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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브루너의 어록
Some Emil Brunner Sayings (from Dogmatics, Vol. I)
April 16, 2014 By Roger E. Olson
These quotes are from Dogmatics I: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London: Lutterworth, 1949):
다음의 인용구들은 1949년에 에밀 브루너가 쓴 기독교 신조에서 온 것이다:
“The Dogmatic Theologian who does not find that his work drives him to pray frequently and urgently from his heart: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is scarcely fit for his job.” (85)
교리 신학자의 글이 자신을 자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 즉 ‘주께서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같은 기도를 드리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의 직업과 어울리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Dogmatics does not consist in constructing a system of Biblical statements, but it is reflection upon revelation, on the basis of the religious evidence of the Bible.” (256)
교리는 성경 말씀을 체계적으로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신앙적인 증거에 기초를 둔 계시를 반영하는 것이다.
“No speech, no word, is adequate to the mystery of God as person.” (16)
어떤 설교도 어떤 말도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신비를 나타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Revelation is…never the mere communication of knowledge, but it is a life-giving and a life-renewing communion.” (20)
계시는 단순히 지식의 소통이 아니라, 생명을 주고 생명을 소생시키는 소통이다.
“In all the various forms of revelation, there is one meaning: Emmanuel, God with us.” (20)
계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 의미는 오직 하나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Revelation and faith now mean a personal encounter, personal communion.” (26)
계시와 믿음은 인격적인 만남, 인격적인 소통에서만 의미가 있다.
“The revelation in Christ is not completed with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it only attains its goal when it becomes actually manifest; that is, when a man or woman knows Jesus to be the Christ.” (29)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계시는 예수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실제로 드러날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즉, 남자나 여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알게 될 때다.
“The witness of the Spirit is not the whole work of the Spirit. The Holy Spirit is not only the One who witnesses and speaks, He is also the God who pours out vitality and creates new life.” (31)
성령의 증거는 성령의 모든 사역이 아니다. 성령은 증거하시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활력을 불어넣으시고 새 생명을 창조하신다.
“To be united with Christ through the Holy Spirit means: to be directly united with Him. Here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an ordinary Christian of our own day and an Apostle. … The fact of our redemption-the history of salvation-is transmitted by the proclamation of facts, that is, by the testimony of the Apostles under the guidance and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33)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은 성령과 직접적으로 연합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평범한 그리스도인과 사도 사이에 차이가 없다. … 우리가 구속 받은 사실-구원의 역사-은 사실들의 선포에 의해 전달된다. 즉, 성령의 인도와 감동 아래 있던 사도들의 증거에 의해서 전달된다.
“We do not believe in Jesus Christ because we first of all believe in the story and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but by means of the testimony of their narrative and their teaching we believe, as they do, and in a similar spirit of freedom. Faith in Jesus Christ is not based upon a previous faith in the Bible, but it is based solely upon the witness of the Holy Spirit.” (33-34)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사도들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라는 증거와 그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들이 믿은 것처럼 우리도 자유를 주시는 동일한 영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은 성경에 있는 과거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가 전적으로 바탕을 이룬다.
“The Scriptures are the absolute authority, in so far as in them the revelation, Jesus Christ Himself, is supreme. But the doctrine of Scripture as such, although it is the absolute basis of our Christian doctrine, is only in a conditional sense the norm of the same. Critical reflection on the adequateness, or inadequateness, of the Biblical testimony for the revelation to which it bears witness, is not eliminated; we still have to face it; a final resort to a single Scriptural passage is impossible for us. Hence in each instance all Christian doctrine is, and remains, a venture of faith.” (49)
성경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는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권세자시다. 그러나 성경의 신조 같은 것은 비록 기독교 교리의 절대적인 기초를 이룰지라도, 조건적인 개념에서 볼 때 지존자에 대한 개념일 뿐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계시가 적절한가 여부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는 제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대면해야 한다. 단 하나의 성경 구절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각 경우에 있어서 모든 기독교 교리는 믿음의 모험이며 그런 점이 있으며 남아 있다.
“Revelation cannot be summed up in a system, not even a dialectical one. … Dogmatics as a system, even when it intends to be a system of revelation, is the disguised dominion of the rational element over faith.” (72)
계시는 체계로 정리될 수 없다. 논증으로도 정리할 수 없다. … 교리는 하나의 체계로서, 교리가 계시의 체계가 된다고 할지라도, 교리는 이성적인 요소로 변장하여 믿음을 지배하려 든다.
“Above all the teaching of the Church, even above all dogma or doctrinal confession, stands Holy Scripture.” (80-81)
교회의 모든 가르침 위에, 심지어 모든 교리나 교리 고백 위에 있는 것이 성령이시다.
“To believe in Jesus Christ and to be of the elect is one and the same thing, just as not to believe in Jesus Christ and not to be of the elect is the same thing.” (320)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선택 받은 자가 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과 선택 되지 않은 것이 동일한 것과 같다.
“The Bible does not contain the doctrine of double predestination, although a few isolated passages seem to come close to it.” (326)
성경은 이중 예정을 담고 있지 않다. 비록 몇 몇의 별개의 본문이 그에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The Ninth chapter of the Epistle to the Romans [does not] deal with the salvation and damnation of the individual, but with the destiny of Israel.” (328)
로마서 9장은 개인의 구원과 정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운명을 다루는 것이다.
“Paul wishes to show [in Romans 9] that God chooses the instruments of His redemptive action, the bearers of the history of the Covenant, as He wills. The theme of this passage is not 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 but the sovereign operation of God in History, who has been pleased to revealed Himself at one particular point in History, in Israel.” (329)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이 보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속 사역을 위한 도구이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언약 역사의 전달자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 본문의 주제는 이중 구원의 교리가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재권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떤 특정한 역사의 시점에 이스라엘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셨다.
“If God is the One who, before He created the world, conceived the plan of creating two kinds of human beings…namely, those who are destined for eternal life—the minority—and the rest—the majority—for everlasting destruction, then it is impossible truly to worship this God as the God of love, even if this be commanded us a thousand times.” (331)
만약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두 종류의 인간을 창조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면, … 즉, 소수의 사람 만이 영생을 얻으며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원히 멸망 받는다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진실되이 경배하기는 불가능하다. 비록 이것을 수천 번이나 명령할지라도.
“In point of fact, it is impossible to say of the God whom the Biblical revelation shows us, that He is the author of Evil. But Calvin tries in vain to eliminate this conclusion from his doctrine of predestination. Here, too, his argument simply ends in saying: ‘You must not draw this conclusion!’—an exhortation which cannot be obeyed by anyone who thinks.” (332)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경적인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께서 악의 창시자라는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칼빈은 그의 예정론에서 이런 결론을 헛되이 없애버리려고 한다. 여기에도 그의 주장은 다름과 같은 말에 의해 끝장난다: “당신은 이런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Love is not a ‘quality’ of God, but is His Nature….” (188)
사랑은 하나님의 자질이 아니라 본성이다.
http://www.patheos.com/blogs/rogereolson/2014/04/some-emil-brunner-sayings-from-dogmatics-v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