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가는 날
새벽 네시 삼십분에 기상하여 요즘 신상품으로 여성들의
인기 상품인 캔 막걸리와 빨간 뚜껑을 뒤집어 쓴 알콜도수가
25도인 옛날소주 세병과 오이를 썰어담은 밀폐된
안주통에 고추장등을 챙겨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가다
양주역에서 전동차에 환승하여 신도림역을 가니 일곱시
삼십분 아름다운 5060 카페 동갑내기 소띠방 회원들이
단합대회를 겸한 남도여행을 가는 날 목적지는 복분자
축제가 열리고 있는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 앞 행사장엘
찾아가니 3일간의 행사 마지막 날이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파시를 이룬 장터와 같았습니다.
선운사에 들어가니 초입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그대로 새긴 시비(詩碑) 가 가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선운산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규모가 큰 사찰이여서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즐비했고 100여년이 지난 수목들이 울창하여
사찰 전체의 고색창연한 멋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전나무 숲 부도밭에 백파 선사의
비가 서 있습니다.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華嚴宗主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웅혼한 힘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는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비문입니다.
백파 긍선 스님과 추사 김정희는 한때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백파 선사가 내놓은 ‘선문수경’에 대해 추사는 서신을 통해
조목조목 비판의 날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부지 어린애와
떡 다툼 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창피하다’식의 오만방자함이
서려 있는 ‘백파망증 15조’입니다. 하지만 비문은 너무도 다릅니다.
백파 선사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한껏 담겨 있습니다.
사찰내 풍경들을 찍느라 마음을 뺏기다보니 고향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한 시간이 지나고 있어서 부랴부랴 절에서
내려와 고향식당에 찾아가니 다 들 모여서
식사를 하는 중이라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시간이 다가와서
시간맞춰 식사를 하고는 부안 채석강으로 이동을
해서 구경하고 다시 새만금을 경유해서 집에 오니
23시25분이었습니다.
방장님 어제 여행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봄이면 보리밭이 압권이더니 지금은 복분자와 수박에
풍천 장어까지 더 해져서 고창은 예로부터 볼꺼리 먹꺼리가
풍부하니 인심좋은 고장인 것 같습니다.
그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하신 방장님과 총무님
두 분의 노고(勞苦)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옥의 티 괘념치 마시고 어제처럼 좋은 날
흔치 않았다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동행한 사람들의
마음 헤아려 주시고 다음에도 어제처럼 좋은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불사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