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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흔적들 / Anything That's Part Of You"
- 엘비스 프레슬리 / Elvis Presley
I memorize the note you sent 그대가 보낸 편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요
Go all the places that we went 우리가 함께 갔던 모든 곳을
I seem to search the whole day through 온종일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그대의 흔적 모든 것들을 말이에요
I kept a ribbon from your hair 난 그대 머리에 꽂았던 리본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지요
A breath of perfume lingers there 그대의 향기가 거기에서 살아 숨쉬고 있네요
It helps to cheer me when I'm blue 내가 우울할 때는 용기를 샘솟게 하지요
Anthing that's part of you 그대의 흔적 모든 것들이 말이에요
Oh, how it hurts to miss you so 오 그대를 그리워 하며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When I know you don't love me anymore 더 이상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는
To go on needing you 계속 그대를 원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Knowing you don't need me 그대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도
No reason left for me to live 내겐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네요
What can I take, what can I give 내가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내가 무엇을 줄 수 있겠어요
When I'd give all someone new 모든 걸 새로운 사람 누군가에게 주려고 할 때
For anything tha's part of you 그대의 흔적 모든 것들을 말이에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aron Plesley, 1935-1977)'는 1935년 미국 미시시피에서 태어났고 20세기 미국 전역에 활동한 가수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가수 중 한 사람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8세 때 노래 장기대회에 참가하는 등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교회에서 찬송가와 가스펠(Gospel)음악에 심취하기도 하였으며 블루스와 컨트리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특히 그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고 그의 모친 생일 선물로 자신의 노래를 선물하기 위해 선 레코드(Sun Record)사에 찾아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미국의 유명 보컬 그룹인 '잉크 스팟(The Ink Spots)'의 '나의 행복이에요(My Happiness)'와 그 당시 스탠다드 넘버인 '그대 마음의 고통이 시작될 때에요(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을 녹음하게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특출한 가창 능력을 인정하게 된 선 레코드사의 프로듀서 겸 사장인 '샘 필립스(Sam Phillips, 1923-2003)'의 후원에 힘입어 그는 가수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에 첫 발을 들여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인으로 하여금 흑인의 노래를 부르게 하여 당시의 음악계에 일대 변혁을 시도한 샘 필립스의 의도에 따라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의 첫 싱글 '괜찮아요, 엄마(That's All Right , Mama)'와 '블루 문 켄터키(Blue Moon Of Kenturcky)'가 출시되었습니다. 이 음악은 컨트리 곡이면서 R&B의 느낌을 담고 있었고 예상대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라이브 무대에서 이 곡에 파워와 속도감을 조금씩 붙여가며 그의 특유의 퍼포먼스(Performance)와 파격적이고 섹시한 무대 공연 활동을 펼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5년 메이저 레이블인 RCA 레코드(RCA Records)사로 옮겼습니다. 그는 1956년에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을 발표하였고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빅 히트 시켰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당시 '빌 헤일리(Bill Haley, 1925-1981)', '척 베리(Chuck Berry, 1926-)' 등의 흑인 가수들에 의해 형식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로큰롤(Rock and Roll) 음악을 대성시킨 가수로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의 곡이 8주 연속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공영 TV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고 그는 TV 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인기를 석권하였습니다.
이어서 싱글 '난 그대를 원해요, 그대가 필요해요, 그대를 사랑해요(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로 다시 빌보드 차트 정상에 등극한 그는 더블 싱글 앨범 '하운드 독 / 사냥개(Hound Dog)'와 '고통을 주지 마세요(Don't Be Cruel)'로 11주 동안 빌보드 차트 정상의 고지를 지켰었던 것입니다. 그는 R&B에서 로큰롤 음악의 벽을 뛰어 넘어섰고 명실공히 로큰롤의 제왕(The King Of Rock and Roll)으로써 음악계를 평정시켰으며 1950년대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그는 1960년대의 '비틀스(Beatles)'를 비롯한 수많은 록 스타를 탄생 시키게 한 분수령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인기는 가히 핵폭탄 그 자체였으며 비틀스 매니아(Beatles Mania) 이전에 이미 엘비스 매니아(Elvis Mania)가 지구촌 곳곳에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956년에 영화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1956)'로 박스 오피스 기록을 세운 그는 O.S.T. 곡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5주 연속 빌보드 차트 정상에 등극시켰던 것입니다. 1957년에는 영화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 1957)'에 출연하여 O.S.T. 곡 '제일하우스 록 / 감옥의 록(Jailhouse)'을 불러 크게 히트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 '러빙 유(Loving You, 1957)', 영화 '테디 베어(Teddy Bear, 1957)', 영화 '킹 크레올(King Creole, 1958)' 등에도 출연하였습니다. 1958년에는 미육군에 입영하였으며 1958년 주서독 미육군 제1기갑사단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그의 군 복무기간 동안에 대부분 상영되었으며 이는 그가 군 입대 전 히트했던 음악들과 함께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의 그의 활동 공백 기간을 매꿔주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 복무를 마친 후인 1960년 싱글 '그대에게 반했어요(Stuck On You)'와 이탈리아 가곡 '오 나의 태양(O Sole Mio)'에 근거하여 만든 싱글 '지금 아니면 절대 안 돼요(It's Now Or Never)'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어서 싱글 '오늘밤 그대는 외로운가요(Are You Lonesome Tonight)', 1961년에 싱글 '나무 심장(Wooden Heart)', '서렌다(Surrender)', 1962년에 지금 흐르고 있는 '그대의 흔적들(Anything That's Part Of You)', '키스 미 퀵(Kiss Me Quick)',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어요(Can't Help Falling In Love)' 등의 주옥 같은 곡들을 연달아 히트시켰습니다.
