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9일
[고양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의정부로 향한다. 2006년 8월 31일부터 시작된 유랑생활의 종지부를 언제 찍을 것인가. 지도에 색칠 안 된 부분이 네다섯 배는 많다. 이런 상태로 라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10년 내에도 전국을 돌기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흰머리 생기기 전에는 유랑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은둔생활?을 시작해야 할 텐데~]
[의정부로 향하는 이정표]
[주사 맞는 나무]
[주사 좀 맞아야할 개. 갓길 한편에 어떤 시설물을 지키라고 경비역할이 주워진 개인 듯. 주인은커녕 한 번씩 지나며 쓰다듬어줄 사람들이 오갈 일도 없는 이 어수선한 장소에 큼지막한 껌이 달라붙은 털 모양을 하고서 어기적거린다. 주인은 이 개로부터 중요한 물건을 채우는 자물쇠의 역할 밖에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
[아마 북한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인 듯. 주변에는 유원지가 포진되어 있다.]
[16km 부지런히 걷자]
[참으로 성격 좋은 멍멍이. 급하지도 무감각하지도 않고 사람의 반응에 맞게 잘 놀아 준다. 내가 이 녀석과 놀아줬는지, 이 녀석이 나랑 놀아줬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
[고양에서 의정부 향하는 길은 좌우로 수려한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삐죽 솟은 돌덩이는 아마 북한산 봉우리인 듯]
[한참 걸어 북한산 봉우리 아래로 멀쩡한 산이 깎여 나가는 모습. ‘속도를 줄이시요’라는 표지가 의미심장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줄여할 것은 자동차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리니... ]
[한참 걷다 보니 거대한 와이드비젼이 번잡한 교차로에서 반짝거리는 ‘장흥면’에 당도한다. 농협 앞쪽 그늘에 배낭 뉘우고 반쯤 누워 있는데, “어르신 어디 아파서 여기 쓰러져 계시는지요?”라는 농협 직원의 우려의 말?을 듣는다. ‘여기서 누워있으면 안 된다’는 말인지... “안 아픈데요.라고 대꾸한다.]
길 가에서 늘상 보아오며 지나치던 민들레꽃인데, 뭔가 색조가 달라 보인다.
[큼지막한 무당벌레 한 마리가 마치 개가 바구니 집 속에 들어가 쉬고 있는 마냥
달라붙어 옴짝 달싹 않고 있다. 저 자세로 민들레 꽃 중심에 달라붙어 있으면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이겠지...]
[저 멀리 오른 쪽에는 북한산, 왼쪽에는 도봉산. 양주시 송추동 쯤에서 본 관경. 무거운 짐 훌훌 던져 버리고 오른쪽 산봉우리에서 왼쪽 봉우리로 냅다 뛰고 싶다.(클릭하면 크게 봄)]
[친절한 표지]
[태양 볕이 예사롭지 않아서 길가에서 약간 벗어난 유원지로 보이는 입구 쪽 나무 그늘 아래 배낭을 늘여 넣고 쉰다.]
[펼쳐 놓는 배낭 / 적당히 몸을 기울이고 모자를 얼굴에 덮으면 잠깐 수면실이 되곤 한다.]
그런데 누워서 모자 잠깐씩 고쳐 쓰거나 자세를 좀 바꿀 때 마다 뭔가 이에 반응하고서 민첩하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여태껏 이승에서 살아온 경험상 벌이나 거미 같은 곤충, 지내 같은 절지동물, 달팽이 같은 복족류는 아님을 확신한다. 어류든 포유류든 최소한 척추를 가진 민첩한 반응이 가능한 생물인 듯한데, 바다표범이나, 타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만, 도무지 무엇이 바스락 거리는지를 알 길이 없다. 하도 궁금해서 나중에라도 알아보려고 그쪽 방향을 찍어 놨다.
[숨은 그림 찾기! 무엇이 저 속에 숨어 있을까요~~~ 정답을 맞히는 분들께는 ‘둥글이와 함께하는 유랑체험권’과 ‘구걸전문가 훈련과정 입소 40%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
[어느새 가까워진 의정부]
[도봉산 자락을 돌아가는 길]
[확실히 큰 산이라 주위 곳곳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
[아~ 홀로됨의 아픔이여...]
