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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에 이런집이-특이한 집,디자인하우스.중남미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사랑
보아지
보아지 치목현장
보아지는 대들보나 퇴보 밑을 받치는 초각형 부재를 말한다.
초각할 당초문양을 합판으로 본을 뜬다.
본을 뜬 후 전기톱을 사용하여 형태를 잡는다.
조각 끌을 사용하여 전기톱을 사용한 면을 다듬는다.
루터를 사용하고
끌을 사용하여 초각한다.
기둥과 주두가 앉을 부분을 따낸다.
쇠서형 보아지.초각문양은 당초문
몰익공형 보아지. 초각문양은 당초문
대들보
대들보의 단면 - 항아리보
대들보는 단면형태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한다.
구형보 : 보의 단면이 장방형으로 모서리부분만 곡선으로 굴렸다. 조선중기 이후의 대부분의 보가
여기에 해당함.
항아리보 : 보의 단면을 항아리처럼 둥그렇게 만들었다.
고려시대 주심포건물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 특히 천정이 없는 연등천정으로 처리하는
경우에 노출된 대들보의 육중한 크기를 가볍게 보이도록 하기위함.
아래사진은 항아리 보 형태의 사진입니다.
종량도 항아리보 형태군요. 소슬대공도 보입니다
사나사 진영각(양평)
보(樑)의 치목 현장
보는 보통 건물의 앞뒤 기둥을 연결하는 수평구조부재를 말한다.
보는 기둥에 짜일 때와 주두 또는 소로에 얹힐 때가 있다.
익공, 다포, 주심포 등의 공포를 짜는 건물의 보는 모두 주두나 소로 또는 공포재 위에 짜이게 된다.
아래 사진의 보는 1고주5량의 초익공집의 보이다. 따라서 보의 머리 부분은 주두위에 앉히며 보의 다른
끝은 고주에 끼인다.
보의 측면을 대패질로 면을 다듬는다.
보의 중심선을 잡고 따낼 부분을 먹금으로 표시한다.
보의 아랫 부분을 먹금을 따라 따낸다.
엔진톱으로 금을 넣고 도끼를 사용.
그다음은 사쿠리 작업.
대패로 면을 잡은 다음은 기둥에 결구되는 부분을 표시.
보의 아래가 될 부분을 사진과 같이 후려준다.
고주에 끼일 부분도 먹금으로 표시.
보의 모서리 접기.
초새김할 부분을 표시.
엔진톱으로 1차 작업
보머리의 중심선 잡기.
끌로 멋지게.
주두위에 놓일 부분
고주에 끼일 부분
산지치기할 부분
모접기와 쇠시리의 종류
모접기 : 석재.목재 등의 각진 모서리를 좁은 면을 내거나 둥근 모양으로 무디게 깍아내는 일.
쇠시리 : 나무의 모서리나 면을 모양지게 깎아 만든 것 또는 그일 .두드러지게 하거나 오목하게 하여 모양을 돋힌 것
변탕 45 ˚ 빗모 둥근모 안둥근모(우묵원모)
빗변탕 양턱모 양턱둥근모 양턱안둥근모
실오리모 양턱빗모 한턱둥근모 외사모
욱은둥근모(안둥근) 외사면 끝막이안둥근모 2입 3원모
2입 등부른면 원형면(둥근면) 등부른면 욱은면(안둥근면)
쌍사면 고개빗면(양빗면) 한쪽빗면(빗면)
표주박모 표주박테 등굴림(타원면)
투밀이 투밀이 투밀이
난간
멋과 풍류가 숨어 있는 목조 난간 | ||
신변과 신분 지킴이, 실용과 장식 도우미집이나 정자, 누각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면서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켜 주는 난간에 도 우리 조상들의 멋과 풍류가 숨어 있다. 가장 많이 쓰였던 목조 난간은 평난간, 계자 난간의 두 종류로, 선의 아름다움과 꽃과 호롱 등 자연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목조 난간의 종류와 멋스러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가 난간에 기대어 집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얼굴을 드러 낼 수 없는 양반가의 여인의 연못의 부평초를 바라보러 살포시 난간에 다가선다. 난간은 건물의 일 부분이면서 내부 거주자를 외부로 이꾸는 완충 공간의 역할을 한다. 물론 난간이 생겨난 것은 지면보다 높은 바닥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연유로 외부에 만들어졌다. 외부에 설치되다 보니 집이나 누각을 꾸미는 치장재로도 쓰였다. | ||
