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오랫동안 타고 다닌 사람치고
한 두번 사고없이 지낸 사람이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
신나게 운전을 하다가
분명히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야하는데
그럴러면 속도를 낮춰야하는데...
그 정도 속도를 낮추면 충분히
돌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좌회전을 했는데
얼어붙은 땅은 내 마음대로
차를 안전하게 데려주지 않고
그만 미끄러져서
옆에 전봇대에 부닥쳐
그날 내 차를 사망케 했다.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었는데
그때는 빨리가고 싶어하는 욕심에 눈이 멀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고가 난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책했다.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없었어도 될 어려움을 자처했구나....
자동차 운전 뿐이 아니라
인생의 운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조금만 더 기도했더라면
없었어도 될 어려움을 자처했구나....
우리는 늘 본능대로, 감각대로 살아가는 일에
자동화 되어져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생각없이 반응해지는 것이 익숙해져있다.
이제
자극과 반응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보자.
삶을 변화시킬 공간
그 공간에 S,T,C라는 공법을 삽입해보자.
Stop, Think, Choose
멈추라. 생각하라. 선택하라.
Stop 멈추라: 충동대로 살면 반드시 노예가 된다. 환경의 노예, 상황의 노예, 감정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기분대로, 감정대로, 과거의 습관대로 살아왔던 삶을 멈추어보자.
Think 생각하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해보라. 내가 이렇게 선택하면 어떤 결과를 거둘지, 저렇게 선택하면 어떤 결과를 거둘지, 그 다양한 일들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어떻게 하실까? 주님의 뜻,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하늘이 지혜를 구하자.
Choose 선택하라: 마지막으로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선택하자. 하수가 아닌 최상의 답을 선택하자. 선택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 과거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자유의 의지의 활용, 그것이야 말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는 하늘에, 달에, 별에 있지 않다. 사주팔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 그것은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력, 자신의 충동에 단호하게 손을 내 밀수 있는 자재력, 옳은 것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는 의지력이다.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다니지만, 그래도 사고가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기 때문에, 신호등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빨간불이 없으면 엄청 빨리갈 것만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세상에 빨간신호등이 없어진다면 몇초안에 엄청난 혼란을 격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의 신호등, 빨간불은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결고 그것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욱 소중한 나를 지키는 축복이 된다고 말해준다.
내 마음의 신호등, 황색불은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준다.
내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 시작이 아닌 결과도 생각해보라고, 최선의 방안도 찾아보라고 생각을 자극한다.
내 마음의 신호등, 파란불은 가장 좋은 것
가장 옳은 것, 가장 덕스러운 것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우리는 얼마든지 건강할 수 있고,
우리는 얼마든지 안전할 수 있다.
때로 지켜지지 않은 한번의 일탈이, 평생 지켜온 행복을 망가트리듯, 때로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안겨줄수도 있다. 내 마음의 신호등, 소중히 지켜야 함을 다짐해 본다.
"우선멈춤“이란 귀한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우선멈춤
예고 없이 찾아온 시련의 밤은, 우리에게 우선멈춤입니다.
우린 종종 잘 나가던 때를 못 견디게 그리워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그때 멈추어 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멈춤의 시간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정비의 시간입니다.
생각을 정비하고, 영혼을 돌아보고, 건강을 생각하고, 주변을 살피게 하고, 하나님을 묵상하게 합니다.
자동차는 달려야 하지만 쉼 없이 달리게 되면, 엔진 과열로 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는 곳곳에 휴게소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곳에서는 우선 멈추어야 합니다.
더 멀리 가기 위하여 잠깐 쉬어야 합니다.
더 오래 달리기를 위하여 이것 저것 점검하고, 떨어진 기름을 보충해야합니다.
이러므로 고난으로 우리를 우선 멈추게
하심은,
영혼의 정비와 은혜의 재충전을 위하여 피할수 없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막히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을 죄들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빼앗기지 않았다면 감사치 못할 제목이 너무 많습니다.
잃지 않았다면 포기하지 못할 것들이 잃은 것보다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게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면, 이토록 사무치게 주를 의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어리석어서 건강을 잃은 후에야 지난날의 건강함이 주님의 축복이었음을 알고,
사람을 잃은 후에야 그때의 사람이 주님의 사람이었음을 알고
시간을 잃은 후에야 시간이 생명임을 알고
믿음을 잃은 후에야 믿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임을 알고
기도가 막힌 후에야 기도의 열림이 놀라운 은혜였음을 알고
은혜가 바닥난 후에야 그 은혜가 주께로부터 왔음을 알고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이 하나도없음을 당한 후에야
나의 자랑이 오직 주님이었음을 알고
처절한 실패 후에야 지난날의 성공이
주님의 작품이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달림보다 멈춤이 은혜입니다.
형통보다 불통이 축복일 수 있습니다.
얻음보다 잃음이 자유입니다.
붙잡음보다 포기가 회복입니다.
건강보다 아픔이 더 큰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질병에 시달릴 때 그 질병은 나의 영혼을 치료합니다.
내가 사람에게 버림받을 때, 버림받은 상처는 내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내가 물질로 궁핍할 때, 그 가난함은 나의 영혼을 부요케 만듭니다.
내가 외로워 눈물 흘릴 때, 그 외로움은 나의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다 줍니다.
내가 실패의 밤을 지날 때, 그 실패는 나를 믿음의 성공자로 바꾸어 줍니다.
많이 힘드신가요? 우선 멈추어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십시오.
많이 아프신가요? 우선 멈추어 더 아픈 사람을 생각하십시오.자~
오늘은 우선 멈춘 김에 하나님만 생각하십시오.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더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더 외로운 사람들을 생각하시오. 더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더 큰 은혜를 받아 덜 힘들게 살아가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나 때문에 억울하게 살찢고 피 흘리신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의 고통 앞에만 서면 우리의 불평과 힘듦은 오히려 사치입니다.
나도 내가 싫은데 누구에게 인정과 대우를 기대합니까? 나도 나를 믿을 수 없는데, 누가 나를 믿어줄까요? 오히려 하나님의 알아주심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믿어 주심으로 만족하십시오.
속상하면 믿음으로 속 썩으십시오. 힘들면 믿음으로 힘들어지기 바랍니다. 지쳤으면 믿음으로 푹 쉬십시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십시오.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받아들이십시오. 어찌할 수 없는 역경이라면 차라리 그 역경에 지치게 하십시오.
오늘, 지금 필요한, 일용할 은혜와새 힘을 구하십시오. 그 은혜가 족하며 그 은혜면 지금의 시련을 이기는 일에 쓰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은혜입니다. 나만 그런 것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먹만한 심장속에 바다만한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만한 상처 속에 하늘보다 높고 크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들, 저런들 다 괜찮아집니다. 견딜 만합니다. 살만합니다. 오히려 사는 것이 황홀할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주님보다 더 큰 문제의 바리케이트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며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우선멈춤은 축복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우리나라 고사성어에 호사다마(好事多魔), 또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고, 궂은일을 당하였을 때 그것을 잘 처리하면 도리어 그것이 복이 된다는 말로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전환점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KT1qs9hWgTM
https://youtu.be/C8LR3klfjP4
https://youtu.be/9XfqFj2zNdU
https://youtu.be/CA_c-Lk4UUg?list=PLghoOxePMNT4yEqJmIHZV9Czg0lrvQ-3-
https://youtu.be/KKDSpp0dVw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