[한참 걷는데 나타난 칡즙 가판대를 알리는 간판. 태양 빛도 따갑고 목도 마르고 해서 한잔 사 먹었는데, 이렇게 속이 개운할 수가 없었다. 속이 확 씻겨 내려가면서 정신까지 맑아지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 아마 내 평생 이정도의 ‘위 씻겨 내림의 시원함’은 과거 서산으로 오는 중에 느꼈던 그것 과 비견되는 듯하다. 그때는 영양보충차원에서 오징어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그 미식거림을 눈치 채지 못하다가 ‘호박고구마’ 좌판에 가서 강도질해서 얻은 호박고구마를 먹고 난 후 그렇게 속이 개운해 질 수 없었다. * 여기서의 ‘강도질’이라 함은 충분히 구매할 여력이 있음에도 마치 돈 한 푼 없는 것같이 위장해 보임으로 인하여 가난한 좌판 아주머니들의 그것을 공짜로 얻는 행위를 말함.]
[능력 없이 사납기만 놈]
[처음엔 개인 줄 알고 “어여여~”했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아마 그냥 바람에 밀려 모아진 털 뭉치 였나 보다.]
[전날과 그 전날 삭신이 쑤시는 피로함 때문에 잠을 푹 못 잤었기에 길 오는 내내 몸이 상당히 늘어졌었다. 하지만 직전에 먹은 칡즙이 뱃속과 정신을 맑게 씻어 냈고, 길 한편에 내려오는 개울물에 발을 적시며 며칠 간 씻지 못한 발을 담갔다. 몸과 뱃속과 마음의 편안함. 무릉도원이 따로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 옹벽 너머는 의정부로 향하는 국도]
[저 깊은 산속 어디선가 화사하게 꽃잎을 피었다가 진즉에 떨어졌을 벚꽃 잎 하나가 발을 씻는 중에 달라붙는다. 잘 모아뒀다가 벗꽃전 해 먹어야겠다.]
[고양에서 의정부 오는 사이는 양주가 놓였었는지라, 양주 경계를 넘으니 의정부 이정표를 접한다. 가는 양주 오는 의정부.]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넘으니 의정부시가 한편이 눈에 들어온다.]
의정부
조선시대 백관(벼슬아치)을 통치하고 정사를 돌보던 최고의 행정기관 명과 같은 ‘의정부’는 전국 시군 중에서 ‘서귀포’와 함께 유이한 세 자짜리 지명을 가진 지역으로 43만의 도시이다.(꼴랑ㅠㅜ)
[고가도로 건설 중인 도심의 혼잡함 뒤편으로 의정부 시청]
[의정부 시청 앞의 널따란 잔디광장 / 둥글이선사 이곳 광장의 화장실을 애용하심]
[의정부 주요 시설들은 직동 근린공원과 함께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위로부터 세무서, 시청, 도서관/시의회, 청소년회관, 예술의전당]
[의정부 도착해서 잔디밭 한쪽에서 양말을 말리면서 쉬고 있는데, 닭둘기 한 마리가 구걸본능을 보이며 서성거린다.]
[저녁에 예술의 전당 주차장에서 하루 묵고...]
4월 30일
[의정부서초등학교 캠페인]
[서초등학교 전경 / 사진은 캠페인 끝나고 나서 아이들 조회한다고 모이는 광경.
경기도 지역에서 캠페인 했던 학교 중에서 가장 호응이 좋은 학교 중의 하나 였다. 아이들이 잘도 받아가려니와 잘 읽었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또 달라’고 달라붙는 통에 한동안 애를 먹었다.]
[모 관공서에 들어가서 쌀 한줌을 얻어 왔다. 휴~ 그간 쌀자루가 비어 있어서 계속 뭔가 쫓기는 듯 한 느낌이었는데, 한 자루 채워지니 마음이 든든하다.]
[예술의 회관에서 5월 달 행사한다고 주차장을 막아 놔서 ‘적’(수위 아저씨, 중고생, 지나는 행인)들의 근접이 가장 어려운 곳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묵는다.]
5월 1일
- 득도와 구원에 목마른 이들을 위해 : 뚜껑열린 사람과의 만남 -
2006년 8월 31일에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이는 내 습관, 일상,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삶을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도 하거니와 환경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도 관심이 없어하는 통에 이를 좀 구체적으로 알리고자 함이었다.
배낭에 숙식장비를 챙거 구걸에 노숙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처지는 일상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어차피 이것 자체가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어쨋튼 길가는 중에 얻는 큰 소득 중의 하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일상을 털고 세상을 떠돌다 보면, 우연하게 혹은 그럴만한 이유로 ‘특이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곤 한다. 1주일 쯤 전 그런 분 하나를 만났다. 우연히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다나 내 활동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계시 단다. 그래서 지하철로 한시간 거리를 찾아오셨다. 의정부 도서관 앞에서 정오에 만났다.
