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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부 여행기
6월 8일
ke항공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인터넷으로 조사해 본 결과 바로 6월 8일에 출발하는 자유투어 한곳이 있어 무리한줄 알면서 10일간 미국(워싱턴, 뉴욕, 미국 쪽 나이아가라. 보스턴)과. 캐나다(나이아가라.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트로이리베. 퀘백)을 2.890.000원에 정하고(옵션별도)우리 부부는 오후 7시 30분에 출발하는 ke085호를 타기위해 인천공항으로 간다. 장장 14시간 동안 비행을 위해 허리의 고통, 진정제를 복용 하면서까지 안간힘을 쓰며 객석에 앉아 출발시간을 기다린다.
* 시간이 되어 다행히 모닝캄 자격으로 일찍 기내에 들어가 좌석에 앉았으나 비행기는 좀처럼 출발할 기색을 하지 않는다. 한참 후에 기내 방송으로 한사람의 승객이 탑승을 못해서 약간 시간이 지체된다고 기내 방송을 한다. 흑인 청년 1명이 지각으로 20분간 지체한 후에야 출발하기 시작한다.
* 길고도 긴 비행인데 다행이. 인천 공항 좌석 배정자가 우리 부부를 앞자리로 지정하여 주어(32에 D. E로)무사히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늦은 저녁 기내 식사를 하고 어두운 기내에서 도착할 미지의 공항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본다.
* 드디어 말로만 듣던 뉴욕 JFK공항에 도착해보니, 이 공항은 역시 거대한 공항답게 110개국의 항공사가 취항하고 여행객은 연간 3천 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리 예견은 하였지만 역시 공항 검색은 정말 이리보고 저리보고 또 앞 얼굴과 옆얼굴을 화면에 제 조명을 하면서 어디로 숙소를 정했는지 세세히 묻은 폼이 몹시 까다로운 검색이었다. 9.11테러 사건 후 조치가 삼엄함을 이해하면서도. 하기야 2억 8천만정도의 인구를 가진 나라로서 또한 세계 제일 경찰국가로 하는 일이 너무나 자신들의 편의대로 하는 그런 나라임에야, 어찌하랴.! 현지 가이드와 단 우리 부부 2명은 처음 상봉하여 안내를 받고 미니버스에 올라탄다. 안내자가 하는 말이 많이 여행을 다니셨던 태도라면서 우리에게 말을 건 낸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보이나 보다. 저녁을 한인식당에서 설렁탕(4.99불에)을 먹었는데 맛은 서울 것과 별 차이 없는 보통의 음식이다. 하기야 이곳에서 한인이 많아서인지 별 미국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곳 관습대로 역시 각자 1불 팁을 내놓은 버릇부터 알아야 하는 여행길의 시작이다. 이곳의 안내자는 2불을 내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관례란다. 늦은 밤이라 식사 후에 곧바로 호텔에 안내되어 간다.
* 서울에 장급정도의 clown hotel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이곳시각은 바로 다음날이 되는 시간이지만, 시차가 변경되어 6월 8일 저녁 9시 30분경이 되었다. 피곤한 몸을 간단한 사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서울 같으면, 현재시각은 아침 9시경 일 것이다. 빨리 시차를 극복하여야 할 텐데. 마음을 가다듬고......
9일
6시에 기상하여 후러싱 공용주차장에 모이기로 한다.
조식을 마치고 가이드의 안내로 여러 여행객들과 만날 장소로 가보니 모인 인원은 무려 62명이나 되는 무리한 여행객들로 버스 안은 벌서부터 앞자리 다툼으로 야단이다. 우리 부부는 이미 타고 온 사람들이 있어 하는 수 없이 맨 끝자리에 앉아 간다. 이곳에서 가장 큰 대형 버스를 대여 하였다는데도 말이다, 현지 여행사의 무리한 직업의식의 발로로 처음 출발부터 말이 안인 꼴이 되었다. 각 처에서 온 사람들을 뉴욕에 집결하여 여행을 시키는 이곳 여행사의 횡포로 서울서 온 여행자와 미국 내의 교포여행자들로 말이 안일 정도로 혼잡한 여행이 예고된다. 뉴욕의 거리, 911테러 현장인 뉴욕 땅을 밟았다.
* 세계무역 쌍둥이 빌딩은 9년 전인 2001년9월11일 민간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단에 의해 비극적으로 사라져버린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높이 443m에 달하는 110층의 쌍둥이 빌딩으로 한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만 99개가 설치되어 있는 엄청난 규모의 현대적인 빌딩이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는 황량한 철책이 쳐진 그대로 역사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철책의 벽면을 삥 둘러 여러 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당시 사고로 사망한 약3천명을 포함, 7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하며, 이 테러사건으로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던 미국의 자존심이 막대한 타격을 입은 후 오늘날까지 대 테러전이 전개되고 있는 빌미를 제공했던 현장인 이곳에 찾아갔을 땐, 무거운 표정으로 서성이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높다랗게 설치된 안전펜스 너머로 살짝 보였던 현장엔, 새로운 건물의 기초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된 것 같이 보였다. 그때의 검은 연기와 우중충함은 눈을 씻고 차자 볼 수 없이 잘 정돈되고, 주위에는 아직도 그때 불행한 기억을 위로할 모양으로 각종의 꽃다발들이 사방을 에워싸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쌍둥이 빌딩이 있던 맨해튼은 여전히 빌딩숲이고, 바삐 왕래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977년까지 세계 최고층이었는데 지금은 자리를 내어 주었단다. 18000명을 수용하고, 65대의 엘리베이터가 각층을 연결한다고 하니 참 큰 빌딩임에 틀림이 없다. 들어가는 것도 얼마나 복잡한지, 비행장에 들어갈 때처럼 금속물질이 있나 일일이 검사를 한다. 102층 전체 빌딩에서 86층에 오르니, 작은 선물가게가 있고, 사방에 뉴욕전경을 감상하게 만들어놓았으며. 바로 오늘 같이 안개가 뿌옇게 낀 날, 햇볕이 이제 막 솟아 올라와도 그리 맑게 보이지 않는 시계다. 바람은 씽씽 부는데, 햇볕이 있는 쪽과 그 반대쪽이 완전히 바람맞이와 같이 다른 현상을 이루어진다. 내려가기 전에 모두 화장실을 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빌딩 안에 화장실은 너무 작았고, 급한 남녀의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한 복도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으려 해도 이곳 수위가 못 앉게 제재를 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우리가 본 뉴욕은 고충빌딩으로 수풀 진 동산 안에 대나무들이 쭉쭉 솟아난 숲속 같아보였다.
* 이스트 강과 허드슨 강에 둘러싸인 맨해튼은 섬이다. 빌딩 숲 안에 있으면 비행기가 날아와 쌍둥이 빌딩에 돌진해서 처박혔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숲속 섬이다..
*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배를 타고, 빌딩과 헬기를 쳐다보면서 그날을 한번 생각해본다. 파란 하늘과, 강물은 넘실거리고, 도시인들은 빌딩 속에서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는데, 몰아쳤던 그 굉음과 먹구름 연기, 그리고 육중한 건물덩이가 무너져 내리던 그 순간이 아롱거린다. 배안에 걸어놓은 폭파사진을 처다 보며 당시의 악몽을 되씹어 본다. 그러나 이런 비극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배는 자유의 여신상 앞으로 나아간다.
