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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노협>주간노동정세동향 102호(1/18)
[노조의 각종 회의, 모임 때 돌려 읽고 토론합니다]
□노동소식 : 1)삼성전자 일주일 새 2명 자살, 고 김주현 부친 일인시위
2)발전노조 탈퇴공작 회사측 문건 공개돼
□ 노동관련법 : 지난해 체불임금 1조 1천6백억 원
□ 노동시론 : 아직 해결되지 않는 과제들, 아니 새로운 임무들!
0 붙임자료 : 삼성전자의 강압적인 노무관리가 사원을 죽였다.
□ 노동소식
1)삼성전자 일주일 새 2명 자살, 고 김주현 부친 일인시위
삼성전자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외형상 사인은 자살이지만 그는 병들어 죽었다. 그를 희생시킨 몹쓸 병은 바로 삼성병이다. 최근 잇달아 죽음에 이른 삼성의 백혈병 노동자들의 근본적 사인도 삼성병이다. 그 증상은 조직에 대한 복종과 과로를 강요하는 억압적 노동규율과 무노조 경영이다. 이 병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노동자를 병들게 한다. 삼성병은 돈만 더 주면 그만이라는 우리사회의 팽배한 물신주의를 숙주삼아 창궐하고 있다.
고인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이 병들어갔다. “제가 어떻게 일하는지 아세요…”라고 호소했지만 가족들조차 초일류기업으로 포장된 삼성의 치명적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은 본질상 임금노예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인권선언이며 권리장전이다.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죽음만은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민주노총)
삼성전자 LCD 사업장 내 기숙사에서 자살한 고(故) 김주현(26)씨의 부친 김영복씨가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며 17일부터 일인시위에 돌입했다. 앞서 고 김주현씨는 지난 11일 우울증으로 인한 2개월 병가 휴직 후 복귀일인 이날 이른 아침에 회사 기숙사 13층에서 투신자살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을 조사한) 해당 경찰서는 자살과 관련된 동기가 따로 있는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조사도 없이 서둘러 단순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며 경찰의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고인의 발인은 삼성 측의 사과를 받을 때까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민중의소리)
2)발전노조 탈퇴공작 회사측 문건 공개돼
한국동서발전 일산사업소가 민주노총 소속인 한국발전산업노조 탈퇴 공작을 벌이고 노조 조합원들의 성향을 작성한 '발전노조 탈퇴 투표결과에 대한 원인과 대책' 문건이 15일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조합원들의 정확한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사쪽의 주도하에 투표함 극비 개봉 시도 정황도 담겨 있다.
동서발전노조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지난해 11월 18-23일 5개 발전사업소 산업별 노조인 전국발전산업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설립을 위한 찬반투표를 추진했다 부결 된 바 있다. 문제는 당시 노조 탈퇴를 사쪽이 주도 했다는 문건이 나온 것. 일산사업소 명의로 된 이 문건에 따르면 발전노조 탈퇴에 찬성한 직원은 겉과 속이 하얀 배로 표시했다. 탈퇴 찬성과 반대 입장이 애매하면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로, 실제 투표가 진행되어도 노조 탈퇴 반대를 고수 할 것으로 보이는 조합원은 겉과 속이 모두 빨간 토마토로 구분했다.
심지어 투표가 끝난 후에 일산조합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분석 관리하기 위해 투표함 발송전일 11월 22일 22시에 노무차장 주관하에 극비로 투표함 개봉을 시도한 정황도 문건에 나타나 있다. 문건은 “선거관리위원 등 관련자 4명중 3명은 적극 동의하였으나 1명이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득에 실패했다”고 당시 투표함 개봉시도 과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문건은 또 당시 탈퇴 투표 과정에서 노골적인 탈퇴 반대를 표출한 조합원을 조직화합 위해 직원으로 규정하고 근무형태 변경, 기피보직 부여, 사업소간 이동 등의 근무환경 변화 추진과 생활연수원 입소, 포상 등 인센티브 철저 배제와 같은 근무 차별화 정책도 계획했다.
실제 5개 발전회사 노사업무본부는 2009년 10월 “노사관계 환경변화와 선진 노사관계 연구용역”을 동화노무법인에 발주해, 2010년 07월에 “노사관계 환경변화와 선진 노사관계 연구”라는 최종 용역보고서 받았다.
이 용역보고서는 복수노조 허용이 대정부 투쟁과 이념 지향적인 발전노조 운동노선에 반대하는 계층의 조합분열로 이어질 것이라 진단하고 복수노조 발생 전 시기를 발전노조 와해를 위한 1단계로 봤다. 이 1단계에선 노무 인력과 노무 예산 확충, 노무 스텝에 인사 상 메리트 부여, 인력과 예산의 전폭적 지원, 불합리한 단협 변경, 특히 인사 및 경영권 침해, 과도한 조합활동 개선 등의 계획을 세웠다.
이어 복수노조 발생 시기를 발전노조 와해를 위한 2단계로 보고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어떻게 복수노조가 발생하고 민주노조가 무너지며, 어용노조가 득세하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살폈다.
