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를 하게 되면 환자는 의식을 잠시 잃게 되어 자신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잘라도 그 고통을 모르게 된다.고통은 마취가 풀렸을 때에야 시작된다.마취의 도움이 없다면 그렇지않아도 쉽지않은 수술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이전만 해도 마취는 일반화되지 않고 있었다.마취제가 없었으니 당시 유럽에서는 수술을 하게 될 경우 사람의 수족을 강제로 결박한 다음 다리를 자르는 등의 외과적 수술을 시행했다.그러므로 당시 수술환자가 겪는 공포심과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그것은 아마도 「합법적」으로 당하는 무자비한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 외과적 수술은 시술의사와 마취전문의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이와같이 현대의학에 꼭 필요한 마취제는 영국의 심프슨경에 의해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제임스 심프슨(1811∼1870년)경은 스코틀랜드의 바드게이트라는 지방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영리한 심프슨은 열네 살 때,에딘버러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배우고 스물한살 때인 1832년 졸업했다.그리고는 곧바로 병리학 조수와 산과학의 강사가 되었고 1846년에는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에딘버러대학의 산과학 교수가 되었다.
성경을 믿었던 심프슨경은 당시 많은 외과수술을 하면서 수술중 환자가 받는 고통에 대해 매우 가슴아파했다.그러던중 다음과 같은 창세기 2장21절,22절 말씀에 상당한 감명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매우 희화적으로 느껴지는 위의 창세기에 기록된 하와의 창조 이야기를 심프슨경은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의사의 지식으로 볼 때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는 것은 매우 큰 수술입니다.그런데 그 수술을 받은 아담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듯 「이는 내 뼈 중의 뼈요,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탄성을 올렸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재우시듯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는 없을까 생각했습니다.더욱이 환자가 수술중 고통 때문에 움직이게 되면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요.마취제는 이것을 해결한 것입니다』
심프슨경은 위 성경구절에 영감을 받아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그 뜻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18세기 말경에는 여러가지 기체들이 과학자들에 의해 알려지고 있었다.그 중에는 치과에서 이를 뺄 때 사용하는 이산화질소(NO)도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윌리엄 모든(1819∼1868년)이란 치과의사가 1846년 이산화질소 대신에 에테르라는 물질을 사용해 이를 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물질은 곧 영국의 외과 의사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그런데 이 에테르는 불쾌한 부작용이 있었다.심프슨은 에테르를 대체할만한 좀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 없을까 찾기 시작했다.
1847년 어느날 심프슨경은 그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키츠 박사,던컨 박사와 함께 클로로포름이라는 무거운 액체를 시험하게 되었다.
이 물질은 이미 1831년 발견되었으나 오랫동안 아무도 그 용도를 찾지못해 쓰이지 않고 있었다.
심프슨경과 그의 동료들은 컵에 클로로포름을 붓고 그 증기를 조금씩 마셔보았다.그러자 그들은 보통때 느끼지 못했던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그들의 눈은 빛났고 유쾌하게 보였으며 수다스러워졌다.그들은 말끝마다 약간의 단맛이 있는 이 향긋한 기체를 칭찬했다.
그런데 곧 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실험을 통해 클로로포름이 안전한 마취제라는 확신을 갖게 된 심프슨경은 에딘버러 왕립병원에서 이것을 실험해보기로 결정하게 된다.
1847년 11월 어느날 심프슨경은 아일랜드에서 온 너댓살 먹은 소년의 작은 수술에 드디어 클로로포름을 사용했다.이 소년의 겪은 팔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것이다.마취는 클로로포름을 약간 수건에 묻혀서 소년의 얼굴을 덮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 마취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잇따른 수술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어냈다.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프슨경은 분만의 고통을 더는데도 클로로포름을 사용했다.최초의 환자는 그의 친구인 의사의 딸이었다.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무통분만법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그는 수십회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마취법의 성공적 활용은 급기야는 1853년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여왕(1819∼1901년)이 여덟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그후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클로로포름에서 더욱 발전한 마취제를 쓰고 있지만 심프슨경이야말로 마취제의 선구자였으며 그 시작은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 말씀을 한낱 설화나 신화 또는 단순한 교훈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른 한 진실한 외과의사에 의해 인류는 많은 고통스런 수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보다 안전한 수술에 의핸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심프슨경은 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취제가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대속자가 되시며 나를 위해 징계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으며 그 분을 알게 되었습니디.내가 찾은 그분 앞에서 저는 울부짖었으며 그 분은 나를 용서해 주셨지요.그러기에 우리 구주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가 쓴 신앙고백록에 남아 있는 이 구절은 그가 얼마나 커다란 신앙체험과 믿음의 비밀을 지녔던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사야서 53장5∼6절의 이 유명한 에언의 말씀은 심프슨경이 항상 묵상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구절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