난간의 발생이 언제부 터인지 확실하지 않지 만, 고구려의 장군총, 백제의 동탑편, 통일 신라의 안압지 등 삼 국 시대 건축물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 이전 으로 추정된다. 난간은 재료에 다라 목조 난간, 석조 난간 으로 분류된다. 이중 목조 난간은 누(樓), 정자(亭子), 툇마루 등에 가장 보편적으로 설치되었다. 드물게 보이는 석조 난간은 궁궐 정전(政 殿)의 기단이나 돌다 리에 주로 나타난다. |
중방(中枋)에 수직으로 엄지 기둥을 세우고 엄지 기둥에 수평으로 띠장과 두겁대를 넣은 형식이다. 엄지 기둥, 난간 동자, 디장은 거의 사각 단면이며, 두겁대만이 사각과 원형의 단면을 이룬다. 또한 평난간은 궁창부를 단일층으로 하고 쌀짜임과 안상형(眼象形)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넣은 것이 특징 이다. 두겁대와 띠장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받침대를 두어 두겁대가 휘는 것을 막았다. 이 받침대는 창 덕궁 금원의 대극정처럼 호로병 모양이 있고, 창덕궁 낙선재처럼 꽃잎 모양이 있다. | ||
난간의 궁창 모양도 장 식재 역할을 톡톡히 한 다. 평난간에는 창덕궁 낙선재처럼 궁창부에 창호의 창살 무늬 즉 ‘亞’ 자살, ‘卍’ 자살 을 넣는 난간인 교란 (交欄)이 있고 창덕궁 의 소요정, 취규정처 럼 안상의 형태로 뚫은 판으로 메운 안상형 난 간도 있다. 궁창부의 널판에 꽃을 새긴 난간도 있는데 이 는 경복궁 향원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외에 도 창덕궁 승화루처럼 궁창부에 두 개의 빗살을 X자로 만들어 그 가운데 원형살로 넣고, 난간 동자를 조롱 모양으로 만든 특수 형태의 난간도 있다. 계자난간은 중방에 세운 난간 동자를 계자각(鷄子脚)으로 하고, 이 위에 두겁대를 설치하여 두겁대 가 바닥 끝에서 돌출되게 만든 양식이다. 계자 난간은 궁창부가 단층인 것과 이층인 것 두 가지가 있다. 단층 궁창부에는 안상형이 주로 나타나는데 창덕궁 금원 주합루에서 볼 수 있다. 이층 궁창부이면서 꽃새김된 것으로는 경복궁 향원정 난간을, 안상형으로 새겨진 것은 창덕궁 낙선재 정자 난간을 들 수 있다. |
계자난간과 평난간
계자난간(안동 임치각) 계자난간(봉화 쌍벽당)
●계자난간(鷄子欄干)은 조선시대 가장 널리 쓰이던 난간으로 난간대를 계자다리(鷄子多里)
라고 하는 부재가 지지하고 있는 난간을 말한다.
평난간(상주 양진당) |
평난간(이천 이병기 가옥) |
●평난간은 계자 다리가 없는 난간으로 풍혈이 있는 난간청판 대신에 창호에 사용되는
살대로 여러가지 모양을 낸 난간을 말한다. 평난간은 살대 모양에 따라 아자교란, 완자교란,
빗살교란 등으로 불린다.
(참고자료 김왕직, 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발언, 2000)
<계자난간의 시공>
ㄱ. 귀틀 위에 지방을 대고 계자각을 세운 다음 띠장을 건너댄다.
이때, 안상을 새긴 궁창널도 같이 끼워 짜도록 한다.
ㄴ. 계자각은 당초문양 등 초트림을 새기고, 하엽은 연입의 모양을 조각한다.
ㄷ. 계자각은 지방에 내닫이장부로 견고하게 설치하고 필요시 옆에서 산지치기를 한다.
ㄹ. 계자각 위에는 하엽무늬를 새긴 받침을 놓고 그 위에 난간두겁대를 설치한다.
ㅁ. 계자각은 하엽 밑에서 장부맞춤하고, 두겁대는 하엽 위에 물리고 감잡이쇠를 감거나
못으로 고정한다.
ㅂ. 하엽은 난간두겁대의 1/3정도가 감기고 밑은 계자각의 목에 낸 장부를 꿰고 나와서
위의 난간두겁대까지 장부맞춤으로 한다.
