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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白亭 에서 남해바다 를 배경으로
나뭇잎이 떨어지는 이 가을.
가슴속에 온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문득문득 느끼며
쓸쓸한 마음을 다독거리느라 눈을 감곤 합니다.
가을의 산은 사치스럽도록 또 저렇게 고운데
사람의 가슴에 밀려드는 적적함은 또 무슨 심사 인가요.
싱싱했던 잎새가 붉게 물들고 가을 바람이 들녘을 스쳐 가슴에 밀려들면
그를 따라 쓸쓸해지는 것도 다 나이 탓 이겟지요.
만났다 헤어진지 몇일이나 되었다고
다시또 그리움되어 돌아누으니 인간사가 다 인지상정 인가봅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눈짖 만으로도 오리목을 하고.
이야기 마다 마다 웃음바다가 되었으니
타임머신 타고 어릴적 배골 동네에 살다온 착각이 들 정도라오
진근이 생뚱맞은 소리에 웃고. 돈주고 배운 춤 솜씨에는 모두가 박수치고
대구형님 관광춤 탓에 동생들 미안해서 자리에 좀 않자서 쉬지도 몾하겠고
미자누님 소시적 무시밭 습격사건 무용담은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내 보내도
대상 감 이라.--- 우~찌 그리 기억력도 다 좋으신지
거문도 맑은 밤공기에 우리들 가슴속 스트레스는 확 날려버리고
부두가 포장마차 꼼장어 안주에 그놈에 술 은 밤새워 마셔도 취하지도 않터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들 지내시고 힘들고 외로울땐 그날한번 생각하며
미소한번 지어보세요.
좋은글귀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사랑은 핑크색 이라 변하기 쉽고
순결은 흰색 이라 더렵혀지기 쉽지만
우정은 무색 이라 영원 하답니다"
부디 건강들 하셔서 내년에도 좋은 추억여행 같이 떠나요.
2012년 11월 8일 한 덕 원 배상
※ 1. 단체사진. 개인 독사진은 동봉해드립니다.
2. 기타 사진들은 "다음" 카페에 "배골사람들" 이라는 곳으로 찿아가면 볼수가 있습니다.
<< 여 행 후 기 >>
작년부터 계획했던 여행이라 어디가 좋을까~ 하고 고심 고심 하였는데 마침 선배 형님 누나들의 제의를 받고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이 가을엔 울긋불긋 원색의 단풍이 한껏 뽄을 내고 있을 산이면 어떨가 도 했지만 한려수도 최남단 남해의 빛나는 보석 거문도. 섬 여행도 괜찮지 싶다. 서울 경기 충청 지역에 사는 친구들은 여건상 하루 전부터 내려와 진주와 배골에서 숙박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잔 하면서 회포도 풀었고. 잠은 자는둥 마는둥 아침 해장국 한그릇 으로 속을 달래고 집합장소인 개양 정촌초등학교 앞으로 향하니 벌써 진주와 울산의 친구들은 도착해 있었고 잠시 후 부산 친구들이 도착해 바로 진교를 향해 출발. 푹구재 에서 배골 친구들과 형님 누나들도 합류. 곧바로 인원 점검에 들어갔다. 일심회 13명. 고우회 17명. 합계 30명이다. 각 회에서 1명씩 2명이 사정상 참석치 못했다. 날씨는 일기예보대로 전국적으로 하루종일 비가 내린단다. 그래도 반가운 선 후배들의 여행이라 마음만은 푸근하고 즐겁다. 섬진강 휴게소 에서 잠시 휴식한 뒤 여수로 향했다. 여수에 도착하니 올 여름을 그렇게 뜨겁게 달구었던 EXPO장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오동도 진입로 난간에 세워진 가로등과 구조물들이 초가을 태풍에 휘어지고 부서져 있는것을 보니 자연의 힘이 대단함을 새삼 일개워준다. 다들 무었이 그리도 급한지 뿔뿔이 흩어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내달린다. 동백숲길 모퉁이 팻말에 이렇게 시 한수 적혀있다. ⟪바다를 품은 여수에는 물보다 바람이 먼져 와 닿는다⟫옛날 40년전 와본 오동도의 자연과 멋은 오간데 없고 인공적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 영~~~
차에 도착하니 이거 원. 한시 반배라고 여유를 부렸는데 한시배란다. 언제 점심먹고 배시간 맞출랑고? 그래도 우리가 배골 양반들인데 점심은 제대로 먹어야지. 황사장이 여수 주먹쟁이 집이라며 돌산대교가 바로 보이는 전망좋은 여수횟집에 안내해서 회 정식(1인당 2만원)을 여유롭게 즐기지도 몾하고 시식 차원으로 해치우고 겨우 뱃시간 을 맞출수 있었다.
