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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후기에는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뿔 등을 이용한 조각품들이 만들어졌다. 공주 석장리와 단양 수양개에서 고래와 물고기등을 새긴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구석기인들의 소박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품에는 구석기인들의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깃들인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후기(기원전 1만5천 년~1만 년)에 그려진 이들 동굴벽화에는 사냥하는인물, 동물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현대인이 그린 그림보다도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힘차고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대개 이 시기시대의 미술은 생명력이 응집된 실제 보이는 바의 생생한 모습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인상을 재현하고 있다. 최초에 이 구석기 동굴벽화가 발견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구석기 시대인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3만 5천 년 전의 구석기시대에 현재 알려져 있는 당시의 그림이 그려졌을 때 인간은 동굴 속에서 살았던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생존하기 위해서 먹을 것을 찾는 일이었다. 구석기시대인의 삶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도전받는 현실에서 야기되는 야생동물과의 싸움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긴박감과 긴장의 연속 가운데 있었다. 인간과 동물의 숨가쁜 호흡과 비명이 뒤섞이고 뜨겁고 선혈이 튀는 그런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삶의 감각은 강렬하고긴장될 수밖에 없던 그들 의식의 눈을 통한 사물은 생생한 생명력에 넘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의 표현은 선명하고 사실적이며 생명력에 넘치는 미술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원초적 삶이 있었을 뿐이고, 생명의 본능과 의지가 무엇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정교한 공감주술을 고안해냈는데, 즉 원하는 결과를 모방하면 그 결과가 현실이 된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동굴 벽에 순록의 사냥장면과 동물들을 그렸다. 그들은 우아한 선, 대칭기법과 화려한 색채사용의 높은 안목을 지녔으며 장면을 세밀하게 모방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특히 동작을 표현하는 솜씨는 빼어났다. 그들 그림의 진정한 목적은 미적 감각을 만촉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식량이 되는 동물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심미가가 아니라 주술사였고. 예술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고안된 주술의 일종이었다.오늘날에 와서 구석기시대인이 그린 동물과 사냥 그림이 미술적인 기능을 지녔다고 하는 사실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인이 사냥하려고 히는 동물을 동굴 벽에 그렸던 것은 그림 속의동물을 소유한다는 의미, 즉 그 동물을 잡는다는 실용의 세계이며 곧이어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될 실제사냥과 바로 연결되는 실생활의 생존 행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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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신석기시대의 커다란 전환의 계기는 인간이 수렵 채취의 생활방식을 청산하고 농경과 목축의 생활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직접 싸우고 도전하는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게 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유희의 시간을 갖게 되며, 일정한 곳에 정착하게 됨으로써 삶의 형식이 조직화되고 기능적인 주술에 대신하여 종교적인 의식이 싹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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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토기> |
신석기시대 미술에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요소들이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인 모습과 형상 대신에 상징과 추상화 전형화되어 가는 기하학적인 문양, 사유와 해석이 시작됨으로써 정리와 수정, 강조와 과장 등을 발견하게되었다. 미술은 이제 단순히 대상의 재현 차원을 넘어 사유의 표현이 이루어지게 되며, 기억의 재현뿐만 아니라 상상의 표현을 더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의 마음 속에 있는 감각적인 것 감성적인 것만이 아닌 개념적인 요소와 사유가 압도해 가는 시대이게 된다. 세계 여러 민족들이 서로 일치하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무늬나 장식은 추상적인 기하무늬이다. 각양 각색의곡선이나 직선, 원, 물결무늬, 소용돌이무늬, 톱날무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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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암각화> |
이와같은 기하무늬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기원은 지금까지 불분명하며 인류의 역사에서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표현 대신에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표현, 획일적으로 반복되며 고정된 기호처럼 보이는 표현들이 나타나기시작하여 이러한 경향이 주도적이게 되는 시기가 바로 신석기시대이다.
