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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이선규
총무과장이 수위실로 오겠다고 했다. 양기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시선을 본관 쪽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총무과장은 외투를 입을 테고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서겠지. 그리고 본관의 중앙에 놓인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그의 음성으로 미루어보면 잰걸음을 놓을 것이다. 양기호는 속으로 셈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스물둘, 스물셋, 양기호의 예상을 확인하듯 현관의 유리문이 열렸다. 앞머리가 엠 자형으로 벗겨진 왜소한 체구의 총무과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기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안색이 차츰 어두워졌다. 그는 수위실 안을 둘러보면서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변화하는 표정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수위실 문이 열리고 총무과장이 들어섰다. 총무과장은 입체영화의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듯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의 외투자락에서 찬바람이 묻어났다.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는 거미처럼, 살얼음에 잡혀 퍼져나가는 균열처럼, 찬바람은 비좁은 수위실 안에 소리 없이 번져나갔다. 수위실은 그 때문에 좁아졌고, 갑자기 스산해졌다. 양기호는 한 발짝 물러나 엉거주춤 섰다. 총무과장이 초록색 파일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양기호는 그 파일이 김 반장의 인사파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김 반장의 퇴사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우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해야겠습니다. 일전에 김 반장 집에 다녀온 일도 있고 하니 한번 더 수고해주시지요.”
총무과장은 충분한 연습을 거치기라도 한 듯 막힘없이 빠르게 말을 마쳤다. 좀 더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가혹한 처사는 아닐까. 양기호는 끈이라도 잡아볼 심정이었지만 의견을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다. 김 반장의 무단결근이 열흘을 넘기고 있었으니 가당치도 않을 터였다. 그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주춤거리며 곁눈질로 총무과장의 입만 살폈다.
“상황이 나빠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저도 기다려보고 싶습니다만, 회사에는 사규라는 것도 있고, 윗분들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실무적으로 연금이며, 보험, 퇴직금 등 퇴사에 따른 처리해야 할 행정사항이 많은데 연고자가 없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번거롭지만 그런 절차라도 밟아야 행정사무가 마무리 될 테니 어쩌겠습니까.”
총무과장은 낮은 음성으로 구구단을 외우듯 말했다. 양기호는 슬며시 총무과장의 시선을 피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안타까워하시는 거 이해합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모범사원이 불명예 퇴사를 해야 한다니 아쉬운 일이지요. 조촐한 기념식이라도 치르고 명예롭게 퇴사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사자뿐 아니라 회사로서도 무척 애석한 일입니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바위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불편한 침묵을 벗어나려는 듯 총무과장은 짧게 눈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수위실을 빠져나갔다.
양기호는 털썩 의자에 몸을 던졌다. 이런 낭패가 없었다. 김 반장은 이제 십 년 넘게 근무한 직장에서는 불명예스런 퇴사자가 되고, 더불어 사회구성원이 아닌 실종자로 전락하게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열흘 사이에 급변한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다면, 김 반장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김 반장은 언제나 근무시간 삼십 분 전이면 어김없이 도착했다. 그야말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 같았다. 김 반장과 함께 근무한 삼 년 동안뿐 아니라, 김 반장이 입사한 이래 십 년이 넘게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다는 것을 양기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듯 이제껏 결근도 지각도 없던 사람이 근무교대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한 시간 뒤에도, 두 시간 뒤에도, 김 반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양기호는 적이 당황했다. 김 반장의 지각이나 결근을 한두 차례라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면 어려워하지 않고 적당히 대처하였으련만, 양기호로써는 처음 당하는 일이니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간신히 김 반장에게 전화연락을 해봐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망설이다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도 사람인데 하루쯤 결근할 수도 있는 일이지, 그까짓 하루 결근한 것을 놓고 지나치게 수선 떠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어. 양기호는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느긋해지기로 했다. 뒤이어 크게 심호흡하며 김 반장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답답함과 걱정까지 내리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위실 근무인원은 양기호와 김 반장 그렇게 두 명이었다. 이른바 주·야간, 맞교대인데 한주씩 바꾸어가며 주간과 야간근무를 번갈아 맡았다. 토요일도 마찬가지로 근무했고 일요일 하루만 쉬었다. 근무가 고되거나 힘에 부치는 것은 아니었으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정이어서 여유는 없었다. 양기호는 주중에 피치 못하게 볼 일이 생기면 곤란한 지경이 될 것을 염려했다. 그런 경우를 가상해서 김 반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혹시 누구라도 주중에 볼 일이 생기면 하루씩 전일근무를 해주고 다음날 쉬는 것이 어떨까요?’ 대개의 50대 은퇴자들이 그렇듯이 양기호도 동호회며 산악회 등 여러 모임에 다리를 걸쳐놓고 있던 터였다. 가뭄에 콩 나듯이, 가 아니라 한 달에 두어 번은 겪어야 할 일들이었다. 때문에 서로에게 손해가 되지도 않고 편리를 보는 일인데 폐 끼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김 반장은 양기호의 제안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동의했다. 그런 합의가 있은 후 양기호는 그 합의를 시의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동호회 활동이나 등산모임 등에 꾸준히 참여하며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그날도 양기호는 동호회 모임 때문에 김 반장의 양해를 구할 일이 생겼다. 양기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 반장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번도 망설이거나 거부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때와는 달리 양기호는 그때까지 가져보지 못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억지로 빼앗기라도 한 것 같은 개운치 않은 감정이 고개를 반짝 들었던 것이다. 양기호는 세 해 동안 김 반장과 함께 근무했지만 그가 개인적인 일로 근무를 조정하자고 제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함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집안에 대소사가 없지도 않을 텐데 언제든지 일을 보시지. 이거 나만 생쥐 빠져나가듯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하는 일인데. 난 불편한 거 조금도 없으니 일 잘 보고 오시우.”