* 자유의 여신상, 한손에는 횃불을 한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든 여신상은 가까이서 보니, 거대하고 아름다운 동상이다. 공식 이름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세계를 밝히는 자유).미국 뉴욕 항 어퍼 만 리버티 섬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이다. 자유여신상은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가 자기 어머니를 모델로 조각했으며 1875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884년 완성하였다. 남북전쟁 후에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제의하여, 프랑스 국민들이 기금을 모았으며, 미국과 프랑스 국민 간에 친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만들어 보내 주었고, 받침대를 포함해 전체 높이가 92m이고 높이 치켜든 오른손에 횃불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는 자유의 선언을 상징하는 서판을 들고 있다. 발코니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거기에서부터 전망대 머리 부분까지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높이가 46.1m, 무게가 225t이나 되는 완성작은 1885년 분해해 배에 실고 뉴욕으로 가져왔다. 받침대에 올려 진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10월 28일 클리블런드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제막되었다. 사실 이것을 세우게 된 동기는 “프랑스가 영국과 앙숙관계였는데, 미국이 영국을 격침하여 주어서 고마움에 행한 일이였으나, 오히려 자신들의 재정은 적자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재정을 각출한 탓에 당시 왕은 국민들로부터 쫓겨났다”는 그런 유명한 일화가 있다.
* 월 스트리트는 뉴욕의 금융가다. 황소를 이곳에서는 금전적인 의미가 있는 신앙으로 여기는지 큰 동으로 만든 황소 동상이 월가 한 복판에 있는데 많은 여행객들이 황소의 우낭과 뿔을 서로 만지고 촬영하느라 바쁘다. 특히 한국 아줌마들이 요란하게 자리를 차지하여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 좀 극성스럽게 행동한 점이, 외국인에게 미안함을 주어 보기에 안 좋았다. 특히나 여성들이 아무리 짐승의 낭이고. 조각상의 그것이지만, 정말 큰 그놈의 우낭을 구지 만지고자하는 행동에 나는 좀 혼란을 갖고 멍하니 처다 보았다. 월가에서 우낭을 잡으면 증권 운이 좋다나? 그래서 구경꾼들이 우낭을 잡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가보다.
* 록펠러 센터는 면적 5㏊에 석회석 건물 14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29~40년에 지어졌다. 계획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미장합판· 벽화· 모자이크조각· 금속세공 등 여러 관련 예술들이 건축과 통합됨을 이룩하였다. 14개 건물이 한 시가지를 통째 이루고 있는데 그 높이를 다 더하면 557층이 된다. 역시 말대로 록펠러는 엄청나고 대단한 부호라는 생각이, 건물을 돌아보면서 절로 느껴진다. 비오는 날 맨해튼의 모습 맨해튼의 중심부에 있는 록펠러 센터는 뉴욕의 문화와 예술을 대변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안이다.
* 맨해튼의 거리 증권가와 은행들이 밀집해 있는 장소. 미 증권거래소에 9.11이전에는 건물 내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현재는 출입금지다. 거리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간편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세계의 금융을 자지 우지 하는 장소로 느껴진다. 간혹 몇 사람들은 간단한 핫도그인 먹을거리를 들고 다니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광경은 오히려 호감을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맨해튼의 좁고 어둠 컴컴한 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시민들의 표정은 허기진 초라한 본색도 엿보인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문화를 창조해 내면서 오늘의 번영을 이끌어 낸 뉴욕의 주인공들은 무어라 해도 평범한 시민들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세계 인종 전시장이라고 하지만 한낮 동안의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은 역시 백인들이 주종을 이룬 듯하다. 34번가 코리아타운은 역시 한글로 된 간판과 거의 먹을거리로 장식된 음식점 간판이 길 양편에 줄지어 있어 확연히 눈에 띠이며, 질긴 뿌리 같은 속성이 보인다.
* 소호거리는 브로드웨이 서쪽에 위치하며, 대공황 무렵 많이 쇠퇴하기 시작한 거리에 창고 건물만 남게 되었는데 1960년대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임대로의 주거지를 찾아 모여 이루어진 돈 없는 예술가들의 활기찬 거리로 변모한 것이다. 지금은 명품 브랜드상품이 진열된 상점들이 즐비하게 서고, 주말이면 젊은 디자인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각국 토속상품 등을 가춘, 노점 가판대가 늘어서 있어 뉴욕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모된 거리다. 이 거리를 지나면 타임스퀘어가 나온다.
* 타임 스퀘어 광장에 여행객들은 사진을 맘껏 찍고,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오는 사람(팬티 한 장 입고, 기타를 흥겹게 켜는 사람)도 보았다. 각종의 인종들이 홍수를 이루며, 나름대로 멋을 추구하며 즐기는 모습은, 모든 나라의 장터와 인간들이 살아가는 참 실상과 같아 보인다.
* 성 요한 성당은 이곳에 많은 이재민(9.11 사건) 가족들이 참석하는 미사에 항상 복잡하다고 한다. 건물은 대체적으로 로마 성당의 골격을 이루어진 그런 모습의 성당 내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고 자신들은 말 하는데, 나의 눈에는 유럽의 성당과 비슷한 모습이다. 최근에 만든 건물답게 조각에는 현대적 표현도 많다. 환경 파괴를 경고하는 의미에서 브룩클린 다리가 무너지고 버스가 떨어지는 조각도 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다 보니 뭔가 보여 주고 싶어서 만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장소로 보인다.
* 뉴욕 박물관은 가이드가 박물관 앞에 내려주면서 이곳에 들어가서 4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찾아보라고 한다. 박물관에 그 많은 물건을 일일이 다 볼 수는 없고, 중요한 것만 짚어주는데 그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 다이아몬드는 가진 사람마다 불행한 일을 당해서 박물관에 기증된 물건이라 했다. 46캐럿이라면 얼마나 큰 것인지, 숨은그림찾기 하듯 보석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발견된 그곳에는 찬란한 빛이 빛나고 있었는데. 작은 유리관 안에 진열된 그 보석 주위에는 그 빛을 담아보겠다고 사람마다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는 중에. 저주의 탓인지 유명세를 치렀다는 보석에 매료되어 나도 눈을 돌려 남들과 같이 주시하여 본다. 또다시 다른 박물관에 진열품들을 돌아보며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나머지는 대강 감상하고 나온다. 화장실 이용료만도 약간 한적한 곳은 2달러, 조금 복잡한 곳은 5달러라는 맨해튼에 한인거리도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이드는 한인 가게로 들어가 일을 보게 해준다. 약국, 한의원, 미용실, 식당, 식품점이 한국말로 간판을 걸어놓고 장사를 한다. 어느 땅이든 한인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중 한군데서 점심을 해결했다.
* 버스로 UN본부 앞에 가서 그 근처에 잠시 일행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반 기문 총장이 계시는 UN센터주위를 돌아보며 구경한다. 세계200여 나라의 정부 대표단이 외교문제를 토의하는 곳이다. (어릴 적에 UN 본부가 뉴욕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조금은 생소하게 생각 되었던 적이 있었다. 언뜻 생각할 때 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유엔이 처음 창설되었을 때 영국, 프랑스 등이 본부를 유럽에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소련, 중국이 이를 결사반대하는 중에 이 틈을 타 미국이 적극 나섰고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의 기부금으로 미국의 맨해튼에 토지를 구입하여 이곳에 본부를 세웠다, 역시 돈의 힘은 무섭다. 유엔본부가 있는 이곳 땅은 미국 영토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건물주위에 국기봉들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국기봉에 각 나라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면 그건 지금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는 뜻이란다. 지금은 국기가 없는 걸로 보아 회의를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 워싱턴 광장 안에 있는 탑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 취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탑이다. 탑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에는 워싱턴의 군 시절의 모습을 오른쪽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의 모습을 만들어 세웠다. 여기서 야화로 들은 이야기로(워싱턴의 동상을 보면 항상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 이유는 워싱턴에게는 어떤 지병이 있어 구취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걸 꺼려했으며 이야기할 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고 하며. 심지어 부인과도 같이 방을 사용하지 않았단다.)