이제 미술은 생명의 구체적이고 생동하는 표현보다 사물에 대한 이념이나 개념적인 파악과 표현이 두드러지게 되고 실제적인 대상의 묘사보다는 상징적인 표현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신석기 시대의 미술품으로는 우선 '빗살무늬토기'를 들 수 있다. 약간 배가 부른 V자 모양의 토기 표면에 평행으로 사선을 그어서 장식을 하였는데, 선의 방향을 줄에 따라서 엇갈리게 하기도 하였다. 가지런한 선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통일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토기의 무늬는 단순히 미적인 것이 아니라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줄문 토기발> |
원시 미술에서 평행한 사선은 물을 상징한다. 따라서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그들의 중요한 식량인 물고기가 사는 물을 상징하며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된 이후 직선적인 무늬는 곡선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선을 꺾어 돌리는 번개무늬도 나타나게 되었다. 번개 무늬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천둥을 상징한 것이다.
또 이 시대의 미술품은 주로 흙으로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 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로 만든 치레걸이,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있었다. 이들 조각품 모두 식량의 풍요나 악귀의 축출을 비는 종교적인 필요에서 만든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우리 나라 선사시대의 미술은 생활과 직결되는 기능적인 미술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에 와서부터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청동기, 철기 시대 청동기를 사용하고 농사가 발달하면서 평등했던 부족사회는 무너지고,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계급이 발생하였다.신석기 시대에 비해 청동기, 철기 시대는 사회와 경제가 급격히 발전되었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예술 활동도 활발해졌다.이 시기의 예술은 종교 및 정치적 요구와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제사장이나 군장들이 사용하였던 칼, 거울, 방패등의 청동 제품이나 토제품, 바위 그림등에 반영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세계와 인간의 불합리성으로 인한 갈등의 내용들이 미술에 나타나게된다. 청동기시대의 미술도 미적(美的) 충동에 의한 것보다는 깊은 심성적 신앙세계와 연관되어 보이는데, 이 시대 인간의 내적 세계가 얽히고 잠재되었거나 표출되었던 심정적인 내용들이 있고 아직 밝혀지지 못한 청동기 시대인의 내적 복잡한 정신세계의 여러 현상들이 들어 있다. 즉 원시적 도덕관념과 신앙형태의 종합적 현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청동기시대는 신석기 시대 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문화현상 들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시기이다. 놀라운 예술성과 다산성의 청동기시대 문화 현상 들은 다음 시대로 끝없이 이어지는 찬란한 문화예술의 시대를 예감하게 해주는 여명의시대이다. 실제로 다음 철기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월등하며, 정교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많은 예술작폼이 쏟아져나왔다. 바로 새로운 문화현상이 속출했던 시대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느 면에서나 많은 예술활동이 이 무렵에 있었다. 각종의 청동기 미술이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독특한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부장품으로서 지금까지 많이 출토되고 있는 청동검은지금도 무당들이 무구메具)로 사용하고 있으며, 청동거울, 방울 역시 무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기의 미술에는 장식에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것이 많다. 그 모양이나 장식에 당시 사람들의 미 의식과 생활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새나 말의 조각을 붙이거나 혹은 쌍방울을 단 칼자루끝 장식, 말이나 범의 모양을 한 띠고리, 둘이나 다섯 혹은 여덟의 방울을 단 의기(儀器)등 다양한 미술품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 지배층의 무덤인 돌널무덤등에서 출토된 청동제 의기들은 말이나 호랑이, 사슴, 사람 손 모양등을 사실적 으로 조각하거나 기하학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이들은 주술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어떤 의식을 행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흙으로 빚은 짐승이나 사람 모양의 토우(土偶) 역시 장식으로서의 용도 외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위면을 쪼아 새긴 바위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활기에 찬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 미술품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암각화(岩刻畵)이다. 울산의 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거북, 사슴, 호랑이, 새 등의 동물과 작살이 꽂힌 고래, 그물에 걸린 동물, 우리 안의 동물 등 여러 가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사냥과 물고기 잡이의 성공과 풍성한 수확을 비는 염원의 표현으로 보인다. 고령의 바위 그림에는 동심원, 십자형, 삼각형등의 기하학 무늬가 새겨져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농업 사회에서의 태양 숭배와 같이 풍요를 비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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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대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네요.... 저도 역사에는 관심이 많은데 많은 자료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