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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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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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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0. 주일밤예배 설교문
본 문 : 요한복음 5 : 1 - 15
제 목 : 감사를 잃어버린 자들아!
찬 양 : 404, 405, 410, 427.
할렐루야!!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 ○○교회 성도들 심령마다 가정마다 충만 충만 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느새 6월도 한 중턱에 와 있습니다. 지난주간 6일에는 1년 24절후 중에 9번째인 망종(芒種)이 지났습니다.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망종은 보리의 환갑날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芒種이 지나면 보리나 밀의 뿌리가 마르기 시작하여 보리나 밀과 같은 하곡(夏穀)들의 추수기가 가까워 오는 것을 알려주는 절기입니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는 참으로 요즘 같은 시기가 가장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래서 보리가 누렇게 익을라치면 풋바심을 하여서 먹기도 하고 그때 생기는 보릿겨로 소위 개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도 심방을 가면 가끔씩 개떡을 쪄 내오는데 그건 개떡이 아니고 쌀떡입니다. 옛날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이야기하면 뭐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때의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고통당하던 것을 잊지 말라고 1년 중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맛없는 빵을 먹고 쓴 나물을 먹으면서 그때의 고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저녁에 나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고 할렐루야!! 감사를 외치는데 진정한 감사가 없는 것을 개탄하면서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 하면 돈과 연관을 시켜 생각을 합니다. 맞습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반드시 행함과 물질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믿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자들아!」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간 진정으로 한번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감사의 사람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불평의 사람인가?
나는 지금 입술로만 감사 감사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지금 형식적인 감사를 하고 있지나 않은가?
진정으로 감사할 때에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사랑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뜨거운 감사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병자는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었을 때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은 人山人海를 이루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많은 사람들이 행각에 모여 오르지 병 고치려는 소망 하나로 솔로몬이 지은 행각 다섯 채에 발 드려놓을 틈도 없이 온갖 병자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들은 유월절 절기가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병자들은 부정하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르지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사람들을 피하여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많은 병자들 중에 38년이나 된 병자를 보시고 그에게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묻기를 “네가 낫고자 하느냐?”(5:6) 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얼른 대답하기를 ‘예, 내가 낫기를 원합니다.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병자의 모습이 소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으시면 ‘아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질문에 자꾸만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내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네가 은혜 받고자 하느냐?” “네가 성령 받고자 하느냐?” 고 물으실 때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의 쓴잔을 마시겠습니다. 제가 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나의 사명과 나의 직분을 충성을 다하여 잘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여야 합니다.
‘왜 새벽기도를 못 나오십니까?, 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합니까?, 왜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까?’ 하고 물으면 왜 그리 핑계가 많습니까?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는 병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 이 병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먹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옷 입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병에서 낫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장 시급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부자 되는 것입니까? 출세하는 것입니까? 자식들이 승승장구 출세하기를 바라십니까?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내가 주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있지나 않은지? 등불의 기름이 닳아서 곧 등불이 꺼질 것도 모르고 태연하게 있지나 않은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외식과 타성에만 젖어서 하나님을 제쳐놓고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고 있지나 않은지?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 같다”(시49:20)고 하였습니다.
깨달으면 고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위험을 느끼게 되면 그곳을 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고 개탄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경고를 해도 깨닫지 못할 때는 매를 들어 때리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매가 점점 더 강해집니다.
2.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불평만을 늘어놓았습니다.
(1)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의 도움만을 받아온 사람은 남의 도움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예> 제가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면 구걸을 하는 맹인들이 지나갑니다. 그들의 구걸하는 바구니에 얼마의 돈을 넣어주면 반드시 그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인도의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서 적선을 하면 전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감사라는 단어가 아예 없습니다. 감사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생을 믿기 때문에 당신은 전생에 나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갚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도움만 받아온 사람들은 타성이 붙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도움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즉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2)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기 때문에 자기가 고침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베데스다 연못물이 동할 때에 자기가 가려고 하면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갔기 때문에 자기가 고칠 수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다섯 채나 되는 솔로몬의 행각에 정확한 숫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백 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먼저 가십시오.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고침 받아도 괜찮고 자기가 먼저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다른 병자들은 고치지 않아도 괜찮고 자기만 고쳐야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그 병자는 일구월심 병 낫기만을 기대하였는데 ‘아멘! 할렐루야!’ 는 못해도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일어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병자는 순간적으로 갈등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안식일 날이기 때문입니다.
병은 낫고 싶은데 일어나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게 되면 사형을 받든지(민15:32-36) 출교를 당하든지 하게 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형식이요 외식입니다. 낡아 빠져서 포도주는 다 새어 나가버린 빈 가죽부대만을 끌어않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이 병자와 같이 낡아빠진 빈 가죽부대만을 끓어않고 형식과 외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 바로서야 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생각지 마세요.
(마3:9)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할렐루야!!
그러나 이 병자는 우선 낫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안식일 법을 어기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드디어 걷게 되었습니다.
4. 유대인들이 병 고친 사람에게 안식일을 범했다고 문제를 삼습니다.
이 일을 행한 장본인이 누구냐고 추궁을 합니다.
본문10-12절 “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유대인들은 한 생명이 38년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고침 받은 기쁨보다는 자신들의 율법 조항을 더 우선시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책잡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5. 이제는 치료받은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책잡아 어떻게 하든지 멸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병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1) 그는 안식일을 범했다고 유대인들이 말하자 그 책임을 예수에게 전가시켰습니다.
본문 11절에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이 말은 나는 안식일이라서 일어날 생각도 갈 생각도 없었는데 나를 고쳐준 그 사람이 가라고 해서 갔다 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38년 동안 고통 중에 있던 자기를 고쳐준 생명의 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의 병을 고쳐준 평생의 은인을 그렇게 위험스러운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위를 버젓이 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는 병만 낳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도 예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교회 다니면 병 낫는다더라. 교회 다니면 복 받는다더라. 교회 다니면 만사가 형통한다더라’ 그래서 병이나 나으려고 교회 다니고, 호박 넝쿨에 호박이 주렁주렁 달리듯이 복이나 주렁주렁 받고, 자식들이 잘되고 그러기를 바라며 교회 다니다가 그것이 안 되면 ‘예수 믿어도 소용없더라’ 고 뛰쳐나갑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고 다닌 것 아닙니다. 예수를 이용하려고 사기 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기꾼 되지 마십시오 그러려면 아예 일찌감치 그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그는 예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때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합니다.
본문 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더 심한 것” 즉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고 한 그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닌 자기중심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병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아왔습니다.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아-멘!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욕심, 자기중심적으로 살면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 사람은 회개치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하였습니다.
본문 15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예수를 고발하지 않으면 자기가 안식일을 범한 죄로 돌아 맞아 죽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는 죄를 범치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였지만 오히려 유대인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고발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입니까? 자신만을 위해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은인도 고발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배신한 적 없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3)고 하셨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의 말씀을 듣고 그놈이 그럴 수가 있느냐? 고 분개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그러나 분개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도 또한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고 할 때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자들아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고 주님 뜻대로 사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게 믿고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다같이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복음 송가를 부르겠습니다.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