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대봉. 천의봉(백두대간)
1, 일시
2006.7.9
2, 참석회원
한우리 산악회 30여명
산행기
오늘은 한우리 산악회 정기 산행하는 날이다 산행은 백두대간의 소구간인 싸리재에서 삼수령이다 이 구간은 금대봉과 매봉산(천의봉)이 있는 구간이다 미아리 신세계 백화점 앞을 출발한 버스는 제천을 지나 어느새 정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정선에 못미처 영월군 석항에 닿으면 길은 둘로 나뉜다. 남쪽 길로는 수라리재와 화방재를 넘어 태백에 닿고 북쪽 길로는 정선을 비켜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를 넘어 또한 태백에 닿는다. 태백산을 오르는 초입이 되는 화방재(935m)와 남한 땅에서 가장 높다는 두문동재(1,268m 싸리재)가 모두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고려가 패망할 무렵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는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다하여 이재를 두문동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지금은 싸리재라고 부른다
지금은 정선 태백간 38도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대면서 두문동재를 터널을 뚫어 정선에서 태백간 교통이 아주 편리해 졌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국도에서 벗어나 구도인 도로를 따라 두문동재 정상으로 가고 있다
도로를 따라 한참 오르니 함백산쉼터라는 간이매점이 보인다 매점은 안개 때문에 잘보이지 않는다 문이 굳게 다처 있는 것 같다싸리재 밑으로는 비록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되긴 했지만 시원한 바람 찾아 드라이브 삼아 올라가는 이들이 종종 있어 맑은 날이면 함백산쉼터(전화 019-591-1573)는 대개 문을 연다. 보통 차를 가져갔으면 이 휴게소 옆 공간에 주차한 후 산행 한다 .
고갯마루에 오르니 서울에서 온 국제산악회 회원들이 등산 준비에 한창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고개마루에는 마고할미탑이라고 부르는 오랜 돌무지가 있다, 그 옆에 화장실이 마련돼 있으며. 산행길 입구는 '고원 관광휴양도시 태백' 이라 쓴 대형 간판 바로 옆이다. 여기엔 매년 2월1일, 그리고 11월1일부터 산불위험이 없어질 때까지 입산이 금지됨을 알리는 팻말도 서 있다. 등산안내판도 잘 정비되어 있다
여기 싸리재에서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은대봉, 함백산, 태백산으로 태극을 그리며 이어가는 어간에 백두산에는 천지(하늘 못)가 있듯이 태백에는 황지(은하수 못)가 있었다. 황지는 마을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있어 천황(天潢)이라 부르다가 황지로 바뀌었다한다 지금도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그 연못은 낙동강의 시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북쪽으로는 금대봉을 지나 비단봉을 거처 매봉산으로 뻗어 올라간다 싸리재(두문동재) 정상에 서면 지금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안지만 밝은 날이며 북쪽으로 매봉산(천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봉산의 한 봉우리(1,145m)에서 바야흐로 백두대간과 갈라지는 낙동정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매봉산 위쪽의 백두대간 일부와 한 줄로 그어 태백산맥이라 잘못 부르는 그 낙동정맥은 이로부터 부산 땅 몰운대까지의 천리 길로 이어 진다
함백산과 태백산을 뒤로하고 차단기를 넘어 널찍한 임도를 따라 5분쯤 지나니 길 오른쪽 옆에 헬기장이 있다. 10분쯤 천천히 더 가면 옆에 긴 안테나가 선 헬리포트가 또 나온다. 여기서 50m 더 간 지점에서 오른쪽 헬기장 숲으로 백두대간 종주로 입구가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길로 한잠 오르니 금대봉 정상이다 금대봉 정상에는 표시석과 함께 이정표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안개가 짙게 까려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먼저간 한우리 회원들은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 매봉산으로 가고 국제산악회 회원들만이 기념 촬영을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국제산악회는 여기 금대봉에서 대덕산으로 간다고 한다
강원 삼척 태백에 자리한 금대봉 (1,418.1m)은 산악인보다 자생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널리 알려진 천연자원의 보고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거스르지 않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에 따라 한강은 금대봉 북쪽 고목나무샘 또는 검용소에서, 낙동강은 금대봉 남쪽 새참봉샘 또는 황지에서 태동하여 기나긴 생의 여정을 시작케 하는 어머니의 산이기도 하다.
금대봉은 1993년 환경부에 의해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학자들이 2년동안 현장 조사를 하면서 모데미풀, 대성쓴풀, 한계령풀, 노랑투구꽃 등 희귀식물 16종과 한국 특산식물 15종을 발견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 꼬리치레 도롱뇽 등 희귀동물을 비롯 미기록 곤충 13종도 함께 찾아냈다. 금대봉에 자생하는 식물은 공식적으로는 480여종이며. 실제로 식물학자들은 90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대봉도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조망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대덕산을 등산하기 위해 여기 금대봉을 올라섰을 때 멀리 보이는 정선 카지노와 스키장 골프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안개 때문에 조망이 되지 않는다 안개가 이슬이 되어 바람에 날린다.