양기호는 김 반장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물음이 아니라 진정 김 반장이 한 번도 제안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었다. 김 반장이 치러야 할 개인적인 일들이 그동안 우연히 일요일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양해사항을 실천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면 양기호로써는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삼 년이란 세월 동안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우연’이 졸졸 꽁무니를 따라다녔다고 믿기에는 아귀가 너무 어긋나있었다. 그런 일들로 미루어보면 김 반장에게는 개인적인 생활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 같았다. 그는 감기 몸살도 앓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길 일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가 근무한 십 년 동안 내내! 그러니 결근이란 단어가 그와 연결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둘째 날도 김 반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첫째 날은 누구나 결근할 수 있는 일이고 김 반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느긋해지려고 했었다. 총무과에서 임시로 파견한 생산직 직원에게서 업무인계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나기 전에 김 반장이 언제나처럼 웃음을 머금으며 수위실로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임시로 파견된 생산직 직원이 또다시 수위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가둬두었던 불길한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갈라진 틈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불안과 초조가 함께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생산직 직원에게 대략 업무인계를 마치고 나서도 양기호는 수위실을 떠나지 않았다. 김 반장의 결근에 대해 집중력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편의 모래주머니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우리 편의 바구니가 터지기 직전을 바라보는 듯, 조마조마함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위기감일까. 근자에 종종 겪어보는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모호한 위기의식 등이 버물어져 얼굴에 떡칠을 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을 연속해서 결근하다니. 필시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다. 양기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휴대전화를 꺼냈다. 연락처에서 김 반장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었다. 그는 잠깐 주저했다. 혹시 받지 않는다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통화버튼 위를 몇 차례 쓸어내듯 움직였을 뿐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숨을 크게 내쉰 후 초록색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러자 연결음 대신, ……없는 번호이니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기계음이 들렸다.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통화버튼을 눌렀다. 가끔씩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은 기계들의 숙명일 테니까. 그러나 그의 짐작을 놀리기라도 하듯 동일한 소리가 되풀이되었다. 기계들이 늘 저지르는 일들과는 일치하지 않는 상황의 전개, 양기호는 입을 앙다물고 다시 통화버튼을 세게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금 동일하게 반복되는 기계음을 듣다가 그만 폴더를 접어버리고 말았다.
떠나버린 기차를 바라보며 냅다 고무신을 던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타야 할 기차도 아니었고, 누군가 손을 뿌리치고 오른 기차도 아니었다.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의 꽁무니에 대고 해대었던 심술이었다. 심술은 곧 망연함으로 환치되고 터벅터벅 철길을 따라 고무신을 찾으러 걸어갈 때의 걸음, 그 무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번호를 잘못 누른 것은 아닐까,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휴대전화에 입력된 번호를 눌렀을 뿐 키패드를 누른 것은 아니니 그럴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유를 알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양기호는 김 반장 집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한 이후에 이때껏 그에게 전화 연락을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번호의 옳고 그름을 떠나, 번호의 유무조차 가릴 일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전화했던 기억은 없었다. 머리의 한 군데가 뻥 뚫리고 그리로 바람이 쉬익쉬익 통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젠장! 김 반장에게 전화할 일이 그리도 없었던 말인가. 어이없는 노릇일 수도 있었다. 순전히 부주의함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의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챙겨놓지 않았다니. 그동안 삼 년이란 세월을 함께 근무하면서 변경된 전화번호를 챙겨 놓지 못한 것은 분명 부주의함이었다. 많은 수의 인원이 함께 근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달랑 김 반장 한 사람인데. 그는 달리 항변할 이유가 없었다. 어이없는 부주의함. 양기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로만 밀어붙이기에는 억울한 구석도 있었다. 김 반장은 함께 근무한 삼 년 내내 양기호의 곁에서 한 발짝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비록 동일한 시간에 함께 근무한 적은 없었지만 양기호의 하루는 김 반장과 불가분이었다. 김 반장이 머물렀던 곳에서 양기호가 근무했고, 양기호가 머물렀던 곳에서 김 반장이 근무했다. 그들은 이삼십 분 가량 근무교대에 필요한 업무인계인수를 했을 뿐이지만 하루를 함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손을 뻗으면 김 반장이 있었고, 양기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김 반장이 나타나 있었다. 결근도 지각도 없는 김 반장을 양기호가 전화해대며 찾아 나설 일이라곤 아예 없었다. 양기호는 다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총무과에 전화를 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와 다르지 않았다.