우리가 타고갈 배는 줄리아아쿠아호 승선정원 306명인 쾌속선이다. 여수항에서 거문도까지 뱃길로 약120Km 나로도. 손죽도. 대동 을 거쳐 거문도까지 약2시간20분정도 걸린단다. 배는 여수항을 떠나 미끄러지듯 달려 나간다. 여객이 많은탓 에 여기저기 흩어져 자리하니 유람선처럼 디스코 클럽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도 생긴다. 먼 바다로 나가니 배가 제법 울렁그린다. 파고가 높아서 3시 30분쯤 거문항 에 도착할수 있었다. 원래 거문도는 서도 와 동도. 고도 이렇게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항으로 잘 조성되어있고 관광객이 머무를수 있는 곳은 고도의 거문항이다.
섬에 내리자마자 백도 관광 유람선(우주스타)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짐을 맡기고 배에 올라 기관실 위 뜨뜻한 방에 자리하고 앉아 순조롭게 출발할수 있었다. 내항을 빠져나가니 조금씩 파도가 세어진다. 그래도 선장의 코믹멘트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흔들며 배와 잘 적응을 하고 있었다.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더 흔들리고 배에서 뚝 뚝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선장은 태연하게 무사고 운항 경력만 이야기 하고있다. 불안한 마음에 야 ~ 이정도면 파고가 2m에서 2.5m는 되겠다 고했드니 옆에 있던 태위가 하는말--- 무-슨 1m도 안되겠구만 파고가 2m면 해양결찰대 에서 출항도 안시킨다 나 뭐라나 조금 더 가니 우리 앞에 가던 배가 유턴을 하고있다가 우리배가 지나가니 다시 뒤를 따라온다. 얼쑤 이제 배가 흔들다 못해 쉬이소를 탄다 배가 산 꼭대기로 올라 갔다가 깊은 계곡으로 내려 앉으니 말은 못해도 속으론 전부 백도 구경 왔다가 물귀신 되는거 아닌가 싶어 바싹 움츠려 있다. 내가 다시 야 ~ 파고가 4m도 더 되겠다 고 했드니 옆에 있는 태위는 눈만 동그라니 떠고 꿀은 입도 떼지않는다. 선장이 그제사 다시 방송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회항을 한다고한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사람속을 그렇게 쪼라들게 해놓고. 배가 돌아서서 가까운 섬쪽으로 다가가니 파도가 조금 잠잠해진다 휴 ~ 까딱햇시모 죽을뻔 했다 아이가. 다시 거문도로 돌아와 남은시간에 영국군 묘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1885년(고종22년) 4월 군함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 선단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기지와 항구를 구축 하면서 2년간 머물렀다. 제정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 한다는 명분 이었지만 우리나라 의 주권을 무시하는 도발 행위임은 명백하다. 머무는 동안 거문도 주민들과 는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했다고 한다. 철수 당시 영국군 묘지는 7 ~9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3기만이 확인될 뿐이고 영국식 묘비가 127년이 지난 오늘까지 깨끗이 보전되고 있었다. 아까 백도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밀턴모텔 을 보았는데 그때의 흔적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것을 보고 그당시 영국이 전세계에서 해가지지않는 나라 라고 했던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듯 했다. 어둑 어둑 해질무렵 내려온 우리들은 거문도 특산물인 갈치조림 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역시 어제밤에 잡아 새벽에 들어온 물건이라 싱싱하고 담백하다. 내앞에 앉은 바구(진근)는 밥도 먹지 않고 소주로 배를 채우고 알아듣지도 못할 외계인 소리만 해쌓는데. 보다못한 필연이 누님이 밥을 떠먹여 보지만 신간 스럽기만 하다. 오늘밤에는 밤참으로 갈치회도 맞보고 싶다. 식사를 다 마친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 다시 술상을 폇다. 안방에는 벌써 젓가락 장단에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그래도 노래는 반주가 있어야 제맛이다. 예약해 놓은 노래방은 대구 아줌마들이 놀고있어 다른 노래방으로 이전. 역시 노래방은 여자들이 주도한다. 남자들은 사이사이 노래 불러주고 써빙하고 일일 봉사요원인가? 그래도 재미는 있다. 너도한잔 나도한잔 그렇게 거문도의 밤은 깊어만 간다. 부산 영도에서 눈에 콩깍지가 끼여 거문도 까지 시집왔다는 노래방 주인 아줌마 의 강력 추천 메뉴 거문도표 꼼장어 수육. 갈치회는 늦어서 횟집에 문을 다 닫았고 부두끝 차치포차 포장마차 에서 또 경상도 톤의 건 ~ 배 소리가 쉴새없이 터져 나온다. 근데 맨날 찌개로만 먹다가 다들 수육은 처음이라 머뭇거리나 싶더니 한번 먹어 보고는 다들 연신 잔을 기울인다. 