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월의 마지막 날과 삼 월의 시작을 알리는 황금연휴에 그져 남도기행으로 아무런 계획없이 일명 '종합선물' 일원인 미루쿠, 쵸코랫또, 은단껌 셋이서 저녁 일곱시 반에 인천을 떠나 무작위로 서해안 고속도로로 향했다.
따뜻한 기온으로 안개가 걷치지 않아 서해안 고속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오리무중으로 달려야 했다. 군산까지 달리니 새벽 한 시가 넘고 있었다.
갑자기 익산 미륵사지탑이 보고 싶어 일단 익산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결정을 했다. 물론 나혼자 생각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 친구는 내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투덜댔다. 창을 열어보니 오른쪽으로는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고, 왼쪽으로는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이 보이고, 앞쪽으로 마을이 보이는데 삼일절이니 태극기를 달라는 마을 이장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우리 일행은 익산미륵사지를 향해 차를 돌렸다. 익산역에도 터미널에도 익산미륵사지 이정표는 찾기 어려웠다.
20-30분을 달려 금마쪽으로 가다보니 왕궁탑과 미륵사지 이정표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난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고 익사미륵사지탑을 보고 싶어서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늘에야 볼 수 있다니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미륵사지탑은 커다란 천막으로 가려져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십년을 걸릴지도 모른다니 ......
논두렁에 덜렁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물관은 곱게 만들어져 미륵사지에 나온 온갖 보물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새로 만든 히끄무레한 동탑만 덩그러이 남아있었고 그나마 이 절의 규모를 말없이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정승처럼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미륵사의 가람배치 모습이 황룡사보다 더 화려하고 수려해보였다.
백제문화는 상상력의 문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살아있는 모습은 없고 박제된 모습만 있으니 올 때마다 허무하고 허전해진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미륵사를 떠나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다문찻집에서 점심으로 먹고, 다시 지리산을 향해 달렸다.
남원 광한루에서 차 한잔 마시는 휴식시간을 갖고 지리산 남원에서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정령치로 해서 지리산 노고단의 성삼재, 구례로 내려왔다. 아주 멋진 드라이브코스였다.
지리산도 봄을 맞고 있었다. 따뜻한 운무에 싸인 지리산은 정말 길고 아름답고 웅장했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 구례 화엄사는 시간이 없어 들리지 못하고 하동 쌍계사로 향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길은 섬진강을 끼고 돌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좋다. 물의 청정도가 1급수라 하고 섬진강의 재첩이 이곳에서 난다고 하니 더욱 볼수록 정겹고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곳에 안개가 끼면 성진강물줄기가 꼭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다. 물이 살아있는 곳은 사람도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다.
오며가며 섬진강줄기를 유심히 바라보니 흰물떼새가 놀고 청둥오리도 둥둥 떠있고 왜가리까지도 보인다. 살아있는 강의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게 다행이다.
이미 인천이나 도시는 개천이 썩을 때로 썩어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전라도도 도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2차선을 4차선으로 늘리고 없는 도로까지 만들어 내는데 환경이 파괴되는 모습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옛 정취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어르름한 저녁에 쌍계사로 들어서니 맛있는 해물전 냄새가 배속을 자극하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숲길로 걸으니 저녁인지 새벽인지 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쌍계사의 계곡물이 무엇보다 으뜸인데 가뭄인지 이곳의 물소리도 작은 소리로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 반쯤 핀 매화꽃이 정겹게 맞아주었다.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곱게 맞아주었다.
한참동안 매화꽃에 반해서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남도나 가야 매화꽃이 있으니 반갑기도 하지.
그리고 쌍계사에 다섯번 정도 왔으나 이렇게 매화꽃이 피어있는 것은 처음이라 오래만에 보는 친구처럼 정이 들어있었다.
불이 켜진 대웅전 앞에 옆으로 우뚝솟은 진감선사대공탑도 살펴보고 대웅전 옆에 겸손하게 웃고 있는 아기불상도 바라보자니 참 푸근하기만 하다. 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불상이기도 하다.
서산마애불의 미소를 으뜸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난 이 아기불상의 웃는 모습이 욕심도 더 순수해 보여 쌍계사에 오면 꼭 들러 본다.
그 미소를 뒤로 하고 쌍계사 입구에 있는 단야식당에 들려 산채비빔밥과 사찰국수를 시켜 실컷 배부르게 먹고 난 그 방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친구는 오늘밤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난 이 식당 정원에 있는 차나무와 매화꽃 한그루와 호랑가시나무가 사이좋게 있어 맘이 들었다.
