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국가지대본.
월남전은 가장 큰 意義는 우리 국민의 자주성과 자신감을 발견할 기회였다는 점입니다.
세계 최강의 미군이 우리의 용맹성과 전투력에 경의를 표할 만큼 대한민국 파월한국군은
용감하게 헌신적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과 해외무대에 도전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월남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이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그 들이 남긴 자랑스런 전승기록은
우리역사에 영원히 영원히 각인 될 것입니다.
"월남 전선은 한국전선과 직결되어 있다"는 판단 하에 미국 및 월남정부의 요청과
국회동의를 거쳐 국군의 파병은 1964년 9월 비전투부대인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필두로, 1965년 3월 한국군사원조단 파병, 그리고 추가적인 전투부대
지원요청에 따른 1965년 10월 수도사단(맹호), 제2해병여단(청룡), 1966년 맹호
제26연대와 보병 제9사단(백마)의 파병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8년 8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총 32만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전투와
대민심리전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3년 1월 27일 파리휴전협정조인으로 1월 30일 선발대의 귀국으로 시작된
주월 한국군의 철수는 2월 3일부터 3월 23일까지 수도 사단, 제9사단 등
총 3만 8천여 명이 한국으로 복귀함으로써 완료되었다.
주월 한국군이 철수시 휴대한 군수품 현황은 주요장비 1,812만 달러,
탄약 140만 달러, 비 주요장비 235만 달러 등 총 3,067만 달러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의 해외파병은 무기 현대화와 군사력 분야에 있어서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고 정치·경제·사회분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지난 1964년부터 8년여 동안 열대의 이국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며 전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 주월 한국군이 개선한다.
싸웠노라! 이겼노라! 돌아왔노라!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다시 생각한다.
(글, 옮김: 신동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