳을 맴돌면서 또다시 몸을 팔고 있는 넋은 아니냐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운명일 수는 없다고, 나는 그런 너에게 그래도 나라 사랑을 외치며 철없이(?) 국어를 가르쳤다고, 하지만 내가 가르친 초라한 국어는 몸 파는 일을 막지도 못했고, 그렇게 판 몸을 구원하지도 못할 만큼 나약한 것이 되어버렸으니 또다시 미안하다고, 용서하라고,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였노라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속울음을 울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명인도 위 인용 부분에서 지적하였듯이, 우리 민족은 너무나도 “피가름 억센” 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과 섞여서 살아본 경험이 없고, 작은 나라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수천 년을 모여 살았으며 게다가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것을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기며 살다보니, 이 땅에서 혼혈아들이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혼혈아가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이 세상에 진짜 순종이 누가 있습니까? 단일민족의 장점도 상당하지만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우위에 두고자 하다 보면 비록 그것이 관념적 차원의 순수성이라 할지라도 순수성은 형식적으로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그 대신 다양성과 포용력은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만약 이 땅의 우리들이 혼혈아들을 관대하게 수용하고 그들을 우리와 대등한 존재로 친구 삼아 살아갈 여건을 마련했다면, 동두천의 혼혈 고아들이 그토록 커다란 몇 겹의 고통을 겪는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위의 시 <동두천 Ⅳ>에 나오는 혼혈 고아는 몇 겹의 희생자입니다. 우선 그는 무책임한 부모의 희생물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욕정의 희생물이고, 분단의 희생물이고, 세계대전의 희생물이고, 강대국이 희생물이고 어두운 우리 사회의 희생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혈의 고아가 몇 중으로 덮쳐온 그 엄청난 희생의 두께를 너끈히 밀어내고 그의 살을 멋지게 승화시킨 승리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속울음을 울었던 그때의 국어 교사 김명인은, 학교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국어를 가르치며 시를 쓰는 김명인은, 국어선생이자 시인의 감성을 갖고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써서 그 혼혈 고아의 후일담을 전하며 생의 더 깊은 의미를 찾아 우리에게 보여주겠지요. 지금쯤 그 혼혈아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가만히 다져보니 40은 훌쩍 넘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