김 반장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에게도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전화를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양기호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언제든 필요하면 장만하지, 했다. 김 반장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양기호가 겪어야 하는 불편은 없었다. 그는 부르기 전에 양기호의 옆에 와 있었고, 찾기 전에 양기호의 눈앞에 존재했다. 필요를 일깨우는 것은 불편함이다. 양기호가 김 반장에게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김 반장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들 양기호가 편리해질 일도 없었다. 그러니 양기호가 김 반장의 휴대전화 사용 여부에 관여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김 반장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양기호에게는 불편함이 야기되었다. 더욱이 유선전화가 없는 번호로 판명되었으니 휴대전화에 대한 필요가 더욱 더 불거졌다. 한 개의 연락망보다는 두 개의 연락망이 목적 달성을 배로 증가시키는 것 아닌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양기호의 추측은 의외의 방향으로 내달렸다. 김 반장은 연락수단들을 은폐시켰으며, 무력화 시켰다는 혐의가 물안개처럼 솔솔 피어올랐다. 비약하면 김 반장은 계획에 따라 은폐와 무력화를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없는 번호와 초등학생에게도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전화조차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 반증이 될 터였다. 그러나 비약은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꺾여버렸다. 양기호는 선하게 웃으며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던 김 반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마치 불경한 일을 저지르기라도 한 듯 볼이 달아올랐다.
사흘째 결근, 전화연락은 불가능이고 김 반장이 나타날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양기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위실 한쪽 벽면에 세워진 김 반장의 사물함을 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기대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김 반장의 결근을 이해하는데 단서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황급히 사물함을 열어보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사물함은 텅 비어있었다. 근무복 상하의 두 벌만이 김 반장이 사용하는 사물함임을 일러주듯 단정하게 옷걸이에 걸려있을 뿐이었다. 양기호가 가끔이라도 김 반장의 사물함을 열어본 적이 있어서 그 안에 어떤 물건들이 담겨있는지 알고 있었다면, 사물함에서 어떤 단서라도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양기호는 김 반장의 사물함을 열어본 일이 없다. 그러니 그 안에 어떤 물건들이 담겨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양기호의 사물함에는 근무복 이외에 세면도구 등 개인적인 잡다한 물품들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김 반장도 양기호 자신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없었다. 결근을 계획하고 사물함을 비운 것인가, 아니면 평상시에도 덩그맣게 근무복만 걸려있었나? 김 반장의 사물함에서 그의 결근과 연관된 무엇이라도 찾아보려 했던 양기호의 의도는 무위로 끝나버렸다. 한 번의 시도가 다시 좌절을 겪으면 초조함은 영락없이 그 배가 되었다. 그때였다. 양기호가 사물함을 닫으려 하는데 얼핏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후다닥 사물함에서 근무복을 꺼냈다. 양기호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김 반장의 근무복이려니 생각했는데 자신의 명찰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양기호. 사면이 단정하게 오버로크 된 명찰에 이름이 선명했다. 또 다른 근무복의 명찰도 확인해보았다. 역시, 양기호, 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매우 빠른 동작으로 자신의 사물함을 열고 근무복을 꺼내보았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한 벌에도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양기호는 그만 바람 빠진 포대처럼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있어야 할 김 반장의 근무복은 어디로 사라지고 거기에 내 근무복이 떡하니 걸려있다니. 내 근무복은 두 벌뿐이었다. 그것이 네 벌이 되고, 두 벌은 김 반장의 사물함에 걸려있지 않은가. 귀신은 아마 이럴 때 곡을 하는 것이리라.
