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각스님의 무정설법 - 봉암사 계곡에서
천년 전, 신라 때 바랑을 메고 걸어가던 지증대사가 멈추었다. 고개를 들고 대사가 바라본 곳,
경북 문경의 희양산(998m), 대사는 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형상이로구나.
이곳은 스님들이 도를 닦아야 할 곳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곳은 도적의 소굴이 될 걸세!" 879년
(헌강왕 5). 대사는 봉황바위 아래 명당 자리에 터를 잡고 봉암사(鳳巖寺)라는 현판을 써내려
갔다.
천년 후, 2008년 7월 28일 월요일 오전 9시 반. 중부내륙고속도로 승합차 안.
"......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봉암사 스님들은 산문을 걸어 잠그고 철조망을 쳤습니다.
그 후 20년이 넘도록 관광객들은 물론 먹물 옷을 입은 스님들도 일주문도 구경 못하고 발걸음
을 돌려야 했지요. 이곳 봉암사는 1년 중 딱 하루, 부처님 오신날만 산문을 개방합니다. 뜻있는
스님들이 모여 전국에서 딱 한 곳이라도 수행에 전념 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지
요. 현재는 하안거, 동안거에 100~130명 정도의 스님들이 결제에 들어가는데, 치열하게 수행을
해보겠다는 승려가 많아지자 문턱이 더 높아졌어요. 그래서 타 주지 스님도 쫓겨날 정도로 규율
이 매우 엄격하지요. 봉암사는 종정만 3명을 배출한 선사찰이니 만큼 안에 들어서면 절대 침묵
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봉암사에서 역사상 올해 처음으로 외국스님을 받았는데 수행하는 스님
들께 누를 끼져서 되겠습니까. 결제기간 동안에 대중공양이라는 특별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쉬운
인연이 아닙니다. 좋은 공덕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일주만 앞에 잠시 섰다. 법련사 대안 주지 스님께서 차 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수려한 사찰의 배치와 사찰 뒤의 흰 산을 바라보고 곧바로 대웅전으로 들어
갔다. 수행하는 많은 스님들과 함께한 사시예불이 끝나고 개인 기도 및 수행 시간을 가졌다.
우리 일행과 함께 법당에서 나와 도량을 걷던 현각스님의 몸은 많이 야위었지만 얼굴은 매우
맑고 밝은 빛이 감돌았다. "하루에 10시간 앉아서 공부해요. 새벽 3시부터. 하지만 너무 좋아요"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스님의 시선이 매우 따뜻했다.
점심 공양시간이 되었다. 수행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점심도 사찰 밖에 나와서 할 예정이
라고 대안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뜻밖이었다. 공양간 안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잘 차려진 음식
(대전에서 온 출장 부페)이 눈에 띄었다. 마음이 뿌듯했다. 목숨 걸고 수행에 전념하시는 봉암
사 스님들. 한끼라도 잘 드시고 힘을 내어 더욱 용맹정진 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식사 후에 그늘 아래에서 대안스님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의 눈빛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점심
공양이 끝나고 산문을 닫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접견실에서 대안스님, 현각스님 그리
고 스님의 사제(출가 동생)인 외국인 스님 세분이 함께 나오셨다. 대안스님이 말씀하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현각스님과 함께 백운대 마애석불을 친견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백운대가 있는데 그곳은 스님들이 선다(禪茶)공양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
행의 얼굴은 접시꽃처럼 밝게 피었다. 현각스님이 맨 앞에 서시고 우리 카페 회원과 법련사 신도
등 70여명이 한 줄로 계곡 옆의 숲길을 말없이 걸어 올라갔다.
(맨 앞이 현각스님, 밀집모자 쓰신 분은 대안스님)
태풍 '갈매기'가 동해로 날아간 다음 날, 봉암사 계곡.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했다. 많은
수량의 물이 바위돌 사이마다 하얀 포말을 남기며 흘러가고 있었다. 계곡의 맑고 시원한 물
소리를 들으며, 홍수에 휩쓸려 납잡 엎드려 절을 하던 풀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젖은 날개를
말린 매미는 한 낮의 열기를 흔들어 댔다.
