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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牛♡│ 시 선 ‥| 스크랩 학림다방에서 외 / 임보
동산 추천 0 조회 201 18.10.09 20:3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학림다방에서 / 임보

 

 

대학병원에 들렀다가

모처럼 대학로를 어정거리고 있는데

낯익은 이름 <학림다방>이 보이기에

들어가 보았네

 

목조 마루에 목조 탁자

옛 배우들의 사진이 죽 걸려 있고

턴테이블에선 LP음반이 돌며

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흘리고 있네

 

창밖을 내다보니

도서관이 있던 옛 캠퍼스 자리에는

낯선 상전(商殿)들만 점령군들처럼

위풍당당 들어서 있고

 

40여 년 전

세느* 개천가에서 놀던 그 시절이

아슴아슴 다가오려 하는데

옆 테이블의 세 여자가 떠드는 소리

자꾸만 내 기억을 가로 막고 있네

 

검정색 작업복에 워커를 신고

쌍과부집에서 김치깍두기에 막걸리를 마시며

기고만장했던 그 친구들,

스크럼을 짜고 거리를 누비며

독재와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4.19의 주역들

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나?

 

튀는 놈은 국회의원도 되고

소심한 놈은 교수도 되고

아니, 건달도 되고 놈팽이도 되고

그렇게 저렇게들 지내다가

성급한 놈은 서둘러 이미 떠나가고

이젠 다 늙다리들이 되어

병원이나 드나들고 있는 신세로세

 

* 세느 

   학교 앞에 흐르던 작은 개울을 우리는 세느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지금은 복개되어 도로 밑에 묻히고 말았다.

 

 

매실주 / 임보

 

 

운수재(韻壽齋)엔 세 종류의 매실주가 있다

하나는 뜰의 매실을 따서 손수 담근 운수주,

또 하나는 아흔일곱의 장모님이 광주에서 보내온 무등주(無等酒),

또 하나는 세란헌(洗蘭軒)*의 우금실(雨琴室)* 주인이 담근 세란주다

 

운수재의 지하엔 큰 독이 여럿 있다

독의 30%쯤 매실을 넣고 35°의 소주로 나머지를 채운다

반 년쯤 두면 노랗게 우러나는데

그때 매실을 건져내고 숙성시킨 게 운수주다

 

무등주는 좀 쌉스름하다

늙은 사위의 건강을 염려해서

25°의 연한 소주에 매실을 많이 넣었기 때문!

입술을 뗄 때마다 너무 과하게 들지 마시게!” 하는

장모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금실 주인은 요새 탁주로 돌리면서

손수 빚은 매실주 병을 내게 맡겼는데

35°의 술에 50%의 매실이 들어있어

운수재의 것보다는 좀 짙고 시다

 

나는 매일 저녁 반주를 하는데

첫 잔은 무등주,

둘째 잔은 세란주,

그리고 운수주로 마지막 입가심을 한다

 

금년에도 운수재의 매실나무가

주인의 뜻을 미리 짐작하고

이른 봄부터 꿀벌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더니

한 일년쯤 버틸 수 있는 내 양식을

넉넉히 마련해 주셨다

 

* 세란헌 : 홍해리 시인의 당호.

* 우금실 : 홍해리 시인의 별실 서재가 양철지붕이어서 비가 오면

               요란하다. 그래서 내가 붙인 이름임.





천지람(天之藍) / 임보

 

 

양하남색경전(洋河藍色經典)

술의 천국 중국 양하(洋河)에서

양질의 수수에 보리 밀 그리고 완두를 첨가해

잘 발효시켜 빚어낸 명주란다

 

난정(蘭丁)*

<량허란써징디엔洋河藍色經典-하이즈란海之藍>이란 시에서

48°짜리 해지람(海之藍)’ 한 병을

임보(林步)와 둘이 시수헌(詩壽軒)*에서 다 비우고

신발을 신은 채 쪽빛 바다를 흔들리며 건넜다고 자랑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동백 시인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천지람(天之藍)’을 들고왔다

천지람은 해지람보다 배나 더 비싼 명주라고 하니

이놈을 마시면 쪽빛 하늘을 헤엄치는 기분일지 모르겠다

 

어느 길일을 잡아 이 천지람을 메고 시수헌에 가서

난정과 한나절 수작(酬酌)을 부리며 노닥거릴 작정이다

그런데 천지람 위에 또

몽지람(夢之藍)이 있다고 하니

어느 세월에 그놈들 다 만나 본다?

참 바쁘기도 하겠다!

 

* 난정 : 홍해리 시인

* 시수헌 : <우리詩>사랑방





민망주 / 임보



베트남을 다녀온 소정 시인이

술을 좋아하는 나를 생각고 민망주라는 술을 가져왔다

내게 건네 주면서 하는 말이


대월국 제2대 황제 민망제(明命帝, 1791~1841)가 즐겨 마시던 술로

그의 이름을 상표로 하여 만든 명주란다

민 황제는 5척 단구인데도 수백의 비빈을 거느리고

기백 명의 자손을 생산해 낸 정력적인 인물인 바

그 힘의 비결이 이 술에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술을 앞에 놓고 곰곰이 생각한다

한 잔 마셔봐?

그러다 정말 민망한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쩐다?


37°짜리 과히 독한 술은 아니지만

미리 주눅이 들어

그냥 술병만 바라다보고 있다


- 임보 시집 <사람이 없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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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0.10 03:37

    첫댓글 임보는 술타령만 하고 있다!

  • 18.10.10 10:48

    잘 보았습니다. 저는 술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서늘한 계절 늘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 18.10.11 07:10

    지난 달 인터넷 글 독서 중에 유선생이란 애주가가 몽지람에 대해 쓴
    술맛 비교라는 글을 읽은 적 있어요
    덕분에 술 문화에 대해 이런 것도 있구나 했는데요 선생님 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어제 오늘은 조석으로 쌀쌀합니다
    선생님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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