ㅅ. 지방은 귀틀에 견고하게 못박아대고, 띠장은 계자각에 통물린 후 못으로 고정한다.
ㅇ. 착고판은 4면을 널 홈에 끼운다.
ㅈ. 계자난간의 각 부재는 필요에 따라 철물로 보강한다.
다락
다락의 종류
다락은 중층구조로서 다락이 위치하는 하층의 실명에 따라 구분되어 진다.
1) 부엌다락
방의 난방과 취사를 하기위해 아궁이 시설을 갖춘 부엌이 기단면 보다 보통 45~60cm정도 낮아
지므로써 부엌상부에는 대개 다락을 구성하게 된다. 대부분 상류주택의 안방부엌 상부에는 다락
이 있으며, 방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는 농이나 궤짝 등 가구류와 상이나 촛대 등 제
기, 길쌈도구 및 반지그릇 등을 수장한다.
2) 방다락
방은 대청과 다르게 개인적이고 아늑한 분위기를 지니며, 반자가 구성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지붕밑 종도리 부분과 반자사이의 여유공간이 자연스럽게 다락으로 구성되었다.
방에 먼저 반자의 높이를 정해 반자틀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마루를 놓거나 산자를 엮고
흙을 놓아 다락바닥을 이룬다.
경북지방의 일부 집들은 고미반자를 놓고 다락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락을 고미다락
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고미다락은 방이나 창고 등의 천장을 고미받이와 고미가래(고미서까
래)를 걸고 그 위에 산자를 엮고 흙질하여 평탄하게 하고 밑에는 치받이흙(앙토)을 발라 고미
반자를 꾸며, 반자틀과 종도리 사이의 지붕속을 이르는 말이다.
방다락의 출입은 직접 출입할 수 없으며 골방이나 부엌다락을 통해 이루어 진다.
수장하는 물품으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귀한 물건(엽전, 폐물)을 보관한다. 사랑채의 경우에는
서적이나 인쇄를 위한 목판이나 선조들의 유품 등을 보관하였다.
3) 쇠다락(마굿간 다락)
소를 기르는 외양간이 있는 주택에서 외양간 상부에 다락을 설치해 농사짓는데 소요되는 농기
구, 마구 등을 수장하는 공간이다. 이 다락은 전후벽의 중방과 주간에 건너지른 작은 보 위에
널 판을 깔거나 산자를 엮고 흙을 바르고 밑에서 치받이 흙을 바르기도 한다.
또한 가느다란 통나무를 나란히 잇대어 전후 중방에 건너대고 흙질하여 평탄하게 하거나 발
등을 깔기도 한다.
4) 누다락
누다락은 누마루의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유사하나 인접한 실과의 연결 및 공간의 활용이
다락과 같은 누다락이 있다.
공포
공포(栱包)
우리 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의 전통목조건축에 쓰이는 조립부분. 일반적으로 궁궐·사찰·기념적 건축에 쓰이며, 기둥과 보, 기둥과 도리 등의 수직재(垂直材)와 횡재(橫材)가 맞추어질 때 장식적 또는 구조적으로 짜여져서 여러 부재가 결속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건물 내부에서 낮은 도리와 높은 도리 사이, 또 동자주(童子柱)와 종보〔宗梁〕와 종도리의 맞춤에도 사용될 수 있고, 대공(臺工)과 종도리 사이에도 짜일 수 있다.
또, 외부로는 창방(昌枋)·평방(平枋)과 처마도리 사이, 외목도리(外目道里)와 주심도리 사이에도 짜이는 것이 보통이고, 기둥 위 주두(柱枓 : 대접처럼 널찍하고 네모진 나무)에 놓이는 것과 주두 밑에 놓이는 것 등 실로 다양하다.
[기능]
공포는 건물 지붕의 무게를 분산 혹은 집중시켜 구조적으로 안전한 완충적 기능을 하기도 하고, 내부공간을 확장시키고 건물을 높여 웅장한 멋을 낼 뿐 아니라, 그 구성과 공작이 섬세하고 화려하여 장식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공포는 그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장적 표현(意匠的表現)으로서 각 시대에 따라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특징의 변화는 건물 어느 부분보다도 민감하여 문헌기록이 없는 건축이라도 시대의 추정과 건물의 구조 및 양식 분류를 할 수 있는 중요자료가 됨은 물론이다.
