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나그네 삶을 살아온 지 어언 14년이 지났다. 미국 동부에서 8년, 몽골에서 5년, 그리고 다시 미국 중남부 텍사스 지역에서 1년을 예정하고 안식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몽골로 돌아가겠지만 하나님께서 또 우리 가족을 다른 땅으로 보내실 것에 대해서 말씀을 주신 바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제 세 아이를 데리고 또 지정하신 곳으로 떠나는 삶을 살 것이다. 14년간 정식 이사를 7번 했으니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한 셈이다. 어느 여름 때는 5번 이상 거처를 옮겨야 했던 때도 있었다. 이사를 자주 하게 되다 보니 아이들도 이제는 그런 삶에 익숙해 있다. 장난감을 사더라도 이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피 큰 인형 같은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것들을 위주로 선물을 고르곤 한다. 우리 가족 모두가 반유목민의 삶을 살아간다.
외국에서 떠돌이로 살아가면서 나는 하늘 나라에 대해서 묵상할 일이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디에 가서 살든지 한국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가르치다 보면 이 땅에 몸을 두고 있지만 소속은 천국에 둔 사람의 삶에 대해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몽골에서 살아가는 동안 교통 경찰이 힘들게 해도, 현지인들이 불공평하게 대할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곳 사회에 속해 있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내가 이방인으로 남아 있어도 소외감을 느끼거나 불행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내게 본국과 본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그 땅에서 살며 집이 없어도 차가 없을지라도 마음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천국 시민으로서 이 땅에서 잠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런 인식이 확고하다면 세상에서 차별 받고 서운함을 겪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에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텍사스의 타일러라는 중소 도시에 머물면서 미국 전역의 한인 교회에 초청을 받아 집회를 하러 가게 된다. 이번이 미국 이민 교회에는 혹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많아서 무리해서라도 집회 요청에 응하곤 했다. 집회를 다니면서 이민자의 삶에 대해 마음에 오는 부담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아울러 많은 사람에게 이민자의 삶이 사명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호부터 몇 회에 걸쳐서 한국인 이민 선교에 대해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이민자의 삶에 대해 나누고 있다. 예수님도 천국의 삶을 포기하고 이 땅에 이민자로 오셨다. 예수님의 가계의 기원이 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은 이 땅을 구원하고 선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은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땅에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에 가서 열심히 선교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가나안 땅은 후대에서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이라크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문명에 비교하면 열등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가나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었다. 노아의 아들들 중에 함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낸 것을 비웃었다가 노아의 노여움을 샀다. 그 때 노아가 저주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었다. 저주받은 가나안의 후예가 모여 살았던 지경이 가나안 땅이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복이 우리 안에서 흘러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는 일차적으로는 사역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복의 근원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다.
아브라함은 기근이라는 어려운 환경이 닥치자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 사명지를 잠시 이탈한 것이다. 거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결과적으로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밟는 땅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그 약속은 후대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끝까지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장사 지낼 땅이 없어서 헷 족속에게 부탁해야 했다. 물론 그들이 무상으로 땅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은으로 값을 지불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알았다.
한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그는 보기에 좋은 땅을 골라 거기에 정착하기 원했다.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이 아닌 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어디가 풍요하고 자신에게 복을 주는 곳인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 들어갔다. 그곳의 타락한 문화와 관습에 대해 그는 부담을 크게 가지지 않았던 듯하다. 롯의 가정의 딸들은 그곳에서 시집가서 그곳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비참했다. 그의 가정의 후손은 결국 믿음의 가문인 이스라엘을 연단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복에 관심이 많다. 복이 없는 땅에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국 사람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복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삶의 모습이다. 서울이 복이 있다고 믿고 우리나 우리 부모님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또 강남이 복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복을 찾아 강남으로 이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복이 있다고 보고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 부모들은 그 가운데서도 사업하기 용이하고 생활이 쾌적하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몰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가 살 곳을 인도받기 보다는 우리가 보고 좋은 곳을 추구했다. 롯의 삶의 방식이었다.
이민 교회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명을 추구하는 이민자가 아닌 자신의 복을 추구하는 정착민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초기 이민자들은 잘 살기 위해서 이민했지 사명을 따라 이사하지 않았다. 섬기기 위해서 살 곳을 정하기 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따라 이동했다.
