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은 아름답다. 순천 낙안읍성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옛것에는 향기가 배어있다. 숨결이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있다. 세월의 풍파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옛것에는 정감이 있다.
이번 남도여행 마지막 코스로 옛것의 아름다움을 찾아 순천 "낙안읍성"을 다녀왔다.
지난 법정스님 다비식때 순천시내를 지나치며 낙안읍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후에 검색해 본 후, 기회보아 가보려던 참에 이번 남도여정에 포함하여 다녀오게 되었다.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고.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설이 있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현재, 동문은 낙풍루(樂豊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樂秋門)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瓮城)이 성문을 애워 감싸고 있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도 농악놀이, 큰줄다리기, 따니치기, 목가치기, 횃불놀이, 달집태우기, 디딜방아훔쳐오기, 윷놀이, 사명덕석기, 씨름, 들돌들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고 많은 설화와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낙안읍성의 민속마을은 실제 주민이 거주하며 옛것을 보존하고 있다. 또한 그곳에서 민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방문후에 알았다. 다음에 다시 남도여행길에 오른다면 낙안읍성에서 민박하며 여러가지 민속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순천만 갈대밭을 포함하면 금상첨화 이렸다.
낙안읍성 안내도
동문(낙풍루)의 여러 모습
부근에 주차장이 있어 대부분 관광객의 출입문 이기도 하다.
동문과 남문은 사진처럼 성문 바깥쪽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瓮城)이
성문을 에워 감싸고 있어
적군이 쉽게 성문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맨위 성벽 사진을 자세히 보면 3개의 구멍이 균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것을 여장 이라하고, 여장은 타구(朶口)로 나뉘어 있고
여장에는 총안(銃眼)=사구(射口)가 있고 이 총안 역시
근총(近銃)과 원총(遠銃)으로 나누어 있다.
3개의 구멍중 가운데 것이 근총이고 양쪽이 원총이다.
근총에서 성벽 바로 밑으로 활을 쏠 수 있고 원총은 멀리 활을 쏠 수 있는 구조이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바깥쪽 입구에 입장권 검표실이 볼쌍사납다. 달리 배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성벽 위, 치성
이 성은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 구조이다.
외탁이란 성벽 바깥쪽, 내탁이란 성벽 안쪽을 말한다.
성곽을 따라가면凸 형의 성곽이 있는데 이는 치성(雉城)이라고 한다. (사진 좌측에 돌출한 성곽)
당초 6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곳만 남아 있다.
이 치성은 초소(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좌우로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치성에서 바라 본 남문(쌍청루)
남문(쌍청루)
옹성, 여장, 타구, 총안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서문(낙추문)
바깥쪽에서 안쪽을 바라 본 모습
성 밖으로 나가는 물길
성벽에서 바라 본 민속마을
좌측이 성 안쪽 마을, 오른쪽이 성밖 마을
모두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임경업 장군 비각
임경업 장군과 낙안읍성은 매우 인연이 깊은 곳이다.
임경업 장군이 낙안읍성을 떠날 때
마을 주민이 십리길을 따라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옛날 장터
마을 아주머님들이 농산물을 판매하며, 식당, 주막, 찻집, 대장간 등이
옛날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낙안 객사(客舍)
낙안 읍성의 가장 중심부에 세워져 있어 읍성의 모습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1451년에 건립되어 1631년과 1857년 2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동헌
이 건물은 조선왕조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동쪽은 수령이 서쪽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옛 자리에 정면 5간, 측면 3간, 37.51평 팔작 지붕에 가운데 청 마루를 두고
뒤편에 적은 마루가 있다.
낙민루
조선 헌종때 군수 민중헌(閔重憲 1845∼1846)이 중건하였으며
(또는 조용현(趙溶鉉)이 중수하였다고 함)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1924년 일부분을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낙안 군민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루각 이었으나
여순 병란 당시 좌익들에 의해 지서가 소실되어
낙민루에서 임시 경찰 업무를 수행하던 중
6. 25가 나자 공산군들이 낙민루를 불태우고 말았다.
옥사
옛날 이 고을에서 죄를 지은 죄수들을 격리 수용하였던 감옥
죄짓고 살 일은 아니다.
전통가옥 체험장
옛날 농기구, 물레 등 가내수공업 기구, 살림살이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고
체험도 가능하다.
마을 구석구석에는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다.
민박도 가능하다.
판소리, 전통도예 등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서당, 엿 만들기, 대장간, 연자방아, 물레방아 등
1박하며 옛전통과 문화를 체험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순천만의 갈대밭과 낙안읍성과 민속마을을 묶어 가족여행지로 추천할만 하다.
2010 남도여행을 마치며.....
2일째 부터 왼쪽 장딴지 근육통으로 시달려야 했지만 이 또한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며 경고이다.
새로운 다짐도 했고,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끽했다.
푸근한 인정도 느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욕심이다.
이제, 4박 5일간의 남도여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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