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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면 문학리에서 시작하여 멀리 팔탄면 봉담면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화성시에서는 비교적 높은 산이며 정상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봉화을 닮았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예전에 봉황이 깃들어 살았다는 설이 전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 산골짜기 안에 쉰길 바위가 있을 정도로 산이 비교적 높고 골짜기도 대단히 깊다. 1794년(정조18)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의하면 서봉산은 '부(俯) 서남 15리 정송면(貞松面)에 있는 산으로 작은 소암(小菴)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1831년(순조 31)에 발간된 '화성지'에서도 '부남 35리 남곡면(南谷面)에 있으며 능원(융릉, 건릉)의 화소 내에 포함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때문인지 정남면 백리에서는 서봉산을 화소산(火消山)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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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꽃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 소나무 넓은 길따라 서봉산으로 오른다.
[그늘막]에 조형물이 있기도 하고
[서봉산 산림욕장]길 따라 가기도 하면서 오가는 이들이 인사도 나누는 여유가 있는 걸 보면 그만큼 서봉산
오르내리는 길이 편하다고 할까.
전망대 0.1KM의 이정표가 있는 곳은 키를 재는 기구도 있고 현위치도 표기하고 있었다.
이정표 오른쪽으로 오르면
'棲鳳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정자 앞에
봉담읍 발안저수지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조망과 함께 서봉산 정상석을 찍을 수 있었다.
'棲鳳山' ▲248 는 서봉지맥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쉰길바위의 전설이 담겨져 있다.
옮겨오면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서봉산이 있다. 이 산은 예부터 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서봉산이라 불러오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여 산 안팎을 중심으로 곳곳에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하여 쉰길바위의 암벽을 오르내리며 이곳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등 심신을 단련하기도 했던 곳이다.
서봉산 중턱에는 옛날부터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젊은 스님과 동자중 하나만이 살고 있었고 스님은 매일같이 마을에 내려가서 시주걸립을 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 날 스님은 시주걸립을 마치고 암자로 돌아가는 길에 마을 어귀에 이르러 갈증이 나자, 늘 다니던 우물을 찾아갔다. 그때 물을 긷던 아낙네들은 물동이를 이고 하나 둘씩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젊은 스님이 우물 가까이 갔을 때는 어떤 낭자 혼자만이 남아 물동이에 물을 담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낭자를 바라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훤칠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곱기가 이를 데 없어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여 노닐고 있는 듯 하여 “참 아름답기도 하구나.”하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우물가에 다다랐다. 낭자는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젊은 스님이 다가서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 긷던 바가지와 물동이도 버려둔 채로 마을로 향해 줄달음을 쳤다. 스님은 낭자가 놀래서 뛰어가는 것을 보고는 우두커니 뒷모습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로 인하여 물동이마저 놓고 간 낭자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보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에서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서 나무 밑에 놓고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그 동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피곤한 나머지 물동이 옆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스님이 잠에서 깨어날 즈음이었다. 이때 마침 어제 그 낭자가 일찌감치 동이를 찾으러 오다가 물이 가득한 동이 옆에서 스님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은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낭자를 바라보며 합장하고 머리 숙여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다음 그곳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 때 낭자가 어제 있었던 자기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스님에게 권하자, 스님은 또한 고마다는 인사를 하고 물을 받아 마신 다음 아리따운 낭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암자로 돌아갔다.
한편 암자로 돌아온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으며, 시주걸립도 떠나기가 싫었다. 불도에만 집념해야 할 스님의 처지에서 속세의 낭자가 그리워 번민하고 있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점점 더 마음이 혼란에 빠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모든 것을 잊기로 결심하고 다시 마을로 시주걸립을 떠났다.
