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스마트 관광 정부사업 선정된,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왜 용인을 텍했을까
지난 3월6일 용인 기흥구 성동 G뮤지엄파크 일대가 정부의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 시업지로 선정됐다.
G뮤지엄파크는 백남준아트센터와 경기도박물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백남준아트센터가 관광 개념을 일신하는, 용인의 스마트한 명물로 거듬나는 일은 '백남준스러운' 사건일지 모른다.
1932년 7월 20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홍콩과 뉴욕, 뒤셀도르프 등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녔고
애착으로 발붙이지 않은 세계인, 혹은 우주인(우주를 거처로 생각하는 인간)에 가깝다.
그에게 용인은 하나의 상징이었을 수 있다.
그는 자신으 이름을 단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붙였다.
오래 사는 집이란 영생의 공간이란 의미다.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가 살기에 특별해지는 집일 수 있다.
백남준에게 한국 태생이라는 사실은, 물론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예술가 백남준은 모국이나 고향이란 말이 지닌 정서적
함의에 붙들리지 않았다.
그는 직선으로 흐르는 것을 해제하고 새롭게 배치하여 삶의 길을 만들었다.
한국은 뿌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루는 유목 경로의 한 지점으로서 특별한 것이었다.
기 그는 '단군'을 비디오 조각상으로 게시한 적이 있다.
그옆에는 칭기스탄,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다.
1993년 '유목만인 예술가: 전자초고속도로-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 보인 작품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비밀
백남준 아트센터는 그가 타계한 2006년(1월29일) 여름에 착공(8월29일), 2008년4월30일에 완공했다.
개관일은 그해 10월8일이었다.
아트센터는 2003년 55개국 440명이 응모한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독일의 젊은 건축가 카로스텐 쉐멜(Kirsten Schemel)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건물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전자회로판으로 표현하러 했지만 예산이 여의치 않아 결국 동료 건축가인 마리나 스텐코빅(Marina Stancovic)이 맡게 됐고 쉐멜이 표현하려던 느낌을 살려 완성하였다.
그는 건물 후면의 한쪽을 둥글게 튀어나오도록 했는데 1959년 백남준이 피아노를 부순 퍼포먼스(존 게이지에게 바침)를 기려
그랜드 피어노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TV부처
3만 3058m2의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된 아트센터에는 작품 67점과 드로잉 42점, 비디오테이프 2285점이 소장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꼽는 인상적인 작품은 'TV부처'다.
불상을 찍는 카메라가 있고, 카메라가 담은 불상의 현재 모습이 불상과 마주하고 있는 TV에 그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뉴욕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동양의 오래된 상징과 서양의 첨단 기술이 정면충돌하는 듯한 인상이 사람들을 놀래킨 것이다.
선이라는 정신세계와 영상이라는 테크놀로지, 마치 수면에 비치는 나르시소스처럼 배치하여 비디오아트의 기념비가 된다.
'지구 유목민' 백남준의 발견
백남준은 1932년 조선 직물업계 거부 백낙송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한국에서 중.고교 과정을 거쳐 홍콩의 로이든스쿨에 전학해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다.
한국전쟁 때 일본 도쿄대학 미학 및 미술사학과를 볼업했다.
이후 독일 뭰헨ㄷ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및 음악학 석사를 딴다.
윤이상과 함께 독일 괴테메달을 받기도 했다.
존 케이지와 마치우나스에 감명
이 무렵 백남준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아무 연주도 없는 '4분33초'를 작곡한 음악가)와 조지 마치우나스(George Maciunas,1931~1978, 전위예술 운동인 플릭서스(fluxus)를 주도한,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 예술가)가 펼치는 행위예술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는 1964년 뉴욕에서 피아노를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예술을 했다.
1967년에는 첼리스트 살롯 무어먼(Charlotte Moorman, 1933~1991)과 누드공연을 했다.
1974년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인 '글로벌 그루브'를 선보였다.
백남준의 해우이예술이 제대로 인식되는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82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려 ㅣㅁ국 예술계에서 그를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1984년 새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생중계쇼이자 뉴욕-샌프란시스코-파리 다원생중계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알려지게 됐다.
바아바이 키플링, 동서양을 섞다
1986년 '바이바이 커플링'이란 작품이 방송을 탄다.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중계를 했다.
인도 출신 영국인 노벨문학상 작가인 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의 발언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동서양은 서로 어울릴 수 없다'라는 대목을 반박하는 메시지를담았다.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 1주일 전 '손에 손잡고'라는 작품으로 동서양의 조화를 다시 강조함으로써 백남준의 위성 연작 3부작은 큰 성과를 거두며 어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2000년 1월 1일 첫 새벽 밀레니엄 기념작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Is Alive)',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떄엔 '동방으로부터'라는 작품이 중계되었다.
백남준은 2006년 1월 29일 미국에서 74세로 타계했다.