아내가 한 번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곳에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 우리에게 가장 맞는 곳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제3세계 어느 국가든 어디에서 살든지 생활의 편리함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삶에 중독되게 되면 다른 어떤 생활의 편리함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의 크고 놀라움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삶은 불편함이 아닌 가슴 설레는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될 수 있다.
이민선교 2 / 이용규선교사
하나님은 이 시대에 많은 민족들을 흩으시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 소위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지구 상의 대도시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의 열린 노동 시장과 이민 문호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이민자의 증가는 미국 기독교 인구 변화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미국 기독교인 수에 대한 통계를 보면 기독교 인구가 줄지 않고 있다. 실제로는 미국 백인들 가운데 교회 출석률이 줄어들고 도시의 교회를 보면 청장년 층 교회 출석 수가 급격히 줄어 노인들만 교회에 남거나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전체 인구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그 빈자리를 이민자들의 교회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영적인 공백을 이들 이민자 기독교인들이 채우고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백인 교회가 최근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민자 교회의 교인 증가세를 따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말 도시 선교 컨퍼런스에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사역하는 분의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기독교 인구가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 증가 원인을 분석해 보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들어오는 기독교인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문닫는 교회와 증가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보고는 유럽 교회의 앞날을 암울한 상황으로 투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민자들의 종교 분포를 보면 기독교인은 30 퍼센트를 웃도는 한편 무슬림 인구는 20 퍼센트 대라고 한다. 무슬림만 자녀를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 기독교인들도 아이들을 많이 낳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럽 전체의 기독교 인구가 증가세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기독교 국가로 간주되었던 유럽의 나라들이 가난한 식민지 국가들에 선교사들을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유럽이나 미국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의 복음화율이 높아지고 이들 지역에서 오히려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유럽에 이민자들을 보냄으로 해서 유럽의 영적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민족들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흩으시면서 이를 통해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기회로 삼고 계신다. 본국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게 되는 비율이 높다. 이슬람권에서 서구권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고향 땅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기독교를 접하면서 예수를 영접하기에 이르는 경우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한 예로 이란 지역에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회심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변화 입은 사람들이 다시 본국으로 들어가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예를 보게 된다. 또한 이들 이란 기독교인들은 이란어로 위성 방송을 발사하는 기독교 방송국을 통해 본국으로 송출되는 기독교 설교와 프로그램을 송출하여 방송 선교를 하고 있다. 이 방송 선교는 놀라운 회심의 열매들을 일궈내면서 이란 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한국에 있을 때는 기독교에 무관심했다가 낯설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 땅에서 교회를 찾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가지는 예가 많다. 이민 교회가 미주 유학생들을 위해 섬기는 것은 중요한 선교 사역이 된다. 특별히 한국 교회가 이러한 유학생 사역을 위해 코스타라는 선교 대회를 유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는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전통이다.
필자가 아는 몽골 선교사 한 분은 원래 코이카 봉사단원의 일원으로 몽골 땅을 밟았다가 몽골에서 한인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된 분이었다. 그 후 한 쪽 눈을 몽골 땅에서 실명하는 아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미국에 가서 신학 공부를 한 후 선교 헌신을 해서 몽골로 들어오셨다. 외국에서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좋은 예이다.