마지막 3단계는 발전노조 와해의 완성단계로 보고 협력적 노사관계 확보 -> 성과주의 인사제도 정착과 고충처리 시스템을 확대하여 노동조합으로의 조합원 집중을 원천 차단, 확실한 성과주의 인사제도로 노동조합 원천 무력화 등이 제시됐다. (참세상)
□ 노동관련법 : 지난해 체불임금 1조 1천6백억원
2010년 전체 산업 체불임금이 1조 1천6백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체불임금 최소화, 서면근로계약, 최저임금 준수 등 3대 고용질서 확립에 나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체불임금은 1조 1,630억 원, 체불 근로자 276,417명으로 2009년 동기 대비 13.4%(1,808억 원) 감소했지만 2008년 동기 대비 21.6%(2,069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다음달 1일까지 ‘체불임금청산 집중지도기간’을 설정해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지방고용노동관서별로 ‘체불임금 청산지원 전담반’을 가동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기로 했다.
체불임금 최소화와 함께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도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2009년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서 전체 임금근로자 약 1천6백만 명 중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는 약 2백만 명으로 임금근로자 10명 당 1.3명이 최저임금액 미만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최저임금의 상승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근로자는 233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5.9%를 차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청소년들이 겨울방학을 맞아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어 이날부터 다음달 20일까지 지난해 ‘최저임금 4110 지킴이’에 신고 접수된 616개 사업장과 청소년들이 많이 일하는 주요소,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 1,860여 개소에 대해 ‘겨울방학 연소자 다수고용 사업장 근로감독’을 집중 실시하기로 했다.(참여와 혁신)
□ 노동시론(時論) : 아직 해결되지 않는 과제들, 아니 새로운 임무들!
2009년 12월 31일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0년 1월 1일부터 노동조합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다닌 직장인데 현장에서 별 다른 저항의 구심도 마련 못하고 나오게 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언젠가 또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현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우리환경 현장위원회 파업투쟁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조직의 사활을 걸고 투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위원장을 비롯해서 모두가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2009년 12월 7일부터 빨려들 듯 들어갔던 파업투쟁. 년 말 고용승계가 불투명해지면서 극한 위기상황까지 치닫던 파업투쟁은 마침내 1월 8일이 되어 조합원들의 고용승계가 확장되면서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고용승계가 확정되고 전 조합원이 근로계약서 작성을 마친 후 사무실에서 마지막 구호 선창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참을 수 없었던 눈물이 떠져 나왔고, 함께 해 주었던 가족대책위 어머님을 얼싸안고 함께 눈물 흘렸던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구정이 지나 본격적인 임단협 투쟁이 시작되었고, 비슷한 시기 재활용선별장 해고자 4명이 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폐기물연료화시설에서 분회가 설립되면서 조합원들의 평균연령이 급격히 하락(?)했다. 재활용선별장 해고자들이 투쟁으로 현장복귀를 하고 본격적 임단협 투쟁, 연료화 시설의 임단협 투쟁이 이어졌다.
얼마 후 영월석회광산에서 60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하여 힘겨운 단협투쟁이 진행되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현장이 3개 회사로 분리되어 고액 노무사들이 3명이나 투입되면서 노조 깨기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왔다. 당시 조직역량 상 3개 회사 단체교섭을 거의 나 혼자 주도하고 다니면서 서울일반노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울일반노조의 진정한 연대에 고마움을 전한다. 고급 노무사를 동원하여 노조 깨는 것에는 돈 아끼지 않던 자본가들이 노동자 임금은 한 푼도 못 올린다고 하니. 그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부족 탓인지 결국 조합원들 전원의 탈퇴서가 노동조합에 내용증명으로 도착하면서 영월의 도전은 별 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패배했지만 많이 배웠다.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미루었을 뿐이다. 한동안 사측 놈들 얼굴이 꿈속에 나올 정도로 억울하고 이가 갈렸지만 언젠가는 멋지게 박살내 줄 그 날을 기약하고 있다.
작년 중반에는 횡성에서 체불임금 때문에 50여명이 들어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나갔다. 춘천에서는 5명밖에 안 되는 현장에서 ‘악질관리자 퇴출’을 요구하며 악착같이 임단투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13일부터 시작한 재활용선별센터 투쟁은 지역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었고 결국 또 한 번 업체를 날리고 고용승계 되는 성과를 남기고 2차전을 준비 중이다.
2010년 내에 해결하지 못한 남은 과제들이 있다. 가로반은 아직 인력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재활용선별장 고용승계과정에서 원직으로 복귀하지 못한 한명의 조합원을 원직에 복귀시켜야 한다. 연료화 시설의 임협을 승리하고 시설의 정상적 운영과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직영화 투쟁에 구체적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세력들과 이론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 춘천 현장을 빨리 안정화 시키고 춘천에서도 지역연대 투쟁이 강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역본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사북, 태백의 조직화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남은 과제들이 아니라 새로운 임무들이다. 지역 노동자 투쟁에 활력을 불어 넣고 새로운 기풍을 세우기 위한 새로운 임무들이다. 투쟁의 경험과 기풍을 밑바탕으로 올해는 강원지역노조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 노동상담 사업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별도의 기획을 마련하고 있다. 사업은 더욱 확장되어 갈 것이다.