나흘이 지났다. 김 반장이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수위실에 불쑥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와, 점점 부풀려지는 걱정과 염려를 털어내지 못하고 겨우겨우 근무시간을 채웠다. 이제 교대근무자가 나타날 시간이었다. 피곤이 엄습했다. 양기호는 다리를 펼 겸 의자에서 일어나 수위실 안을 서성거렸다. 첫 출근하던 날, 활짝 웃으며 반기던 김 반장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는 두 손을 꼭 쥐며 동갑네랑 함께 일하게 되어 무척 반갑다, 고 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겸손이 배인 행동거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할 양기호에게는 첫눈에도 의지가 되는 동료였다. 김 반장은 직장선임이었지만 친구 같았고, 형제 같았다. 김 반장은 양기호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고 어떤 경우에는 마치 아우를 대하듯 자상했으며 꾸밈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양기호는 그가 자신의 선임이고 나이로는 동갑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김 반장의 결근이 계속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심정적으로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라고 느끼고 있던 그의 사생활에 대하여 양기호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였고 자식도 두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 그것이 양기호가 김 반장에 대하여 아는 것 거의 전부였다. 가정환경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이한 면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직장에 충실했으며, 터럭만큼도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종종 말썽을 피우거나 불성실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사람이었다면 타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의 관심을 끌만한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때문에 당연히 그의 사생활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는 없어도 있는 듯, 있어도 없는 듯, 공기와 같았다. 주변이 자신을 찾게 만들지 않았다. 평범함은 주위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결근을 하지 않으니 그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지각을 하지 않으니 그가 제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그의 근속연수가 십 년을 넘겼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 안에서 존재했지만 실제는 언제나 시선 밖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양기호는 이제야 그의 실체가 보이는 듯했다. 그가 결근을 되풀이하며 자리를 비우니 비로소 그의 실체가 보였다. 그러면 그는 그동안 무엇이었나. 양기호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러 가능성들을 손꼽으며 그의 무단결근에 대하여 거듭 추리했다. 혹시 그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데, 신분증을 소지하였다면, 불행한 일이지만 연락은 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원한 관계로 감금되거나 위해를 입고 유기된 것은 아닐까? 단정하지만 그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원한을 살 위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한 번도 결근 한 적이 없던, 정말 성실한 모범사원이었던 그가 결근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무단으로! 결국 양기호의 추리는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다가 김 반장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져 있을 것이라는 불명확한 가설을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세상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황당한 범죄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음료수병에 치명적인 독극물을 주사하여 아무 면식도 없는 노인에게 건넨 사건도 있었다. 길가는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거기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정신 나간 범죄자들도 많은 세상이다.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 협박, 채워진 재갈,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낯선 어느 곳에서 절박하게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양기호는 총무과장이 두고 간 파일을 보관하려고 책상서랍을 열다가 도로 닫아버렸다. 퇴근 후 지구대에 가져가려면 아무래도 서랍보다는 눈에 띄는 책상 위에 두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파일을 잊은 채 지구대로 가서는 안될 일이었다. 눈에 보이면 실수할 확률이 줄어든다. 자신에 대한 불신감이 빚어낸 결과였다. 불신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자니 명치끝이 뻐근해졌다. 양기호는 얼마 전부터 부쩍 피곤함과 나른함에 시달렸다. 더불어 두통이 다듬이 방망이질처럼 머리통을 집중적으로 가격하는 바람에 안절부절못하고 머리를 싸맨 채 구른 적도 몇 차례 있었다. 고통이 잦아지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건강에 이상 없음’이었다. 초로의 남성이 겪는 일반적인 증상들, 전립선이라든가, 혈압이라든가, 음주 흡연에 따른 부작용 그리고 체중에 대한 부담만 경고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기호는 진단 결과를 신빙할 수 없었다. 두통은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엄습했고 예리한 칼끝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 정수리를 핥고 지나가면 온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고는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멍한 상태에 잠겨서 의식이 점멸하는 현상을 지켜보아야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의식의 점멸은 마치 고장 난 신호등이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를 반복하는 것과 흡사했다. 고장 난 신호등 탓인지 기억력의 흐름에도 종종 문제가 발생했다. 오래된 일뿐만 아니라 바로 몇 분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 상당한 낭패를 겪기도 했다. 심지어는 근무 중인데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허둥댄 적도 있었다. 창피한 일이었다. 건망증, 치매, 코마라는 단어들이 빠르게 튀어 올랐다. 알량한 지식으로 유추하지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소침해지곤 했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떠벌릴 기분도 아니어서 속으로만 눌러놓고 있었다.
“인계사항은 없으시고요?”
생산부에서 수위실로 인사발령된 최씨가 근무일지를 설렁설렁 넘기며 물었다. 시계는 여섯 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음! 특별한 건 없어.”
“지구대로 가십니까?”
“편의점 옆 공단지구대가 우리 관할이라고 하던데, 맞지?”
