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고창으로 가는 길은 처음가는 길이라 네비의 안내에 따라 운전을 시작하였다. 운전을 시작한지 몇분이 지나기도 전에 차안은 조용해졌다. 더위에 물놀이에 지쳐 모두 잠이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길은 막힘없이 수월하게 갈수 있었고, 나른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휴게서에서 늦은 점심과 함께 피곤함을 달래보기로 하였다.
휴게소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각자의 입맛에 따라 점심을 주문했는데 금방 음식이 나왔다. 휴게소의 큰 장점은 음식을 주문하면 나오는 속도가 짜장면집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가공품을 끓여주는 형태긴 하지만 맛은 있었다. 아쉬운 점은 반찬을 너무 적게 주는 것이고, 셀프반찬도 부족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여수 돌산갓김치가 유명한데 정작 여수에서는 먹지 못하고 여수를 벗어난 휴게소에서 먹게 된 것이었다.
약 한시간 가량 더 운전하여 고창 고인돌 마을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뜨거웠지만 고인돌을 보겠다는 우리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박물관 옆길을 통해 네비의 안내에 따라 좁은 길을 올라가니 우리가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고인돌 모습이 보였다. 안내된 곳은 고인돌탐방 5코스였는데, 고인도 한기가 주택가 인근에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관람객이 2명 있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도착하니 금방 나가서 우리 일행 뿐이었다.
고인돌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크기는 비교적 작아 보였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매장문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었다. 넓적한 윗돌 아래 넓고 긴 돌 두개가 괸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꽤무게가 나가게 보였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모양을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답은 얻지 못하였다.
얼른 사진을 찍고 박물관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매표소에 갔을 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쉬는 날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을 갈때는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에 대기하고 있을때 다른 팀 일행이 도착하였다.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가 있는 가족일행이었다. 박물관을 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아서 소중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몹시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그 일행은 박물관쪽으로 갔다.
우리 일행은 선운사에 가보기로 하였다.
선운사까지는 약10km 정도 거리여서 금방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에 큰 바위 얼굴을 한 기암바위도 보았다. 어찌나 많이 비슷하게 생겼는지 조각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주차장은 넓었고 또 차량은 거의 없어 텅 비어있었다. 그늘에 몇대 주차되어 있었다.
선운사까지는 1km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여기서 의견이 갈렸다.
더워서 못간다는 사람, 나무 숲길이니 시원해서 갈 수있다는 사람. 그래도 가는 길은 평지라 주위를 구경하며 올라갔다. 길가에는 아주머니들이 특산품을 팔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였다.
올라가는 길 왼쪽에는 도솔천이라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물은 꽤 많은데 맑지않았다. 어떻게 저런 물에서 놀고있지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의문점은 바로 풀렸다. 안내판을 읽던 아내가 해답을 주었다. 물가 주변 도토리나무에서 도토리가 물에 떨었는데, 도토리에 있는 탄닌 성분이 물에 풀려 흐리게 된 것이다.
간다 못간다 반복하며 절반 이상을 같이 갔으나 아내와 막내는 더는 못가고 쉬어야한다고 하면서 그늘 정자로 갔다.
3부자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찍고 있었는데 막내가 올라와서 음료살 돈을 달라고 하여 지갑을 다 털어서 주었다. 9천원이 전부였다.
안내판을 살펴보며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논의하였다. 길게는 10km코스까지 있었지만 우리는 과감하게 선운사 경내만 보고 오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선운사는 아주 조용하였고, 다른 절과 달리 모두 평평한 땅에 건축되어 있었다. 경내마당에는 배롱나무의 꽃이 인상적이었다. 소원등도 많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대학입시가 얼마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100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소원등이 되어 평화를 얻고, 기적을 이루며, 행복을 얻듯이 모두가 소원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인생사가 그렇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내려간다고 전화를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해도 기울고, 그늘이 되어 있어서 비교적 덜 더웠다. 길도 블럭과 돌판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아주 편안하였다.
아내와 막내는 고구마말랭이 간식을 사서 먹었고, 찻집에서 잠시 휴식하였다고 했다.
저녁은 그 유명한 풍천장어 정식을 먹기로 하였다. 3인분에 공기밥 추가하여 10만원 정도였다.
맛도 있고 양도 많고하여 모두 만족하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인 무인텔로 향했다. 여행하면서 무인텔을 숙소로 정하기는 처음이었는데 침대도있고, 5명 숙박이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하여서 결정하였다. 숙소는 인가가 드문 도로가에 위치해있었다.
도착하여 전화를 했더니 주인이 나와서 안내를 해 주었다. 2층 구조인데, 1층은 칸막이 주차장으로 바로 객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객실은 예상했던대로 조금 좁았지만 그런대로 지낼만 했다.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시원한 맥주 하나씩하며 고창의 저녁을 보냈다.
아쉬운 점은 에어컨 바람방향 조정하는 것이 아래로 쳐저 찬기가 아래로 바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침까지 추운 잠자리가 되었다.
오늘은 고인돌유적지를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하였다. 9시에 표를 사서 박물과에 들어갔더니 3D 영상관은 10시부터 시작하여서 1시간 가량 박물관 전시물을 구경하였다. 고창에는 고인돌이 1000여기 이상 있는데 규모가 엄청났다. 무게가 200톤이 넘는 것도 있었다.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깨어내는 채석장과 고인돌 군락이 세계유산에 인정되어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영상관에서는 고인돌이 만들어지게 된 전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모로와 모랑이 등장한다.
모로는 족장의 아들이고 모랑은 하늘에서 온 선녀같은 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족장인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모로가 성장할 때까지 임시족장이 대행하였는데, 나쁜짓을 많이하여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쫓겨나고, 모로가 족장이 되어서 마을을 평화롭게 운영한다. 쫓겨난 족장과 오랑케가 협력하여마을을 습격하여 전쟁이 발생하는데 모랑이 적 화살에 맞아 죽는다. 적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았지만 모랑이 죽어서 마을은 슬픔에 잠겼다. 모랑이 하늘에 오르면서 남겨진 것이 고인돌 같은 형상이었다. 모로는 그 형상이 있는 곳에서 모랑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이 형상을 만든 것이 오늘날이 고인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 주된 내용이었다.
10시30분에 모로모로 열차를 타고 고인돌 군락지를 관람하였다.
고창은 수박이 또한 유명한데 어제, 오늘 둘러보아도 수박밭도, 길거리에서 수박파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수박을 밭에서 재배하는 것이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너무 더워서 작황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무더위가 농가소득은 물론 소비자들도 비싸게 사 먹어야 해서 여러모로 피해를 주고 있었다.
더위가 빨리 물러갔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기대와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