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카페 '구름모자( 061. 383-5567)는 한재골 저수지 위에 있다. 원촌 사거리에서 백양사 쪽으로 가다가 물이 그득한 저수지를 보면 서서히 속도를 늦추게 된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황토집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그 황토집에 마음이 가는 것은 버섯모양의 외등과 소박한 황토가 고향의 초가집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대문이듯 둔중한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딸그랑' 풍경소리가 울리고 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 위에는 까치집과 까치 두 마리, 둥지 위에는 하얀 알도 몇 개 있다. 까치는 행운의 새요 반가운 손님을 알리는 새로,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은 이 집의 귀빈이 된다.
대로 엮어 색지로 입힌 전등갓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구석구석에 풍로며, 탈곡기, 작은 창문, 저울이 있고, 마늘과 고추, 옥수수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황토가 주는 친근함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가난하면서도 정은 잃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창가에 앉으면 저수지에 내려온 산그림자를 보기도 하고 이른 시간이면 스멀스멀 퍼져가는 물안개를 볼 수도 있다. 또 바람이 대숲을 치며 서걱서걱 우는소리를 듣거나, 서서히 어둠 속에 지워져가는 숲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럴 때 마시는 차 한잔은 일상의 피로를 씻어 사념의 날개를 펴고 함께 한 이와의 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임어당>은 차마시기 좋을 때를 '연못가의 수양버들이 봄비에 젖을 때. 오월의 신록 속에 뻐꾸기 울음이 떨어질 때. 삶이 시들하고 인생이 서글퍼질 때. 석류꽃이 피고 보름달이 뜰 때. 뒤란 대숲에 사락눈이 내릴 때......' 라고 했다. 어느 때 차를 마셔도 좋지만 자연을 느끼고 삶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때면 누군들 한 잔의 차나 한 잔의 술이 그립지 않겠는가.
'구름모자'에서는 전통차를 권하고 싶다. 물론 낙엽냄새 나는 여러 종류의 커피도 있다. 그러나 안주인( 황진숙)이 차 재료를 직접 채취하고 담그는 과정을 보았기에 다른 집과는 그 정성스러움이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딸기를 따러 가서 팔이 온통 긁히기도 하고, 오디를 구하려 시골 장을 헤메고 다녔음도 알고 있다. 차림표에는 모과차, 오디차, 석류차, 쌍화차, 대추차, 매실차, 칡차와 바지락수제비( 6,500. 후식포함) 등이 있다. 즐기는 차가 자연의 생기와 향으로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고 약이 된다면 더 없이 바람직하다.
나는 여름이면 얼음이 동동 뜬 오디차를 마신다. 진한 포도주빛의 오디차는 부드럽게 씹히는 오디의 달콤한 맛과 아삭거리는 씨와 잣이 어울려 고소하고 감미롭다. 오디는 뽕나무의 열매로 흑자색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어릴 때 입술이 까맣게 오디(오돌개)를 따먹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오디로 담근 술은 상심주(桑 酒)라 하여 귀한 술로 여겼고 선인주(仙人酒)라는 별명도 있다. 오디차는 혈액순환을 도우며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서 저혈압. 냉증. 불면증 등에 좋은 효과가 있다.
석류의 루비처럼 빛나는 열매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석류는 기독교에서는 희망의 상징이요 영원한 생명의 심벌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석류의 씨가 많아 자손번영과 다산을 뜻한다. 석류 즙은 신맛과 단맛을 지녔으며 빛깔이 곱고 강장제로 알려져 있다. 꽃은 장을 편안하게 하여 엽차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많이 먹으면 해롭다.
대추차는 대추를 오래 끓여서 베보에 짠것으로 진하고 들큰하다. 대추는 관혼상제에 빠뜨릴 수 없는 귀한 제물로 장수와 다복을 비는 과실이다. 예로부터 신경쇠약, 식욕부진, 냉증 등에 유효하다고 알려져 있다.
' 구름모자'의 또 하나의 별미는 바지락수제비이다. 수제비 반죽은 밀가루에 달걀을 넣은 반죽을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하여 쓴다고 한다. 수제비의 맛을 좌우하는 국물 맛은 전주에서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할머니께 안주인이 전수 받았다고 한다. 맛의 비법이야 캐물을 수 없지만 아무리 바빠도 안주인이 직접 정성껏 끓인다.
수제비가 식탁에 도착하기도 전에 와 닿는 정겨운 냄새. 어릴 적 마당에 모깃불을 지피고 덕석에 앉아 먹던 수제비 냄새 같기도 하고, 매미소리 들으며 평상에서 먹던 어머니의 손 맛 같기도 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가 오면 그 푸짐함에 놀라 이구동성으로 " 아이고!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지"하고 말한다.
큼직한 그릇에 가득 담긴 수제비를 먹기 전에 눈이 먼저 음식을 먹는다. 숭덩숭덩 썰어진 파란 애호박과 벌어진 바지락, 알맞게 익어 투명한 감자.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고, 좀 둔하지만 정겨운 나무주걱으로 각자 그릇에 덜어 먹는다. 쫀득쫀득한 수제비의 씹히는 감촉과 담백한 뒷맛은 알맞게 익은 깍두기와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보면 많다했던 수제비를 다 먹었음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수제비에 과찬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의 친철하고 자상한 배려가 서민적인 음식인 수제비를 먹어도 대접을 잘 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0여 년간 교직생활을 한 부부답게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맛과 멋이 있는 ' 구름모자'는 일년을 하루같이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찻잔에 마음과 자연을 담아내는 곳이다. 주인이 담그고 달여 맛이 일품인 차와 부드러운 음악, 나를 돌아보는 여유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이다.
사는 것이 시들하거나, 멀리 떠날 수 없이 떠남을 꿈꿀 때, 사랑의 농도를 확인하고 싶을 때는 구름모자라도 써 보자. 높고 낮은 구름, 검은구름 흰구름, 조각구름 엉킨구름, 모두가 신기하고 느낄수록 감동이 다르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상처받았던 마음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겨드랑에서 청풍이 솔솔이는 듯 '한 마음은 아니어도 시원한 댓잎 바람한 자락은 담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