최씨는 대답이 없다. 알고 있으면서 물었으니 양기호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회사는 공장이 밀집해있는 공단에서 동쪽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공단정류장과 다음 정거장인 사거리정류장의 중간쯤이다. 사거리정류장에서 하차하여 공단정류장 방향으로 약 백 미터 가량 되돌아오면 공단사거리가 나오고,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약 백 미터 정도 가면 회사에 이른다. 사거리정류장에는 편의점이 있고 편의점 옆이 지구대이다. 삼 년을 넘겨 다닌 길이다. 보도블록의 숫자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표창장을 준다고 해도 순사 앞에는 나서지 말라고 했는데, 거기도 이젠 좋아졌겠지요? 세상도 많이 변했으니까.”
양기호는 대꾸하지 않고 나설 차비를 마쳤다.
“사람마다 말 못할 비밀 한두 개는 가지고 있다는데, 그분도 그랬나 보죠? 열길 물속보다 깊다니까. 십 년 장기 근속사원이었던 분이 이렇게 흔적 없이 잠적하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근무일지를 덮으며 최씨가 볼멘소리를 했다.
양기호는 파일을 옆구리에 끼고 수위실을 빠져 나왔다. 마치 쓸개라도 입에 문 것 같아 침을 뱉어냈다. 투박하고 거친 붓끝으로 덧칠되기 시작한 어둠이 행인들의 입김에 뒤섞였다. 암회색으로 응고되기 시작한 어둠은 고사된 나뭇가지처럼 제멋대로 보도에 나뒹굴었다. 이유도 없이 자꾸만 한심한 생각이 들어 걸음걸이가 무지근해졌다. 비디오대여점을 우측으로 끼고 돌아서 적벽돌 담장을 지나쳤다. 호프집, 미장원, 화원을 지났다. 이윽고 편의점 앞을 통과해 멈추었다. 지구대는 보도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있었다. 출입구로 오르는 세 개의 계단 양 옆으로 조성된 화단은 야트막했다. 몇 개의 깨진 벽돌이 드러났고 도색된 하얀색 페인트도 드문드문 벗겨져 있었다. 마치 내다버린 문갑을 주어다 세운 것 같은 화단에는 얼어버린 화초들과 마른 이파리들이 산발한 머리처럼 어지러웠다. 화단 옆에 세워진 두 개의 나트륨 등에서 과대망상증 환자의 시선처럼 흐릿하고 몽롱한 빛이 풀려 나왔다. 양기호는 우악스런 손에 단단히 멱을 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주춤주춤 지구대로 들어갔다.
“총무과장이란 분이 전화했더군요. 실종자에게는 가족이 없다고 하시네요.”
“……, 그렇습니다.”
양기호는 잠시 주춤하다가 대답했다.
순경은 김 반장의 인사기록카드를 훑어보았다. 이 과정이 지나면 김 반장은 국가기관에 공식적으로 신고됨과 동시에 명확한 실종자로 분류될 터이다. 존재하는 자와 존재하지 않는 자의 중간쯤. 허수. 그의 존재가 소멸되었다는 또 다른 공식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그의 존재는 허수의 둘레에 갇히는 것이다. 등줄기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등골을 파먹으려고 벌레가 기어드는 것 같았다.
“미귀가자 신고가 부쩍 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몇 건 될까 말까 했는데 요즘은 배 이상 접수되고 있어요.”
순경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말했다. 전국의 지구대 숫자 곱하기 열 건. 지구대 관할구역의 인구격차를 감안하여 편의상 다섯 건으로 평균치를 잡는다. 전국의 지구대 숫자 곱하기 다섯. 대략 한 달에 발생하는 미귀가자의 숫자다. 전국에 산재한 지구대가 모두 몇 군데인지 알면 답이 나온다. 양기호가 수식을 세우고 지구대의 숫자를 물으려 하는데, 순경이 말을 막았다.
“최근에 그분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든가 하는…….”
양기호는 곰곰 생각해보았다. 김 반장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던가? 없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이상한 점은 자신에게서 발견되었다. 건망증과 치매 사이를 오가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들과 빈번해진 두통, 그것들이 그렇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버스 종점 근처를 헤매다 반나절 지각하여 김 반장의 걱정을 산일도 있지 않았나.
“이런 실종신고를 받을 때마다 생기는 의문이지만, 왜 그들이 사라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답니다.”
순경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들이 사라진 곳이 외계의 어디거나 심연이 아니라면, 거리에서 내가 스치고 지나친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 가운데 누가 미귀가자로 분류된 허수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그들의 가족과 관계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알아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저마다 그들의 신분을 식별할 수 있는 표식을 가슴 한복판에 부착하고 다니지 않는 한 말이다. 그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만큼 그들과 맞닥뜨릴 확률도 정비례할 것이다.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식당에서……, 미귀가자로, 실종자로, 새로운 허수로 전이되는 과정에 놓여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양기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김 반장은 지금 자신이 그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그와 같은 처지가 되어 실종신고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앞에 앉아있는 순경 역시 이미 미귀가자로 분류된 상태이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혼란스런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뒤이어 뇌의 한 면이 칼날에 베어 잘려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양기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순경이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가요?”
