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번째 편지 -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는 일
지난주는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월요편지를 쉬었습니다.
휴가 기간 동안에 일본에 있는 한국인이 인수한 어느 골프장에 가서 며칠 쉬다가 왔습니다.
거기서 겪은 일들입니다.
<장면 1>
골프 라운딩을 하는데 뒤 팀이 시끌벅적합니다. 누군가 샷을 잘한 모양입니다.
소프라노 톤의 여성이 "굿 샷"을 외칩니다. 다들 깔깔 웃습니다.
처음에는 휴가차 외국에서 라운딩을 하니 기분이 들떠 그러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매 홀 이어졌습니다. 도저히 공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골프장이 떠나가라 매번 고함을 쳤습니다. 통상의 대화도 큰소리로 하니 모든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남녀가 섞여서 공을 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해 주려니 생각하고 또 몇 홀이 지나갔습니다.
전반 9홀을 다 칠 무렵까지 이 현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플레이에 방해가 됩니다."
<장면 2>
골프 라운딩이 끝나고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목욕탕 입구에는 한국어로 <세탁 금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누가 목욕탕에서 세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세탁 금지>라는 표지판이 있는데도 빨래를 열심히 했어요.
일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물속에서 물장구를 막 치더라고요. 마치 수영장처럼요.
더 심각한 것은 탕 안에서 얼굴에 화장을 지우는 크림을 바르고 있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탕으로 화장품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장면 3>
목욕이 끝나고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약 300m 떨어진 호텔로 이동해 주기 위한 버스였습니다.
여러 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팀이 소파에 앉아 떠들고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들은 소파 탁자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듯이 앉아 있었습니다.
꼭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 다시 호텔 로비에 잠시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그 일행들은 또 같은 모습으로 호텔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습관은 어디를 가나 같은 모양입니다.
<장면 4>
몇몇 거슬리는 장면은 있었지만 기분 좋게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골프장에서 공항까지 약 1시간 정도 대형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모두 피곤하여 졸 태세입니다.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다녀온 한국 골프장과 그 골프장의 비용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음이 조금 거슬렸지만 저는 워낙 피곤하여 곧 잠이 들었습니다.
30분쯤 지나 잠이 깨니 그들은 여전히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한 소리했습니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릴 때까지 계속 골프장 투어 보고를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할까요. 일본으로 골프 투어를 올 정도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분들일 텐데 왜 이런 볼썽사나운 행동을 할까요.
저는 오래전 읽은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의 한 장면이
떠올라 집에 와서 다시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내 자신이 도쿄 토박이이면서도 몰랐던 도쿄 토박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를 들어 근처의 메밀국수집 문 앞의 휘장을 들어 올려 몸을 구부리며 들어서는 순간,
아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면 그 가게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리를 거닐면서 아는 사람과 만나더라도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하면 다름 아닌 '배려'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필요한 일로 남의 감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도쿄 토박이의 예의'입니다."
저는 골프장 한국인과 도쿄 토박이 중간 어디쯤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골프장 한국인처럼 행동할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8.19.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