이분은 내가 본 바로 ‘뚜껑’이 열린 분이었다. ‘뚜껑이 열렸다’ 함은 일반적인 의미의 ‘화났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무의식의 봉인이 풀렸다’는 말이다. 인간의 의식 밑바닥에는 엄청난 무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 무의식이 아무 때나 풀어 헤쳐져 버리면, 집단생활에 용의하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그에 대한 어떠한 ‘이성적 책임’마저도 없다면, 인간의 삶은 혼란과 분열이 가득할 것이다. 하여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면에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뚜껑’을 만들어 냈다. 문제는 이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롭고 통합적인 관계 맺음을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이성적 의식이 통제하는 한에서의 좁은 시야의 ‘사회적’ ‘관습적’ ‘일상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뚜껑 닫힌 사람들 삶의 비극이다.
이로 인해 한 개인에게 사회적 통속, 일상의 가치, 개인주의, 물질적 가치, 경쟁심, 성공 등등의 가치와 개념들은 합리화 되고 오직 이것을 위해서 이것에 통제되어서 살아가는 인간이 만들어 진다. 뚜껑 아래의 ‘무한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에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려지는 한에서의 편협한 세상에 대해서만 병적으로 집착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자유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뚜껑을 (적절히)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무의식을 억압하고 정신을 편협이 구조화 하는 현대 사회의 억압은 훈련에 의해서도 극복되지만, 종종 외부의 집중적 자극이나 때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복되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뚜껑이 열리는 때이다. 이런 이들의 증세는 각양각색이고 각양각색의 문화권에서 각양각색의 언어로 정의되어지곤 한다. 이들은 주로 ‘무의식이 해방된 이들’ ‘통찰적 직관을 얻은 이들’ ‘신내림 받은 이들’ '견성한 이들' 등으로 일컬어지는데 본인(둥글이)은 그 현상의 ‘장단’이 있음을 알기에 무턱대고 긍정적 의미보다는 ‘뚜껑이 열린 상태’라는 다만 기술적인 상태로 정의하고자 한다.
하여간 그렇게 뚜껑이 열린 인물을 이날 점심 의정부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우선 이분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트인 ‘그 날’ 이후로, 그간 가져 왔던 세상에 대한 관계가 완전히 재정리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 절망, 가정사의 잡다한 불만 등등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고 ‘이해와 조화 사랑’의 마음이 가득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삶도 전혀 다른 패턴을 띄게 되었다는데, 우선 그간 다니던 교회에서는 얌전하고 조용한 신도로 살아왔다가 ‘그날’ 이후로 갑자기 방언을 하고 수화를 하고 하면서 교회 내에서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보통 뚜껑 열린 사람들이 종종 과도한 편집증 혹은 망상증 증세를 보이거나, 극단적인 관념론적 사고(물질은 필요 없고 정신의 해방만 중요히 여김)에 매몰되는 특성을 가진 것과 달리, 이분은 인간과 자연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실천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들 뚜껑 열린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그 무한한 해방감을 단순히 그 해방적 자유감으로 끝맺거나, 그 전까지 안보이던 전혀 다른 그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음으로 인한 충천한 자부심으로 인하여 망상증 증세를 보이곤 한다. 이들은 자신이 얻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감상적 환희 속에 날려버리는 인물들이다.
이런 이들은 백날 뚜껑 열려봤자, 결국은 도로아비타불 되는 인물들인데, 이날 만난 분은 자기 해방감과 자기 믿음에 빠져 결국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는 한계를 파악할 수 있게 면밀한 주의감을 가진 이였다. 하여 둥글이를 만나로 온 이유도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활동 중의 하나를 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좀 더 견고히 하기 위함이란다.
여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된다면 훌훌 털고 나와 같은 거렁뱅이 생활을 하고 싶단다. 집을 나올 때는 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온단다. ‘큰 자각’이 생긴 후로 직장생활을 그만뒀고, 직장에 있던 자기 물건을 그대로 놓고 나왔다고 하며, 현재는 인간의 고통과 사랑을 함께 할 실천적인 방법을 찾아서, 돈벌이와 전혀 관계없는 봉사활동을 준비하는 동시에 그에 맞는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보아하니 이미 ‘집’을 떠나온 모습의 다름이 아니었다. 모든 인류와 세상의 생명을 내 가족으로 여기고 이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그 순간 이미 ‘세계’ 자체가 그녀의 집이 된 것이고 기존의 의미의 ‘내 집’은 이미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식사로 라면을 때우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다’고 (수입산)밀가루 음식이 생명에 가하는 유해함을 말하니, ‘그것이 인스턴트 화 된 세상에서 인류가 겪어야할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함께 하고 싶다’고 대꾸한다. 식성이 따라주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면서...
