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4기의 출범,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할 것인가?
민주노총 4기 집행부가 '책임지는 지도력'을 모토로 지난 3일 출범을 선언했다. 선거 운동 시절 이수호 위원장은 △전
산업이 참가하는 준비된 총파업 △중층적·총체적 교섭체제 수립 △사회공공성 강화 및 비정규직 철폐 △자주통일운동의 대중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수호 위원장체제가 출범하면서 가장 많이 회자된 내용은 '우리부터 바꾸자'라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혁신의 문제와 임금인상 및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치중했던 지난 시기의 투쟁내용보다는 '사회개혁투쟁'을
강조하는 지도부가 출범했다는 점이다. 이는 어찌보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내걸었던 민주노총 출범시의 분위기나
기조와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도부 혁신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투쟁'이 강조됐던 민주노총 3기에 비해 '투쟁과
대화'를 중층적으로 병행하면서 '타협'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 이상으로 구체화되어 제출되는 내용은 아직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개혁투쟁을 강조하는 점도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실제로 '노동자 집단이기주의'라는 언론과 보수정치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혹은 '사회개혁투쟁'에 소홀히 해
왔다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의료, 교육 등 제반 '사회개혁투쟁'에서 국내의 어떤 운동진영보다
많은 역량과 투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 이제는 '사회개혁'이라는 구호에서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대안적 슬로건과 구호를
제출하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 점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 4기의 출범은 '변화'를 강조하고,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민주노총 출범시기의 '과거로
회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그래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노선이 김대중 정부 초기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에서
정리해고제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에 합의를 함으로써 노동자대중에게 심판을 받았던 과정이 되풀이 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민주노조운동에게나, 한국사회 민중운동 진영에게나 비극적인 일이고 매우 불행한 사태일 것이다.
문제는 '변화와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사회개혁투쟁'의 구체적인 투쟁 방식이다.
따라서 문제는 '변화와 혁신'의 강조라기 보다는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이며,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노선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또한 '사회개혁투쟁'의 강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용과 구체적인 '투쟁의 방식'의 문제일 것이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해서 단병호 위원장이 이임사에서 밝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이어야 하고 근본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이라는
정신을 구체화하는 과제가 민주노조운동 앞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불안정 노동층이 일상화되고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면서
정규직 노동자가 더욱 '실리'의 유혹앞에서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시기 '사회개혁투쟁'이 지녔던 한계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적할 것은
간접임금, 사회임금 등으로 명명되고 있지만 '사회개혁투쟁'과 임단협투쟁을 의식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관점이다. 여기에는
개별 기업 수준의 임금인상 투쟁은 낮은 수준의 투쟁이고 사회개혁투쟁은 높은 수준의 투쟁이라는 잘못된 대립구도의 설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암암리에 노동자의 임금인상요구(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 대해서는 '노동귀족'이라는
용어까지 붙여가면서 도덕적 비판의 잣대까지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공공의 이익' 대 '집단의 이익'이라는 대립구도로
현상하기도 한다. 2003년 화물연대, 조흥은행, 철도노동자의 파업에서 보여지듯 부르조아와 언론, 그리고 정부는 정부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정치투쟁'까지 벌인다고 비판하고, 연금과 임금 등 개별 기업단위의 요구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는 지나친 '집단이기주의'라고 왜곡·선전하기도 한다. 자본과 권력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의 영향을 받아(?) 노동조합운동 스스로도 이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지 않는가 되돌아볼 일이다.
이러한 왜곡된 대립구도는 현실적으로는 사회개혁투쟁/임단협투쟁이 분리되어 사회개혁투쟁이 노동자대중의 '도덕적' 지지는
얻을 지언정 그들 스스로 사회개혁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길을 봉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노동조합운동의
사회개혁투쟁은 필연적으로 정책의 마련과 그것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나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정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조합원대중과는 분리된 채 상층 중심의 정책참여투쟁으로
왜소화되어 버린다. 심지어 조합원 대중은 정책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이를 이루어 내기 위한 '동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합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정부와 자본의 사회정책과 전략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교육, 의료, 사회복지, 정부기관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노동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잘못된 대립구도는 역으로 공공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유리한 형태와 내용으로 재편할 '방법과 길'에 대한 논의 마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이들 영역의
노동자를 '조합주의(집단)의 이익'에만 자신의 시야를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대화의 자세'보다는 '투쟁의 계획'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회개혁투쟁은 이수호 위원장 스스로 언급하는 것처럼 조합원대중의 주체적 참여와 자발적 동력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자본과 권력과의 '합의'에 매몰되거나, 사회개혁투쟁을 승리로 이끌 '힘'을 가질 수가 없다. 오히려 '조합적 실리주의'의
확대판으로서 '사회적 실리주의'의 왜곡된 형태를 띌 수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1년을 제반 사회변화를 위한 '로드맵 완성의 시기'라 규정하고, 2004년부터는 로드맵을
하나하나 실현시킬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처럼 올해는 민주노조운동에게 있어서,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민중운동에게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FTA, WTO DDA협상 등 개방화의 본격화에 따른 교육, 의료 등 사회영역의
시장적 질서 재편의 본격화될 것이 예고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일 긴박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소득불평등의 확대,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빈곤층의 확대 재생산은 노조운동의 양적·질적 확대와 축소를 좌우할 정도로 노동자대중에게 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서 놓여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실 '대화의 자세'보다는 '투쟁의 계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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