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마태복음 6장 25절 - 34절
요절 : 마태복음 6장 32,33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위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날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웰빙 아파트, 웰빙 푸드, 웰빙 다이어트 ---.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고 다른 말로 한다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현대인들의 건강이 공해와 오염으로 심각하게 위협받으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한 노력과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습니다. 외국의 비싼 생수를 사다 먹습니다. 무공해 먹거리를 찾고 유기농 채소와 곡식을 선호합니다. 전원주택에서 살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 합니다. 첨단의 의료시술을 받으려 하고 다이어트, 운동을 중시합니다. 건강한 삶이 현대인들의 화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꼭 지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생존했던 언제 어디서건 잘 먹고 잘 살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웰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계속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의 웰빙바람은 선진국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서 개발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웰빙바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이상도 합니다. 한 쪽에서는 생활고를 못이겨 자살을 서슴치 않고, 한 쪽에서는 10억, 20억하는 무슨 아파트에서 살면서 외국 생수를 얼마에 사 마신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니 무언가 영 그림이 좋칠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웰빙바람은 좀 한가한 소리다 싶습니다. 정녕 그런 생활을 해야 웰빙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경치좋은 산간벽지에 전원주택을 짓고 들어가서 살아야 웰빙이겠는지요? 인공물을 모조리 자연물로 바꾸고 살아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웰빙인지요? 비싼 생식, 심층수, 무슨 무슨 식품을 사다 먹어야 웰빙인지요? 누가 답 좀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결국 오늘날 좋은 의미에서 우리를 근심케 하고 염려케 하는 웰빙의 내용과 실천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사실 웰빙을 염려하며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 웰빙을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이방인”인지도 모릅니다. 먹고 살기도 빡빡한 사람들에게 “웰빙”은 그야말로 “이방인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비싸고 질높은(?) 웰빙에 관심두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 문제이며 그 염려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인간은 충분히 먹고 입을 수 있습니다. 공중 나는 새도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며 백합화, 들풀도 충분히 아름답게 입을 수 있습니다.하물며 인간이야 무슨 염려가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지나치게 먹고자 함이 문제요 지나치게 잘 입고자 함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비만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는데 잘 먹자는 데서 기인한 결과입니다. 비만이 인류의 가장 무서운 재앙이 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먹겠다는 염려의 결과입니다. 지금 되어지는 웰빙의 논의가 그러한 생활의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여도 또 다른 인간의 탐욕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중 나는 새처럼 먹고 들의 백합화처럼 입으면 되겠습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처럼만 입으면 웰빙은 가능해 지리라 봅니다.
웰빙이 선하고 옳은 것이라면 그 모범, 모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흔히 말하는 원조가 있는 것인지요? 지금 인간의 삶 속에서는 분명 찾아보기 어렵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웰빙의 원조가 있다는 점입니다. 웰빙의 원조는 누가 뭐라 해도 창조의 때요 에덴동산의 일입니다. 인류역사상 에덴동산만한 웰빙의 시절은 없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아멘!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에덴동산의 상태와 환경이 두말할 것도 없이 웰빙의 최적의 때요 장소입니다. 최상의 웰빙의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때에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아 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거기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기에”(창1:28)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었습니다. 아멘! 창조의 때를 모르고, 창조의 날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웰빙을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목적이 처음부터 설정되지 못한 공허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과연 웰빙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그 실체를 찾는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무농약 유기농법입니까? 모조리 천연재료로 바꾸어야 합니까? 산 속으로 다 들어가야 되는 일인지요? 아니면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수입된 외국 생수를 마셔야 되는 것인지요? 그렇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분명한 답을 내리기에는 우리의 삶의 현실이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실행하는 웰빙은 환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의 건강한 삶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 정도에서 벗어나 있고 아물지 못할 만큼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번 웰빙의 실체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웰빙은 안락하고 풍요로운, 깨끗한,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웰빙과는 거리가 있는 듯 싶습니다. 우리의 웰빙의 실체는 처음 창조의 때이기도 하고 또한 “새 창조”의 때이기도 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니라 ---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하는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5:17-25).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의 환경과 조건이라면 최상의 웰빙의 삶임이 분명합니다. 현대인들이 눈이 활짝 뜨일 일입니다. 그런데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라는 그 일이 놀라운 일의 여럿 중 하나일 뿐이니 그 웰빙의 상태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그저 놀랄 뿐입니다. 이는 모든 웰빙의 극치가 하나님의 새창조로 가능하다는 고백입니다. 아멘! 성경은 끝없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만이 인간이 잘 살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웰빙을 위한 모든 노력은 아무리 고상하고 가상하다 해도 악순환의 고리만 이어갈 뿐입니다.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웰빙의 대전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신명기의 말씀들은 더욱 그런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의 명령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 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으로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신6:18,19).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6:24,25). “너희가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면 --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신7:12-16).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신11:26-28).
하나님 안에 있으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처럼 채식만 해도 건강할 수 있었습니다. “청하오니 -- 채식을 주어 먹게하고 -- 비교하여 보아서 --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단1:12-15). 결국 건강한 삶의 문제는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왕궁에 거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영혼의 문제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문제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정신의 문제요 영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없이, 영성없이 지금 되어지는 현대 인간 삶의 웰빙을 위한 모든 논의와 노력은 매우 허황된 것일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 모든 웰빙을 위한 수고와 노력이 육신의 일이라면 정녕 그것은 아주 그럴 듯해 보이나 결국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롬8:6). 아멘!
이사야 60장을 “웰빙장(章)”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랑장이 있고 믿음장이 있고 부활장이 있듯이 말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것이라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줄 알리라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언제나 하나님이 우선이요 믿음이 전제입니다. 아멘!
우리의 웰빙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입니다. 우리의 웰빙음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4,55). 웰빙주택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해 두신 “내 아버지 집”(요14:2)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웰빙의복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웰빙생수가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입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웰빙찜질이 필요하다면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면 될 것이요(행1:8, 2:1-4) 웰빙다이어트라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면 되리라 믿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아멘!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더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정신의 문제이며 영성의 문제라는데 있습니다.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이고 나아가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존재라면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지를 능히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따라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진정한 웰빙의 생성원리를 따라 삶의 방식을 펼쳐 나가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