물론 한편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않고 ‘멀쩡한 음식(유기농 등)’을 찾아 먹는 것이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온 인류가 ‘멀쩡한 음식’을 먹을 날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하여간 개인의 구매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의 분석은 차치하고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식의 발상으로 거친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 그 마음자세는 분명 특별한 것이었다.
그간 들어뒀던 보험도 다 해지하고, 동생에게는 모아뒀던 돈을 다 털어 집까지 사줬기에 무일푼이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불안감이 없고, 있는 대로 살아가다가 병이 걸려 죽을 때가 된다면 마땅히 하늘의 뜻에 따라 죽어 사라져야 하지 않냐고 덤덤히 얘기한다. 이에는 어떠한 호기나 자부심 같은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평이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현 상태를 관조할 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생로병사는 그 삶에 별다른 걸림돌을 주지 못하는 그것인 듯 했다. 오직 어떻게 세상에 올바르게 반응하면서 자기의 지금을 충실히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들어차 있었다. 조급하거나 경박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면밀하게.
흔히들 ‘견성’ ‘득도’ ‘깨달음’ ‘구원’을 얻었다는 자들이 그에 의해 뿜어지는 힘을 ‘관념적’으로만 되뇌임하고, ‘감정적 환희’로 발산할 뿐, 그것이 일상에서 체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하루 세끼 먹을 만큼 먹고, 일상의 편리는 다 누리고, 심지어 사업 번성하고 있다며 자신의 ‘명민함’을 떠벌리기 까지 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의 고통과 분열의 근거가 근본적으로 ‘물질기반의 사회’ ‘욕망기반의 사회’의 죄악인 것을 통탄하면서 ‘변해야 한다. 깨달음-구원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떠벌리기만 할 뿐, 자기 자신이 현재 그 죄악의 기반인 것임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수준의 정신 상태에서 기껏 자신의 편의로운 생활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참 깨달음(구원)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는 따위의 말을 짖꺼린다.(이들은 과거 2,300년 전과 지금의 차이가 뭔 줄도 모르고 죽어 무덤에 묻힌 이들의 말만 되풀이 하곤 한다.)
자기 관념과 관념적 환희 속에만 빠져 있다 보니, 세상이 운영되는 큰 그림을 볼 수 없는 것이고, 그 그림 속의 자신의 위치와 작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불교도들, 노장교도들이든, 기독교인들이든 하나같이 판박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저런 경제-환경적인 지표를 확인 해 볼 때 80만 원 이상 벌어들이는 것 자체가 환경을 파괴시키고 후손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삶이다. 어려운 용어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파괴행위이다. 따라서 한 달 80만 원 이상 버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죄책감’을 갖고 살면서 어떻게든 그것을 세상에 환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자신이 ‘득도-구원’ 받았다며 떠벌리는 이들이 그러한 죄악적 삶을 ‘당연시’여기면서, “현실은 차후의 문제이다. 오직 중요한 것은 ‘득도-구원’받는 것”이라며 철저한 관념적 허상을 사람들에게 씌우는 것이다. 이런 개똥같은 믿음이, 불교도들, 노장교도들, 기독교인들에게 만연해 있다 보니, 이 세상은 더더욱 인간이 깨닫고 구원 받기 힘든 곳이 것이다.)
이는 기실 세계를 이렇게 만들어낸 ‘일상이 거세된 이성주의-관념론’의 한 폐단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오직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오히려 이를 지적하는 이들을 ‘이성론자’로 폄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루 세끼 제 입에는 안 빼놓고 꼭 밥알을 챙겨 넣는 이들이 다른 이들의 ‘밥’을 채워주는 문제는 하찮게 여기면서, “우선 중요한 것은 득도-구원을 얻는 것이지 현실적 실천의 문제가 아니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런 이들이 과연 참 ‘득도-구원’ 받은 이의 모습이겠는가?
이는 ‘현실적 실천의 문제가 최고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 실천의 문제는 둘 째 치고, 현실속에서의 자신의 일상적 삶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득도-구원’이라는 것이 기실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다. ‘득도-구원’을 외치는 ‘뚜껑열린 인물’들 상당수가 자신이 아는 바를 생활로 이끌어 내지 못하고 철저히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를 합리화 시키는 ‘나르시즘’에 빠진 인물인 동시에 극단적 ‘관념론자’ 였음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이날 만난 분은 분명 특별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이 깨달은 바가 세상에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삶을 사는 자세...
입으로만 ‘거대한 사랑’ 운운하며 감상에 빠져 있는 한심한 씨부림쟁이가 아닌, 자아를 인류와 환경에 그대로 뻗어 하나 됨을 체현한 삶을 사는 사람. 그리 노력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 이날 대한 인물은 그런 인물이었다.