이러한 조류와 맞물려 한국 교회가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분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며 사역자들을 세워가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훈련시켜서 현지에 파송하면 한국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비용 면이나 효과 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외진 곳에 찾아가서 선교 사역을 하는 것만을 선교 활동으로 보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실제로 대도시 내에 수많은 종족들이 뒤섞여 거주하고 있고 이들을 중요한 선교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점차적으로 도시 선교가 선교의 보다 더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 이주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이나 여러 가지 불합리한 대우로 인해 한국에 대한 악감정을 가짐으로 해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외국의 선교 현장에서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몽골인 가운데 한국에 있을 때는 교회에 다니다가 몽골에 돌아와서는 교회 다니는 것을 회피하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로서 여러 방면의 도움이 필요해서 교회에 나오지만 본국에 돌아가서는 오히려 가진 자가 되기 때문에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는 몽골 교회 나가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있어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의 영적인 세계관에 도전을 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게 하시는 한편 많은 사람들을 외국으로 보내셨다.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가 있었음을 느낀다. 한국의 IMF 사태는 고국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한국인들을 피치 못해 외국으로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어떤 분은 IMF가 한국의 그 어떤 선교 단체보다도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한다. IMF 사태를 즈음하여 한국인들은 단순히 선진국으로만 이민하기 보다 제삼세계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역은 대부분이 선교 대상 지역이었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한 한인 기독교인들은 그곳에서 먼저 교회를 세웠다. 이러한 한인 교회는 선교의 전초지 역할을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인 환경을 바꾸시면서 점점 더 새로운 국가와 도시로 한인들을 재차 흩고 계신다. 한 예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한인 사업가들은 주로 조선족들이 많은 동북 삼성이나 경제적 기회가 많은 북경, 상해, 광동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 후 점점 더 내지로 공장을 이전해 갔다. 그 후 위엔화 절상, 중국 내 규제 강화 등의 경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점차 동남아 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지역에 한인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세계 전도 여행을 했을 때, 단순히 전 세계를 떠돌면서 복음 전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상 지역을 마음에 품고 목적 의식 하에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로 복음 전도 사역을 했던 곳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했던 대도시였다. 대도시를 다니면서 그는 유대인 회당 주변에 머물렀다. 그리고 회당 주변에 살면서 유대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경건한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가르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교지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중요한 선교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민 교회는 그 지역에서 사업하거나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이민 교회는 그곳의 인적 자원들을 중심으로 현지와 끈을 가지고 있으며 현지 언어나 문화에 익숙한 동역자들을 확보하고 있고 재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서 사역하기를 원하는 한인 선교사들을 돕거나 네트워크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단기팀들을 받아 가이드를 하기도 하고 직접 선교에 뛰어들 수도 있다. 교회 활동이 제한된 구공산권 국가에서도 이민 교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지를 가질 수 있다. 전에는 외국에서 한인 교회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경우 선교사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시각이 점점 바뀌고 있음을 본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사천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60년대 이후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으며 급속도로 교회가 성장했다. 그들은 한국 교회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들었다. 그 기도 가운데 그들은 무슬림들의 대대적인 핍박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기독인들이 인근 국가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도네시아인 교회가 여러 나라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들은 핍박을 통해 더 많은 인도네시아인 교인을 두었을 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 이후 인근 각처로 흩어지면서 복음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우리는 이와 같이 흩으심을 통해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나그네 삶을 살아온 지 어언 14년이 지났다. 미국 동부에서 8년, 몽골에서 5년, 그리고 다시 미국 중남부 텍사스 지역에서 1년을 예정하고 안식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몽골로 돌아가겠지만 하나님께서 또 우리 가족을 다른 땅으로 보내실 것에 대해서 말씀을 주신 바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제 세 아이를 데리고 또 지정하신 곳으로 떠나는 삶을 살 것이다. 14년간 정식 이사를 7번 했으니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한 셈이다. 어느 여름 때는 5번 이상 거처를 옮겨야 했던 때도 있었다. 이사를 자주 하게 되다 보니 아이들도 이제는 그런 삶에 익숙해 있다. 장난감을 사더라도 이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피 큰 인형 같은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것들을 위주로 선물을 고르곤 한다. 우리 가족 모두가 반유목민의 삶을 살아간다.
외국에서 떠돌이로 살아가면서 나는 하늘 나라에 대해서 묵상할 일이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디에 가서 살든지 한국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가르치다 보면 이 땅에 몸을 두고 있지만 소속은 천국에 둔 사람의 삶에 대해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몽골에서 살아가는 동안 교통 경찰이 힘들게 해도, 현지인들이 불공평하게 대할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곳 사회에 속해 있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내가 이방인으로 남아 있어도 소외감을 느끼거나 불행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내게 본국과 본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그 땅에서 살며 집이 없어도 차가 없을지라도 마음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천국 시민으로서 이 땅에서 잠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런 인식이 확고하다면 세상에서 차별 받고 서운함을 겪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에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텍사스의 타일러라는 중소 도시에 머물면서 미국 전역의 한인 교회에 초청을 받아 집회를 하러 가게 된다. 이번이 미국 이민 교회에는 혹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많아서 무리해서라도 집회 요청에 응하곤 했다. 집회를 다니면서 이민자의 삶에 대해 마음에 오는 부담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아울러 많은 사람에게 이민자의 삶이 사명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호부터 몇 회에 걸쳐서 한국인 이민 선교에 대해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이민자의 삶에 대해 나누고 있다. 예수님도 천국의 삶을 포기하고 이 땅에 이민자로 오셨다. 예수님의 가계의 기원이 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은 이 땅을 구원하고 선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은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땅에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에 가서 열심히 선교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가나안 땅은 후대에서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이라크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문명에 비교하면 열등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가나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었다. 노아의 아들들 중에 함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낸 것을 비웃었다가 노아의 노여움을 샀다. 그 때 노아가 저주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었다. 저주받은 가나안의 후예가 모여 살았던 지경이 가나안 땅이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복이 우리 안에서 흘러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는 일차적으로는 사역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복의 근원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다.