[역사적 유래]
우리 나라 목조건축에 ‘포(包)’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포’라는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647년 발간된 ≪창덕궁수리도감의궤 昌德宮修理都監儀軌≫에서 ‘첨차(檐遮)’·‘제공(諸工)’·‘입공(立工)’·‘엽공(葉工)’·‘소로〔小累〕’·‘장여〔장혀, 長舌〕’ 등 공포를 이루고 있는 부재명이 기록되고 있음을 보아, 그 이전부터 공포에 대한 명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에서 공포의 사용이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4,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발달된 공포구조로 보아 이보다 훨씬 앞서 공포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수혈주거에서 공포의 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서까래가 지면에서 떨어져 처마를 이룰 때부터는 기둥과 보 그리고 서까래 사이에는 공포를 이룰 수 있는 부재(副材)가 놓일 수 있다. 이들 부재는 처마를 깊게 내밀 때 또는 보를 보강하는 데 구조적으로 필요하며, 바로 이러한 부재의 조립이 공포 발전의 시작이다.
고구려는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우리 나라에서 제일 먼저 발달된 공포를 사용하였다. 실제로 한나라의 석궐(石闕)이나 명기(明器)에 나타나는 공포의 형태와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공포는 서로 통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용된 공포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하나의 주두 위에 첨차를 얹고 그 위에 3개의 소로를 놓는 1주두 3소로식의 포작을 꾸미고 있다. ②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이 있고, 주두의 굽은 심한 만곡을 이루었다. ③ 공간포(空間包)로서 ‘∧’모양 또는 동자주형을 쓰기도 하였다.
④ 첨차의 양끝을 수직으로 절단하여 밑을 45°경사로 직절하였거나 거칠게 곡을 만들어 깎고, 첨차 상면은 우묵히 공안(栱眼)을 파지 않고 양단을 소로 굽의 너비만큼 목을 약간 올렸다.
⑤ 주두 위에 첨차가 한 단 놓인 것과 소첨·대첨이 겹쳐 2단을 이룬 형식 첨차가 전체적으로 곡을 나타낸 것 등 다양하였다.
백제시대에 사용되었던 공포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소탑편(靑銅小塔片)에서 공포의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기둥 상부에서 밖으로 뻗어나온 첨차 위에 서까래쪽에서 밑으로 경사져 내려온 하앙(下昻)과 같은 부재가 표현되어 있고, 이를 받치는 첨차가 기둥 상부에서 빠져나와 그 중간에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공포는 일본의 호류사금당(法隆寺金堂)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은 일본 아스카(飛鳥)시대부터 나라(奈良)시대에 이르는 7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서, 당시 백제 건축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자료를 통하여 백제시대 공포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백제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굽받침이 있는 주두와 소로를 사용하고 1주두 3소로의 형식을 취하고 운형(雲形)의 제공도 사용하였다고 추측된다.
② 건물 내외에 내민 첨차를 썼다.
③ 하앙을 사용하여 많은 양의 비에 견디는 처마를 짰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의 공포구조 역시 현존 유구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1975년과 1976년에 발굴조사된 경주 안압지(雁鴨池)에서 출토된 유물 중 소로와 첨차 등을 보면 당시의 공포구조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안탑서문미석하각도(大雁塔西門楣石下刻圖)에 나타난 포작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또,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은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의 집모양〔家形〕의 불감으로 신라건축의 좋은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공포가 잘 나타나 첨차의 모양 하나만으로도 안압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신라 경덕왕 때의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 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에 그려진 공포도나 불국사 다보탑의 돌로 된 소로 등도 거의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이 없고 굽부분은 입면으로 보아 만곡을 이루고 있다.
② 첨차에는 교두형(翹頭形:활처럼 깎아낸 모양)을 썼고 2면 또는 3면 직절하여 첨차 끝을 굴렸으며 첨차 상면에는 공안을 주었다.
③ 하앙구조도 썼던 것으로 추측되나, 한편 수평으로만 조립한 포작을 흔히 써서 고려시대의 포작을 발전시킬 전조로서의 발달된 포작을 사용하였다.
이상 기술한 삼국시대의 공포의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구조적으로 견실하여 안정된 건축미를 보였다고 믿어진다. 즉, 포작에 있어 일출목(一出目) 이상을 별로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첨차는 단조로운 교두형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는 포작을 기둥 위에서만 짜지 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 창방 위에도 사용하여 소위 공간포를 짰음을 방증자료로 보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초적 공포의 형식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발전하여 건축의장적 미와 구조적 기능을 동등히 조화시켜 상호 순화시키는 아름다운 포작을 꾸몄다.