하간 그렇게 쉴 새 없이 다양한 주제로 여섯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큰 인물을 접한 기분이 뿌듯했다.
[이날 저녁은 도서관 뒤편에 자리 잡았는데... ㅠㅜ 에어컨 송풍기가 옆에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보통 10시면 도서관이 닫으니 10시 이후로는 송풍기 소리가 안 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밤새도록 돌고 새벽까지 돌아가는 부지런한 송풍기. 그래도 뒤쪽에 있는 흰색의 작은 송풍기는 견딜 만 했는데, 앞쪽의 회색 송풍기는 8분 간격으로 돌아가는데 탱크 소리를 냈다. 잘만하면 깨고 잘만하면 깨는 통에 길고 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의정부 도심의 횡단보도 중앙에서 접한 새대가리 하나. 아마 황조롱이 머리인 듯. 이 흉흉한 도심의 야만성은 야생동물이 불의의 사고로 죽임을 당하면 사지가 해체 분산-실종된 체로 마지막을 맞아야 한다. 숲이 점차 사라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도심에 적응해 왔어야 했을 이 야생동물들의 삶 역시 끔찍했을 텐데, 죽음 또한 이렇게 비참해야 하다니.]
-어느 어르신과의 만남-
의정부 도서관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중에 배가 고파 계단에서 초콜릿 하나 까먹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르신 한분이 서서 나를 쳐다보고 계셔서 화들짝 놀랐다.
마크가 찍힌 모자까지 쓰고 계시기에 ‘도서관 계단에서 군것질 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실 줄 알고 먹던 것을 후다닥 훔치고 있으니, ‘좋은 이야기’라며 두르고 있는 조끼에 쓴 내용을 지적하신다.
그러시며 한국인들이 ‘돈’에만 미쳐 있음을 지적하신다. 독재개발세력에 의해서 급작한 성장을 한 결과로 인해서 삶의 다른 모든 가치를 등한시하게 되었고, 일원화된 가치체계와 욕망으로 편협한 사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이 민주주의 사회이지, 성장제일주의적 발상으로 왜곡되고 뒤틀린 편협한 국민의 의식은 제대로 수습하기에는 견적이 안 나올 만큼 어그러져 있다는 것이다.
본인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무원 생활해 오면서 외국도 돌아다녀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넓게 조망할 여력이 생긴 후부터 이러한 문제가 보여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관급 공사들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지고 부정부패가 발생되며, 대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국가 경제 시스템과 종부세폐지 등을 통해 보는 것과 같은 가진 자들을 위해 구성되는 사회의 행태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이 넘치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가진 자들도 자신들의 차고 넘치는 것들을 없는 이들을 위해서 자연스레 내 놓아야 하는데, 종부세 폐지와 같이 오히려 순리와 반대로 작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신다.
특히나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개탄하셨다. 수레가 한쪽 바퀴로만 구를 수 없고, 밤이 왔다가 낮이 오는 것은 지당한 것처럼 이쪽 정권에서 대권을 차지했다가는 저쪽 정권에서도 대권을 차지하는 것이 온당할 이치일 터인데, MB정권이 지난 10년을 마치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 하려는 듯이 발악하는 모습은 천륜까지 져버린 모습으로 비유하셨다.
이는 ‘함께 공유해야할 것을 자기 것으로만 여겨, 타자가 공유할 때 이를 빼앗긴 것으로 여기는’ 추악한 기득권의식 때문이라고 비판하신다.
가뜩이나 남북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의 국시인 동시에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서의 민족의 역사적 과제인 ‘남북통일’이, 기득권세력들의 “북한 퍼 줄 필요 없다. 우리끼리 잘살자”는 조악한 황금만능주의로 뒤바뀌고 있는 사실을 개탄해 하셨다.
워낙 말씀을 잘 하셔서 중간 중간 몇 마디 끼어들어 호응 했을 뿐이지만, 확실히 합리적으로 사안을 살피시는 분들의 말은 앞뒤가 착착 들어맞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이 분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이었다면(자칭 보수주의자라고 얘기하시는 ‘애국자?’와도 많이 대화를 나눴지만) 아마 나는 내 눈 앞에서 아무런 역사적 정당성과 합리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정신으로, 건설업자들과 수구세력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만을 두둔하는 열성적 웅변을 접해야 했을 것이다. 하여간 신선한 어르신과의 만남이었다.
(다음날은 바로 그 장소에서 또 다른 젊은이를 잡고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이분이 아시는 어떤 ‘시 쓰는 아주머니’를 도서관 홀에서 잠깐 만나 뵈었다.
시를 몇 개 건네 주셨는데...
