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저쪽
(마가복음 4:35~41)
제가 처음으로 김포 공항에 나간 것은 우리 교회 선배가 외국 유학을 갈 때였습니다. 그분과 송별을 하고 비행기가 뜨는 것을 보면서 막연한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우리 선배님이 가는 곳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이곳보다는 좋은 곳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선배님은 지금 미국 연합감리교회 목사님으로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항해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점을 천국으로 비교한다면 바다 저쪽은 천국이 됩니다. 배는 수많은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천국 가는 수많은 배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한빛 호도 가고 있습니다. 바다 저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천국 가는 방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메가톤급 풍랑이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1:2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원어성경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항해와 같은 인생에는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시험이 있습니다. 전쟁, 경제, 질병, 가정의 파괴 등입니다. 이 풍랑과 시험을 해결할 방법을 오늘 본문은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풍랑을 넘어 저 바다 건너 편에 도착하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옆에 계신 예수님을 의식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배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예수님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도 예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이 사건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딱 두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마가복음 4:40에 보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예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면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무서움과 두려움 근심이 생깁니다. 또한 믿음이 없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모든 것이 다 무섭고 두렵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 바로 옆에 계십니다. 여러분을 바라보며 두려워 말라 내니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천국 가는 배입니다. 배에 있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이 풍랑의 바다를 건너 저 바다 건너 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4:39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라고 말씀합니다. 본래 꾸짖는다는 표현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야단치실 때 사용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람과 풍랑을 꾸짖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고통이 사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고통은 사탄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좌절시키고 낙망시키고 주저앉게 만드는 일의 배후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있어서 사탄은 우리 생각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그러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해서 꾸짖어야 합니다. ‘파도야 잠잠하라. 고통아 사라져라. 문제 극복될지어다’라고 꾸짖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4:41을 보십시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라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가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의 초기에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이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 신앙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신앙 문제에 접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된 신앙인이 되고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라는 질문에서 누구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진정한 확신과 고백이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아들입니다”라는 대답으로 천국 열쇠를 얻었습니다.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시카고 트리뷴 기자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윌로우 크릭 교회에 아내가 음악이 좋다하여 나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신앙생활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연구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의 인생은 변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또한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영화 '예수는 역사다'는 능력 있는 신입 기자이자 행복한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주인공 리 스트로벨이 시카고 트리뷴지에 입사하면서 시작합니다. 사실만을 믿는 리 스트로벨은 기자로서 승승장구하지만 한 식당에서 사탕이 기도에 막혀 죽을 뻔한 딸을 구해준 흑인 간호사의 친절함에 그의 아내가 끌려 교회에 가게 되면서 그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예수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아내가 근거 없는 미신에 빠졌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역사, 의학 등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예수의 존재가 허구임을 증명해내기로 한 리 스트로벨은 오히려 전문가들로부터 자신의 확신과 반대되는 증언들을 들으며, 자신의 무신론에 대한 신념이 흔들립니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결국 리 스트로벨은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사실(Fact)'에 굴복해 무신론을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고 결국 목회자의 길까지 걷습니다. 그는 새들백교회 등의 교육 목사를 거쳐 현재 텍사스의 우들랜즈교회에서 목회자로, 휴스턴 뱁티스트대학에서 기독교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포기 시리즈입니다. 스포는 스스로 포기, 마포는 마귀가 포기, 교포는 교회가 포기, 목포는 목사가 포기, 예포는 예수님이 포기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포기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박노해라는 시인이 무기수로 개인 독방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는 그 좁은 독방을 감은암(感恩蓭)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와 은총을 느끼는 암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추운 겨울 독방에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요한 기쁨인지 느끼며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 시인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서 둔감하고 안이하게 그저 흘러가는 생활을 가장 무서운 나쁜 습관으로 규정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그저 둔감하고 안이하게 흘러가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감옥의 독방에서도 매일매일 기쁨 속에 즐거워하며 지냅니다.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오로지 예수님만 붙들고 견뎠습니다. 한빛 교회 오래 다녀도 그저 둔감하고 안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한빛 교회라는 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어려운 인생길 예수님만 붙들고 풍랑 속에서도 천국만 바라보고 나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