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말타기-
몇 년전의 겨울, 미국에 사는 처남가족들이 한국에 왔다. 모처럼 처형제가족들이 와 모였기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다. 같이하는 여행이라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다. 여행은 잠시 잊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찾기 위해 떠난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특히 처가족들에게는 서로 떨어져 지냈던 시공간을 서로에게 바짝 당겨놓고 지낸다는 의미가 컸다. 모두 같이 있었고 생각했고 한 곳에서 밥먹고 잠을 잔 오랫만의 일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제주도에서는 육지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정도 많았다. 그 하나가 말(馬)타기 체험이었다. 차창 너머로 열린 목장에서 한가로이 놀던 먹던 말들은 보았지만 말을 직접 타 본다니 기대반 두려움 반이었다. 가짜 말타기가 아니라 진짜 말타기인 것이다. 길들인 말 등에 앉아 트랙을 도는 체험이었다. 말 발걸음에 따라 엉덩이를 위아래로 요령있게 맞춰 한발 한발 나가는 기분은 내가 기억하는 옛날 어린시절의 가짜 말타기와는 너무 달랐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다음과 같은 여러 말들을 타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장 먼저 타본 말은 아버지의 넓은 '등말'이다. 나와 유사한 경험자가 많겠지만 팔 다리를 굽히고 엎드린 모습의 아버지 등에 올라 즐거워했던 모습 말이다. 어째서 이런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넓다란 등, 따뜻하게 느껴졌던 등 체온 그리고 사랑이 담긴 조심스러운 말걸음.... 이런 자세와 모습을 똑같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해 보여줬고 또 해 주며 살았지만, 그렇게 가르쳐 주신, 아주 오래 전에 떠나신 아버지의 기억은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다.
다음 말은 골목길을 달리던 '네 바뀌 달린 플라스틱제 자가용 말'이다. 가난한 시절, 동네에 자가용 말은 한 두대였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탔던 애마로, 참 정직했다. 두 발로 땅을 힘껏 내딛으면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달려나갔다. 하루 종일 타고 놀아도 신이 났던 말타기 놀이, 놀이의 재미는 세월이 흘러도 꼬마들에게는 공통적인 것 같다. 자식들도 내 어릴 때 모습같이 놀고 즐기는 것을 보았을 때 놀이보다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어린이는 놀이를 즐겨해야 하고 그 속에서 행복해 해야 한다.
그 다음의 말은 '스프링 말'이었다. 몇 푼의 돈을 쥐고 동네 공터로 가면 리어카에 여러 마리의 스프링 말을 달아 놓고 동네를 순회했던 아저씨가 있었다. 아이들은 확성기의 동요를 듣고 뛰어 나가면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 천막을 드리운 리어카에다 흰 말, 노란 말, 검은 말, 빨강 말들이 스프링에 연결되어 열병하듯 서 있었다. 마부인 아저씨는 꼬마들의 놀이 돈 사정을 아신 듯 가끔 오셨다. 가끔 타본 스프린 말들은 나의 애마처럼 달리지는 못했지만 위아래로 엄청난 점프력을 자랑하며 나를 중력의 힘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동네 친구들과 놀기가 한참 좋아진 나이가 되면서 말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동네아이들이 담벽이나 전봇대에 머리를 연속적으로 이어 박고 엎드려 움직이지 못하는 말을 주저앉히는 놀이인, 속칭 '말뚝박기 놀이'에 재미를 붙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퀴 달린 말을 타고 다니며 일찍 발달한 허벅지 근육, 스프링말을 타면서 익힌 중심잡기, 말뚝박기에서 배운 점프력이 나의 건강한 걸음거리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아마도1950~19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에는 나와 같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세월가면 많은 것이 변화하고 없어진다. 어린이놀이 판매가게에는 바퀴달린 말대신 전동으로 움직이는 탈 것들이 줄비해 있고, 1분만 더 태워달라고 졸랄던 리어카 아저씨들도 보이지 않는다. 함께 말타기를 하던 친구들도 방안 어디에 꼽혀있을 먼지먹은 앨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린시절의 애마, 너를 타고 다니던 그 철없던 시절이 오늘따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