금대봉에서 백두대간 길을 따라 한참 내려오니 이정표가 서 있다 그 밑에는 생태보전 지역을 알리는 안내판이 떨어져 있다 우리가 제일 후미인 것 같다 마침 여자회원 두분이 내려온다 간단한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천의봉을 향해 오르고 있다 한참 오르니 1256m봉을 지난다. 능선길이 평탄해서 걷기에 힘은 들지 않는다. 다시 1231m봉을 넘었다. 밋밋한 능선길이 이어진다.1231m봉을 넘어 완만한 비탈길을 내려간다. 급경사지를 한참 내려오니 쑤아발령이다 여기 안내판 밑에서 먼저온 회원들이 간식이 한창이다
다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서니 비단봉이다 비단봉 정상에는 아무련 표시가 없다 표시석이라도 세워놓았으면 좋으련만 조금은 와쉽다 표시석 대신 대간꾼들이 구부러진 나뭇가지에 가지련히 달아놓은 리본들이 비단봉이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비단봉에서 조금 비켜서니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서 산아래를 내려 보니 안개로 조망이 되지 않지만 밝은 날이면 금대봉 함백산 등 조망이 좋을성 싶다
비단봉을 뒤로 하고 한참 내려오니 고랭지 채소밭이 광활하게 펼처져 있다 이곳 채소밭은 지난 80년도 초에 한미재단에서 개간하여 조성하였으며 무려 20만평이나 된다 고랭지 채소밭 옆을 스쳐 지나니 또 채소밭이다 채소밭을 가로 질려 내려오니 고목나무가 있다 고목나무에서 좌측 세멘트 농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한참 진행하니 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 삼거리에서 농기구 보관소를 지나 매봉산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먼저간 선두 대장을 이곳을 지나쳐 버리고 도로를 따라 삼수령으로 하산하였다고 한다
농기구 보관창고 옆을 지나 계속 오르니 산자락에 도달 한다 등산로를 따라 다시 오르니 또 채소밭이 나온다 채소밭을 가로 질려 올라서니 매봉산 정상 등산로다 등산로를 따라 또 오르니 풍력발전소 건립이 한창이자 안개와 공사로 인해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10여분 해매이다 공사장길을 따라 진행하니 인부들이 보인다
인부들에게 백두대간길이 어데나고 불으니 차량이 다니는 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라 한다 조금 진행하니 안개속에 커다한 풍차기둥이보이며 위를 바라보니 무지무지한 풍차 날개가 내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 풍차 밑을 지나니 숲속 나무에 백두대간 길임을 표시해 놓은 리본이 보인다 한참 진행하니 정상 50m직전에서 좌측 등산로에 대간 꾼들이 리본을 많이 달아 놓았다 등산로를 따라 한산하면안된다 우측으로 올라서야 매봉산 천의봉이다
천의봉을 일명 매봉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황지동 대명광업소가 있던 아래쪽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윗쪽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다. 연일 정씨 묘로 금계포란 형국의 명단이라 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면 천의봉이 매(鷹)처럼 바라 보이기에 매봉이라 부른 것이다. 금계포란은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의 명당인데 이럴때 매나 수리가 이곳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인위적으로 천의봉이 매봉이라 불리워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다른 설은 이곳에서 매사냥을 하였다고 해서 매봉산이라고 불리었다는 설이 있다
매봉산을 떠나 비탈길을 내려간다. 등산로가 끝나면서 광활한 고냉지 배추재배단지가 또 나타난다. 말로만 듣던 태백 고냉지 배추재배단지이다. 태백에 가서는 배추농사꾼 앞에서 돈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바 있지만 재배단지가 이렇게 대규모인지는 미처 몰랐다. 배추밭 때문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배추밭이 엄청나게 넓은데다가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배추재배단지 진입로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경사가 꽤 진 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내려가도 피재 삼수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 마침 산중턱쯤 도로가에 [예수원 분수령목장농장]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목장 옆 등산로로 접어들어오니 아스팔트길을 가로 질려 내려 올수 있다 매봉초지 표시판도 보인다 바로 옆이 목장인가보다 철조망과 전선줄이 설치되어 있다 조금더 내려오니 피재[920m]다.
피재는 삼수령[三水嶺]이라고도 한다. 낙동강, 한강, 오십천이 여기서 발원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피재는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이 한강,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으로 갈라져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로 흘러든다는 고개. 그래서 삼수령이며 일명 ‘피재(920m)’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옛날 세상이 어수선해 지거나 난리가 나면 사람들이 피난 들어오던 곳이라는 유래를 간직한 고개이다. 태백과 삼척시 하장면, 정선군 임계면을 이어 주는 재다. 낙동정맥은 바로 이 피재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온 회원들은 식사가 한참이다 모두들 천의봉을 들르지 못하고 농로를 따라 먼저 하산 하였다한다 식사를 끝내고 몇몇 회원들과 기념조형탑과 팔각정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주변 경관을 둘려보니 경관이 빼어나다 조형탑 돌에는 아름다운 전설을 새겨놓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명(命)으로 빗물 한가족이 대지(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삼수령(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 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주고 있다.
모든 산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빗물가족이 우리의 산행을 돕기 위해 기다리다 지쳐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빗물가족은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으로 각자 헤어져 향하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태백시를 가로 질려 서울로 향하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단언했던 태백은 한 때 석탄생산의 보고로 흥청거리던 도시였으나 석탄합리화 사업으로 탄광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여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생계마저 막막한 곳으로 변했으나, 지금은 탄광도시에서 고원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2006.7.12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