따라서, 이른바 주심포계 형식(柱心包系形式)에서는 고려 중기 이후 교두형 첨차에서 벗어나 측면에서 볼 때 쌍S자형의 곡선을 보이는 장식적 기법이 생기게 되었고, 또 전통적 기법에다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다포계형식도 발전시켰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목조건물로는 안동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영주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예산 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 강릉객사문(江陵客舍門) 등이 있다. 이 중 봉정사극락전은 중수연대가 1363년으로 기록되어 가장 오래된 현존건물로 알려졌고, 포작의 짜임도 고식적(古式的)인 형태를 보인다.
이들 4개의 예 중에 봉정사극락전과 부석사무량수전은 같은 계통의 포작기법을 보이고 있고, 수덕사대웅전과 강릉객사문은 또다른 계통의 포작기법을 보이고 있어 이들의 발달과정이 주목된다.
즉, 전자의 둘은 주두 위에서 같은 규모와 형태의 두공첨차를 평면으로 보아 十자형으로 조립하여 올려서 규격화된 외형을 보였고, 후자의 경우 주두 밑에 헛첨차를 두면서 그 위에 건물 내외로 뻗어 내민 첨차나 쇠서형의 제공을 두고 첨차의 곡선도 뚜렷하여 전자보다는 훨씬 장식적이다.
또, 고려시대는 주두의 곡선과 굽받침이 아직 완전히 퇴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수덕사대웅전·강릉객사문·부석사무량수전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특히, 중도리나 중도리를 받는 대공에 ‘∧’모양 대공이나 포대공 또는 파련포대공(波蓮包臺工)을 혼용하여 장식적으로 짜기 시작한 것도 이 시대의 주심포형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무량수전 공포 - 단청이 있지않지만 이곳만의 느낌을 주는 깔끔함을 보여주고 있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 다포형식의 예로는 북한에 있는 심원사보광전(心源寺普光殿)·석왕사응진전(釋王寺應眞殿) 등이 있는데, 이들 공포작의 특징은 주두나 소로굽에 곡과 받침이 완전히 없어지고 첨차는 공안을 둔 교두형이고 쇠서의 끝이 투박하고 밑으로 경사져 뻗었으며, 내·외 출목을 2개 이상 두고 있어 주심포보다 조립이 복잡해진 점이다.
또, 여기서는 포작을 주심포작 이외 공간포를 평방 위에 배열하였다. 이상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는 주심포와 다포형식의 포작기법이 뚜렷이 갈려 서로 다른 형식을 나타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공포는 다양하고 장식적이며 복잡해진다. 이 시기는 주심포보다도 다포계 건축이 더 많이 쓰인 듯한데, 후기로 내려오면서 차차 출목의 수도 더욱 늘어나고 쇠서의 조각도 뾰족하게 곡을 두고 있으며, 내측의 양봉(樑奉)도 초화문(草花文)이나 운공형식(雲工形式)의 굴곡된 형태를 보인다.
반면, 지붕밑의 가구는 단조로워서 포대공은 점차 사라져갔다. 조선 중기에 와서 건물구조의 간소화를 위하여 익공계형식(翼工系形式)이 발전되는데, 1익공과 2익공이 흔히 쓰여 전자의 경우 첨차가 없어 쇠서와 같은 익공을 주두 밑에서 외부로 돌출시켜 그 위에 바로 보를 얹어놓았다.
2익공인 경우 그 위에 또 하나의 익공을 포개어 올리게 되는데, 이 때 출목을 두어 첨차와 같이 짜는 것과 출목 없이 주심에서만 도리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익공계형식은 구조가 간결하여 가구가 견실하고 경제적이어서 조선 중기 이후 흔히 사용하였다.
이 시대 또 하나의 형식으로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유구가 있는데, 그것은 완주 화암사극락전(花巖寺極樂殿)의 하앙형식의 구조이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다포계형식을 취하면서 하앙을 건물 내부 중도리에 고정시켜 공포 위를 걸치게 되어 처마를 받치는 것이 마치 지렛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하앙형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직도 오래된 실례가 많이 남아 있다.
[구조형식]
우리 나라 목조건축의 구조형식을 구분하면, 첫째 주심포형식, 둘째 다포형식, 셋째 익공형식, 넷째 하앙형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심포의 포작은 기둥 위에서만 짜여지는데 모두가 처마도리를 받는 일출목의 구조를 두어 처마를 길게 내밀었다.