2011년 상담사업 체계화, 중단 없는 연대투쟁, 지역노조 건설 사업에 조직의 모든 역량을 걸고 박차를 가하자! 투쟁!! (중부지역일반노동조합 정인탁)
0 붙임자료 : 삼성전자의 강압적인 노무관리가 사원을 죽였다.
자칭 초일류기업이라 하는 삼성전자의 노무관리는 사원을 위한 인사가 아니다. 고 김주현씨는 회사업무에 대한 힘든 장시간 노동과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피부병발병 등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병가 2개월을 내고 병가기간이 끝나 회사 복귀릏 앞두고 불안과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한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고 다시 약물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의사 소견서를 근거로 1개월 병가를 연장신청을 했지만 김주현씨는 병가연장이 거부되어 복귀 후 첫 출근하는 날 새벽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만약에 회사담당자가 실제 1년도 근무하지 않은 김주현이 업무상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말과 당시 의사소견서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를 통한 병가연장 조치만 취했더라면 김주현은 결코 자살하는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담당자는 결론적으로 김주현의 투신자살에 책임이 있다. 회사담당자와 고 김주현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 갔었고 왜 본인의 절박한 호소와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병가연장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등 규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고인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여사원 투신 후 각 층 창문에 안전장치를 했어도 살았다. 1주일 전 상아동 여자기숙사에서 여사원이 투신자살하였다. 여사원 역시 휴직상태에서 휴직이 끝나 현장복귀를 위해 회사를 방문하였다가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스무네 살의 꽃다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역시 사건에 대한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사원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떠돌고 있다.
고 김주현씨 유족들에 의하면 김주현이 투신자살을 한 이후 남자기숙사 가넷동 13층 창문이 열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고 한다, 창문은 공기환기를 위해서인지 겨우 손이 드나들 정도로만 열리고 모기망을 설치하여 13층 창문을 통해 투신현장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주일 전에, 마주보는 기숙사에서 여사원이 투신자살을 했음에도 삼성전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내기보다는 사건을 은폐하기에만 혈안이 되었지 예방조치는 취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사원들의 죽음을 방치한 셈이다. 고 김주현의 투신자살이 언론에 알려지고 사회문제화 되자 책임추궁을 회피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서둘러 투신방지를 위해 창문마다 안전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여사원의 투신이후에 문제의식을 갖고 창문마다 사전예방조치만 하였더라도 김주현은 13층 창문을 통해서 투신자살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 김주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삼성전자에 의한 타살인 것이다. 현장에서는 고인의 죽음과 유족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사실규명을 방해하는 소문들 즉 고인의 피부병은 개인적인 질병인데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는 악의적인 소문 등이 고의적으로 유포되여 고 김주현씨의 죽음과 유족들을 매도하고 있다.
강압적인 노무관리와 퇴사종용이 고인들의 죽음을 가져왔다. 지난 1월 3일 투신자살한 박 모(23)씨는 2008년 입사하여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2010년 5월부터 3개월간 병가를 냈던 박 씨는 다시 회사 측으로부터 6개월 간 휴직을 권유받고 쉬던 중에 기숙사를 찾아 18층에서 몸을 던졌다.소식을 전한 관계자는 "故 박 씨는 평소 삼성에 대한 애사심이 강해 복직을 강력하게 희망해 온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사측에서 퇴사를 종용한 게 아닌가 하지만 유가족이 더 이상이 이 문제를 다루는 걸 원치 않아 확인할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1/12 프레시안 기사 내용 중>
김주현이 투신할 때 옷을 입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고, 고인이 병가를 신청하자 회사담당자가 병가를 연장할 것 같으면 아예 퇴사를 하라는 말에 고인들이 더욱 충격을 받아 투신자살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말들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인들의 투신자살 관련 증폭되는 의문은 사소한 점이라도 밝혀야한다. 투신장소 훼손 방치와 CCTV 새벽 6시 47분 영상에는 고 김주현이 13층 문을 열고 그 위에 앉아 있는 모습만 있을 뿐,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더군다나 몇 시에 6층 기숙사를 나와 13층 창문에 앉은 시간은 몇 시 몇 분인지 그리고 창틀 위에 얼마동안 앉아 있다 투신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고 고인의 아버님은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 시간에 CCTV 관리자는, 그 시간에 고인이 자신의 방을 나와 13층 창문에 걸터앉아 투신하는 순간까지 무슨 조치를 취하였는지, 사람이 투신하여 사망한 사건임에도 현장을 보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도 밝혀내야 할 것이다.
또한 투신 현장을 훼손하여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과 현장사진을 유족들에게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를 명백하게 밝혀내어, 왜 ‘현장을 훼손하였는지’와 왜 ‘증거를 인멸하였는지 책임을 물어, 삼성전자의 의도적인 사건은폐 행위를 폭로하고 고인들이 투신자살을 선택하게 된 사실을 규명해야 하는 일이 유족들과 산자인 우리의 책임이다.(삼성일반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