한편 낭자네 집에서는 부친이 우연히 병이 나서 눕게 되었다. 그래서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쓰고 용한 의원을 불러 치료해 보았으니 효험이 없었다. 낭자는 부친의 병환이 여의치 않자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지내다 보니 몸이 수척해지기까지 했다. 그 즈음 스님은 시주걸립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우물을 찾았다. 거기서 스님은 낭자를 만나게 되자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소를 띠는 낭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서려 있어 사연을 물어본 적, 부친의 병환 때문인 것을 알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약 처방을 써주고는 차도가 있은 뒤 자기의 암자에 와서 3일간 불공을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후 낭자는 스님의 처방대로 약을 달여 부친에게 드리니, 병세는 감방 호전되었다. 그래서 스님 말대로 삼 일간 불공을 드리기 위해 부친의 승낙을 받은 다음 돈과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서봉산 암자에 들어갔다. 스님이 일편단심 낭자의 생각으로 지새던 차에 낭자가 부친의 병환이 좋아져서 약속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이었다. 낭자가 사흘 동안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다음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날 때였다. 스님은 그 동안 자기가 낭자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자초지종 솔직히 고백했다. 즉, 낭자를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마음이 솟구쳐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으니 낭자와 함께라도 불도수행을 떠나서 환속을 하겠다는 하소연이었다. 낭자는 뜻밖의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스님의 처지를 생각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낭자는 부친의 승낙을 빙자해서 그날은 암자를 떠나왔다. 이튿날 낭자는 암자에 가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불도에 몸담아 오신 터에 쉽사리 속세로 환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은 대답하기를
“소승이 불도의 길을 걷고 있음은 지당한 말씀이오나 낭자를 두고는 도저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 환속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오니 소승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낭자는 또 다시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환속을 약속한다는 표시로써 저 소방산 위 쉰길바위에서 턱걸이 백번을 한다면 기꺼이 응하겠소.”
하였다. 젊은 스님은 그 까짓 백번쯤이야 걱정 없다는 듯 희희낙락하며 자신 있게 승낙을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바위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의기 있게 팔을 걷어 부치고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뜬거뜬 올라갔으나 횟수가 더해 갈수록 힘이 들었고, 80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더욱 힘이 들었다. 스님은 사생결단 있는 힘을 다하여 턱걸이를 했지만 백번을 채우지 못하고 99번째 가서 기운이 빠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이 풀리면서 급기야는 높이가 쉰 길이나 된다는 바위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자는 스님을 부르면서 황급히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으나 스님은 이미 유혈이 낭자한 채 숨을 거둔 후였다. 낭자는 생각하기를 “내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여 스님이 불의의 변을 당했구나” 하고 슬픔을 못 이겨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다가 일어나니, 자기 앞에는 난데없이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 나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스님의 이루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고 하여 ‘눈물바위’라 불러오게 되었으며 쉰길바위와 함께 지금까지도 스님과 낭자의 한 맺힌 사연이 담겨져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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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산 쉰길바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쉰길바위]로 내려 가보려 했지만 어는 등산객이 눈이 있어 위험하다고 못 내려가게 한다.
못 내려가게 하는 등산객과 몇 마디 나눈게 고작인데 친한척 정상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 쉰길바위의 궁금증은
더해만 가고 귤과 떡을 나누워 먹고 일어선다.
향남택지개발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X218 봉에서 바라 본 팔탄면이지 싶다.
능선길은 계속이어지고 있었다.
x139의 이정표가 서봉산에서 1.9km내려 왔다. 진행은 도이리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갈길을 확인하고 행정리에서 올라 왔다는 부부의 이야기가 오가며 안녕을 묻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같이 내려 가자던 부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혼자서 내려선다.
[서봉산은 점점 멀어지고 동오리가 가리키는 길로 간다]
내려오니 서봉산 등산로의 표시가 있는 임도따라 걷는다.
동산숲유치원- 커피 전문점 - 동오정 식당을 지나 82번 도로를 횡단보도로 건너면 충전소가 있다.
충전소는 오늘 휴무였고 철계단 따라 투벅투벅 오른다.
제법 높고 경사지다.
[감시초소도 만나고]
[천석산 유래와 천석바위]가 있었다.
천석산의 유래를 옮겨오면
하늘이 천명의 주민을 구할 수 있는 산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 이 산골짜기에 천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는데 입이 남쪽을 향하고 비구가 북쪽을 향하며 멀리 서해가 바라 보이고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하늘과 맞다는 바위같다하여 천석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일 설에 의하면 부근에는 전혀 다른 바위는 볼 수 없어 옛날 삼신할머니가 놓고 간 바위이며 하늘에서 떨어 뜨렸 다하여 천석(天石)라 불렀다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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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엔 표기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천석사 내려가는 이정표와 길이 있는 걸 보면 이곳이 천석산인가 보다.
[도로로 내려오니 산을 깎아 시멘트와 모래 작업은 괴음소리와 진동하고 ] 도로 건너 집 옆으로 오른다.
개가 몇마리인지 짖어대며 나를 따라 나온다.
집이 있으면 개도 있고 ..
개가 있으면 집이 있는 ..
꿩이 후다닥 수없이 많이 날아간다. 이곳은 꿩이 사는 천국인지.