양기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미귀가자의 집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고 총무과장에게서 들었습니다.”
김 반장은 어느새 미귀가자의 신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집에서 실종과 연관시킬만한 어떤 흔적은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순경의 미간이 살짝 당겨졌다. 그의 미간에 있는 알약만한 붉은 반점이 선명했다.
김 반장의 무단결근이 엿새째 되던 날, 총무과장의 제의로 양기호는 김 반장의 집을 찾았다. 5층짜리 아파트들이 어깨를 맞대기라도 하듯 여유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건물 곳곳에는 칠이 벗겨져 허연 속살이 지저분하게 드러나 있었다. 단지의 여기저기에서 쓰레기더미가 굴러다니고 곳곳에 철거반대를 외치는 붉은색 글자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남루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다. 응답이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게 순서일 듯싶었다. 초인종 대신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고 몇 차례 철문을 더 두드렸다. 치장 없는 공허한 울림만 되돌아왔다. 철문손잡이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약간의 움직임으로만 반응했을 뿐 회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양기호는 층계를 내려와 아파트 현관에 섰다. 먼지 낀 유리창에는 스티커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마치 아이들이 놀다가 황급히 떠나며 남겨놓은 딱지들 같았다. 하나씩 하나씩 스티커들을 살폈다. 켄터키치킨 양념통닭 피자, 중화요리 신속배달, 전통족발, 안심 번개급전 싼 %, 이삿짐을 내짐처럼 고가사다리 완비, 세탁! 세탁! 백옥세탁! 스티커들은 업종만큼이나 다양한 도안과 색도를 사용하여 현란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알루미늄 창호수리, 야식배달 한식전문, 잔치 떡 방앗간, 도난방지 보조키 열쇠수리… 양기호는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여자는 열쇠수리공이 출장 중이므로 주소를 남겨 놓으라고 말했다.
어긋난 출입문 사이로 쌀쌀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고장 난 힌지 때문에 한쪽으로 처진 알루미늄 문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귀를 후벼 파는 신경질적인 마찰음과 함께 어설프게나마 출입문이 맞물렸다. 그런 대로 바람을 피할 만했다. 입구에는 낡은 목제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지난여름 길고 긴 하루를 보내기에 지친 노인이 걸터앉아서 시간을 세는 데 사용했을 법한 의자였다. 의자에 앉아 기다릴까 하다가 앉지 않았다. 의자는 앉으면 금세 해체될 것 같았다.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랠 겸 스티커들을 다시 읽었다. 켄터키치킨 양념통닭 피자, 중화요리 신속배달, 전통 족발, 안심 번개급전 싼 %, 이삿짐을 내짐처럼 고가사다리 완비, 세탁! 세탁! 백옥세탁, 알루미늄 창호수리, 야식배달 한식전문. 잔치 떡 방앗간, 도난방지 보조키 열쇠수리, 빨래건조대 화장실수리 만능보수… 차례차례 스티커들을 읽는 도중 스티커가 집중적으로 붙어있는 중간부분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동떨어진 유리문 귀퉁이에 부착된 한 장의 스티커를 발견하였다. 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원형스티커였다. 인쇄상태가 선명하지 않았다. 양기호는 반걸음 앞으로 다가가서 초점을 모았다. 고민해결 비밀보장 사람을 찾아드립니다 심부름센터. 턱이 당겨지며 울대가 조여졌다.
그때 요란하게 다가오던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멈추고 뒤이어 연장가방을 든 젊은이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깨가 매우 넓고 두 팔이 기형적으로 긴 청년이었다. 양기호가 앞장섰고 열쇠수리공이 뒤를 따랐다. 청년은 빠른 손놀림으로 연장가방을 풀고 작업에 착수했다. 양기호는 문이 열린 후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 대한 조바심을 키우며 한 발짝 다가섰다. 타인이 구축해놓은 그만의 세계와 조우한다는 것, 영혼 깊숙이 내재되었거나 혹은 초월자의 의지에 저당되어있든, 타인의 내밀한 세계를 대면하는 것은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버무려지게 마련이었다. 모른 체 외면할 수 있는, 그래서 벗겨낸 기억의 세포를 무심코 비듬처럼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현상은 아니었다. 청년의 손놀림을 지켜보자니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회피와 직면에 따른 불협화였다. 청년의 벨트에 채워진 휴대전화 벨이 공사장 발파음 만큼이나 크게 울렸다. 청년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종이에 주소를 받아 적었다.
