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하롱베이 여행기>
배 정 희
한해 마무리 하면서 갖게 된 예정된 일정이었다. 김해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 20분발로 호치민 탄손누트 공항으로 향했다. 베트남 항공의 비행기 안, 동남아 미인 특유의 까무잡잡한 승무원들과의 대화는 눈빛과 미소였다.
구름보다 높은 고도의 창 밖은 우윳빛 생크림으로 볼록한 쿠숀을 펼쳐 놓은 듯 하다 그 평원 위로 쏟아지는 흰 햇살이 눈부셔 눈을 뜰 수가 없어 창문을 닫았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여행의 기쁨 중 하나가 떠나기 전의 설렘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앞두고 일행들과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얽혀 출발 직전까지 마음 불안했었다. 그리고 참으로 황당한 고백이지만 나는 떠나기 전에 유언장이라는 걸 생각했다. 만약 영 돌아 올 수 없는 길이라면.......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은 한점 티 없는 햇살이 거두어 가고 있었다.
4시간 남짓 비행을 했는가 싶은데, 베트남 상공이며 곧 도착 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고, 머릿 속에 그리던 베트남이 펼쳐졌다. 호치민 시(市)는 구 사이공이다. 사이공 하니 월남이 먼저 떠오른다. 70년대 전후로 월남으로 향했던 파월장병들은 배를 타고 몇 일만에 도착했을까, 전쟁터로 향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마음들은 알지 못하면서 여학교 때 전 학년이 3부두로 동원되어 전송식 깃발을 흔들며 눈물 찔끔거렸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경유지 호치민 탄손누트 공항은 국제공항이라지만 한적한 편이다. 그곳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항공사 여직원들의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다. 착 달라붙은 긴 웃옷 옆선 사이로 살짝 비치는 풍성한 바지가 편하게 보이며 몸매가 드러나 매력적이다.
호치민에서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다시 탔다. 이륙하기 직전 말갛든 하늘이 햇빛은 쨍쨍한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스콜현상이 열대지방에서는 자주 있다. 구름 위는 무덤덤하다.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인데 하루에 고도 11000피트를 넘는 비행을 두 번이나 하는 호사를 누리다니 이미 여행의 기대감은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목적지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도착한 곳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내리자마자 늦은 오후인데도 열기가 후끈하여 입고 있는 겉옷이 저절로 벗어던질 정도였다. 활주로는 작은 규모라 걸어 나왔다 열대 나무들은 환송이라도 하듯 커다란 잎들을 활짝 펴 보이며 서 있다. 나지막한 건물의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 읍 소재지의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이다. 가건물이 햇빛을 피해 준다는 것 뿐 에어컨도 없어 후덥지근하였다.
무엇보다 공항직원들의 유들유들한 웃음 뒤에는 웃돈이라는 것이 있어야 비자 발급이 신속히 된다는 사실에 더 후덥지근했다. 이곳에 도착해야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곳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제대로 쉴 의자도 없고 35도 이상 오르는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으니 무작정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 급한 우리 관광객들이 주로 슬쩍 웃돈을 얹어준다고 한다. 그들의 그런 관습화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길 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세계 5대 후진국의 한 곳인 캄보디아는 발전소도 없고 전기가 모자라 이웃 라오스에서 일절 수입한다고한다. 가로등도 없고 해만 지면 적막강산이 그곳이다. 도로 포장도 관광지 중앙도로 외는 전부 비포장이다 씨엠립에서 수도 프놈펜까지 30키로는 질퍽하고 울뚝 거리며 7시간이상 달려야 갈 수 있다고 한다. 길가에는 크고 작은 웅덩이가 많아 연꽃이 한창이었다. 부레옥잠 같은 수생식물도 많은 곳이다. 그곳은 햇빛의 자외선이 우리나라의 3배 이상이라 고여 있는 물도 잘 섞지 않는다. 천막 같이 얼기설기 엮어 놓은 집속에 눈빛만 반짝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느릿느릿 거리고 있다.
저녁 식사가 여행지의 첫 시작이었다. 북한 식당의 평양냉면이었다. 젓갈 없는 담백한 김치와 녹두지짐 탕수육도 밑반찬으로 나왔다. 공연 시간이 되자 방금까지 음식 나르든 북한 아가씨들이 무대로 올라섰다. ‘반갑습니다!’ 독창에 이어 전자 아코디언에 맞춰 노래와 호흡이 척척 맞는 춤, 가야금 연주, 독창으로 아침이슬,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의 합주까지 이어졌다. 식당에 온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환호와 감탄이 쏟아졌다. 하나같이 가느린 몸매와 미모를 지녔다. 그러나 춤과 노래가 열정적이고 혼신을 다 한다기보다는 예쁘게만 보이려 하는 표정만 있고 감정 없는 인형 같았다.
북한 당국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대학 관광과 학생들이었다. 선발되어 오면 2년마다 교체된다고 한다. 주방에서부터 음식 나르기, 손님 대하는 태도와 접대 등 매니저 교육 받는 중이었다 그곳에 오는 손님이나 한국 가이드에게 늘 미소로 반기지만 가끔 외출 시 밖에서 만나면 차가운 도자기 인형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꼭 둘 이상이 다니기에 개인별 친분은 없었다.
그러나 그미들 나이의 한참 멋 내고 예뻐지려는 마음은 남북이 따로 없는 듯 하다 판박이 같은 쌍꺼풀을 눈 화장 속에 감추고 있었다.
자가 발전기로 돌리는 호텔 밖의 전경은 깜깜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야자수 나무만 아니라면 우리네 시골 같은 별들이 총총 쏟아지는 밤이었다. 초승달 가까이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첫댓글 거르지 못하고 느낀데로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습니다 ^^* 다음에 수정 할렵니다
잘 다녀 오셨네요 윤영님! 머물다 갑니다. ^*
윤영님~ 잘 읽었습니다. 먼 길 잘 다녀오셨네요~~^^
좋네요.나도 가게되면 참고로 해야지.주문 하나-문학작품으로 만들어보세요. 지적 접근과 관조를 통한 필자의 내적인 정서화를 고려하기요.그래야 단순한 관광기행 생활문, 감상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거든요.
사촌 큰형님이 월남파병 가서 찍어온 흑백 사진이 아직도 있는데...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더 깊은 정서화 갖도록 많이 노력 하겠습니다 ^^
하노이 - 캄보디아 - 하노이 - 하롱베이 - 호치민 시. 2004년 1월달에 나도 아내랑 다녀왔수다. 너무 어두웠지요? 사람이랑 도시랑 유적들이. 그러나 다시 함 가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구요. 기행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