술 한두 잔에 몸을 이기지 못하는 친구는 첫사랑의 목소리가 김민기 노래소리에 들려오는 목소리랑 비슷하다고 하면서 추억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차한잔 마시러 가자고 하여 다향천리에 가서 우전을 맛보았다.
내친구가 오늘밤에 인천에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찻집주인 아주머니는 자기도 부천에 올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도 껴달라고 했다.
그게 또 인연이 되어서 우전차도 사고 머그잔도 사고 차 한잔도 공짜로 마시고......
그 주인집 딸은 나한테 일주일만 일해달라고 사정까지 했다. 내가 일 잘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동생을 만난듯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내가 게으른걸 알면 그런 말을 못할텐데......
셋은 가고 나만 다시 남아 매화꽃과 함께 자고 일어나 하동에서 구례터미날로, 다시 광주터미널로, 다시 고창선운사로 향했다.
쌍계사에서 출발한 버스운전기사는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등산이 취미라고 하면서 산꾼처럼 우직하게 생긴 아저씨는 보이는 곳마다 친절하게 말씀해주신다.
이곳은 축제가 많이 열린다면서 매화꽃, 산수유, 벚꽃 축제가 쭉 있다고 했다. 그런데 관광객들은 그 지역에 대한 관심보다는 눈으로 보는 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하동이나 구례에 오면 지역특산물이나 녹차라도 사가라고 말씀하신다.
말하다보니 구례터미널에 도착을 하여 광주행 버스표를 사려고 갔는데 뒤에서 그 운전기사양반이 내 카메라를 들고 있다.
아차, 내 금쪽같은 카메라를 놓고 내렸구나.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아저씨다. 내가 얼마나 이 카메라를 아끼는지 그 사람은 모를거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바카스 한 상자를 사들고 그 아저씨 운전석에다 놓고 왔다.
다시 쌍계사에 가면 술 한 잔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자가용이 없으니 버스를 옮겨 타는 맛도 즐거움중의 하나다. 버스를 놓치면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도착하는 터미널마다 1-2분 사이로 차가 있어서 아침부터 점심도 못먹고 정신없이 선운사에 도착을 했다.
선운사의 동백은 피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두 송이만 피어있었고 나머지는 꽃봉오리만 맺혀 있어서 일주일이나 보름은 지나야 필 것 같다.
이 동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울타리를 쳐놓고 보기만 하게 해서 서운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싱싱한 모습으로 반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고창에서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에도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서 풍천장어로 유명한 이곳에도 이미 도로개발로 인해 뻘도 줄어들고 강물도 오염이 돼서 풍천장어가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풍천장어 맛을 느끼지 못한지 이 마을사람들도 오래 된다고 하니 선운사의 참맛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선운사에서 정읍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기사의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와 고창주민의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풍천장어의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고, 인촌 김성수 님의 생가가 저기 기와집이라고 하며 가리켜주고, 고창에서 난 고추와 농산물을 이용해달라고 하며 애교까지 부린다.
시속 60정도 밟으며 느긋한 고향사람의 향기를 가르치고 다들 재밌어 하는 승객들에게 계속 고창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해주는 모습이 참 고향에 온 느낌을 주었다. 고창의 흙은 황토였다.
토지가 좋아 농산물의 맛도 좋다고 하면서 도시사람들이 우리것을 지켜달라고 당부까지 하는 모습이 마을 홍보사절이나 외교관같아 보였다.
그 아저씨 얘기 듣다가 정읍서 출발하는 인천행 막차버스가 출발한 지 15분이 지나있어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부천행 버스를 가까스로 타고 안심을 하였다. ..
[일정안내]
2.28 오후 7시 30분 : 인천출발
3.1 새벽 1시 : 익산도착 / 1박
오전 9시 30분-11시30분: 익산미륵사지, 미륵사지탑 수리중,
박물관 관람
오후 12시20분-2시: 전주 다문에서 점심
2시-3시30분: 남원 광한루, 광한루 수리중
3시30분-6시: 지리산 드라이브(남원-정령치-성삼재-구례)
6시-7시: 쌍계사, 매화꽃이 핌.
8시-9시: 저녁식사(단야식당), 동동주와 사찰국수
9시-10시: 쌍계사 입구의 다향천리에서 차마시고 다기 쇼핑
밤 10시: 단야식당에서 1박, 역시 매화꽃과 차나무를 보았음.
3.2 오전 9시: 식당 출발
쌍계사 입구 - 하동- 구례터미널-광주터미널
오후 1시 30분: 고창 선운사 도착
오후 3시 45분: 고창출발-흥덕-정읍버스터미널 도착
오후 5시: 정읍출발
오후 9시: 부천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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