개나리
천사들이 잠을 자는 봄빛 들녘에
조롱조롱 깨어나는 별빛 눈망울
보리울 지나지나 이랑이랑 지나지나
단발머리 나풀나풀 나물 캐러 간
머언 들녘어디메쯤
꽃등불 밝혀오던 소리
토드락
토드락
빗방울속에
하늘하늘 춤추는 날갯짓 속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소곤소곤 들려오는 봄빛의 언어
너무많은 아픔과
너무많은 눈물
너무많은 범죄
너누많은 죽음
과학이 범죄에 악용되고
슬픈사람들이 너무많이 살아가는 세상
사랑하며 살기도 모자란게 인생이기에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사랑하며 살라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봄빛 요정들
꽃등불로 밝혀오는 별빛 종소리
...
5월 5일
어린이 날이라서 시청 앞 잔디 광장과 주변의 예술회관 등에 다채로운 행사가 빚어지고 있었다.
[시청 앞 잔디광장 행사]
[예술회관 실내 전시물]
도서관부터 시작해서 예술의 전당까지 펼쳐진 뒤편 공원과 잔디밭에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 가족단위로 나와서 얘기하고, 쉬고, 먹고, 자고 하는 모습이 어수선하면서도 한가로워 보였다.
여섯시가 넘어서도 사람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빨리 집에 가줘야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여 “이 사람들 빨리 없어지지 않나”하고 간절히 바랬더니... ‘구하면 찾는다’고 했던가??? 갑자기 소나기가 떨어져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급히 철수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철수 중]
신께서 내 기도에 응답한 다고 좋아했는데, 모든 ‘저주’?에는 대가가 있다고 했던가?
텐트 치고 누워 있는데, 대기 불안정으로 한동안 쏟아지는 소나기에 한동안 불안해야 했다.
[예술 회관 뒤편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나서]
[텐트 안에서 발가락으로 텐트 긁기 놀이 중에... 단조로운 텐트 속의 생활을 극복하고자 발등으로 텐트 긁기 놀이, 발바닥으로 텐트 긁기 놀이 등을 꾸준히 개발하여 텐트 안 놀이문화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열 두 어시 경까지 공연 연습의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그 바로 옆으로는 임시공연장의 전력을 만들어내는 간이 발전기 돌아가는 진동이 바닥을 울려댔다.
5월 6일
자고 있는데 새벽녘에 청년 둘이 지나다가 ‘뭐하시냐?’고 묻는다. 예술 공연 패인가보다. ‘이러이러 하다’고 하니, 알았다고 사라진다. 그나마 텐트치기 안정적인 장소였는데, 이제 위치가 발각되었으니, 의정부에 있을 동안 딴 곳을 알아봐야 할 듯하다.
하루 종일 도서관 전산실에 앉아서 자료 정리를 했다.
[저녁에는 예술의 회관 옆 쓰레기 분리수거장 주변에 텐트를 친다. 반대쪽에는 아마 폐지 더미들이 쌓여져 있는지 파란 비닐막이 씌워져 있었다.]
5월 7일
[길을 가는데 접한 현수막 / 매장 위치를 알리는데 ‘(구)신시가지’??? 가만 머릿속이 잠시 혼란스럽다. ‘신’시가지라 할 것 같으면 ‘구’를 극복한 것일 텐데, 그게 다시 ‘구’가 되었다고? 아이고 복잡해.]
[의정부 시가를 가르는 ‘중랑천’ 전경. 어둑해지는 천 주변 산책로에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수위 아저씨에게 해드렸던 말.
어슴푸레 해지는 저녁. 강원도 지도를 사려고 모 서적으로 향했다. 의정부에서 양주, 동두천, 연천까지 오른 후에는 우회전해서 강원도 쪽으로 넘어가야할 상황이었는데, 과거 경험상 조그만 시군단위에서는 개별적으로 나눠진 도별지도를 팔지 않았다. 하여 그나마 중형급 도시인 의정부 서점 이곳저곳을 전화해서 강원도 지도가 있다는 곳을 알아냈다. 서점가는 길이 좀 복잡해서 한참을 헤매다보니 몸이 피곤해졌고, 지도 구입 후에는 한시라도 빨리 텐트를 치고 묵을 일념 외에는 없었다. 모 학교 가서 텐트치기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 어기적거리고 있으니 수위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나타난다. 하루 묵어 갈 수 있는지 여쭸더니, 애초에 얼굴에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된다’고만 말씀하신다. 어쩌랴 안 된다는데... 학교를 나서서 다른 곳을 찾는다.