유해는 한국 봉은사와 미국과 독일에 분산되어 안치됐다.
타계 2년 뒤 광고로 부활하기도 했는데,
2008년 KT브랜드 광고 중에 '쇼를 해라'라는 생전의 목소리로 등장한 백남준을 기억할 것이다.
백남준은, 시간을 질문한 스마트한 천재였다
'나는 30세기가 궁금하다'...시대 앞서간 예술가의 비밀
시간을 빨리감기-되감기하다, 백남준 비디오 철학
1994년 미국 휘트니미술관 2인 전시를 할 때 설치미술가 강익중에게 백남준은 이렇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선생님 혹시 21세기 말씀이십니까?'
'아니 천년 후 30세기 말입니다.'
미술사학자 김홍희는 말했다.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만 규정하는 것은 부족하다.
20세기에 이미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을 내다본 선지자였으며 인공위성까지 동원할 만큼 엄청난 스케일의 기획자였다.'
'클린턴이 (전자고속도로) 내 아이디어를 훔쳤죠'
백남준은 1970년대에 전자 고속도로를 예견했다.
'전자고속도로(인터넷)는 약 30년 후 미국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의 연설문에서 언급되었지요.
그는 나의 아이디어를 훔쳤어요.'
그는 또 노트북 PC와 스마트폰 시대를 말했다.
누구나 손에 작은 TV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자고속도로(인터넷)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고, 유튜부와 스트리밍도 예언했다.
당시 그가 황당해 보이는 예측들이 전부 현실화되었다.
그는 21세기를 잎서 통찰한 스마트 문명의 견자였다.
백남준은 첨단 기술 메체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고, 기술 발달이 미래를 위험하게 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빅 브라더를 말한 조지 오웰을 겨냥해, 인공위성을 이용한 정보 소통과 공유가 전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 백남준은 '정주 유목민(Stationary Nomad)'이란 개념을 말한다.
몸을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은면서 우리의 생각을 옮길 수 있는 인류의 시대 말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각이 자유롭게 유목하는 삶을 꿈꾸고, 그 스스로의 삶은 전위적으로 그 길을 가고자 했다.
백남준의 작품을 비디오(미디어)아트라고 표현하는 것은, 피상적인 설명일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추구를 '시간-예술'이라고 불렀다.
그의 실험들은 '비디오 철학'을 구현하는 일에 가까웠다.
1971년 백남준은 물었다.
'비디오로도 피드백, 자연재생, 반복 순환, 속도 변화, 펄스 동기화, 주사선 조작 등 시간의 매개변수를 조작할 수 맀다.
필스 이처럼 인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에 또 다른 새로운 축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시간을 사용하는 예술, 신에 대한 도전?
1981년 그는 말했다.
'비디오의 타임 시프팅 기능은 신에게 도전하는 것 같다.
나는 시간이 비스듬하게 흐르기를 바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되돌아가지도 않고.'
비스듬하게 흐르는 시간의 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테크놀로지 덕분에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환상을 누릴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될 수 도 있다고 언급한다.
비디오는 능동적으로 시간을 경영할 수 있는 창작물이다.
백남준이 말하는 정주 유목민은, 원하는 시간에 들어갈 수 있고, 원하는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행위도 가능한
존재이다.
삶에서 진행되는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재창조하고 누리며 소통하고 공유하는 개념을 생각한 것이다.
백남준의 달과 이태백의 달
1960년대의 플럭서스(반예술적 전위운동)로 뒤흔들어 놓은 예술의 개념은 1970년대에 들어, 비디오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백남준은 향후 '비디올로기(Videology)'가 세계를 뒤흔들고 예술의 판을 새롭게 짤 것이라고 보았다.
'비디오는 삶의 매우 냉혹한 버전이다.
비디오를 총해 우리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비디오로 우리 자신의 인류학적 기록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8세기 중국 시인 이백(701~762)은 '술잔 잡고 달에게 묻다'란 시를 읊었다.
백남준은 1965년 '달은 가장 올된 TV'라는 비디오 작품을 남겼다.
텔레비전 화면에 떠오른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태초의 빛 열두 조각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시간이 과연 균일하게 전형적으로 흘러가는가를 되묻게 된다.
인간이 붙들 수 없도록 흘러가버리는 시간의 파편들을 모아 백남준은 이렇게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시간의 길이와 깊이,
순간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구체적으로 지각하도록 만든다.
백남준은 자신의 텔레비전 설치물을 '로우 아트(Low Art)'라고 했고, 하늘에 뜬 달을 하이 아트(High Art)'라고 말하기도 했다.
1300년 전 이백이 소통한 달은 그의 삶에 달을 접속한 상상의 시간이었지만, 백남준이 비디오로 재현한 달은 달이 움직이는
시간의 속도를 제어하여 달이 존재하는 우주의 소통하고자 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용인소식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