'그대의 흔적들(Anything That's Part Of You)'은 1960년대 한국의 스탠다드 팝 가수 '차중락(車重樂, 1941-1968)'에 의해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번안되어 불려졌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명곡이 되었습니다. 차중락은 1963년 한국 록 그룹의 선구자였던 키보이스 그룹의 리드 보컬로 활동하였습니다. 1966년에 그가 솔로로 전향하면서 신세기 레코드사 강찬호의 가사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대의 흔적들(Anything That's Part Of You)'의 멜로디에 붙여 불렀던 것입니다. 실연한 남자 이미지의 내용이 담긴 노래로 특히 여성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명곡이 되었습니다. 코리안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던 그는 1968년 10월 갑작스런 뇌막염의 악화로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국내 음악계에서는 낙엽따라 떠난 가수 차중락을 기리기 위해 가장 뛰어난 가수에게 수여되는 낙엽상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9년 제1회 낙엽상에 가수 '나훈아(최홍기, 1947-)'와 가수 이영숙이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블루 하와이(Blue Hawaii, 1959)', 영화 '플레이밍 스타(Flaming Star, 1960)', 영화 '와일드 인 더 컨트리(Wild In The Country, 1961)', 뮤지컬 영화 '팔로우 댓 드림(Follow That Dream, 1962)' 등 수많은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이들 영화의 O.S.T. 곡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리듬 기타를 연주하였고 20여 년 동안 30편이 넘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로큰롤의 제왕으로 군림하였으며 그의 음악은 미국은 물론 영국을 시작으로 지구촌 곳곳에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던 것입니다.
1965년 싱글 '예배당에서 우는 걸 보셨지요(Crying In The Chapel)'를 출시한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의 인기가 다소 침체 국면에 접어 들었고 그의 무분별한 영화 출연도 비평가들이 입방아를 찧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1968년 12월 미국 NBC TV 특별프로그램 '엘비스 텔레비전 특집(The Elvis TV Special)'의 출연을 통해서 다시 부활하였으며 로큰롤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가죽 재킷을 입고 어쿠스틱한 기타를 들고 나와서 1950년대를 주름 잡았던 그의 히트곡들을 불렀고 자신의 무분별한 영화 출연과 현란한 몸동작들에 대해서 솔직한 심경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렁찬 박수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1969년 발표한 싱글 '마음속에 의심을(Suspicious Minds)', '꿈꿀 수 있다면(If I Can Dream)', '새 출발을 할 거예요(I'm Movin' On)'를 히트 시켰고 1970년 싱글 '그대에 대한 놀라움이에요(The Wonder Of You)' 1972년 싱글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The Impossible Dream)' 1973년에 '난 너무 외로워서 울고 싶어요(I'm So Lonesome I Could Cry)'와 '다시 그대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I'll Take You Home Again Kathleen)' 등의 곡을 발표하였고 역시 크게 히트 시켰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을 주 장르로 하여 불렀던 전설적인 미국의 톱 스타였습니다. 로큰롤, 가스펠, 록, 펑크, 발라드, 팝 등 여러 장르에서 정상의 고지를 굳건하게 고수하였으며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려졌습니다. 세계 음반 시장에서 비틀스와 함께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아티스트로 기록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세계 음반 시장에서 추정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앨범 판매고는 무려 10억장 이상이 훨씬 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세계적인 로큰롤의 제왕으로 우뚝 서있는 것입니다.
1977년 8월 16일 테네시 주 멤피스 주택가의 높은 하늘에는 낙성(落星)하며 발산하는 금빛에 놀라 울부짖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멤피스에 있는 그의 자택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42세의 한창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향기 가득한 불멸의 많은 흔적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첫댓글 어젠 '러브인 K' 첫번 번개팅, 3차까지 인사동을 휩쓸고 왔더니 이 시간까지 비몽사몽~~
오늘은 '서울문학축전'개막식이라 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갈지.
어젠 모임은 러브인 K였지만 김기원 선생님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찾는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장가계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음악은 잠가놓으셨네요?
풀어 주시면 한가한 시간에 '엘비스프리슬리'와 한 번 놀아야겠지요^^
김문선 선생님 감사합니다. 잠가놓지 않았습니다만 음원에 더블 클릭 부탁드립니다. 늘 건승과 행운이 곁에 머무시면서 깊어가는 이 가을 최고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