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참가 형제님 명단 | ||
01김정자 아네스 |
11.김종식 파스칼 |
21. severino |
02.김애경 벨린다. |
12.김승희 율리아나 |
대기자 |
03.김순분 프란치스카 |
13.김광희 아나스타시아 |
|
04,김영선 체칠리아 |
14.서희정 마르티나 |
|
05.노병금 바오로 |
15.김정란 마틸다 |
|
06.박순옥 수산나 |
16.유남수 헬레나 |
|
07.박옥희 잔다크 |
17.이국희 모니카 |
|
08.이연숙 율리아 |
18.성인신 모니카 |
|
09.유영재 마틸다 |
19.유경숙 릿다 |
|
10.박건순 가브리엘라 |
20.장은기 데레사 |
|
12월 일정표 | |||
일 시 |
행 선 지 |
세부적인 일정 |
비 고 |
2017.12. 16(토) |
반포대교 남단 |
06:30 까지 집합. |
|
06:30 |
죽전 정류장 |
간이 버스 하행정류장 |
24,5km. 30분 |
07:15 |
경기용인 장촌 |
용인 처인구 이동면 묵리 434 -7 |
30.1km 43분 |
07:40 |
삼거리 |
삼봉산 – 시궁산 삼거리 |
0.8km 20분 |
08:00 |
시궁산 정상 |
|
0.9km 20분 |
08:15 |
삼거리 |
절골 – 미리내 삼거리 |
1km 15분 |
08:45 |
애덕고개 |
|
|
09:30 |
미리내 |
경당에서 참배와 묵상 |
|
10:00 |
|
성모당 묵상 |
|
11:30 |
|
103위 기념성당 또는 성요셉성당 |
미사참례 |
12:30 |
미리내 성지 |
점심식사 |
|
13:00 |
구포성당 |
한국교회 최초 성혈을 만든 곳 |
|
14:00 |
안성 |
하나로 마트 |
17.5km 30분 |
14:40 |
진천 |
백곡 구수리 |
24.3km 40분 |
18:00 |
|
구수리 출발 |
|
19:30 |
반포 |
도착 및 해산. |
|
은이성지는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고 미리내 성지는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으며 양쪽을 잇는 약 9km 성지 순례 길이 이어져 있다. 은이성지는 우리나라역사상 최초의 신부(神父)인 김대건 신부가 성장(成長)한 곳 이자 사제 서품 후 사목(司牧) 활동을 하던 곳이다.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신부 사후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두 지역 사이에는
크고 작은 천주교 박해 당시 교우촌이 있다.
년 대별로 변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초상화 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生涯
1821년 8월 21일 : 출생.
1836년 4월 : 골배마실 이웃의 ‘은이 공소’에서 모방(Maubant)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신학생으로 발탁.
1836년 12월 2일 : 동료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순명과 복종 서약 후 다음날 마카오로 출발.
1837년 6월 7일 : 중국 대륙을 남하하여 마카오에 도착.
1841년 11월 : 철학과정 이수, 신학과정 입문.
1844년 12월 : 만주 소팔가자에서 최양업과 함께 삭발례부터 부제 서품까지 받음.
1845년 1월 1일 : 조선교회 밀사와 상봉하여 조선에 귀국.
1845년 3월 : 서울에서 신학생 2명을 지도함.
1845년 4월 30일: 선교사 영입 위해 제물포 출발.
1845년 8월 17일 : 상해 연안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
1845년 11월~1846년 4월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
1846년 4월 13일 : 은이 공소에서 미사 후 입국로 개척을 위해 서울로 출발.
1846년 6월5일 : 인천 앞바다 순위도에서 체포됨.
1846년 9월16일: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
1857년 9월 23일 : 가경자로 선포됨.
1925년 7월 5일 : 시복됨.
1949년 11월 15일 : 모든 한국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결정됨.
1984년 5월 6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에서 102위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됨.
이곳은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진 경당 외부와 내부 모습입니다.
경당 내부 모습이죠. 한국 천주교 최초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초심(初心)을 생각한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순교하시기 전 신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남기십니다. "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한다" 하시며 미동도 없었다 합니다. 그러나 스물 다섯의 아들이었던 사제는 어머니에 대한 염려는 놓지 못하셨습니다. 그 당시 조선 천주교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 주교님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최초라는 의미는 참 중요하지만 그만큼 무게가 큽니다. 항상 기준 점이 되어야 하니 모든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최초라는 말은 책임감과 함께 특별한 명예로서 늘 존중받는 영광도 누리게됩니다. 그래서 특별히 최초라는 단어가 각인되어 최초라는 성지를 찾아 12월 순례와 걸음 여행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미리내라는 뜻은 은하수라는 의미를 지닌 낱말입니다. 경기지방과 내포 지방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미리내에 숨어들어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밤이 되면 교우들이 켜 놓은 등잔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미리내와 연결점이 있는 은이(隱理)라는 뜻은 숨은 마을이라 뜻이지요. 은이 성지는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고 미리내 성지는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으며 양쪽을 잇는 약 9km 성지 순례 길이 이어져 있다. 은이 성지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신부(神父)인 김대건 신부가 성장(成長)한 곳 이자 사제 서품 후 사목(司牧) 활동을 하던 곳이다.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신부 사후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두 지역 사이에는 크고 작은 천주교 박해시대의 교우촌이 산재해 있다. 은이와 미리 내를 잇는 마을과 계곡, 능선을 따라 연결되는 길목에 있는 고개를 천주교의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의 의미를 살려 명명하였다.