* 그리니치빌리지는 14번가, 휴스턴 가, 브로드웨이, 허드슨 강 강변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식민지시대에 정착된 마을로 그 후 고급 주택가였다가 임대전문 주택가가 되었다.
1910년 이후, 반체제적인 작가·화가·학생·보헤미안·지식인 들이 이곳에 모여들고. 1980년대에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자 이 지역의 대부분은 현대적인 주거지역이 되었다. 이곳에 살던 많은 주민들이 이스트 빌리지(남동부)쪽과 소호(휴스턴 가 남쪽지역)로 옮겨갔다. 오랫동안 그리니치빌리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 오래된 집, 외국음식점, 고풍스러운 상점, 색다른 나이트클럽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워싱턴 개선문(1895)과 뉴욕대학교 건물이 중앙에 있는 워싱턴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는 미국의 뉴욕, 맨해튼에 있는 도시 중심부의 공원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뉴욕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2,5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며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공원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센트럴 파크를 유명 장소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 공원은 북쪽으로 서부 110번 가, 남쪽으로 서부 59번 가, 서쪽으로 센트럴 파크 서부, 동쪽으로 5번 가에 접해 있다. 한편 공원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공원에는 인공 호수와 연못, 몇 개의 산책로, 두 개의 아이스링크, 센트럴파크 동물원, 정원, 야생 동물 보호구역, 넓은 자연림이 있다. 뿐만 아니라 외부 원형극장이 있어 여름마다 섹스피어 축제가 열린다. 공원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뿐만 아니라 운동 경기를 위해서도 유용한 공간이다. 철새들이 쉬며 머물고 가는 곳이기도 하여 새 연구자들이 자주 이 공원을 찾는다. 공원 주위의 10km 내외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며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이들로 붐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주말과 저녁 7시 이후로는 공원 주변의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 Maycis백화점을 구경했는데. 크기도 하지만 그 많은 신제품이 진열된 box안의 모습과 각각의 디자인들이 하나같이 부럽게 느껴지는 고급품들로 가득 채워진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풀랫 아이언 빌딩, 뉴욕시청, 차이나타운, 브루클릿 다리. 콜롬비아 대학 등은 버스 안에서 지나며 구경하는 정도로 스쳐갔다.
* 타임 스퀘어는 32번가 한인 타운 밀집지역에서 타임스퀘어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기저기 중간에 들르고 구경하고 촬영하느라 좀 더 걸리긴 했지만 곧장 걸어가면 정말 10분만에도 도착할 만한 가까운 거리로. 타임스퀘어에 도착하니 어느덧 어두워졌고 온갖 네온사인들이 번쩍거린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사람들이 많고 여기저기 번쩍번쩍 거리는 네온에 정신없고, 전 세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으로. 이런 여러 곳을 품고 있는 뉴욕은 정말 도시가 아니라 또 하나의 나라로 느낌이 갈 정도로 대단한 도시었으며,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타임스퀘어 광장은 별미를 더하여 주는 고장으로 여겨진다. 역시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타임스퀘어에 당당이 광고판을 내건 삼성과 LG 등의 우리나라 기업 홍보 간판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멋지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력이 많이 신장되어 자랑스럽다.
* 록펠러센터, UN본부, 브로드웨이 거리, 기타 소호거리를 구경하고 나니. 저녁에 모처럼 귀한 구경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150불이고. 나중에 알았는데 직접 표를 사면 90불이란다)을 신청하는 사람은 그 많은 여행객 중에 우리 부부만이라 하는 수 없이 가이드가 포기하라고 한다. 아깝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 먼 곳에 또다시 올수도 없고, 본 고장의 진수 뮤지컬을 못 본 아쉬움은 너무나 크다. 뉴욕은 좋은 곳, 걸어서 어디든지 갈만한 곳에 멋있는 건물과 색다른 건축물들이 꽉차있는 모습이 우리들에는 새로운 볼거리를 재공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항상 신선한 패션을 제공해 주는 이곳의 장점이 바로 이 고장이 문화의 시발점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뉴욕 양키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말은 미국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본래 뉴잉글랜드 원주민의 이름이었던 것이 독립 전쟁 때에 영국인이 미국인을, 남북 전쟁 때에는 남군이 북군을 조롱하던 말에서 유래하였고, 현재는 대체로 비하하는 말로 통용된다고 한다. 약간의 보슬비가 와서 야경도 취소하고 바로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에 들어갔다.
10일
오늘은 일부 여행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관계로 45명이 동행하는 여행이 되었다.
뉴욕을 출발해 애틀랜틱시티를 거처 델라웨어 주(Delaware: the First State (초창기 13개 colonies중 하나로 1787년 처음으로 미국 헌법을 비준한 주라서, 미국합중국에 처음 설립에 참여하여 서명한 주는 세금이 없다, 라고 가이드가 전한다.)를 지나 대서양의 길목인 볼티모어 키브릿지를 경유하여 미국정치의 중심지 워싱턴에 도착한다. 4시간 30분이나 소요된다. 가는 도중에 화약으로 재벌이 된 듀봉 화약회사가 동시에 석유원료로 여자 나일론 양말생산(불란서 이민, 제퍼슨 친구)으로 세계적 두각을 나타낸 회사를 지나가면서 그 광활한 공장의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비운의 사나이는 강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 워싱턴 시내 관광 백악관으로 가본다. 이곳에는 1인 시위를 하는 할머니가 백악관 앞에 있다. 백악관 길 건너 작은 비닐집에 사는 콘셉션 피시오토 스페인 태생 할머니가 오히려 관광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세모꼴 흰색 비닐집 옆에 세워진 입간판을 보면 1981년부터 시위를 했다고 적혀있으니 장장 27년째 한자리에 있는 셈이다. 27년간 백악관 앞에서 반핵시위를 벌이고 있는 콘셉션 할머니. 그녀는 지난 1991년 동아일보에서 자신을 다룬 기사를 복사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수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대개는 사진을 찍고 가는 유명한 장소로 인정받고 있다. 존 아담스미스 대통령 때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백악관"은 특별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것 없는 흰색 저택이고, 앞면에는 철책으로 둘러친 집으로, 우리나라 청와대와는 정말로 거리가 먼 아담하게 노출된 보통의 집 정도다. 뉴스나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정말로 거리가 먼 생각보다는(대통령궁) 약간 작은 뜻한 그런 건물이었다. 길 건너에는 잔디가 잘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조용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그런 장소다.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영미전투에서 승리로 이끈. 또한 자기 아내를 험담한 이와 결투를 13번이나 해서 가슴에 총알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의 기마상을 경계로 공원과 백악관이 함께하고 있다.