“누군가 또 열쇠를 잃어버렸군요. 부쩍 많아졌어요. 일감이 밀려서 몸이 열 개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예요. 마치 모두들 동시에 열쇠를 잃어버리기로 작정한 거 같아요.”
상체를 구부린 채 작업하고 있는 그의 널찍한 등과 분주한 손놀림은 다시 보아도 영락없는 새의 형상이었다. 이윽고 묵직한 쇳소리가 났다. 기형적으로 긴 열쇠수리공의 두 팔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양기호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시 같은 냉기가 파고들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집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가구를 비롯한 모든 물건들이 반듯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양기호는 말을 마치고 순경을 보았다. 망설였다. 김 반장의 집의 내부가 자신의 집으로 착각할 만큼 흡사했다는 말을 할까, 양기호는 입을 닫았다. 순경은 상체를 세우고 기지개를 켰다.
“네, 그랬군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차후 미귀가자의 소재가 확인되거나 전달사항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순경은 자신에게 요약하듯 말하고 김 반장의 파일을 건넸다. 양기호는 파일을 옆구리에 낀 채 머뭇거렸다. 미귀가자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가족의 구성원이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가정에 복귀해야만 구성원으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장기 출장자의 경우처럼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정해진 기간만큼 의무는 유예될 것이다. 김 반장의 경우 그는 자신의 결근을 회사에 고지하여야 했다. 그가 고지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단체의 구성원으로써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가정을 꾸리고 있지 않은 그가 귀가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그가 정말 미귀가자로 정의되는 것이 타당한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이탈하였다고 해도 미귀가자는 아닐 것이다. 순경으로부터 명쾌한 정의를 듣고 싶었다. 양기호는 질문을 하기 위하여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순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회를 놓쳐버린 양기호는 어정쩡하게 일어나며 맥없이 순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에 있는 반점이 더욱 진한 선홍색으로 변해있었다. 양기호는 떠밀리듯 지구대를 빠져 나왔다.
거리에는 짙은 어둠이 채워져 있었다. 마른 들판에 돋아난 서리 같은 어둠의 결정이 자박자박 발끝에 밟혔다. 오가는 행인들의 시들어버린 안광과 탈색되어버린 표정들이 거리 곳곳에 깊은 단절을 융기시켰다. 오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매우 밝은 빛을 내뿜으며 지구대 입구에 세워진 간판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고 있었다. 편의점과 화원을 지나 미장원에 이르도록 잘못 배달된 소포를 살펴보듯 몇 차례 더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심이 전신을 욱죄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 중인 일단의 행인들을 은폐물 삼아 도망자처럼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섰다. 멈추어 서 있는 비슷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발들이 시선에 다가왔다. 그 가운데 어떤 쌍은 실수에서 허수로 전이된 자의 발일지도 몰랐다. 그 옆에 단정하게 끈이 묶여져 있는 구두의 주인 역시. 하나 건너 또 다른 구두의 주인도. 허수와 실수의 간극은 얼마 만큼일까. 그러나 그들 자신이 이미 허수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신호대 앞에 멈추었던 발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일원인 것처럼 양기호도 그들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편의점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장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밤 낚시꾼이 피워놓은 가스등 같은 포장마차의 불빛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잠에서 깬 송아지 눈 같은 포장마차 주인의 시선과 맞닥뜨리자 갑자기 뱃속을 가르며 밀려드는 허기에 진저리가 쳐졌다. 무엇인가 가스 불에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며 거푸 소주잔을 삼켰다. 내려쳐진 가빠 틈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이 이아쳤다. 누군가 양기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고 그도 떠났다. 분주하게 실수와 허수의 지속적인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장마차의 내부는 여전히 흐릿했고, 불판에서는 무엇인가 구워졌고, 양기호의 후각은 차츰 마비되어 갔다.
아랫배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요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주인이 일러준 대로 옆 건물 이 층 계단 화장실을 찾았다. 변기 앞에 서자 벽면 타일에 붙은 스티커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간신히 취기를 걷어내며 스티커에 초점을 맞추었다. 순간, 스티커는 대기권을 벗어난 혜성처럼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돌진하며 양기호의 동공으로 파고들었다. ‘고민해결 비밀보장 사람을 찾아드립니다. 심부름센터’ 턱이 당겨지며 울대가 조여졌다.
“심부름센텁니까?”
“네, 그렇습니다.”
친절한 음성이 대답했다.
“저……그러니까……사람을 찾고 싶은데요.”
입안에서 말이 뒤섞였다.
“방문하시면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친절한 남자가 위치를 물었다. 양기호는 대충 위치를 설명했다.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공단사거리에서 구청 쪽으로 내려오면 정류장 앞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편의점 바로 옆 건물입니다.”
