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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게 사는 법
불가사리 #31 with Mani Neumeier @ 살롱 바다비
독일에 크라우트 록이라는 장르가 있다.
그 중에서도 GuruGuru라는 팀은 민속음악의 요소와 재즈의 즉흥적 요소가 젊음의 혈기와 더해지면서 많은 이들의 ‘학을 떼게’ 만든 그룹 중 하나였는데, 그 팀의 드러머가 바로 Mani Neumeier로 프리 재즈에 몸담고 있던 27세에 GuruGuru를 결성하여 음악을 했고, 팀의 해체 이후에도 인도/아프리카 등을 돌아다니며 민속음악을 배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66세의 나이에,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3월 11일~13일의 3일간 공연을 했는데 이틀만 하기로 되어 있던 것을 Mani씨가 ‘하루 놀아서 뭐하냐’고 3일 연속 공연을 제의했다고 전해진다. 11일은
1.
인디속 밴드이야기 에디터 회의를 마치고 맹 하니 앉아있다가 시간이 늦어버려서 서둘러 바다비로 향했더니 이미 Mani씨는 드럼 앞에 앉아서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드럼 심벌에 작은 심벌즈를 달아놓은 것 빼고는 특이한 세팅은 없이 브러쉬/스틱을 이용한 연주였다. 재즈 드럼의 현란한 엇박과 장식음이 인상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끈질기게 반복되는, 꿈틀대는 느낌의 선율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주술사가 치는 드럼의 느낌 같달까. 몰입해 들어갈수록 넋놓고 보게 되는 재즈의 화려함보다는 직접 플로어에 나서서 박수 치면서 노래부르고 춤이라도 춰야 되는거 아닌가 하는 느낌의 연주. 중간에 자주 템포를 바꾸거나 리듬 구조를 바꾸면서 이러한 ‘선율’을 진행시키고, 강한 긴장에서 명상적인 진행까지 왔다갔다 하는 낙폭이 큰 연주는 일품이었다. 입장한 다음에도 약 10분 가량 연주를 했으니까, 15분 정도 연주.
2.
흥부하고 흥부마누라 톱질하는 듯한 알콩달콩한 느낌이었다. 각자 손북을 들고 탕탕 두들기다가, 한 리듬을 둘이 분업해서 연주하기도 하고, 연주하다가 다른 사람의 북을 몰래 때리기도 하면서 ‘재밌게’ 놀았다. 정말로 ‘놀았다’. 중간중간 악기를 여러 가지 바꿔 사용하기도 했는데, Mani씨가 줄을 당겨서 소리내는 악기를 가지고 관객석으로 뛰어들어 사진 찍고 있는 사토氏와 글을 쓰는 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_- 말이다.
3.
대강의 세트가 마무리되자 Mani씨는 플로어 탐을 무대 가운데로 꺼내더니 실로폰 같이 생긴 악기를 위에다 얹어놓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레이코氏가 팔짝팔짝 뛰면서, 둘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때 유행했던 Enigma의 “Return to innocence”에 삽입된 인디언 민요같기도 했고, 굿판에서 무당 작두타면서 부르는 노래같기도 했는데 아마도 아프리카 쪽의 주술에 쓰이는 음악을 따라한 듯 했다. 아주 단순한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면서 연주를 벌였다.
4.
이번에는 Mani씨가 갑자기 이상한 자루를 들고 공연장 안을 돌아다닌다. 뭐가 들어있는지 왈각달각하는 소리가 굉장히 심하게 들렸는데, 들고 다니다 말고 가끔 점프를 하기도 하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기도 하면서 유머러스한 진행을 잠깐. 그리고 내용물을 쏟았는데, 스테인레스 접시였다. 접시로 뭘할까…… 역시 두들겼다. 공연장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 밑으로 접시를 밀어넣고 때리기도 하고, 때려서 접시를 공중으로 띄우기도 하고, 띄워서 다른 접시 위에 얹기도 하고, 발로 밟아서 울림을 조절하면서 때리기도 하고, 띄운 접시를 ‘돈치기(지역에 따라 이름이 하도 여럿이라 무난한 이름을 골랐다)’ 하듯 뒤집고 또 뒤집고 또 뒤집고… 그러면서 각자의 접시들이 가진 음색의 변화를 가지고 선율을 끌어내고, 리듬을 그 위에 덮어 씌우면서 리듬진행을 이끌어내는데, 환성이 턱 밑까지 차올랐으나 맘대로 소리지르기가 미안해서 곡 끝날 때까지 꾹 참아야만 했다.
5.
이번에는 사토 유키에와 Mani Neumeier의 듀엣. 사토氏가 들고 온 장난감들을 들고 연주를 시작했는데, 목욕탕에서 쓰는 고무 오리부터 시작해서 태엽으로 가는 소방차, ‘띠용’소리를 내며 발사되는 플라스틱 펀치까지, 다채로운 장난감 자체의 소리들을 사용해서 리듬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펀치로 서로를 가격하기도 하고 손에 든 플라스틱 Chainsaw로 위협을 가하기도 하면서 적당히 분위기가 고조되자 Mani는 드럼으로, 사토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탁상위의 기타’로 옮겨갔다.