*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일명 스미스소니언 협회라 칭한다.)은 설립자인 제임스 스미스손(James Smithson)이 1765년 돈 많은 영국 귀족과 과부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그는 이러한 불운한 환경 속에서도 집안의 재산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었지만 서출이라는 신분 때문에 군인, 성직자,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스미스손은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아주 현명하게 투자하고 알뜰하게 재산을 관리 하였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호기심이 많아 유럽 각지를 여행하였고, 무명 과학자로 살았다. 그는 1829년 죽음을 앞두고 하나뿐인 조카에게 유산을 남기기로 하였지만 “영원히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름을 남길”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는 만일 조카에게 후손이 없으면 미국 워싱턴 D.C에 “인류의 지식을 증대시키고 확산시킬 기관으로 스미스소니언협회”를 설립하는데 전 재산을 쓰라고 유언하였다. 그는 생전에 미국을 가 본 일도 없고 미국의 어느 누구와도 친분을 가진 적이 없던 사람이다. 그의 유언장 내용대로 그의 조카가 상속인이 없어 1835년 사망하자 영국 법원은 “1파운드 금화 105개”를 미국정부에 보냈다. 그 금화는 필라델피아 조폐소에서 미국 화폐로 다시 주조 되였는데 총 50만 8318달러 46센트였다. 당시 미국인 남자들 급여가 300달러 정도였으니 이는 막대한 돈이었다. 이 돈에 대한 사용처로 미 의회에서 숱한 논쟁을 거친 10년 후 1846년 8월 10일 제임스 K, 폴크 대통령은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설립 법안에 서명하여 현재까지 유명한 박물관이 탄생된 것이다.
* 이곳 기증품 중에는 뉴욕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기증한 전설적인 청색의 45.5캐럿 호프 다이아몬드도 있다. 물론 이 다이아몬드를 뉴욕에서 소포로 부치는데 쓴 갈색 포장지(145달러 29센트 우표가 붙어있다)도 보관되어 있다. 이 자연사 박물관에는 330캐럿의 스타 오브 아시아라는 스타사파이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보석과 광물원석도 엄청나게 많다. 또한 지금까지 수집된 1억 4000만점(계속 늘고 있다) 중에는 세계 최대의 공룡화석과 매머드 표본부터 조지 워싱턴의 정장용 군복과 칼,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리그베족의 가면, 소련의 SS-20 미사일 탄두,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기, 찰스 린드버그가 사상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스피릿트 오브 세인트루이스 비행기 실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Aniac=1946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모네(1840. 프랑스 파리~1926.프랑스의 화가. 렘브란트(네덜란드의 화가), 미켈란젤로, 다빈치, 피카소 같은 거장의 회화와 조각품, 벤저민 프랭클린이 쓰던 지팡이, 와이오밍에서 발견된 1만년 된 부싯돌, 1862년에 만든 캐틀링 기관총 특허 모델 원본, 전 세계에서 수집한 셀 수없는 나비와 곤충 표본, 동식물 표본, 희귀 서적, 세계 각국의 민속 민예품과 여배우 주디 갤런드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신은 루비 신발까지도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2만 5천개의 두개골을 수집 연구함으로서 유골로 생전의 모습을 재현 할 수 있는 연구 자료까지 다양하다. 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은 현재 19개 박물관, 9개 연구소가 있고 6.300명의 정규 직원과 6.000여명의 자원 봉사자가 근무하고 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은 주로 아프리카, 그리스, 이집트에서 약탈한 유물로 채워져 있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이집트, 중동, 유럽 각국에서 약탈한 유물로 채워진 것과 달리 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는 생물표본, 지질 표본, 회화, 예술품, 민속자료 등 규모나 범위, 소장 종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인류 문화유산을 총 망라한 엄청난 자연사 박물관이 되었다. 학생들이나 어린이들은 반듯이 가보아야 할 그런 중요한 박물관으로 추천하고 싶은 협회다.
* 이 자연사 박물관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2007년 6월 8일 이 박물관 2층에 유일하게 대한민국 상설독립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이 박물관에서 아시아 담당 학예관으로 1965년부터 40년 이상을 큐레이터로 봉직한 고 조창수 여사 주선 덕분이었다. 100평방 피트(30평) 크기의 Korean Gallery에는 200여점의 유물이 전시 되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전시물을 바꾸고 있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약 4.000여점의 한국 유물 중에는 우리나라 옛날 도자기, 회화, 서예, 서적, 불교 유물, 기물, 족보, 전통복장, 민속자료, 목재가구 등 귀한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는 구한말 1884년에 제작된 태극기도 소장되어 있다. 고 조창수 여사의 활약으로 작년에 국보급으로 여겨지는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옥쇄가 국내로 환수되어 온 것도 조여사가 소장자를 설득하고 비용을 모금한 덕분이었다. 조창수 여사는 1925년 12. 2일생으로 미국 유학 후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근무했는데 안타깝게도 2009년 11월 27일 유명을 달리 하셨다. 또한 조여사는 1994년 34년 만에 북한에서 국군 포로였다가 최초로 탈출한 조창호 중위의 누나이기도 하다.
특히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화석, 자연 생물관에 각 화석과 생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각 개체의 역사가 자세히 기록된 것이며, 거의 살아있는 뜻하게 표고를 해놓은 백곰의 우렁찬 모습은 다들 잎을 벌려 탄성을 낼 정도로 기상이 거대한 모습이다. 표범의 날쌘 몸집의 형태와 화석으로 이루어진 각종 표본은 정말 세계적인 저장품들이다. 다이아 실에는 그렇게도 많은 보석들이 모든 사람에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수많은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진열되었고, 그 중 45.5캐럿짜리는 소유주마다 비명횡사하였다고 하며, 잠시 동안 나폴레옹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 링컨 기념관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만들었고, 36개 대리석기둥은 링컨 시대 당시 미국연방을 이룬 36개주를 상징한다. 좌상의 높이는 5.8m이고, 조지아 산 희색 대리석이다. 링컨상은 연못 너머 워싱턴 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고, 기념관 안쪽 벽에는 링컨의“켄티스버그 연설”이 북쪽 벽에는 취임사가 새겨있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earth) 또한 앞 계단도 56세에 타계한 관계로 56계단으로 되었다고 한다. 맞은편에 있는 연못 끝에는 화강암으로 된 탑이 있는데, 링컨 동상이 마주하고 서로 처다 보는 상으로 설계되었다.
기념관 앞으로 몇 계단 내러오면, 킹 목사가 연설하던 장소가 있으며, 바로 이곳에 I have a dream이라고 새겨진 바닥이 보인다. 같은 해방운동을 주장한 위인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곳을 지나 버스로 이동하여 다음 장소로 간다.
* 한국전 참전 용사 비는 이국땅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생전에 용감했던 무용담을 새겨 놓은 화감 암벽으로,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의 모습을 음각해 놓았다. 우리나라 6.25를 되돌아보는 순간, 머리 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게 한다. 이국땅에서도 이렇게 전몰장병에게 노고를 치하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지난날 이름 없는 장병에게는 그 시신 발굴 작업조차도 못하며 남아있는 후손에게 예우를 못하는지, “정치 논쟁만하는 정치인들의 이기심에 조국의 젊은이들은 한심한 군복무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려고 온갖 기피현상을, 기존의 정치인들은 각성하여야 할 것이다.” 하고 한숨이 절로난다. 세계에 10위권에 드는 나라로 인정한다면서도,
* 제퍼슨 기념관은 대통령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세운기념관이다. 내셔널캐피탈 파크 한 쪽에 위치해있다. 돔형의 지붕, 원형 기둥으로 지어진 기념관은 뛰어난 조형미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현관 박공 머리에 새겨진 모양은 제퍼슨 대통령이 취임식에 독립선언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동상 뒷면에는 농업정책을 장려한 대통령으로서 인지 여러 개의 옥수수가 새겨있다.