이것이 뻗침구조로 이용될 뿐 아니라 포작 위로 건너지른 대들보가 기둥 위에서 맞추어질 때 보강재로서의 기능도 가지게 된다.
특히, 주심포작에서는 보의 머리가 주심에서 수장폭(修裝幅)으로 좁아져 처마도리까지 뻗어나와 구조적으로 견실하다. 또, 지붕 하중의 전달은 주심포를 통하여 기둥에만 미쳐 벽체에는 하중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심포작에서는 기둥 상부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이 가늘고 약하다. 이러한 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공포에 중방을 걸어 포작과 포작을 연결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주심포 중에서 헛첨차가 있는 경우 기둥과 보 맞춤에 더욱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구조는 이후 발전된 익공형식과 상통하는 듯하다.
또, 주심포작의 가공은 곡선적이고 미적이며 아직 부재의 규격화를 완성시키지 못한 점도 그 특징이다. 그러므로 건물 내외 가구 가공기법도 부재 하나하나에 대하여 섬세성을 보이고 있어 가구재를 노출시키는 데 손색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심포계 건물에서는 반자 없는 연등천장을 사용한다.
주심포 건물의 가구는 기둥과 공포·대들보·포대공·종보 등 횡단면의 가구가 강조되어 주구조를 이루었고, 세로 방향의 횡가재(橫架材)는 이들 주가구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기능을 미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미적으로 처리된 주가구를 노출시키기 위하여는 맞배지붕이라야 효과적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심포 건물은 맞배지붕을 한다.
전술한 현존하는 고려시대 주심포계 건물 외에 조선시대의 주요례로는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부석사조사당(浮石寺祖師堂)·은해사거조암영산전(銀海寺居祖庵靈山殿)·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개목사원통전(開目寺圓通殿) 등 많은 실례가 있다.
다포의 구조형식은 주심포와 많은 점에서 다르다. 우선, 규격화된 부재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변화없이 단조로운 포작의 특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공포의 미는 반복되는 리듬으로써 기계적 미감을 느끼게 한다.
주두·소로·첨차 등은 원래 어려운 조각곡선을 피하였고, 공포의 짜임은 기둥 위에서만 짜이지 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 처마 밑에도 배열한다.
따라서, 주심포 구조에서 가냘펐던 창방은 굵어지고 여기에 더 보강하여 평방을 놓고 그 위에서 주두와 포작을 배열한다. 포작은 소첨·대첨을 겹쳐 내외의 출목을 차차 내밀게 하는 다중(多重)의 구조로서, 내외 1출목에서 5출목까지도 사용되고, 마지막 출목재 위에 내·외목 도리를 얹어놓아 처마는 외부로 더욱 길게 뻗어내릴 수 있다.
대들보는 구조상 외목도리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심도리 부근에서 끊기지만 보 밑이 공포에 결구되어 안전하다. 여기서는 포작 자체가 종횡으로 뻗칠 수 있어 공간포도 구조적으로 중요기능을 가지게 되고, 그 위에 얹히는 도리나 장여가 공간포 위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지붕의 하중은 주심포의 경우와 같이 모두 기둥에만 전달되지 않고, 공간포를 통하여 벽과 벽훤(壁郵)에도 전달된다.
포작의 배열은 건물 전후면 뿐만 아니라 측면에도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고, 이러한 형식은 전술한 주심포의 주가구 개념을 흐리게 함으로써 건물의 종횡을 같은 무게의 축(軸)으로 보게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맞배지붕이 아닌 팔작 또는 우진각 지붕으로 처리하여, 외부로 나타난 포작의 배열을 강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붕이 팔작이나 우진각일 때 지붕 밑에 합각부분과 선자연의 정점 처리는 어렵고 미관상 좋지 않으며, 또 다포작 구조로 인한 건물 내부공간의 확장으로 내부반자를 설치함이 유리하므로, 다포계 건물인 경우 대부분 우물반자를 설치하여 장식한다.
