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1880년대에 유럽에서 처음 생산되었지만 1920년대 중반에는 전 세계 자동차의 80퍼센트가 미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44명당 1대의 자동차가 보급되어 있던 영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5.3명당 1대의 자동차가 보급되어 있을 정도로 자동차산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은 '헨리 포드(Henry Ford)'입니다. 그가 1908년에 T모델(Model T)를 출시한 것은 자동차산업의 역사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포드는 이동식 조립 라인(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자동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습니다. 1908년 850달러에 달하던 자동차 가격은 1925년에는 290달러로 하락했고 그해 포드사의 판매량은 1천만 대를 돌파했습니다.
포드사는 생산공정의 개선을 통해 자동차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지만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해 공장 노동자들의 이탈이 속출했습니다. 포드사는 1914년까지 연간 1만 5,000명의 노동자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5만 명을 신규로 채용해야 했습니다.
이동식 조립 라인에서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이직을 방지하기 위해 포드는 일당을 당시 임금의 2배 수준인 5달러로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조립 라인 방식의 생산공정과 일당 5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마법과도 같은 경영기법으로 헨리 포드는 일약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1920년대에 소련 정책 당국은 포드의 경영기법을 면밀히 연구했다고 합니다.
헨리 포드의 경영 전략의 요체는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해서 가능한 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드는 한 종류의 자동차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되,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과 재료는 최상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어서 노동자들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포드는 중앙집중형 경영관리 방식을 고수했고 자신이 만든 조립공장의 작업 환경이 직원들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왜 노동자들이 포드식 가치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회사의 행태를 거부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알프레드 슬론(Alfred P. Sloan)'은 1895년 MIT를 졸업하고 직원이 25명에 불과한 하얏트 롤러 베어링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얏트사는 1916년 무렵에 직원 4,000명의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고 회사 지분의 대부분을 슬론과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2년 뒤 하얏트사는 GM에 합병되었고 슬론은 GM의 부사장 겸 이사회 집행위원회의 일원이 됩니다.
슬론은 GM회장의 비서실장을 거쳐 1923년에 GM그룹 회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GM을 이끌게 된 슬론은 구매계층을 소득 구간별로 나누고 그에 맞춰 차량 모델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고객의 소득 수준에 따라 캐딜락,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을 순차적으로 배치했습니다.
헨리 포드가 한 가지 차종에만 집중해서 색상을 검정색 하나로 통일하고 사양도 동일하게 맞춘 다음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었다면 GM은 '모든 계층의 사람과 모든 용도를 타깃으로 하는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헨리 포드의 전략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지 않았고 이에 따라 포드사의 시장점유율이 1921년 56퍼센트에서 1937년에 21퍼센트로 내려앉았습니다. 이에 반해 GM의 시장점유율은 동 기간에 13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급상승했습니다.
포드사는 새로운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데다 회사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정보 공유와 책임 소재의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1933년, 70세가 된 헨리 포드는 이제 완고하고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최고경영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알프레드 슬론은 1920년대의 새로운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분권화된 다중부서 구조의 경영관리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1920년대 이전에는 구매, 제조, 판매 등의 세 가지 기능을 중심으로 기업 조직을 구성했기 때문에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임원들은 판매하는 제품과 상관없이 전체 경영 실적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슬론은 다양성을 원하는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여 제품 라인을 다변화했고 이에 맞추어 제품별 사업 부문이 각자가 맡은 구매, 제조, 판매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경영 전략이지만 1920년대만 해도 이는 매우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개념이었습니다. 다중부서 경영관리 개념이 지닌 장점은 거대한 기업을 작은 규모의 의사결정 단위로 나누어서 유기적이고 효과적인 집합체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론은 사업 부문 간의 협업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고 각 부문의 고위 경영진이 이 위원회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 때문에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고 분권형 의사결정체계가 조율된 통제방식과 함께 조화롭게 운용될 수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포드사와 GM이 벌인 자동차 전쟁은 의사결정 방식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드의 사례처럼 조직의 최상위 결정권자가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면 조직 규모가 비대해지고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결정권을 하위 조직으로 전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사결정권을 아래로만 위임하면 조직이 방향을 잃고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분권형 시스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며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오늘날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알프레드 슬론이 이러한 숙제에 내놓은 해답이 바로 다중부서 구조의 분권형 경영조직입니다.
헨리 포드와 알프레드 슬론은 자동차 전쟁을 통해 미국을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국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에 현대적 경영기법을 확산시켰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변화된 환경에서 더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무장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게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긴 세월에 걸친 자동차 전쟁은 그야말로 시장 변화의 가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홍진기 연구원장이 쓴 글 잘보았습니다.
1920-30년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상상도못할 시기..당시일본은 국민1인당자전거 1대 지만 우리나라는 지게가1대 였는데 80년만에 자동차 4대 강국이 되는 기술력.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