Mani는 중간중간 장난감 톱을 사용하고 휘슬을 불기도 하면서 드럼을 치기 시작했고, 사토는 기타에 이런저런 장난감들을 얹어놓고 작동시키면서 그 소리를 기타 픽업에 먹였다. 그러다가 중간부분부터 군용국자와 가는 철사를 이용한 연주를 시작했는데, 철사를 기타 줄 사이에 잔뜩 끼우고 손으로 치거나 국자로 브릿지 부분을 가격하면서 연주를 이끌어나갔다. 재밌는 점은 사토 유키에가 이전에 펼쳤던 연주가 음향을 하나하나 실험하는 인상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루브와 강렬한 소음에 가까웠다는 점.
6.
잠시 쉬었다가 Joe Foster의 연주. 이번에는 기본 세팅인 자신의 악기 외에 Bonnie Jones의 회로기판까지 같이 들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회로기판 연주는 아직 서툰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Mani Neumeier가 공연장 뒤를 지나 바 안으로 들어가더니 물을 컵에 따르기 시작한다. 아니 이 사람이 공연을 하는데 방해를 놓는건가 하고 계속 공연을 보고 있는데, Joe Foster 연주에 미묘한 사인파가 섞여들기 시작한다. 후딱 뒤를 돌아봤더니 Mani가 컵에 물을 따라놓고 모서리를 마찰시켜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던 것.
아하… 물 따르는 소리로 연주를 한 거구나 했더니, 실제로 무대 앞쪽으로 나온다. 두 개의 컵의 물 따르는 소리로 Joe Foster의 연주의 Backing을 자처했는데. 그의 연주에서 물의 느낌을 받은 것일까? 그의 연주 중간중간 물 따르는 소리가 들리자 실제로 잘 얽혀 들어간다. Joe Foster가 트럼펫으로 가르륵 하는 소리를 내자, Mani Neumeier 실제로 양치질하면서 가르륵 하는 소리로 받는다. 그리고, Joe Foster가 마이크의 피드백을 극대화시키는 연주를 펼치자 Mani 역시 자신의 실로폰 비스무리한 악기로 리듬을 얹는다. 사실 전에 봤던 Joe Foster의 연주는 음향 자체를 파고드는 느낌으로, 진행성을 크게 중시하지는 않는 느낌이었는데, Mani의 실로폰 연주가 곁들여지자 전자 Mantra같은 인상을 주는 강한 음 덩어리로 변신하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7.
이어 등장한 팀은 Astronoise.
최준용
8.
9.
사실 이 세트를 마지막으로 끝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시간도
사토씨의 “Astro – Start”를 신호로
전반적인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Joe Foster가 일반적인 음량, 그러니까 보통 재즈 트럼페터들이 부는 음량으로 음을 ‘쏟아내는’ 걸 최초로 본 Set이기도 했고, 점잖아 보이는
덕분에 차는 끊어지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도 아. 오늘 공연은 참 좋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 그럼 총평.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Mani Neumeier였고, 실제로도 멋있는 연주였다. 그가 무대에 오른 시간은 거의 2시간에 육박했다. 하지만, 그는 그 마라톤 레이스가 끝난 후에도, 피곤해하기보다는
음향 실험이라고 할 Joe Foster의 피드백 노이즈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잡아내고 그러한 이미지를 물소리와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몸의 리듬으로 표현해내는 것 / 몇몇 이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 극단적인 노이즈에서 새로운 표현을 읽고 과감하게 자신의 세트로 끌어들이는 배포 / ‘자 이제 마무리를 지어볼까요’ 하는 분위기에서도 ‘좀 더 하자’는 듯 새로운 리듬을 펼쳐내는 끈질김(개인적으로 ‘와 저 노인네는 지치지도 않는구만’ 하고 놀랄 지경이었는데,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궁금해 지기도 한다).
그 뿐만인가. 공연 중간에 객석으로 뛰어들거나, 관객 한 명 한 명의 몸 움직임을 지켜보는 듯 관객석을 쳐다보며 연주하는 모습, 또는 Joe Foster의 진중한 연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마이크에 대고 양치질을 하는 유머감각, 무대 위에서 한 발로 팔짝팔짝 뛰거나 같이 연주하는 사람을 장난감 톱으로 공격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마저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Mani Neumeier가 이런 마인드로 음악을 해나간다면, 100살까지도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인 슬럼프로 1주일간 리뷰를 안 쓰고 미뤄뒀더니 공연 내용과 그 흥분을 많이 잊었다는 것. 그리고, 3일 공연을 전부 보지 못했다는 것. Mani를 붙들고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하기를 잊었다는 것.
'오바' 아니냐고? 사실 좀 '오바'다. 그러나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다. 그 흥분과 감흥을 얼마나 전하고 싶었으면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아아 다시금 감동 ;ㅁ;
기사작성 20050321
작성자 neubauten
첫댓글 잘봤습니다 다시 한번 오시면 꼭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