약간 데친 야채와 껍질채 삶은 꼼장어와 소스를 곁들여 먹는맛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단백하면서도 씹는 질감과 목넘김이 훨씬 부드럽다. 그렇게 술자리 빈병 쌓이듯 날짜를 바꿔가며 우리들 우정도 쌓여만 간다. 야 ~ 야 다들 그만들 먹어라 스테미너 식 많이먹고 오늘밤 우찌 잘라고 그라노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우리가 잔 집이 민박집인데 일제강점기때 지은 집을 최근에 리모델링 한 집이었다. 그러고보니 선창가 웬만한 집들은 다 일본식 집들을 개조해 지금까지 살고있다. 새벽 6시인데 벌써 옆방들이 부산하다. 조금 일찍 잔 친구들은 방방이 불신검문이고 우리방은 문이 잠겨있어 흔들고 야단났다. 아짐 7시 식사를 마치고 거문도택시(배) 를 타고 거문도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나다고 하는 등대를 가기위해 서도로 향했다. 등대까지 오르는 길은 산책로 로 손색이없다. 길을따라 늘어선 동백나무 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울창하고 5분정도 오르면 탁 트인 바다가 펼쳐져 가슴까지 시원한 느낌이다. 다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가면 잔디가 고운 별장같은 관사와 크고 웅장한 등대가 나타난다. 원래 등대는 그옆에 자그마 하게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이 등대가 1905년 4월 10일에 준공.점등되었으며 프랑스에서 제작된 프리즘렌즈에 의해 적색과 백색의 섬광이 매 15초 마다 교차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라고한다. 등대앞 관백정 에서 내려다 보는 남해 바다가 실로 진풍경이다. 날씨가 좋은날은 여기서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니 옛날 사람들의 뱃길 이정표가 된 거문도는 외국 상선들이 많이 들렸을 겄으로 추측된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짐을 챙겨 10시 30분 배로 다시 되돌아 왔다. 그래 하룻밤 짧은 시간 이었지만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과 추억을 안겨준 거문도야 빠 ~ 이 빠 ~ 이 ----
여수항에 도착 하니 12시 40분 먼저 점심부터 먹어야 하는데 의견이 분분하다. 간장게장을 먹을까 여수 장어를 먹을까 회를 먹을까. 수소문 끝에 돌산에 있는 게장집에서 간장게장 과 양념게장 으로 식사를 마치고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하나인 향일암 으로 향했다. 지난해 불이나서 새로지은 법당의 현판이 원통보전 이다 관음보살 을 주불로 모신 법당은 원통보전 이라고 불가 에서는 전해지고 있다. 관음보살님께 삼배하고 나의 염원을 빌어본다.
주차장에 당도하니 벌써 잔치판이 벌어졌다. 시장기가 돌 시간이다. 돼지고기 수육에 김치를 넣고 끓이니 걸죽한 두루치기다 다들 맛있게 먹는다. 자 - 이제 배도 채웠으니 슬 슬 출발해볼까. 좀 걸었겠다 배도 부르겠다 차에타니 모두 축 늘어진다. 한쪽에선 옜날 이야기꽃 이 무러익는다. 배고파던 시절 긴 긴 겨울밤에 남의집 김치며 감홍시 훔쳐 먹은일. 밤에 이웃동네 마실 가다가 동네 어른에게 들켜서 몰래 지름길로 돌아와 안나간척 방에누워 있었던일. 남의밭에 무시 빼가지고 잎은 남의동네(신촌)쪽으로 흩어놓고 뿌리만 가져온일. 이야기 꺼리가 많다. 지금은 웃을 일이지만 그땐 보통으로 간 큰 일이 아니었지 싶다. 이젠 곧장 바로 어제 출발했던 대로 되돌아 가야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귀중한 시간을 그냥 놓칠리 있나 자 ~ 음악 ~ 큐 ~~ 노는 데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모두가 한마음 이고 한방향 이다. 어느덧 전도. 그리고 진교. 차례차례 내릴사람 내리고 나니 진주. 마산. 부산. 서울 사람만 남는다. 배골동네 일심회. 고우회 회원 여러분 1박 2일 추억의 거문도 여행 아무탈 없이 한분의 낙오도 없이 무사히 잘 다녀와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거금을 찬조해 주신 일심회 강대구 전 회장님. 고우회 강호윤 회장님 과 먹을거리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신 황필연. 강미자 누님들 시종 우리 식구들 챙기느라 고생하신 일심회 이장기 회장님. 끝으로 우리모두의 안전과 즐거운 여행을 위해 힘쓰신 우리의 친구 황진호 기사님 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형님. 누나. 친구 여러분 건강 하십시오.
2012년 11월 15일
글 한 덕 원
첫댓글 한 선배 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나이는 3년 에 한 살 식 먹고 노는 즐거움은 날마다 왔으면 합니다. 새해 건강과 웃음이 넘쳐나고 새로운 만남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배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