논밭이 눈과 어울려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도로와 내려와 제디스란 회사를 지나 43번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화리현리(양석골) 입구 - 뽕나무골 입구-도로따라 진행
해야 했다. 뽕나무골 위로 오르려 했지만 눈이 있어 고생할 것 같기에 그냥 도로 따라 가다 주유소로 들어선다.
아무도 계시지 않아 찾아보니 주인같은 분이 차에서 나오고 인사하니 사무실로 들어가란다.
따뜻한 커피한잔 준다. 물도 보충해 가라면서 친절하다.
커피한잔 먹으면서 '왜 산에 다니냐고' 묻는다. '뭐라고 말할까'하다가 머뭇대고 만다.
몇마디 나누다 허리 아픈데 치료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
500m 빈생수병으로 아픈 부위를 시간이 나는대로 벽에 대고 치고 잘 때도 편한 높이 만큼 방바닥에 대고 자란다.
'네 고맙습니다' 그보다 더한 반가운 말은 없다.
'양감으로 차타고 가면 10분이면 된다'고 차 타고 가라는 눈치다.
여기 무슨 산이 있다고 그러는 물투다.
'네~~"하면서 난 발길을 돌려 주유소뒤 임도따라 언덕길을 걸어 다 사라져 가는 산릉을 확인하고 대신정밀쪽으로
갔지만 개들이 나를 보고 우루루 몰려와 짖어 대는 놀라움에 죽은 듯이 걸어 나온다.
오늘은 완전 레미콘 공장에 개판이구만 !!
창고 앞으로 해서 능선으로 진행하는 걸음은 서서히 빨라지고 있었다.
가다가 이리가야 할까 저리가야할까 망설이는데 참소리님의 표시기가 우회전해서 가란다.
홀대모 모임에 뵌적이 생각났다.
석항에서다.
x104봉 철탑에서 좌측길로 걸어야 했다.
x127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봉우리를 지나 중앙레미콘 뒤로 길따라 나오게 된다.
레미콘 공장에서 나를 보고 개 두마리가 짖어대며 아구다툼한다.
'어이 무시라, 여기도 개판'
짖다 지쳤는지 소리는 그치고 돌아보니 두마리가 앉아 날 쳐다본다.
'어쪄라구'
대양3리 마을회관과 개월안길을 지나 능선으로 들었지만 무시무시한 괴음소리와 함께 들리는 공사판를 쳐다보며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와
보니 성신레미콘 공장였다. 덤프트럭 오가는 길은 시멘트 범벅이 되어 질퍽질퍽!!
보이는 잘려나간 곳이 x91봉이지 싶다.
인삼밭을 지나 질퍽이는 논밭을 지나 굴다리를 통과하여 덕지산을 향해 걸었다
[덕지산을 조망하며 ]
요당리 성지를 지나 있을 때 어두운 밤이 오는 길목에 서서 덕지산을 보았다.
잘려나간 덕지산을 보고서야 '오늘은 그만'이란 말이 나도 모르게 내 걸음을 멈추었다.
스틱을 접고 양감으로 도로따라 간다. 6시인데 어두워졌다.
며칠 전 동지였으니 지금은 낮은 짧고 밤은 길다.
지나가는 차에 히치 성공, 짜장면 배달하고 오는 중국집 아저씨다.
면사무소 앞에서 오산가는 버스를 타란다. '아저씨 짜장면 먹고 갈래요' 했더니 그곳이 양감면의 '수타짜장면집'이다.
1시간에 1대씩 오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짜장면을 10분안에 먹어야 했다.
그러다 시간은 가고 할 수 없이 잡채밥 먹는 아저씨들 오산가냐고 물었더니 안간덴다,
뒤에 짬뽕 먹는 딸둘 둔 부부가 '우리차 타고 가잰다'
두번째 히치 성공.
진위역까지 오면서 애기 아빠는 고향이 보은, 애기 엄마는 고향이 문경
그것도 안생달이 있고 바깥생달 중 바깥생달이란다.
크,,, 안생달, 차갓재.
백두대간 차갓재서 안생달로 내려와 하룻밤 어느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생각에 내 맘이 젖는다.
진위역-구로 - 송내..참 빨리 왔다.
레미콘공장의 괴음이 들리는 산을 걸었다.
오늘은 완죠 개판였는데 그 개판을 히치 성공으로 다 묻어 버리는군..
첫댓글 그래도 따뜻한 온정도 받았네요 따뜻한 커피 와 물 추운 겨울 이보다 더 좋은것은 없지 않남요
하지만 개가 있으면 정말 무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