* 국회 의사당은 1792년에 의사당 설계공모전에서 건축이 문외한인 서인도제도 출신인 윌리암 손턴의 작품으로 당선된 희귀한 일이 있다. 지붕위에 6미터 높이의 (freedom 자유)라는 이름의 상이 세워지고, 의사당 본관 중심으로 왼쪽은 상원의원, 오른 쪽은 하원의원이 있는데, 좌우 건물에 깃발이 있으면 의사진행중임을 표한다. 중앙에 링컨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11일
아침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나이아가라로 이동한다. 아침도 못 먹은 일행은 곤한 몸들을 제대로 못 가누고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달려만 가는 도중에 뒷좌석에서 소리를 지른다. 멈추라는 승객의 말을 기사가 못 듣고 앞으로 달리길 자시동안 인데도 1km를 지나서 겨우 멈추고 보니 트렁크 안에 있던 가방 몇 개가 버스 짐칸 문이 열리면서 길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속도로로 일방통행인데다가 어두운 아침에 정말로 야단난 큰 사고였다. 우리 일행은 잠시 멈추어 기사와 가이드 그리고 몇 명의 젊은 승객이 뛰어 내러 지나온 길을 후레쉬를 비추며 달려가 본다. 얼마를 지나서 다행히 짐과 기타의 물건을 찾아서 돌아오니 이런 다행한 일이 더 있을까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는 시간이었다. 잊어버린 짐도 없고 뒤 따라오던 차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히 수습을 했다. 하지만 한 여성의 빨간 가방이 약간 상처를 입어 가이드와 타협을 다음으로 처리하기로 하고, 가던 길을 따라 펜실베니아 주를 경유해 재촉하며 달려보나 역시 7시간 30분이 소요된 12시가 넘어 목적지인 나이아가라에 도착한다. 지루하고 혼들이 난 긴 버스 여행이었다.
*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는 미국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폭포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폭포의 국경을 이루는 나이아가라 강에 있는 폭포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폭포이며. 이리 호에서 흘러나온 나이아가라 강이 온타리오 호로 들어가는 도중에 형성된 대 폭포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두개의 대형 폭포, 하나의 소형 폭포로 나뉘는데 이는 곧 섬(Goat Island 염소 섬)을 기준으로 캐나다 폭포(말발굽 폭포, Horseshoe Falls)와 미국령의 미국 폭포(American Falls)로 구별된다. 소형 폭포인 브라이달 베일 폭포(Bridal Veil Falls)는 미국 영토에 있다. 폭포로 인해 주변은 항상 안개가 껴 있으며, 미국 쪽보다는 캐나다 쪽의 전망이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주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위치한 도시와 캐나다의 온타리오호주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도시 사이는 강을 가로지르는 교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캐나다 측 나이아가라 폭포는 높이가 1백76피트이고 폭포의 절벽 면이 깊이 파인 커브를 이루고 있어 그 길이가 2천2백 피트에 이른다. 1820년도에 들어서서 증기선의 운항이 시작되고 1840년도에 철도가 설치됨에 따라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방문하게 됐다. 나이아가라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신혼여행을 보낸 사람들의 인생은 폭포의 물줄기만큼 힘차고 영원하리라”고 예언했다. 나이아가라에서의 다이빙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총 2백19만 킬로와트 용량의 13개 발전기를 구비한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는 1961년에 설립되었다.
*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이 관경을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폭포줄기에서 뿜어 나오는 안개 속 물방울 같은 이슬이 온 몸을 엄습하고 있어 약간 서늘한 기분도 든다. 아내와 둘이서 서로“ 우리 이곳에 정말 잘 왔지? 멋이 있지”라고 말을 하면서 물줄기의 장관을 만끽한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피해가고,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아래서 온몸이 흠뻑 젖는 경험을 해본다.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배를 타고 우비를 입고 한잔의 와인을 즐기며 물이 전해주는 감동을 느껴 본다.
* 염소 섬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염소 섬에서 폭포 왼쪽에서 루나 섬, 바람의 동굴 입구, 오른쪽으로 비켜 내려가면 면사포 폭포 상류 루나 섬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는데 루나 섬이 미국폭포와 면사포폭포 사이에 양쪽 모두를 감상 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다, 안내판에도 미국폭포와 면사포 폭포의 루나 섬을 합해서 길이가 355m높이가 54m라고 적혀있다. 천둥소리와 함께 투하되는 물 폭탄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 개의 폭포에서 소리 내며 물을 쏟아 내고 있는 장관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곳에 실제로 와서 보니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위대한 힘”이 구나, 하고 느껴진다. 에리 호수의 물이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들면서 절벽에 의해 약 50m의 나이아가라 폭포 안개속의 숙녀 호(Maid of the Mist)를 타고 절벽에 들어가면 약 50m의 낙차가 생기는데 이 낙차가 세계최고의 자연 경관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드는 것이란다.
* 나이아가라는 세계도처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1년에 약 1,200만 명이 다녀간다. 나이아가라는 아래에서 볼 때와 위에서 볼 때, 그리고 정면에서 볼 때 등,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고 색다른 감동을 받는다. 뉴욕 주에 속해있는 미국폭포는 폭 320m 높이 56m로 매분 1,400만 리터의 물이 흘러내리며 캐나다폭포는 폭675m 높이 54m 매분 1억 5,500만 리터의 물이 낙하하며 지질학적으로 볼 때 나이아가라의 역사는 매우 짧아 마지막 빙하기에 생성 된 것으로 추정된다.
* 세자매 섬은 염소 섬에서 캐나다 쪽으로 나이아가라 강 가운데 만들어진 섬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선 폭포로 떨어지기 직전 가파른 유속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하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가는데 별로 제재 없는 간단한 여권심사로 통과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방문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Underlake로 가는 길에 있는 정말로 작고 작은 하얀 나무판으로 지은 집 하나가 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교회로 6명이 들어갈까 말까할 정도의 크기로 설교교단도 있으며, 일요일 마다 예배도 본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이곳에서 결혼식도 거행되며,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 작은 소망을 이루어 농촌에서 잘 살기를 기원하는 이곳 소시민의 기도하는 모습도 아름답게 보이며, 바로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참 삶이 안인가 싶다.
* 꽃시계는 해마다 이곳을 찾는 수천 명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나이아가라 파크 센테니얼 라일락 가든(Niagara Parks Centennial Lilac Garden) 바로 옆에 주차 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작은 선물 가게도 마련되어 있다. 이 꽃시계는 나이아가라 파크에서 사진 촬영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명소가 되었다. 1930년에 조성된 에딘버러의 시계는 직경이 약 3미터정도인데 반해 이곳의 꽃시계는 직경이 약 12미터이고 약 11.5미터의 부분이 꽃으로 장식된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 중의 하나다. 매년 15,000 내지 20,000포기의 화초들과 다채로운 일년생 식물들이 융단처럼 독특하고 복잡한 디자인으로 꾸며진다. 1977년 이후에 나이아가라 공원 관리국의 원예과(지금은 공원과)에서 시계의 앞면을 디자인하고 화초를 심는 일을 맡고 있다.
* 가이드가 모처럼 점심은 이곳에서 가장 높고 중심이 되는 타워 13층에서 먹도록 배려한다. 이곳의 스테이크 정식(스테이크는 소고기의 생산지라는 이곳이 생각보다 너무 고기 맛이 없어 아내와 나는 반을 먹고 남길 정도다.)과 포도주를(한잔에 8불)들고, 캐나다 쪽에서 내려다보이는 또 다른 오색 색깔의 무지개가 수놓은 듯 펼처 보이는 장관을 13층에 앉아서 잠시 나마 휴식을 취해본다. 모처럼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음식과는 별도로.....
