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10만평을 황금벌로 일군 굴포마을
경남 사천군 서포면 굴포마을 지도자 박점생
성공내용
이 마을은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나 바다를 개척하지 못하고 호당 경지면적 0.6ha에서 생산 되는 농산물을 가지고 겨우 연명하고 살았으나 젊은 지도자 박점생 씨는 잘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집념으로 버려둔 갯벌에 제방을 쌓아 10만평의 농토를 조성하고 굴, 고막, 바지락 등을 양식하여 소득을 높였으며
야산개발, 양돈 및 한우 증식 등 복합적인 소득원을 개발함으로서 75년도에 호당 소득 140만원을 달성하여 자립의 터전을 확립하였고 안길확장, 지붕개량, 농로확장 등 환경개선사업과 간이상수도, 전기시설 등 주민 복지 시설을 확충하여 살기 좋고 풍요로운 마을을 이룩하였다.
마을현황
가 구 : 55호 (농가 54, 비농가 1)
인 구 : 351명 (남 178, 여 173)
경지면적 : 72.3ha (논 44.6, 밭 27.7)
갯벌을 일군 지도자의 집념
굴포 마을은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전라남도 순천방면으로 약 36km 지점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면서도 바다를 개발하지 못하고 호당 0.6ha에 불과한 경사진 논밭에만 의존하여 낙후된 농사를 지어 왔으며 음력 정월이면 벌써 식량이 떨어져 갯벌에 서식하는 자연산 굴이나 바지락을 캐다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해 온 가난한 마을이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었던 이 마을이 젊은 지도자 박 점생 씨를 중심으로 온 주민이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와 집념으로 자연 조건을 최대로 활용하여 5년여에 걸쳐서 영농기반을 확충하고 식량증산과 소득증대사업을 알차게 추진해 온 결과 75년도에 호당소득 140만원을 넘어선 부자마을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도자 박 점생 씨는 구포마을이 잘살기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여러 가지로 궁리하던 끝에 무엇보다도 이 고장의 영세한 경지를 확장하여 식량을 증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가하고,
마을 앞에 쓸모없이 버려진 갯벌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확장하고 소류지를 설치하여 간척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꾸는 한편 야산을 개간해서 유실수 등을 식재하고,
천혜적인 얕은 바다에 굴, 바지락, 고막 등의 양념장을 조성하여 수산양식 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 나갔다.
버려진 갯벌 10만평을 옥토로 조성
박 점생 지도자는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간척사업부터 착수 할 결심으로 63년도에 처음 착수 했다가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중단한 채 2년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해둔 제방을 다시 쌓자고 했으나 공사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마음 사람들은 그의 호소에 동조하기는커녕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박 점생 지도자는 끈질기게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65년 8월 마침내 36명의 청장년들의 호응을 얻어 간척사업추진의 원동력이 된 간척계를 조직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리의 숙원사업은 우리 스스로가 이룩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결속된 36명의 간척계원들은 일대 용단으로 어려운 가계를 짜내어 10만원씩을 거두어 기본자재비로 우선 400만원의 기금을 마련하고 제방축조기사를 초빙하여 기술을 익혀 나가는 한편 3개월간에 걸쳐 약 180트럭분의 돌을 주민들 손으로 운반하여 바다를 가로막는 일을 시작하였다.
120m를 쌓아가는 지점에서는 만조 때 수심이 3.5m나 된 데다 수로가 좁아짐에 따라 밀물과 썰물의 압력을 크게 받게 되어 어느 날 밤사이에 20m의 제방이 무너져 마을 사람들의 실의와 허탈감에 빠져 자포자기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앞장선 박 점생 지도자의 의지와 집념에 감동되어 주민들은 다시 용기를 되찾아 복구 작업과 마무리 공사에 온 힘을 기울여 총공사비 800만원과 연인원 13,000명이 참여하여 착공한지 2년 만에 폭 5m, 높이 4m, 길이 250m의 제방을 완공하는데 성공 하였다.
젊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온 마을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2년여에 걸쳐 자력으로 완성한 이 대역사는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승리였으며 “하면 된다.”는 새마을운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증해 주었고 쓸모없이 버려둔 10만평의 넓은 갯벌이 옥토로 바뀌어져 27ha에 불과했던 경지 면적이 68ha로 확대되어 호당 1.3ha로 크게 늘어남으로써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보람찬 감격을 마을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다.
10만평의 간척답은 주민 총의에 따라 모두 분배하였으며 간척답을 개답해서 하루 속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소류지 설치를 서둘러야 했으므로 지도자는 간척공사로 지친 마을 사람들을 다시 일깨워 국비 300만원과 주민부담 78만원으로 연인원 3,800명이 참여하여 폭 5m, 높이 3m 길이 280m의 소류지를 완공해 냄으로써 우선 18ha의 간척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어 간척 공사가 끝난 4년만인 71년도부터 간척답에 농사를 짓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간척답의 지면이 낮아 배수가 불량하고 염분이 쉽게 제거되지 않았으므로 간척답의 지면을 높이는 객토작업을 실시하고 1모작 답을 2모작 답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저습지의 수침을 방지하는데 온갖 힘을 기울였다.
한편 지력 증진에도 힘을 기울여 매년 공동 풀베기 작업을 실시하여 지난해에는 947톤의 퇴비를 생산, 반당 1톤 이상의 퇴비를 사용함으로써 지력을 크게 증진시켰으며 퇴비증산 우수 마을로 뽑혀 20만원의 시상금까지 받기도 했으며
영농개선을 위하여 단지영농회를 조직하고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을 보급 받아 답 면적의 45%에 해당되는 22ha로 재배 면적을 늘리고 육묘에서부터 모내기, 병충해방제, 물 관리 등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등 온 마을 사람이 식량증산에 힘을 기울인 결과 75년에 10a당 435kg을 생산하여 전국계획 단수인 382kg 보다 14%의 증수실적을 가져 오게 되었다.