아브라함은 기근이라는 어려운 환경이 닥치자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 사명지를 잠시 이탈한 것이다. 거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결과적으로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밟는 땅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그 약속은 후대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끝까지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장사 지낼 땅이 없어서 헷 족속에게 부탁해야 했다. 물론 그들이 무상으로 땅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은으로 값을 지불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알았다.
한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그는 보기에 좋은 땅을 골라 거기에 정착하기 원했다.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이 아닌 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어디가 풍요하고 자신에게 복을 주는 곳인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 들어갔다. 그곳의 타락한 문화와 관습에 대해 그는 부담을 크게 가지지 않았던 듯하다. 롯의 가정의 딸들은 그곳에서 시집가서 그곳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비참했다. 그의 가정의 후손은 결국 믿음의 가문인 이스라엘을 연단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복에 관심이 많다. 복이 없는 땅에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국 사람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복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삶의 모습이다. 서울이 복이 있다고 믿고 우리나 우리 부모님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또 강남이 복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복을 찾아 강남으로 이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복이 있다고 보고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 부모들은 그 가운데서도 사업하기 용이하고 생활이 쾌적하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몰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가 살 곳을 인도받기 보다는 우리가 보고 좋은 곳을 추구했다. 롯의 삶의 방식이었다.
이민 교회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명을 추구하는 이민자가 아닌 자신의 복을 추구하는 정착민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초기 이민자들은 잘 살기 위해서 이민했지 사명을 따라 이사하지 않았다. 섬기기 위해서 살 곳을 정하기 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따라 이동했다.
아내가 한 번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곳에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 우리에게 가장 맞는 곳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제3세계 어느 국가든 어디에서 살든지 생활의 편리함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삶에 중독되게 되면 다른 어떤 생활의 편리함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의 크고 놀라움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삶은 불편함이 아닌 가슴 설레는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될 수 있다.
이민선교 2 / 이용규선교사
하나님은 이 시대에 많은 민족들을 흩으시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 소위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지구 상의 대도시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의 열린 노동 시장과 이민 문호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이민자의 증가는 미국 기독교 인구 변화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미국 기독교인 수에 대한 통계를 보면 기독교 인구가 줄지 않고 있다. 실제로는 미국 백인들 가운데 교회 출석률이 줄어들고 도시의 교회를 보면 청장년 층 교회 출석 수가 급격히 줄어 노인들만 교회에 남거나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전체 인구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그 빈자리를 이민자들의 교회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영적인 공백을 이들 이민자 기독교인들이 채우고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백인 교회가 최근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민자 교회의 교인 증가세를 따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말 도시 선교 컨퍼런스에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사역하는 분의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기독교 인구가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 증가 원인을 분석해 보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들어오는 기독교인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문닫는 교회와 증가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보고는 유럽 교회의 앞날을 암울한 상황으로 투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민자들의 종교 분포를 보면 기독교인은 30 퍼센트를 웃도는 한편 무슬림 인구는 20 퍼센트 대라고 한다. 무슬림만 자녀를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 기독교인들도 아이들을 많이 낳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럽 전체의 기독교 인구가 증가세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기독교 국가로 간주되었던 유럽의 나라들이 가난한 식민지 국가들에 선교사들을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유럽이나 미국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의 복음화율이 높아지고 이들 지역에서 오히려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유럽에 이민자들을 보냄으로 해서 유럽의 영적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민족들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흩으시면서 이를 통해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기회로 삼고 계신다. 본국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게 되는 비율이 높다. 이슬람권에서 서구권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고향 땅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기독교를 접하면서 예수를 영접하기에 이르는 경우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한 예로 이란 지역에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회심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변화 입은 사람들이 다시 본국으로 들어가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예를 보게 된다. 또한 이들 이란 기독교인들은 이란어로 위성 방송을 발사하는 기독교 방송국을 통해 본국으로 송출되는 기독교 설교와 프로그램을 송출하여 방송 선교를 하고 있다. 이 방송 선교는 놀라운 회심의 열매들을 일궈내면서 이란 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한국에 있을 때는 기독교에 무관심했다가 낯설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 땅에서 교회를 찾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가지는 예가 많다. 이민 교회가 미주 유학생들을 위해 섬기는 것은 중요한 선교 사역이 된다. 특별히 한국 교회가 이러한 유학생 사역을 위해 코스타라는 선교 대회를 유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는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전통이다.
