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趙州 ] , 그는 누구인가? - 선문답 / 선종 / 불교 / 화두 / 종심
조주[ 趙州 ]
출생 - 사망이명
당나라 때의 임제종(臨濟宗) 승려.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제자로, 법호는 종심(從諗)이고, 속성(俗姓)은 학(郝)씨며, 당나라 청주(靑州) 임치(臨淄) 사람이다. 일설에는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린 나이에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 일설에는 靑州 龍興院)에서 출가했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전에 지양(池陽)에 가서 남전보원을 참알(參謁)하니 남전이 큰 그릇으로 여겼다.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에 가서 수계(受戒)하고, 얼마 뒤 남전에게 돌아와 20년 동안 의지했다. 처음 남전을 찾았을 때 남전이 “어느 곳에서 왔는가?”라고 물으니, 조주가 “서상원(瑞象院)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남전이 다시 “그러면 서상을 보았는가?” 물었는데, 조주가 “서상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님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남전이 “너는 유주(有主) 사미냐? 무주(無主) 사미냐?”라고 묻자 조주는 “유주 사미입니다.”라 했고, 남전이 “주가 어디 있느냐?”고 하니 조주는 “동짓달이 매우 춥사온데 건강은 만복(萬福)하십니까?”라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황벽(黃檗)과 보수(寶壽), 염관(鹽官), 협산(夾山), 오대(五臺) 등 여러 대덕(大德)들을 찾아뵈었다. 여든 살 때 사람들이 조주(趙州) 성 동쪽 관음원(觀音院)으로 모셔 거처했는데, 40여 년 동안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일찍이 북지(北地)에 머물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시키고 항상 삼조승찬(三祖僧璨)의 「신심명(信心銘)」을 마음에 새겼고, 현언(玄言)이 천하에 유행하여 문답이나 시중(示衆) 등을 통해 남긴 공안들, 예컨대 구자불성(狗子佛性)이나 지도무난(至道無難) 등은 널리 회자되었다.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입적했는데, 세수(世壽) 120세였다.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다. 저서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 3권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