물통에 물까지 가득 담아서 배낭을 짊어진 터라, 축 쳐진 어깨로 한참을 어기적거려서 다른 학교에 들어왔다. 이미 세상은 어둑해 진 상태여서 운동장 구석 수돗가 옆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나서. 흐릿한 텐트 윤곽]
쌀을 불려 밥을 해 먹고 나서도 왠지 불안불안 한 기분이다. 이빨을 닦으려고 칫솔에 치약을 뭍이고 나왔는데, 운동장에는 서넛의 남녀가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보였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계속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에서 후레쉬 흔들거리며 가까워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위아저씨가 순찰중인 것이었다. 급 불안해져서 몸 둘 바 모른다. 이런 때는 선제공격에 들어가야 한다. 엄청나게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과 말투로, 주민증을 까 보이면서 ‘인기척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저렇게 돌아다니는데 하루 묵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했다.
하지만 ‘누군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빨리 텐트를 걷으라고 한다. 사정 얘기를 좀 더 해도 역시 안 된다고 하시면서, ‘감시 카메라에 찍혔을 텐데, 다음날 돌려보고 왜 미리 제지하지 않았냐?고 문책 당할 것’을 우려하신다. 그러며 ‘학교에서는 이런 것 칠 수 없다’고 만고의 진리인 것 같이 말씀 하시기에, 다른 여러 학교에서 텐트 치고 하루씩 묵고 왔음을 계속 말씀 드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 친필 각서 쓰고 주민증 적고 하면 신원확인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지’하고 말씀 드리자, ‘그것도 가짜인 줄 어떻게 아냐?’고 말씀 하신다. 인간을 신뢰를 못하시는 모습이 역력하셨다. 결국 어른이 젊은이를 그렇게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은 정확한 반동을 일으켜서, 안양(초등생 살해사건)등의 지역에서는 머리 허연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뭘 물어봐도 대꾸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음이 아닌가.
하여튼 ‘나가라’고 하니 어쩌겠는가? 다음날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뒀던 밥을 화단을 파서 버리고 장비를 걷기 시작했다. 수위 아저씨는 옆에 서서 ‘다른 일도 봐야하는데...’라며, 나로 인해 시간 낭비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셨다. “어르신. 잘 정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니 볼일 보시지요”하면서 나름 예의를 갖춰서 조용히 얘기 드렸지만, 수위 아저씨는 조급한 표정으로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물론 흉흉한 세상 속에 사시다 보니 어느 정도 사람을 경계 할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경계심의 문제를 넘어서 타인의 처지에 대한 아무런 동정심도 못 느끼는 그 차가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둥글이를 박대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접하는 방식이 너무 건조하고 사무적이기만 한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날 벌써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기에, ‘이제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하며 찹찹한 심정으로 배낭을 꾸려 짊어졌다. 수위 아저씨는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젊은 남녀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들의 얼굴에 후레쉬를 비추고 있었다. 황망해 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에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짐을 꾸려 나가면서 무어라 한 말씀 드리고 싶었다. 앞으로 다시 볼 일 없는 차갑고 건조한 분에게 뭔가 한마디를 해야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그 한마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수위 아저씨를 지나치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고개 숙이며 인사드렸다. “어르신. 복 많이 받으셔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학교를 나오면서 한 손에 들고 있던 비운의 칫솔. 치약 묻힌 칫솔을 어떻게 배낭에 꾸릴 수 없어서 그냥 손에 털래 털래 들고 나와야 했다. 그 환란 속에 치약 덩이는 어디 떨어졌는지 온데간데없고...]
유랑 1년 때 까지는 마음이 조급해서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앞으로는 다시는 안볼’ 그들을 향해 “참 인심 박하네요.”라고 쏘아붙이고 나오곤 했다. 이론적으로만 ‘세상이 하나다’.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를 떠벌리고 있었지, 실질적인 공간에서는 그게 쉽지 않고 감정에 동요되어 보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관록이 쌓이는 듯하다. 결국 세상이 다 내 집임을 알게 된 후에는 내가 내 형제들과의 불화를 겪을 때 그것을 잘 뒷수습하기 위해서 숙고를 하듯이, 어차피 한 가족인 ‘그들’에게도 더 이상 다시는 안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결국 ‘어떻게든’ 그들과는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기원한 복은, 그의 자손, 자손의 친구, 친구의 이웃사람 으로 퍼져 나와 결국 나에게 닿을 것이다. 물론 이는 나에게 다시 그 복이 올 것을 원하는 목적적이고 계산적 행위에 의함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버리고, 낮추고, 행한 딱 그만큼 세상은 티끌만큼이라도 나아지고 결국 그렇게 나아진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30여분을 칫솔 들고 헤매다가 중랑천 인근 파출소 옆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
그 바로 앞이 차량 돌아다니는 큰 도로였기 때문에 차들 지나는 소음이 다음날 아침까지 끊이지 않았다.
