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 박명증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속에는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책이 들어 있다면 학생이거나 공부하는 사람이다. 서류 뭉치가 가득하다면 회사원쯤일 것이다. 가끔씩은 자장면이나 치킨 피자가 배달의 기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공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출장 수리공이 주인이다. 무엇을 담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담는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처조카가 장가를 간다.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천안과 아산의 경계지역에 있는 예식장이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그날을 기대한다. 명품 가방을 들고 갈 좋은 기회가 왔다고 하여 얼마짜리냐고 물었다. 백몇십만 원이라 했다. '손가방 하나에….'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몇백만 원, 아니 몇천만 원짜리 명품 가방이 널렸다는 여자의 말에 가방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십 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몇만 원짜리 가방도 하나 사주지 못한 처지다. 겨우 백만 원이 좀 넘는 것이라면 명품에도 못 미치는 준명품 정도라고 여기며 속을 삭였다. 딸네집의 청소며 빨래, 손주 돌보기 등을 해주며 고생한 보답으로 사위로부터 득템한 것이었다. 특별한 나들이를 하거나 계모임을 할 때 지니기 위해 아껴두었던 가방이었다.
평소에는 편하게 들고 다니는 가방이 몇 개가 있다. 그 가방 속에는 지갑과 전화기와 손수건 그리고 간단한 화장품 등이 내용물일 것이다. 가방이라면 이런 소지품을 담기에 편리하면 될 것인데 여자들은 왜 굳이 비싼 가방이 필요한 것일까.
여름이면 전화기를 넣어둘 곳이 마땅찮다. 들고 다니기도 거추장스럽고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번잡스럽다. 조그만 손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는 사람도 보이고, 어깨걸이가 있는 가방에 넣어 지갑과 함께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들고 다니든 어깨에 메고 다니든 나에게는 마뜩하지 않다.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조끼를 입고 다닌다. 셔츠 위에 걸치는 조끼는 남자에겐 가방과 같다. 옷의 역할이 아니다. 의복의 유용한 변신이다. 옛날 선비들의 옷소매는 가방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가방 속에는 만화가 가득 들어 있던 때가 있었다. 공부하기보다는 만화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요즘도 인터넷을 통한 만화가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유명한 만화가도 소설가나 시인 못지않게 많지만 나는 소질을 발견하지 못했다. 보는 것만으로 그만이었다. 그림이나 디자인에 소질이 있어 만화 공부를 하고 만화 그리기를 생업으로 했다면 어린 시절 나의 가방은 그 소임을 다했을 것이다.
대학 다닐 때의 가방 속에는 항상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한 시간쯤의 기차통학을 하며 손바닥만 한 문고판 소설을 읽었다. 소설가가 되어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던 때여서 대학 신문에 습작 단편을 연재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지만 괜한 객기였고 기껏 학예지에 실릴 정도였다. 그 가방 속에는 소망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한 때의 바람이었다.
악어가죽, 돼지가죽, 소가죽 등으로 가방을 만든다고 한다. 인간의 몸도 그 속의 내용물은 하나의 가죽으로 둘러싸인 것이라는 표현을 어느 시인의 글에서 읽었던 것 같다. 무엇을 담는 것이 가방의 기본역할이라면 나의 살껍질도 많은 것을 담는다. 먹고 살기 위한 음식들. 밥과 반찬, 술과 안주, 어떤 때는 라면과 빵도 가방을 채운다. 치킨과 피자가 내용물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똥으로 변하면서 배설되고 만다. 속을 비운다. 속에 많은 것들이 차 있을 때는 욕심도 근심도 걱정도 함께 한다. 밥처럼 온갖 걱정도 비우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래서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내가 나의 퇴임 기념으로 등짐가방을 하나 선물했다. 조그마하고 가벼운 가방이었다. 출근하는 대신에 가까이 있는 산에 산책도 하고 무료함도 달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평생 가장으로서의 짐을 이제는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지내라는 등짐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고운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도 함께 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행을 한다. 등짐가방 속에는 계곡 물에 세수하고 발 씻을 수건 한 장, 매실로 담근 소주 한 병, 안주로 어포 조금과 견과류 한 통도 담는다. 오이나 참외 사과 바나나 등도 함께 할 때가 있다. 두어 시간 산보를 하고 풍광 좋은 정자에 앉아 가방 속에 든 것들을 나눠 먹는다. 각자의 가방 속에는 비슷한 내용물들이 들어 있다. 가끔은 삶은 계란이나 계란말이도 등장하고 한치나 오징어회도 모습을 나타낸다.
등짐가방 속의 내용물이 비워지고 그 자리에는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공기, 동행들의 따스한 정다움을 담는다. 머릿속에는 상쾌함이, 마음속에는 깨달음이 차오른다.
예전에 내가 매었던 마음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생각한다. 신형의 밥솥, 더 큰 텔레비전, 더 많은 용량의 냉장고처럼 나도 뒤져선 안 된다는 물질을 향한 욕심이 있었다. 남보다 앞서고 싶은 명예에 대한 집착, 유명 브랜드의 양복으로 외모를 꾸미려던 허영, 타인의 세속적 출세를 부러워하는 질투심 등이 가방에 가득 했던 건 아닌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온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기대가 이루어진 것은 없다. 끝없는 욕심으로 괴로워하는 나도 별스런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산행을 통해 자연에서 배우고, 동행들과 함께 하면서 비움과 나눔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공부한다. 나의 등짐가방엔 세속의 내용물 대신에 사랑과 배품과 배려와 함께, 한 평생 짊어지고 온 가장으로서의 짐을 내려놓으라는 아내의 속뜻을 가득 채워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아내의 가방 속에는 축의금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를 위한 포근한 정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준명품이 명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