굴, 고막, 바지락 양식으로 부촌 이루어
간척 사업에 성공한 그는 마을 앞에 널리 펼쳐진 얕은 바다에 굴, 고막, 바지락 등 수산양식 사업을 추진할 것을 착안하고 우선 자신이 수산진흥원 등을 찾아가 양식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익혀 마을에 보급시켰다.
양식 기술을 익힌 마을 사람들은 공동으로 10ha의 굴 양식장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73년도에 대통령각하 하사금 100만원을 지원 받고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된 주민들은 하사금 일부로 2ha의 양식장을 추가 조성함으로써 굴 양식장은 12ha로 늘어나 지난해에 12ha의 양식장에서 39톤의 굴을 따 45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올해에는 지난해 보다 부착 율이 좋아 43톤은 무난히 채취될 것으로 보아 630만원의 소득이 예상되고 있다.
지도자 박 점생 씨는 굴 양식장 조성에 이어 고막, 바지락 등 주요 패류양식장 조성을 위해서 전남, 경남 충무 등지에서 종패를 구입하여 부락 협업으로 양식장 4ha에 종패를 번식시킨 후 매년 확장하여 현재 20ha를 조성하여 75년에 81톤의 고막과 바지락을 채취하여 47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와 같이 굴 패류 등 양식 사업을 착수한지 5년 만에 32ha의 광활한 양식장에서 연간 1,100만원이나 되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또 양식 사업의 성공으로 크게 늘어난 수산물을 갯벌에서 부녀자들이 힘겹게 운반하는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하여 지원금 10만원과 자부담 70만원으로 15m의 선착장을 완공하여 수산물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게 하였다.
수산물 공동 판매장을 설치하여 현지거래를 하게 함으로써 선도를 유지하는 한편 종래 7km나 떨어진 시장까지 운반해야 했던 불편과 운임을 절감시켜 많은 간접 소득을 올리고 있다.
야산 개발로 밤, 목단 등을 재배
박 점생 지도자는 한 치의 땅도 헛되이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쓸모없이 버려둔 야산 8ha를 마을 공동으로 개간하여 밤, 단감 등의 유실수를 식재하고 수익성이 높은 목단을 재배케 하는 등 주민의 장기적인 소득원 개발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개간지 8ha 중 3ha에 1,200주의 밤나무와 단감나무 250주를 식재하여 성과년도인 81년부터는 14톤 이상의 밤과 단감을 수확하여 150만원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경사도가 낮은 개간지에는 참깨 고추 등을 재배하고 경사도가 높은 개간지에는 목단 등 약용작물을 재배하여 78년도에는 170만원의 소득이 기대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인초를 재배하여 57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마늘 재배로 270만원의 소득을 올린 바 있다.
종래 제주지방에서 주로 재배했던 맥주 맥이 이 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함을 알고 부락민에게 적극 권장하여 3년 전부터 계약재배를 시작하여 지난 해에는 484만원의 소득을 가져 왔다.
그는 또한 축산에도 큰 힘을 기울여 양돈에 있어서는 이 지방 전래의 비육돈이며 질병에 강하고 성장률이 빨라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진 사천 돈 사육을 장려하여 45두의 모돈에서 연간 630두의 자돈을 증식시켜 13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야산의 자연 초지에는 46두의 한우를 집단 사육케 함으로써 노력과 사육비를 크게 절감하여 지난해 17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에도 큰 성과
굴포마을 사람들은 소득증대 사업의 알찬 성과를 토대로 새마을 가꾸기 사업 등 환경개선 사업과 주민복지 사업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72년도에 52호의 전농가가 자력으로 지붕개량을 완료하였으며 몇 년 전만해도 지개를 지고 겨우 지나갈 수 있었던 비좁고 꼬불꼬불했던 마을안길을 폭 4m의 넓고 곧은길로 바꾸어 놓았고, 총연장 2,6km의 농로를 뚫어 리어카와 경운기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숙원이던 간이 상수도를 지원금 30만원과 자부담 80만원으로 완공하여 집집마다 위생급수의 혜택을 줌으로써 수인성 질병 퇴치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73년 가을에는 융자금 216만원과 자부담 37만원으로 52호의 전 가옥에 전기를 가설하여 농어업의 생산력을 증강하고 있으며 작은 마을에 11대의 TV 안테나가 즐비하게 서 있어 도시 부럽지 않는 문화 농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내일을 위한 굳은 결의
19만 평의 갯벌을 황금벌로 탈바꿈시킨 의지의 지도자 박 점생 씨는 대통령각하께서 제창하신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과 “하면 된다.”는 의지의 실천 철학을 온 마을 주민에게 일깨워 준 새마을운동의 선도적 기수요, 지역개발의 젊은 역군으로서 번영의 80년대를 향하여 자신의 젊음과 정열을 다 바칠 것을 굳게 결의하고 있다.
호당 소득 140만원의 목표를 5년이나 앞당겨 달성한 340명 굴포주민들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을 영속화하고 내실화하기 위하여 지도자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총력증산 총력안보를 더욱 생활화하여 총화 유신으로 보다 풍요한 새 농어촌 건설에 앞장 설 것을 굳게 다짐하고 있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시작에서 오늘까지 (내무부)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