* 캐나다 나이아가라 원예학교는 각 학년마다 10명으로 정원 40명인데, 외국인은 절대로 입학이 불가하며, 졸업을 하면 년 봉이 일억이 넘는 최고의 학교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정원은 특히나 잘 가꾸어진 동산 같다. 실은 고위층들이 자신의 저택을 관리하기 위해 극소수의 인원을 길러내어 쓰는 관계로 까다롭다는 이야기다.
* 일부 사람들이 옵션으로 젯트 배를 탄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피곤해서인지 그늘에 쉬고 나와 두 젊은 여인(한 여자는 디자이너고, 한분은 가정주부다.) 같이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하고 시내 마을로 들어가 아담하고 깨끗한 마을과 잘 정돈된 상점들에 들려 여러 가지 구경을 한다. 또한 한가하게 잔디밭에 앉아서 담소를 하며, 우리와 같이 주위에서 마을 주민들의 한가롭고 풍요로운 모습에 나 자신도 동참하여 즐거워진다.
* 엉터리 옵션에 불만이 많다. 값도 매길 정도가 안인 것도 돈을 받고자 하는 가이드의 심정은 이해가 되나 좀 엉터리 같은 조건을 붙이며, 강요 비슷한 행동을 한다. 옵션에 갔다 온 몇몇 사람들은 불만이 많아 보인다.
* 저녁에는 폭포 근처에 고풍스러운 호텔에서 묻었는데 방안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 속 내용 시설물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의 말인 즉은, 우리 여행객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여 정한 호텔인데. 오히려 한국인은 옛것을 너무도 몰라 탈이라며 투덜거린다. 호텔투숙은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저녁11시경이나 지나서야 들어갔다.
12일
아침 7시 기상과 더불어 남아공에서 하는 한국 축구시합 중계를 보고자 일부 여행객들이 호텔에서 나오지 않아, 그들을 남겨두고 여행목적지에 가본다.
* 캐나다 쪽에서 흐르는 나이아가라 폭포 밑 선창 장에서 주는 우비를 입고 배위에서 실질적인 폭포수를 마음 것 맛본다. 이곳은 정말 미국 쪽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정열적인 폭포의 진 맛을 안겨준다. 호수 정 중앙에서는 거의 눈을 뜰 수 없는 폭포수 안개가 짙어 온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람과 물방울이 전신을 적신다. 시원한 느낌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모두들 어린이처럼 탄성을 지른다.
* 점심은 가이드(실은 여행사 잘못으로 비행기가 하루 늦게 도착하여 공항에서 담요도 없이 지새고 다음날 뉴욕으로 온 12명의 일행)가 불행을 당한 여행객들의 기분을 돕기 위해 한식(연어 찌개. 맛은 정말 없다.)을 모든 여행객에게 대접한다. 우리 부부는 각자 3십 만원을 더 주고 온 이유가 바로 이런 고통스러운 여행절차 문제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가 보다.
* 조용하고 깨끗한 주변거리와 정원이 딸린 집은 다 함께 아름다움 그 자체다. 조금 지나 한인 타운을 지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 시골 외곽 20년 전과 흡사하다. 이제 보니 40여년 전에 그들이 풍요한 외국을 동경하여 온 이국땅이 오히려 현재는 서울과 미국 교포들의 생활 차가 뒤바뀐듯하다. 연합으로 오는 여행, 특히 미주서는 가이드와 일행이 자주 바뀌어 서로 사귀는 시간이 없어지고, 여행의 참 맛인 맞남의 기쁨을 상실해 서로 쑥스러움만이 더하여 진다.
* 아이스 와인 시음장을 방문했는데, 한 병에 60불을 달라고 한다. 너무 비싸다. 2007년산 금메달이란다. 병도 작은 360리터짜리로는 너무하다는 감이 든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남편에게 준다며, 몇 병씩 산다. 역시 아내가 제일이다.
* 저녁은 la갈비로 일인 2대와 상추쌈을 준다. 식당 지하에서는 이곳 주인이 여왕벌에서 채취한 액체가 인간에게 좋은 약이라며, 한 병에 20불을 받고 판다. 약장사들의 선전에 그래도 많이 산다. 오후 버스 안에서 오늘 새로 탄 충청도(5명) 사람들이 몹시도 떠든다. 좀 언짢은 짓들로 귀가 시끄럽다. 남들도 생각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물론 모처럼 여행이니 즐거워서 떠들더라도 옆 사람들의 기분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 캐나다의 제2의 도시 토론토로 이동, 대체로 깨끗한 호텔에 묻게 된다. 현관에서 손님의 대접으로 내놓은 다과를 체면불구하고 야단스럽게 금세 동이 날 정도로 여인들이 각자 가방에 담아가지고 간다. 내일 이른 아침기상으로 몸을 침대로 옮겨, 바로 7시에 잠자리에 든다.
6월 13일
킹스턴을 경유하여 수도 오타와로 이동하기 위해서, 아침 4시 기상, 일찍 출발하는 관계로 김밥 한 줄과 물 한 병을 지급받고. 천섬으로 3시간 동안 간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중에 여승객 한명이 급한 일을 보게 해달라고 해서 (좀처럼 승인을 하지 않는 것이란다) 기사가 버스 뒷 칸에 설치된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하루 종일 냄새가 난다면서 맨 끝에 앉은 사람들이 코를 막고 사정을 하니 별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별도로 여행 끝나면 세차를 하여야만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단다. 기사는 화를 내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여행자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행들이다.
* 환상적인 천섬에 가는 유람선(40불)이 옵션이다. 천섬은 백만장자들의 여름 휴양지이자 지상천국으로 인정하며(약 1860개의 섬이 있음)캐나다와 미국 국경사이에 있는 천섬(Thousand Islands)은 킹스턴에서 동쪽으로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가노라면 천섬을 만날 수 있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미국 다른 한 쪽은 캐나다 땅이다. 섬에 나부끼는 국기만 봐도 어느 영토에 속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큰 섬의 본채는 캐나다 땅이고 다리 건너 정원은 미국 땅으로 다리가 국경이며, 천섬의 면적은 미국과 캐나다 소유가 거의 동일하며, 섬 중 26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개인 소유라고 한다. 작은 섬도 값이 너무 비싸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 별장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캐나다나 미국의 억만장자들인데 여기 섬들은 평당 약60만 달러에서 120만 달러, 별장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 속의 성과 같다. 전기와 전화는 해저로 설치되어 있고, 오물수거용 보트가 섬을 돌며 우편배달도 담당한다. 별장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호수로 인해 수위가 절대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하트 섬(Heart Island)에 있는 볼트 성(Boldt Castle)이다.
* 하트 섬에는 일반 주택이 아닌 성 모양을 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이 성의 이름은 볼트성인데 이 성을 만든 사람이 워도프 아스토리아라는 뉴욕의 최고급 호텔 운영자인 조지 볼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11세나 어린 아내를 두고 있었는데, 굉장히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서 이 섬을 구입한 후, 섬에다가 성을 지었는데, 이 성이 거의 완성될 무렵, 그만 아내가 심장마비로 죽어, 이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미완성 상태로 다시는 이 섬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크고 작은 부초 같은 섬 위에 장난감 같이 지어진 집들은 그래서 더 한층 유명세를 타는가 보다.
약 한 시간가량 주위를 돌아 나오는 코스인 호수로, 배안에는 각종 언어안내 방송이 들러온다. 유람선의 앞과 뒤에 각각 두 나라 국기가 펄럭 긴다. 인디언들은 이곳을 신의 정원이라고 했다. 또다시 버스로 달려 오타와로 간다.
