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한 수] 신혼에 취한 사내
옥처럼 맑고 고운 살결.
낭랑한 목소리로 부르는 ‘도금호(倒金壺)’ 노랫가락.
버들처럼 늘씬한 자태야 익히 보았지만, 어찌 그대와 같으리오.
이월 초 두구(豆蔻) 가지 끝에 막 피어난 꽃이 아니던가.
젊은 시절은 잠깐이오.
이 좋은 때, 취할 틈을 얻었구나.
비단 장막은 은빛 촛불 뒤로 드리워졌으니 한껏 즐기리라.
평생의 늠름한 기개마저 풀어놓으리라.
寒玉細凝膚(한옥세응부).
清歌一曲倒金壺(청가일곡도금호).
冶葉倡條遍相識, 爭如(야엽창조편상식, 쟁여).
豆蔻花梢二月初(두구화초이월초).
年少即須臾(연소즉수유).
芳時偷得醉工夫(방시투득취공부).
羅帳細垂銀燭背, 歡娛(라장세수은촉배, 환오).
豁得平生俊氣無(활득평생준기무).
―‘남향자·집구(南鄕子·集句)’ 소식(蘇軾·1037∼1101)
*豆蔻(두구):두구화(豆蔻花)는 잎사귀 속에서 봉오리가 피어나기 때문에 함태화(含胎花)라고 하며 그 생김새가 여성을 닮았다고 하여 처녀에 비유함.
*寒玉(한옥) : 맑고 차가운 구슬, 고결한 인격, 깨끗하고 차가운 물건.
*清歌(청가) : 맑은 노랫소리,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 무반주 노래.
*金壺(금호) : 금이나 은으로 만든 술병이나 술 단지.
*芳時(방시) : 아름다운 계절.
*歡娛(환오) : 기뻐하고 즐거워함.
*集句(집구) : 옛사람들의 글귀를 모아서 새로운 시를 만들다.
대문호도 신혼 앞에서는 별수 없다. 이 노래에는 훗날의 호방한 동파(東坡)보다 아내에게 푹 빠진 젊은 소식이 먼저 보인다. 시인은 첫 아내 왕불(王弗)의 용모와 재능을 그리며 신혼의 들뜬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맑은 노랫소리와 고운 자태, 꽃다운 생기를 차례로 펼쳐 아내의 매력을 눈앞에 살려 낸다. 젊음도, 좋은 때도 잠깐이니 눈앞의 기쁨을 놓치지 말자는 달뜬 마음이 역력하다. 근엄한 도학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 밤 만큼은 큰 뜻도 잠시 미뤄 두자는 고백이다. ‘늠름한 기개마저 풀어놓으리라’는 과장은 신혼의 환희와 소식 특유의 활달한 성정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집구(集句)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 백거이(白居易)와 두목(杜牧) 등 이름난 시인들의 구절을 엮었지만, 그 솜씨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남의 재료로 자기만의 맛을 내는 솜씨 좋은 요리사와도 같다. 그러나 작품의 묘미는 기교에만 있지 않다. 남의 문장을 빌렸으되, 사랑만큼은 온전히 제 것이다. ‘남향자(南鄕子)’는 곡조명이다.
✵소식(蘇軾, 1037~1101) :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화가, 시인, 문장가, 학자, 정치가로 자는 자첨子瞻, 화중和仲을 썼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소동파蘇東坡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사람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에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진사가 된 뒤 벼슬을 살다가 중앙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변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詩·사詞·문文·서書·화畵에 두루 능하여 중국 역사상 귀한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구양수歐陽脩의 뒤를 이어 북송의 문단을 이끌었고, 부친 소순蘇洵 및 아우 소철과 함께 삼부자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가문의 문풍을 날렸다. 사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그림에서도 황정견黃庭堅,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작품집으로 《동파칠집東坡七集》과 《동파악부東坡樂府》 등을 남겼고, 《동파전집東坡全集》 150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6년 08월 07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