필자가 아는 몽골 선교사 한 분은 원래 코이카 봉사단원의 일원으로 몽골 땅을 밟았다가 몽골에서 한인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된 분이었다. 그 후 한 쪽 눈을 몽골 땅에서 실명하는 아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미국에 가서 신학 공부를 한 후 선교 헌신을 해서 몽골로 들어오셨다. 외국에서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좋은 예이다.
이러한 조류와 맞물려 한국 교회가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분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며 사역자들을 세워가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훈련시켜서 현지에 파송하면 한국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비용 면이나 효과 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외진 곳에 찾아가서 선교 사역을 하는 것만을 선교 활동으로 보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실제로 대도시 내에 수많은 종족들이 뒤섞여 거주하고 있고 이들을 중요한 선교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점차적으로 도시 선교가 선교의 보다 더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 이주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이나 여러 가지 불합리한 대우로 인해 한국에 대한 악감정을 가짐으로 해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외국의 선교 현장에서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몽골인 가운데 한국에 있을 때는 교회에 다니다가 몽골에 돌아와서는 교회 다니는 것을 회피하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로서 여러 방면의 도움이 필요해서 교회에 나오지만 본국에 돌아가서는 오히려 가진 자가 되기 때문에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는 몽골 교회 나가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있어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의 영적인 세계관에 도전을 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게 하시는 한편 많은 사람들을 외국으로 보내셨다.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가 있었음을 느낀다. 한국의 IMF 사태는 고국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한국인들을 피치 못해 외국으로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어떤 분은 IMF가 한국의 그 어떤 선교 단체보다도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한다. IMF 사태를 즈음하여 한국인들은 단순히 선진국으로만 이민하기 보다 제삼세계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역은 대부분이 선교 대상 지역이었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한 한인 기독교인들은 그곳에서 먼저 교회를 세웠다. 이러한 한인 교회는 선교의 전초지 역할을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인 환경을 바꾸시면서 점점 더 새로운 국가와 도시로 한인들을 재차 흩고 계신다. 한 예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한인 사업가들은 주로 조선족들이 많은 동북 삼성이나 경제적 기회가 많은 북경, 상해, 광동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 후 점점 더 내지로 공장을 이전해 갔다. 그 후 위엔화 절상, 중국 내 규제 강화 등의 경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점차 동남아 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지역에 한인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세계 전도 여행을 했을 때, 단순히 전 세계를 떠돌면서 복음 전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상 지역을 마음에 품고 목적 의식 하에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로 복음 전도 사역을 했던 곳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했던 대도시였다. 대도시를 다니면서 그는 유대인 회당 주변에 머물렀다. 그리고 회당 주변에 살면서 유대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경건한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가르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교지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중요한 선교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민 교회는 그 지역에서 사업하거나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이민 교회는 그곳의 인적 자원들을 중심으로 현지와 끈을 가지고 있으며 현지 언어나 문화에 익숙한 동역자들을 확보하고 있고 재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서 사역하기를 원하는 한인 선교사들을 돕거나 네트워크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단기팀들을 받아 가이드를 하기도 하고 직접 선교에 뛰어들 수도 있다. 교회 활동이 제한된 구공산권 국가에서도 이민 교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지를 가질 수 있다. 전에는 외국에서 한인 교회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경우 선교사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시각이 점점 바뀌고 있음을 본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사천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60년대 이후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으며 급속도로 교회가 성장했다. 그들은 한국 교회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들었다. 그 기도 가운데 그들은 무슬림들의 대대적인 핍박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기독인들이 인근 국가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도네시아인 교회가 여러 나라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들은 핍박을 통해 더 많은 인도네시아인 교인을 두었을 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 이후 인근 각처로 흩어지면서 복음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우리는 이와 같이 흩으심을 통해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