* 오타와에서 총독관저로 가본다. 리도우 홀(총독관저)에는 캐나다 수상관저다. 수상관저도 경비는 철저 하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드나들며 관람을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여자들에게 큰 소리 치면 경찰이 와서 잡아가는 나라, 북아메리카 대륙 북부에 있는, 영국 연방 내의 연방 국가로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867년에 캐나다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9년에 독립국이 되었으며 주민은 영국계와 프랑스계 백인이다. 관저에 기가 날리면, 집무를 보고 있는 중이며, 정원에는 우리나라 대통령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의 방문식수가 잘 자라고 있다. 또한 이곳 경비 경찰은 우리 일행에게도 사진을 함께 찍으며, 경비경찰이 타고 다니는 구루마를 이들이 함께 태워주기도 하는 정말 친절한 인간미가 넘치는 경찰들이다.
몬트리올로 이동하여 시내관광을 한다.
* 성 요셉성당에 들어가는데, 헌금 3불을 주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를 들어가 보는데 돈을 내야만 하는 이런 금전적인 시대가 왔다. 옛날 로마시대와 같이 마지막 날이 왔는지, 천당도 돈으로 해결되는 시절이 도래했다. 바로 현 시대의 캐나다 성당에서 말이다. 말은 헌금이지, 입장료나 다름없는 짓이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에 헌금을 주고 삼층까지 들어가 보는 순간 상층위에서 흘러나오는 파이프오르간의 음악 소리는 정말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고도 남을만한 잔잔한 음악 소리였다. 악과 선을 요동치는 뜻한 소리에 잠시 동안 청순한 동심으로 돌아간다. 다른 한국인이 헌금 내는 것을 지키지 않고 들어간 사람이 있었는지 헌금함을 지키던 수녀가 와서 우리 가이드에게 영어로 화를 내며 잔소리를 한다. 바로 이 성당은 유명한 기적을 이루었다는 바로 그 성당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바로 근처에 있는 노틀담 성당은 5불을 주고 들어간다고 하기에 단념하고 말았다.
* 캐나다의 작은 도시 트로이리베 안에 자리한 <다름> 광장에서 시장거리를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3.50불(우리나라 1,000원짜리만도 못한 것)에 사먹는데 맛은 없다. 이곳은 불계구역이다. 불란서 태생들이 그들 나름대로 특유의 자기 말로 떠드는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나를 새롭게 눈을 뜨게 하며, 활달한 걸음에도 호기심이 많이 간다. 노천에 있는 카페에 동네 멋쟁이 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들조차도 강아지를 대리고 파리잔느 같은 품위와 멋이 풍겨져 난다. 가죽차림의 오토바이족들조차 .어찌 그리 멋쟁이 들이었는지~.프랑스 이민자들이라 분위기가 미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자유스럽고 개방적이고 개인적으로도 멋을 아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색달랐다.
* 저녁은 중국집에서 뷔페식으로 가지 수는 정말로 많다. 서양여성이 서빙을 하여주는데 아내가 중국말로 인사를 했더니, 우리를 중국인인줄 알고 잘해준다. 중국인 주인은 가이드에게 한국인은 빨리 먹고 나가기 때문에 좋다고 하며. 싱글 벙글한다. 호텔 내부는 잘 정돈된 곳이라, 히타 없이도 잘 수 있고, 목욕도 온탕으로 푸근히 즐겨 몸을 녹일 수 있어 한결 마음과 몸이 상쾌해졌다.
14일
퀘백으로 3시간 동안 벌판을 달려간다. 지구가 일일 권으로 흡수되는 양상으로 몰입되는 지금, 왜 각 나라가 시기하고 질시하는지 서로 돕고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서가 이견을 보다 줄였으면 하고 생각이 든다. 식당에선 한인들이 중국인 다음으로 시끄럽고, 식탐이 많아서 간식거리가 되는 것은 핸드백에 너무나 많이 싸가고 있다고 종업원들이 흉을 본다고 한다.
오늘 하늘의 구름이 유난히도 수를 놓은 듯 차안에서 보면 고정적으로 움직임 없이 장식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적으로 스쳐간다. 일행들과 세대차를 느낄 나이가 되었는지 서로 거리감이 있는 듯 하고, 화두도 억 갈린 그런 층으로 구성되어있다. 세월과 더불어 인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점점 흐려 지금은 보슬비가 나리고 있다.
* 퀘백(Quebec)은 인디언어로 “강이 좁아진다.”란 뜻에서 유래한다. 1608년 샹플랭이 정착하면서 이루어진 도시다. 광장 중앙에는 당시 프랑스 황제인 루이 14세의 동상이 있으며, 광장의 역사를 소개하는 인터프리테이션 센터가 있다. 퀄드삭 거리는 막다른 골목이란 뜻인데. 개척당시 정통적인 건물과, 프랑스풍의 카페와 각종 상점들이 아기자기 하게 늘어서 있다. 꽃으로 장식된 창문과 개성 있는 간판 등으로 관광 시즌에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퀘백의 루이 14세 성은 높다란 산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조용한 감을 주고 기념품 상점안의 진열된 모습도 얌전하고 주인 여인도 상양하고 인상적인 태도가 반갑기만 하다. 비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열심히 성안을 들러본다. 성 안는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쓴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우리여행객들에는 진귀한 모습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고, 어떻게 옛날엔 그리도 높은 곳에서 살아갔나 싶을 정도로 정말 높은 산위에 모든 건물들이 축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 우리가 보통 루이14세(Louis XIV, 1638.9.5~1715.9.1)하면 장엄한 것을 좋아했고 화려했으며 패션의 선두주자이자 그 거대하고도 훌륭한 건축물인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들어 태양왕(太陽王)이란 별칭까지 붙은 프랑스의 국왕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 국왕의 화려함 덕택에 프랑스어는 유럽의 상류언어로 자리 잡기까지 했다. 잘 알려진 이 엄청난 수식어를 갖는 루이14세 자신은 정작 즐거운 삶의 연속은 아니었다. 루이14세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이상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태어났다.
귀천상혼(貴賤相婚)이란 신분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결혼하면 그 자손들은 높은 신분을 상속받지 못하는 일종의 관습법을 말하는데 이 법 때문에 신분 낮은 여자의 자손들은 아버지의 고귀함을 물려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예외였다.
* 루이14세의 부친 루이 13세는(1601.~1643.)양주의 한 종류인 루이13세의 실질적 모델이기도 하다.
* 77세로 생을 마감한 루이14세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그 화려하고도 장엄했으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갔을 것 같이 보이지만, 왕의 생전은 가족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고, 남겨진 상속자는 5세의 어린 증손자 뿐이었으며 왕위계승권을 두고 다투는 조정의 귀족들과 관료들 그리고 스페인 계승전쟁을 통해 쌓여진 주변국들의 프랑스에 대한 적대적 눈초리와 불신에 시달려야하는 삼중고를 안고 있었던 태양왕의 불행과 그에 따른 고뇌는 대단했을 것이다. 역사적인 성의 내용을 알고 나니 역시 인생은 무상하다는 실감나는 현실에 돌아온다.
* 끝없는 길을 따라 우선 콩코드로 출발하며, 목적지인 보스턴으로 향해 달린다. 이 시간에도 여전히 역사적인 슬픈 마음에 가슴도 놀란 듯이 계속 비가 나리고 있다. 차내에서 “3바퀴”라는 tv오락푸로 그램을 틀어주어, 시끄럽기 한이 없다. 조용한 음악이라도 틀어주면 좋으련만, 지루 한 여행에 더욱 더 비가 처량할 정도로 한심한 시간만이 엄습하고 있다. 퀘백과 콩코드사이에 미국과의 국경선이 있다.