이 길은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사목활동을 했던 길인 동시에, 순교 후에 신부의 유해가 지난 길이다. 이에 따라 은이 성지에서 미리내 성지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세 고개를 신덕(信德) 고개(은이 고개), 망덕(望德) 고개(해실이고개, 장촌 고개]), 애덕(愛德) 고개 (오두재 고개)라 이름 지어 부르며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덕, 망덕, 애덕의 삼덕(三德) 고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신부이자 성인으로 이름나 있는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사제(司祭)로 사목활동을 펼치던 곳이다. 또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용인의 젊은 신자인 이원식 빈첸시오에 의해 수습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지나간 길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대건 신부의 생전과 사후에 모두 연관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김대건 신부의 신앙정신과 순교 열정을 체험하려는 신자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는 정신적 순례 길이다. 미리내 성지는 1972년부터 성역화되고 은이 성지는 1996년경부터 성역화가 시작되었다.
몇 년전 신망애 고개를 넘어 미리내 도착한 순례 길이 있어 12월에는 다른 길을 이용하여 미리내 성지로 접근하려고 한다. 소요시간은 2 시간 30분에서 3시간 소요되는 길이다.
파리외방전교회 공안국 신부님과 성혈.
시내 진산인 비봉산의 지맥인 구포 동산에 서남향으로 건립되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성당은 1,124평 대지에 97평 건평으로 한옥의 부재를 이용하여 1922년 건립하였다. 종탑은 1955년 본 건물에 있던 당초의 정문을 헐고 새로 부착하여 지은 것이며 내부는 좌 우로 마루를 얹어서 2층 공간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성당은 근대 천주교 성당 건축 양식의 특징인 한국과 서양 절충식 성당으로, 초기의 성당 건축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성당은 1920년 성당 건립 운동을 벌인 후 2년 만인 1922년 3월 당시 보개면 신안리 동안 마을 있던 동안 강당을 매입하여 그곳에 건축한 것이다. 본 성당의 기원은 1866년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 안성, 죽산, 미리내, 등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데서 연유된다. 그 후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공안국(孔 安國) 신부 (R.Antonio A Combert) 가 1900년 10월 19일 이곳에 도착하여 민가를 매입 입주한 후 1901년 2월경 정식으로 천주교 본당을 봉헌하였다. 비로서 공세리 성당의 영향 권역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교세를 갖게 되기 시작하였으며 안성을 중심으로 죽산, 진천, 청주권역에 있던 공소를 관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옳다고 가르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 그래서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재생을 가져다 주는 물로 씻김을 받지 않은 사람,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살지 않는 사람, 이들에게는 빵과 포도주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는 빵과 포도주는 일상적인 빵과 포도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순교자 유스티노가 한 말이다.
보편교회의 7성사 가운데 하나인 성체성사는 미사 후반부에 행해진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로, 정교회에서는 성체, 성혈 성사라 한다., 그러나 가톨릭, 동방정교, 성공회에서는 성체를 모시는 행위를 성체를 영한다 하여 영성체라고 하지만.가톨릭 교회에서만 미사 이외 시간에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신심행위를 성체조배 라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병인박해 이 후 한불수호조약으로 일정부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양형 성체에 필요한 성혈 공급이 문제 였다. 이를 염려하고 성혈 공급에 앞장 선 신부가 바로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공안국(孔 安國) 신부 (R.Antonio A Combert) 님이며. 성혈을 공급하기 위하여 안성에 최초로 포도나무를 심은 신부님의 공로가 안성에 포도가 유명해 지는 단초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 보기 위하여 12월 순례지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1900년대 초기에 건설되어 봉헌된 성당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평소 잠겨 있는 성전을 성당측의 협조를 받아 직접 입당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상세한 것은 순례 당일 알려 드리겠습니다. 샬롬!
순례와 걸음 여행 일정을 모두 끝낸 후 山幕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
2017년을 회고하며 형제적 친교를 통하여 서로를 살핀 후 의견을 나누고 추억을 회상하며 2018년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또한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첫댓글 잘 정리된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초심을 잃치않고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주먹밥 싸들고 걸음여행 한다는데
공감 감동입니다~~~
산막에서 일년을 회상 기대합니다
ㅁ
공감, 감동에 감사드리고요. 12월 마무리 잘 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