새벽 2시 30분에 욕설이 들려 잠이 깨기도 했다. 술 먹은 사람들끼리의 다툼인 듯 했다.
누군가 중간에서 중재하고 있는 듯 했다. 이성적으로 풀려질 여지가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 상대방에게 치솟는 분노를 해소할 가장 집약적인 표현으로 ‘*새끼’가 상대방의 존재와 동격화 되고 있었다. 한쪽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야이 *새끼야”하면 이를 받아 약간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야이 *새끼야” 하면서 끝없는 욕설이 오갔다. 한참 그리 주고받다가 한쪽의 세가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의 격돌의 표현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갑 : “야이 *새끼야”/ 을 : “야이 *새끼야”
갑 : “야이 *새끼야”/ 을 : “야이 *새끼야”
...(계속 똑같은 대사 주고받음)
갑 : “이리와 이 *새끼야”/ 을 : “뭐하게? 이 *새끼야”
갑 : “이 *새끼야”/ 을 : “어쩌려고?”
갑 : “이 *새끼야”/ 을 : “그만해!”
아마 한쪽이 두들겨 맞는 듯 했다.
비몽사몽간에 족히 한 시간은 욕설 주고받던 것을 듣고 있었다.
박진감도 없어서 다시 눈이 감고 잠들었다.
그 후로 차 다니는 소리가 시끄러워 한 시간 마다 깨곤 하다가 찌뿌드드한 새날을 맞는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발이 문제이다. 한동안 수돗가 근처에 야영을 한 적이 없다보니 당연히 발 씻을 기회가 없었는데, 꼬랑내가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하도 신고 다녔더니 늘어나서 축 쳐진 상황이다.ㅠㅜ ]
5월 8일
[3만 원짜리 텐트 사다가 2년 반을 넘게 쓰는데, 폴대가 금이 가면서 확 휘어진 상황이다. 과거에도 폴대가 하나에 금이 가는 것을 신호로 나머지 것도 줄줄이 금이 가서 나중에는 손 쓸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텐트를 하나 더 장만해서 폴대만 다시 교체했었다. 1년 반쯤 전이다. 다시 그 악몽이 시작되다니... ㅠㅜ 폴대가 휘니 텐트 한쪽이 쏙 기울어진 모습이다.]
몸이 개운하지 않다. 이제 세수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이 시대 유일하게 빈자와 약자를 차별하지 않고 그 너른 품에 받아주기 위해 두 팔 벌리고 있는 ‘약속의 땅’인 공공화장실로 향한다.
[의정부역 공공화장실/내 세면-배설-급수 등의 생존을 위한 상당수의 활동은 바로 이곳 공중 화장실에서 이뤄지곤 한다. 가난한 나그네에게 텐트 치라고 주차장 자리도 내주지 못하는 교회보다는 이곳 공중화장실이 훨씬 더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곳이다.]
세면 중에 나이 지긋한 분이 지나며 묻는다.
“봉급 많이 버시겠네? 공무원이요?”
“아니요?”
“용역이요?”
“아니요?”
“그럼 뭐요?”
“그냥 사람인데요^^‘”
내 몰골이 있어 보이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일도!
감시당하는 사회
전 전교조 간부 한분이 서울교육감 선거 관련해서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는 중에 참으로 해괴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천리안’ 메일을 사용해 왔었는데 그 모든 주고받았던 이메일 내용을 천리안 측에서 검찰에게 갖다 바쳤다고 한다. 심지어 삭제했던 메일까지 모두 복구해서 모두 모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사생활을 감시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믿고 사용한 천리안 측에 대해 해당 선생님이 분노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자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혹시나 이메일 등을 통해서 그 누군가와 ‘은밀한’ 얘기를 주고받으신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알 수 없는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계신가? 그건 전적인 착각이다. 국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의 모든 것들을 철저히 감시-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분들은 잠재적 범죄자이고, 세상의 그 무엇도 이 전지전능한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신성’하지 않은가?
이러한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가 이러한 ‘통제의 신’을 요구했기 때문의 다름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반영이다’(플라톤) 라고 하지 않았는가?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러한 억압된 사회를 당연시 받아들이면서 ‘민주’ ‘자율’ ‘주체’에 우선한 ‘경제발전’ ‘반공’을 요구하고 있기에 이에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세태가 빚어지는 것이다. 언제쯤 이 나라가 좀 ‘정신 차린 민중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될 것인가?
--- 2009년 5월 8일 경기도 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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