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蟋蟀)
시경(詩經) 중에 민요 부분을 다룬 것이 국풍(國風)이다.
그 국풍 중에 하나인 빈풍(豳風)에 “시월에는 귀뚜라미가 내 침상 밑으로 들어온다.”고 적고 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서러운 삶의 애상(哀想)을 노래한 것이다.
특히 귀뚜라미 울음에 대한 정서는 여인이 겪는 삶의 외움이 담겨 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되면 집안으로 깃들여 운다.
주로 집안에 머문다하여 여자를 속칭 ‘계집’이라 한다.
한과 서러움과 외로움이 차 있는 ‘계집’의 소리 못내는 울음을 귀뚜라미가 집안으로 깃들어 대신 울어 준다는 것이다.
귀뚜라미의 수명은 한 계절이다.
하찮은 삶을 살다가는 귀뚜라미는 가슴은 시월 달빛에 그을러 검게 타들어 간다.
가슴에 찬 서러움을 가을 밤 내 토하다가 생을 마치게 된다.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에 고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달이 뜨지 않은 가을밤과 같다.
달빛 없는 가을의 암야는 시려운 혼돈과 불안을 느끼게 한다.
귀뚜라미 울음으로 상징되는 여인의 고독은 열 달 어머니 뱃속에서 누구나 배우게 된다.
그래서 가을에는 남녀를 물론 산천의 금수초목을 불문하고 고독에 빠진다.
고독은 정신적인 병리 현상도 감정의 공허도 아니다.
고독은 ‘존재’를 향한 부르짖음이다.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존재이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이다.
아니 하느님을 갈망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이다.
어찌 인간만이 하느님을 그리워하겠는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금수초목들도 하느님 그리워 애달파 한다.
서풍에 머리를 흔드는 억새풀꽃과 갈대꽃을 보라!
얼마나 하늘을 향해 하느님을 그리워했기에 그렇게도 머리가 다 세어버렸단 말인가!
사람은 자신의 고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성숙 여부가 갈릴 것이다.
한평생 찾아드는 고독의 길이는 땅에서 하늘을 잇고도 남는다.
그러나 생애 동안 그 고독을 대부분 허비해버린다.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법칙!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영혼의 몸부림과 그 몸부림을 하느님이 아닌 것으로 달래려는 유혹이다.
어미 뱃속에서 지음을 받는 순간 인간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고독의 낙인이 찍힌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알아보는 ‘낙인’이다.
하느님을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영혼의 고독과
그 영혼을 향해 팔을 벌리시는 하느님의 고독이
달빛 가득찬 가을 밤하늘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찌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고독과 그리움에 대한 애타는 연민은 어찌 가을밤 귀뚜리미의 울음소리로 만 그칠 것인가?
주여, 영혼에 목말라하는 불쌍한 인간들의 몸부림을 부디 굽어 살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