* 국경선에서는 경찰관이 정말 많은 변화를 이루어 여행객들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여 주는 것이 바로 비자 면제국의 위상을 맛보는 것 같다. 바로 통과한다. 웃으며 말을 건낼 정도다. 6시간 장거리여정이다. 보스턴에 도착해도 아직 비는 내리고 있다,
* 노랑풍선 여행사에서 온 한 여행객은 하와이 까지 가는데 18일간 3백2십9만이란다. 싸개
왔다고 자랑한다. 버스 안에서는 60대정도의 일행 몇이서 자신의 과거생활의 무용담을 어찌나 자랑 하는지 눈 뜨고 정말 못 볼 것 같은 말들을 나열하여 기분이 잡친다. 지난날들이 그립다면서 자신들은 스스로 명퇴라고 하지만, 현재의 호화생활 태도로 보아 과거가 의심스러운 공직생활을 한 것 같다. 대구시 건축과에서, 한명은 철도청에서 근무했단다. 공직자들이던 그들이 어떻게 안하무인 식으로 축적한 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반문이 나온다.
* 이곳 여행객만 헤아려 본다면, 하루 미국 땅에 오는 한국인이 5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이다. 정말 우리 국민 소득이 조아 졌는지?!나 자신도 이렇게 늙으나마 여행을 하고 있는 실정인데.
15일
보스턴 호텔에서 아침 5.30분에 기상을 한다. 시내 구경도 하고 대학 캠퍼스도 구경 할 겸 일찍 서둘려 출발을 재촉한다.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주도이며, 영국의 청교도들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1630. 9.17일 세운 도시다. 또한 그 유명한 보스턴 차(1773년 12월 16일에 영국의 차조례에 반대하여 보스턴의 급진파가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 회사의 기선(汽船) 두 척을 습격하고 차 상자를 바다 속에 던진 사건이며,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 보스턴에 하버드대학교(1636)·래드클리프여자대학(1879)·보스턴대학교(1869)·매사추세츠공과대학(1861)등이 있고, 터프츠-뉴잉글랜드 메디컬 센터(1852, 원래 터프츠 대학교의 의과대학이었음)등이 있다. 또한 진료연구 센터, 주요병원, 박물관, 도서관, 역사를 자랑하는 사회단체들도 많이 있다. (이곳의 의료 진료와 암센터는 문외한인 나로서도 많이 듣는바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렇게 유명한 대학과 연구시설이 있는 곳이라 흥미가 더하다. 1897년에 시작된 미국 최초의 보스턴 지하철 망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 우리나라 대학건물과 좀 다른 배열 안에 특별히 울타리 처진 그런 딱딱한 분위기와는 전연 대조적인 대학 건물이었다. MIT공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학교 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진열대속에 축소해 만들어놓은 우리나라 거북선도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위대한 유산을 보니 반갑기가 그지없다. 하버드대학 본관 교실에 들어가 마치 학생이라도 된 듯 우리들 일행이 앉아서 잠시 즐겨 감상한다. 이 기분은 또다시 젊음을 되찾은 듯 참 묘한 느낌이 생긴다. 마당 한에 있는 설립자의 동상을 보는데, 이곳 여행자들과 외국의 여행자들도 역시 창설자의 발을 손으로 만지작거린 흔적에 거의 원색인 동색이 나올 정도로 다 달아 버렸다. 만지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속설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도 주물러서 대학 당국이 얼마 전에는 발에다 분요를 발라놓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함으로 하는 수 없이 중단한 일도 있다고 말 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곳 구내매점에 대학 기념물을 파는 곳이 있어 우리일행들은 너도 나도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몇 가지씩 서둘러(가이드의 시간 재촉) 구매를 한다. 나도 역시 내 손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티 앞면에 하버드 로그가 선명한 작은 사이즈로 작은 놈 큰 놈에게 주려고 사고 보니, 어쩐 일인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비록 선망의 대상이 과욕일지는 모르나 유명한 대학 마크가 새겨진 물건을 (이곳에서만 판매하고 질도 참 좋다)구입하고 나니 어린 손자에 줄 선물과 모든 일을 다 챙긴 것만 같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손자들이 내가 못 다한 이 세계적이 유명 대학에 입학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보스턴 시청사를 구경하고, 뉴욕으로 오는 도중에 우드버리 아울렛을 찾아간다.
* 아울렛(약간 시간이 경과한 상품을 파는 곳)은 정말 넓은 대지위에 설치한 가건물들로 지도를 갖고 찾아 돌아다닐 정도로 큰 상점들이 모인 장소다. 입구에서 지도와 활인 쿠폰을 나누어주며, 활인 10%를 우선 정해준다. 그리고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의 활인 폭만큼 또 활인 해주어서 거의 반값에 살 수 있는 물건도 있다. 근처에 음식점도 있고, 유명 상품. 즉 코치. 케빈 크라인(젊은 층 선호 품), 페레가모, 프라다. 샤넬. 노스페스트 등. 이름도 잘 모를 유명상표가 붙은 명품들이 가득하다. 기타 구두, 악세서리 등 많기도 하다. 그러나 단 사이즈가 충분치 않아서 고르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 동양인에게 문제가 된다. 허지만 유명상품을 반액에 살수 있다는 조건에 일행 중에 많은 사람은 몇 봇 다리를 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천 명이나 드나드는 유명한 곳이다. 우리 부부는 눈에 별로 물건이 띄지 않아서 구경만하고 또 다리가 몹시 절이고 아파서 아이스크림만(하나에 3불50센트)사서 그늘진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일행 중 몇 여인들은 신이 나서 아내에게 물건을 자랑한다. 등산화는 서울서 정품이 15만원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단돈 3만원이면 산다. 이토록 특히 신발과 구두가 싼 편이다.
뉴욕으로 돌아가 모든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이곳 뉴욕으로 오는데 4시간 30분 걸렸다.
* 맨해튼을 사이로 브루클린 브릿지를 흐르는 강이 “EAST RIVER"그리고 뉴저지를 사이로 흐르는 강이 ”WEST RIVER"또는 허드슨 강이다. 뉴욕의 맨해튼은 이 두강이 마주치는 합수 지점에 있는데 이 강이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곳이 뉴욕 마라톤의 출발점인 베르자노 다리다. 이곳을 구경하고, 뉴욕에 돌아와서 보니 처음 도착하여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역시 작별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들이 닥쳐 음식주문에 혼선을 빚어가며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각별히 아내를 따르던 여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맞나기를 원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고 비행장에 우리 둘만의 출발을 위해 또 다른 안내자가 비행장에 승용차로 데리고 간다. 10일간의 여행을 마지막 뒤로 하고 아쉬움에 그리워하면서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 몸을 누어본다.
6월 16일
이른 새벽, 잠도 못자고 기다리던 출발 비행시간인 0시 50분에 뉴욕 출발 서울행 비행기 ke086편으로 탑승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내 발자국을 남겨야 제대로 된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행도중 우리는 시간을 재조정해야 한다. 도착시각은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17일 오전 03시 50분경이다.
온 나라들을 발로 걸으며, 더 많은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세상이 내 것 같고, 사람들이 내 사람인 것 같고, 이런 모든 것들이 내가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느낀 보람이요, 교훈이다. 그래선지 더욱더 스쳐가는 인연보다, 동행하는 인연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