편의점 옆 건물……, 편의점 옆 건물……, 횡단보도를 건너고 비디오대여점과 적벽돌 담장을 지났다. 불 꺼진 호프집을 지나 셔터가 내려진 미장원도 지나쳤다. 숨이 턱까지 차 올라왔다. 뛰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오랜 시간이 소요됨직했다. 양기호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득 젖은 종이에 떨어진 물감처럼 수상한 느낌이 번졌다. 인적이 끊어진 거리는 어둠에 잠긴 학교 운동장처럼 텅 비어있었다. 차도에도 운행하는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고, 노면에 표시된 황색 실선 위에 번지는 가로등 불빛만 간신히 어둠에 잦아들고 있었다. 마치 입장객을 기다리는 유령의 집이 설치되고 그 안에서 변장한 괴물이 튀어나와 공포의 한복판으로 그를 인도하려는 계획이 예정된 것 같았다. 깨어진 유리조각 같은 적막이 사위를 에둘렀다. 거리의 행인들은 모두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깊은 산속에 찬란한 문명을 이루고 살던 종족들이 흔적만 남기고 일시에 사라져버렸듯이 그들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일까. 화원과 편의점을 지나쳐 멈추었다. 편의점 옆 건물 앞에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간판이 휘황하게 빛났다. 몇 개의 깨진 벽돌이 드러나 있는 화단 사이의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출입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강렬한 사람들의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마치 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든 것 같았다. 양기호를 맞이한 안내대의 남자가 친절하게 의뢰서 용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어깨가 매우 넓었고 기형적으로 팔이 길었다. 마치 활짝 펴진 날개 같았다. 용지에는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실종일, 신체적 특징, 가족사항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있었다. 양기호는 가지고 있던 김 반장의 인사기록파일을 펼쳤다. 예상답안처럼 파일에는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빈칸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의뢰인과의 관계’를 묻는 맨 마지막 칸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잠시 주춤했다. 몇 번씩 파일을 뒤적거리며 펜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의 힘을 뺐다. ‘직장동료’ 적절한 단어를 선택한 것일까. 양기호는 의문을 품은 채 의뢰서를 제출하고 대기실로 갔다. 그곳에는 일단의 대기자들이 처방전 기다리는 환자들처럼 긴 의자에 앉아있었다. 양기호도 대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혹시 업무마감 시간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저어되어 기형적으로 팔이 긴 남자에게 물었다. 요즈음 의뢰인이 급증해서 스물네 시간 전일 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양기호는 술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얕은 잠에 몸을 맡겼다.
호명하는 소리에 양기호는 눈을 떴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팔이 긴 남자를 따라 건너편 칸막이로 갔다. 책상에는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서류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팔이 긴 남자가 눈짓으로 책상 앞에 앉으라고 일렀다. 양기호는 주춤주춤 책상 앞에 놓인 철제의자에 앉았다. 마주앉은 사내의 머리칼은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고 차려입은 정장도 깔끔했다. 사내는 작성하던 서류를 두 손으로 모아 세우고 가볍게 책상을 쳤다. 그러자 서류의 네 귀가 정확히 맞아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양기호를 바라보는 사내의 미간에 선홍색 반점이 보였다. 순간 양기호는 목덜미가 기중기의 걸쇠에 붙잡혀 들려지듯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붕 뜨더니 의자에서 분리되어 꼿꼿이 세워졌다. 책상에 앉은 사내의 눈이 커지며 상체가 흔들렸다. 양기호는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사내를 살폈다. 선홍색 반점은 사내의 미간에 단단히 붙어있었다. 분명한, 크기마저 똑같은 선홍색 반점이었다. 기도에 커다란 계란이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온몸이 반은 늘어날 정도로 심호흡을 크게 했다. 혼란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의뢰서를 면밀하게 살펴보던 사내는 미진한 구석이 있는지 한쪽 눈을 지그시 감으며 주의 깊게 다시 한번 더 훑어보았다.
“평소라면 일주일 정돈데 요즘은 고객이 많아서 보름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내가 물었다. 양기호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실종자의 사진을 안 주셨군요.”
양기호는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김 반장의 인사기록카드에 부착된 반명함판 사진을 아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다행히 사진은 말끔히 떼어졌다. 양기호가 사진을 사내에게 건넸다. 사진을 건네받은 사내가 눈썹의 숫자라도 세려는 듯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사진과 양기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내의 미간에 박힌 선홍색 반점이 더욱 붉어졌다.
“사진을 잘못 주신 것 같은데요!”
“네?”
“제가 원한 것은 실종자의 사진이지 의뢰인의 사진이 아닙니다.”
그가 사진을 되돌려주었다. 사진에는 매우 낯익은 얼굴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3년 · 하반기 제9호
이선규
서울 출생. 2012년 『시에티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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