10여분 걸었을까. 테니스 코트 반 쪽 보다도 더 큰 넓적바위가 보였다. 바위 오른쪽으로 많은
물이 하얗게 굴러 떨어졌고, 소(沼)에는 옥빛 물이 출렁였다. 일행이 다 올라오자 왼쪽 소나
무 아래에 3m 높이의 마애불에 대해 현각스님께서 간단히 설명했다. 암벽에 새겨진 부처님
의 얼굴은 다른 곳과는 달리 유난히 희었다. 마치 탱화에 나오는 부처님의 후광처럼. 물 떨어
지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일행은 현각스님 곁으로 가까이 몰려와 까막눈을 반짝이며 설법을
듣고자 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혹시나 결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때 스님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발 벗어요. 양말도 벗어요. 그리고 물 속으로 들어가세요"
틀어 막았던 일행의 입에서 절제된 환호성이 터졌다. 모두 바지를 걷어 올리고 아이처럼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외국 비구니 스님들도 법의(法衣)를 적셔 가며 물속에서 무척 좋아
하셨다.
(법련사 주지 대안스님과 벽안의 스님들)
대안 스님이 말씀하셨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천진불들 봐요.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결제기간
동안 참선하는 스님들은 절대 묵언입니다. 말을 하려면 우선 생각을 해야죠. 생각을 하면 마음
속에서는 기쁨 슬픔 분노 등으로 부글부글 끓자나요. 선은 사리분별하는 생각을 끊는 것이니까
말을 하는 것과 상극이죠. 그래서 묵언을 합니다. 계곡 물속에 들어가서 좋아하시는 분들이 집
안의 걱정거리를 생각하겠어요. 근심 걱정 다 잊어 버리고 시원한 맛만 느낄 뿐이지요. 자연 속
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무정설법이지요"
찬물 속에 들어가 흐르는 물에 속세의 갈증을 씻어 냈는지 모두들 밝고 훤한 얼굴이었다. 현각
스님이 한 말씀 하셨다. "에브리바디. 아, 미안해요.... 여러분 너무 고마워요. 카페 회원님들,
법련사 신도님들, 멀리서 이렇게 찾아 오셔서 너무 힘이 돼요. 봉암사 외롭고 쓸쓸해요. 그러나
진짜 공부 잘 돼요. 며칠 안 남았지만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 대중은 박수를 보냈다.
현각스님은 고개를 끄떡 끄떡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폭소가 터졌다. "여러분이 다
부처님예요" 계곡의 물을 가리키며 "하얗게 흐르는 물을 볼 뿐, 발아래 시원한 물을 느낄 뿐,
매미소리를 들을 뿐! 생각(근심 걱정)이 없어지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요. 기분 좋지요?"
일행은 모두 “예‘하고 산길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짧은 만남, 짧은 설법이었지만 모두들 기쁜
얼굴이었다. 일주문에서 손을 흔들며 일행은 현각스님과 헤어졌다. 우리는 김용사로 향했다.
* 사진은 게시판 <앨범>에 있습니다.
첫댓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ㅁ^ _()()()_
참석하신 분들과 마음으로 동참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_
덕분에 시원한 계곡물과 시원한 바람 느껴지는 듯,,,,하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 )...( )...
많은 감동받고 갑니다! 이런글과 사진 올려주신 법운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무서가모니불.. 화광합장
참석치 못한 아쉬움에 몇 곱을 더하여 감사드립니다...이렇게 소식 전해주심에....()()()
다음에도 또 기회가 있겠지요...? 참 귀한 자리였는데... 휴... 현각스님+봉암사, 그리고 김용사까지 꿈의 조합이네요.
저도 아주 옛날에 봉암사에 갔었는데 입구를 지키는 스님께서 무슨 영문인지 우리 가족을 경내로 들여 보내주어서 절 구경을 잘 했는데 깊은 산속에 청기와집이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_()()()_
어릴적 여름 방학이면 사내아이 마냥 무학산 계곡을 (서원골) 여름 내내 헤메고 다니던 시절이 생각 나는군요. 사찰에서 들리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이렇게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줄 그땐 몰랐었지만..... _()_
일찍내려와 아쉬웠는데 ~~ 상세하게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현각스님! 감사합니다...
계곡의 시원한 물..맑은 하늘..모두의 입가에 퍼지는 행복한 미소..그 모두가 부처님의 설법이지요^^ 이모든것이 그저 소중하고 감사할 뿐...()()()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이렇게 뜻있는 자리에 동참하지 못해 너무 아쉽고,죄송할 따름입니다...생생한 소식 전해주신 법운님 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