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無條件)”은 ‘이러저러한 조건을 따지지 않고’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묻지마”는 사전에 올려진 말이 아니지만 이유나 목적 등을 묻지 말고 응하라는 뜻을 가진 말로 쓰입니다.
이 두 말을 아우르는 말이 “맹목적(盲目的)”일 것 같습니다. ‘맹목적’은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거나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주건이나 상황을 고려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으로 좋아합니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을 주변에서 걱정을 하면 당사자들은 ‘아무 것도 묻지마’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도 맹목적이고, 연예인에 빠진 사람들도 맹목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일 겁니다.
“팬덤”은 아직 사전에 올려진 말은 아닌데 ‘가수, 배우, 운동선수 따위의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치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팬덤들은 정치인들의 사고와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맹목적인 지지를 통해 해당 정치인이 하고 있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방향으로 응원하다 보면 정치인이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음에도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알선수재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경악할 비리 혐의를 포착했다.
지난 2021년 5월 2일에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돈 봉투 살포 행위가 이뤄졌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9400만 원 정도가 민주당의 70여 명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검찰이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 강래구 감사협회장(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의 실체는 돈 봉투 전달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이 전 부총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그는 숨겨뒀던 자신의 휴대전화 위치를 수사기관에 알려주고 녹음된 대화 내용의 취지를 설명해 주는 등 실체적 진실 발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녹취 내용을 보면 ‘의원들 좀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지금 홍 의원 쪽에서도 뿌리니까. 의원들이 그래서 고민하고 있고’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또, ‘내가 송 있을 때 같이 얘기했는데 뭐’하는 이성만 의원의 목소리도 있다.
녹취 내용에 따르면,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윤관석·이정근·이성만·강래구 등이 열과 성의를 다해 돈 봉투를 돌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홍영표 의원과 박빙의 승부가 있었는데, 송 의원이 0.59%포인트(P)를 앞서서 당선됐다.
돈 봉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돈으로 표를 매수한 사람이 당대표로 선출됐다고 할 수 있는 상황임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반응은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로 매도하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검찰이 녹취를 흘리고 있다.’(서영교 의원) ‘차비나 밥값 수준이다.’(정성호 의원)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폭락하자 국면 전환용으로 터뜨린 것이다.’(김남국 의원) ‘검찰권이라는 칼을 시도 때도 없이 휘두르는데, 의혹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전재수 의원) ‘국회의원이 300만 원에 지지를 바꾸겠나.’(장경태 의원)
민주당 사람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항상 불순한 동기에 기반하며 ‘객관적 진실을 왜곡·조작’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이 대표 자신도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다고 줄곧 주장한다.
이처럼 검찰을 폄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이 이를 사실이라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서여야 한다. 그래서 진실을 왜곡·조작하려면 증거를 날조해야 한다. 오늘날 그렇게 할 검사가 있을까. 단언컨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를 신뢰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사람들은 줄기차게 검찰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져도 역사의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우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속임수를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는 대놓고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자.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관계가 있다면 속임수를 사용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사건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시종일관 검찰과 증인들을 비난했다.
그 결과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매우 불리한 양형 결과가 나왔지만, 열성 지지자들의 믿음은 지켜졌다. ‘조국 수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지금도 정 전 교수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고, 조국과 조민을 옹호하고 있다.
끊임없이 검찰을 비난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진실 왜곡을 시도하는 속임수다. 하지만 좌파 정당임을 자처하는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라는 사회적 현상이 있고, 그것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속임수는 계속될 것이다.
그 속임수는 바보들의 행진이 아니라, 바보들에 대한 속임수 행진이다.>문화일보.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출처 : 문화일보. [시평]‘무조건 지지’가 속임수 정치 키웠다
맹목적인 지지, 즉 팬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은 이제 식상한 말이 된 것 같습니다. 자기편이라고 ‘무조건’으로 ‘묻지마’로 지지하다보니 그들의 어떤 거짓말도 다 믿고 따르니 이래서 “천하흥망(天下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 타당한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런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후보를 비교하거나 공약을 제대로 보고 투표를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믿고 투표했던 사람들의 잘못된 행태를 눈으로 보고 있으니 그렇게 맹목적으로, 무조건으로, 묻지마 식의 지지와 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투표 때가 되면 또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가 없으니 남을 탓하기 전에 다 제 탓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