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미연은 '여자 최민수'와 '가을 모나리자'라는 극단적인 별명 사이에 존재해
왔다. 이른 결혼과 쿨한 이혼, 똑똑한 자립, 논쟁하는 여배우 등으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투쟁해온 것이다. 이미연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가 '인터뷰이'로서
탁월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Photographed
by Cho Sei Hon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다소 흥분되어
있다. 커피를 마시고 <보그>사무실이 있는 두산타워 26층 창
밖을 내려다보고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뒤척이다가 키보드 앞에 앉으니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나는 조금 전에 이미연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검정 티셔츠에 줄무늬가 있는 빨간 형광 아디다스 추리닝(!), 흰색 하이
힐을 신고서 그 큰 입으로 시원스럽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며칠 전 질 샌더
쇼장에 모델로 섰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아주 이색적인 '룩'으로). 나는
얼떨결에 "참 예쁘시군요!"라고 말해버렸다. "고마워요. 사실 어젯밤 20분밖에
못 잤거든요." 나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밤새 '이미연'이라는 악몽에
시달렸거든요'라고 말하는 대신 "저런, 보충 촬영이라도 있었나요?"라고
동정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요, 밤새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어요."
이미연의 얼굴에 잠시 쓸쓸한 기운이 비쳤다 사라졌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이
앉아 있던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내게 권하며 그녀 자신은 원형 보조 의자에
옮겨 앉았다.
이미연을 만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이미연의 실체에 대한 가설들을
늘어놓았다. 화통한 반면 섬세하고 극도로 예민하지만 대체로 사려 깊고,
다혈질이지만 사랑스러우며, 자존심이 강하고 기가 세지만 그만큼 상처 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등등. 그건 마치 '여자 최민수'와 '가을 모나리자'라는
그녀의 두 가지 별명만큼이나 상반된 평가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중학교
때 별명은 심지어 '야생마'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으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미연이 그 조그만 나무 의자 위에 호방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기 때문이다(상상해 보라, 추리닝을 입고 가부좌를 튼
여배우를!). 내가 "이봐요, 미연 씨, 나는 여배우가 그런 옷을 입고
그런 자세로 앉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에요"라고 하자, 그녀는 부드럽고
친화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제가 좀 다르죠? 다른 여배우들과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고,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지난 밤 내 악몽의 실체였던
'여자 최민수'라는 별명에 대해서 물었다. "그 별명은…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3년 전 이병헌 씨를 통해 전해 들었어요.
그건 아마도 내가 드물게 '투쟁하는 여배우'라서였을 거예요." 투쟁하는
여배우? "가령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장면을 연기해야 할 때, 나는 감독들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죠. '이건 내 느낌일 뿐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서요."
그녀의 크고 빠른 목소리를 들은 제3자들은 그 상황을 '토론'이라는 점잖은
텍스트 대신 '싸움'이라는 드라마틱한 용어로 정의해 바람결에 실려보냈다.
어찌 보면 '투쟁하는 여배우'에 관련된 오해는 이미연의 삶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다. 좀더 극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그래도 드라마 <명성황후>를
중도 하차한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어요." "그렇지요? 정말 비운의 국모예요.
그분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 그 일로 아쉬워할 만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합쳐도 나만큼은 못할 겁니다." 지난 1년간 이미연은 드라마
<명성황후>의 중도하차와 영화 <흑수선>의 '시대착오적인'
노역 분장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다. 이번에 촬영한 영화 <중독>의
박영훈 감독(그는 이미연의 대학 선배로 동국대 소극장에서 종종 그녀와 마주쳤다)이
그녀에게 3년 전에 제의했다가 아쉽게도 영화화되지 못했던 작품도 바로 '명성황후'였다.
"그때 이미 난 뮤지컬과 몇 권의 책을 독파한 상태였죠." 그때의 열의가
스물 두 살 이후 8년 만의 TV 연기를 결정하게 만들었지만, 애초 굳게
약속한 100회 방영은 지켜지지 않았다. "배우는 촬영일자에 맞춰 에너지를
분배합니다. 특히나 카리스마가 강한 배역은 더더욱." 시간이 지연될수록
그녀는 스트레스성 천식과 신장염에 시달렸고, 더 이상 베스트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방송국은 거대한 공룡이다. "고집 부리면 따라오겠지,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연기자들이 다 그러니까요." 하지만 공룡의 결정은 'very
bad thing'이었다. 일방적으로 배역이 교체되고 연장 방영된 이후,
시청률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진 채 막을 내렸으니까. "참으로 슬픈 일이에요."
14년 전, 버버리 코트 뒤에 숨어 청순한 미소를 지었던 가나 초콜릿의
CF 소녀는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와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고는 백합 같은
이미지가 절정을 이루던 스물 다섯에 결혼을 했고, 한동안 잊혀졌다. "얼마
전 누군가가 서른 살을 맞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말했죠. 내게는 스물 다섯 살이 이미 서른 살이었는 걸요." 그렇다. 그
시절 그녀는 '결혼이 죄가 아니잖아요'라고 항변하면서 내면의 열정을 삭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 출연한 첫 작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 시절 이미연의 자전적 슬픔이 녹아 있다. 이미연은
사랑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결국 성공한
남편의 은근한 멸시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영선'역으로, 강수연, 심혜진을
제치고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여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강수연, 심혜진이라는 당대의 여배우들과의
작업은 후유증을 남겼다. "연기보다 환경이 더 장애였죠. 사람마다 호출
시간도 차별적이고, 불필요한 신경전에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당신이 어린 여배우들에게 그런 존재일 수도 있겠군요"라고 나는
짓궂게 물었다. "글쎄요, 혹시나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우선 후배들에게
잘 웃어주겠어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전도연·이혜영 커플'을 의식한
질문, '그렇다면 어떤 여배우와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미숙 선배 정도라면 함께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내
상상에 이미숙과 이미연, 그 두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라면 <델마와 루이스>풍의
터프한 여성 버디 무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