다포작의 형식은 말기에 와서 지나친 장식으로 그 미를 잃고 결국 퇴화하고 마는데, 이 때는 가냘프고 번잡한 부재, 즉 수서〔垂舌〕·앙서〔仰舌〕·연봉(蓮峯)·운공 등을 조각한 공포와 기둥에 붙인 낙양(落陽) 등을 사용하게 되며, 이들은 조잡한 기법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전술한 고려시대의 현존하는 다포계 건축의 예 이외에 조선 초기의 예로서 서울남대문·개심사대웅전(開心寺大雄殿)·봉정사대웅전 등, 중기의 예로서 통도사대웅전·창경궁명정전(昌慶宮明政殿) 등, 후기의 예로서 경복궁근정전(景福宮勤政殿)·서울 동대문 등이 있다.
익공형식의 구조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간결한 포작구조이다. 이 형식의 발전은 구조적으로는 민가건축에서 기둥의 맞춤을 보다 보강하기 위하여 보 밑에 짧은 보강재를 덧대어 기둥 상부에서 내외로 관통시킨 구조에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고, 형식적으로는 주심포계 구조를 간소화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구조는 익공재를 기둥 윗부분의 내외로 관통시켜 보를 바로 받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견고하며 지붕처리도 맞배에서 팔작·우진각 등 마음대로 할 수 있다.
2익공인 경우 1익공재 위에 재주두(再柱枓)를 놓고 그 위에 2익공재와 보를 얹어놓기 때문에, 창방과 도리 사이가 자연 떨어지게 되어 여기에 화반(花盤)같은 것을 배열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의 처마 밑을 장식해 준다.
이와 같은 화반의 배열은 주심포계 건물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현존하는 익공계 건물의 실례로는 봉정사화엄강당 등 조선 중기 이전의 예도 있지만,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서 종묘 정전(正殿)·영녕전(永寧殿)·경복궁경회루·창덕궁주합루 등, 특히 누정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앙형식은 우리 나라에서 그 실례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구조 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앞에서 말한 완주 화암사극락전은 다포계의 하앙구조를 보이는 건물로서, 포작은 내삼출목·외이출목으로 조선 중기의 일반적인 다포작의 특징을 보이면서, 제3·4단의 살미[山彌] 외부 끝이 경사지게 잘리면서 중도에서부터 내리뻗은 하앙재가 얹혀졌다.
이 하앙재의 외부 끝은 전면에 용을 조각하였고 후면은 뾰족하게 비스듬히 절단되었다. 이 끝부분에 소로와 도리를 놓아 처마를 받쳤는데, 주심도리와 처마도리의 거리가 약 1.3m로 다른 주심포나 다포계 구조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하앙 뒤에도 보강재가 있어 처마 내밈의 안전도를 가해준다. 따라서, 처마의 내밈도 전면이 약 3m로서 다른 건물보다 훨씬 깊다.
중국의 하앙은 이보다 복잡하여 하앙재와 상앙재를 두고 있으며, 하앙재가 1개에서 3개까지 겹쳐나와 그 끝은 내리뻗은 쇠서와 같은 형태를 한다. 이 하앙재의 수에 따라 1초(一抄)에서 3초(三抄) 등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도 오다루키(尾沁)라고 하여, 고대건축의 실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하앙의 맞춤은 수평으로 자른 공포작 중간을 경사진 부재가 관통하여 짜여지기 때문에 그 구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참고문헌≫
華城城役儀軌, 昌德宮修理都監儀軌, 昌慶宮修理都監儀軌, 韓國建築史(尹張燮, 東明社, 1973), 韓國建築樣式論(鄭寅國, 一志社, 1974), 韓國의 古建築 1∼8(文化財管理局, 1973∼1986), 管造法式の硏究(竹島卓一, 美術出版, 1970), 韓國木造建築에 나타난 包에 關한 硏究(張慶浩, 弘益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5).
주두(柱頭)·소로(小櫨) ·첨차(檐遮)·제공(諸工)·한대(限大)·살미[山彌] 등을 결구(結構)하여 처마 끝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역학적(力學的) 기능을 한다.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장적(意匠的) 표현으로서 장식의 기능도 겸하여, 각 시대에 따라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형식으로는 주심포식(柱心包式) 공포, 다포식(多包式) 공포, 익공식(翼工式) 공포로 나누어진다
* 건물의 형식’을 결정지어주는 요소와 동시에 ‘연대측정’의 일차적 대상물....
* 공포의 표현 -고구려 고분벽화
* 주심포(柱心包)계의 공포 : 기둥 위에만 공포를 구성한다. 사이에 ‘화반’
주삼포 : 외목도리나, 기둥위 도리의 살미첨차에 소로를 얹고
장혀와 도리를 받는 경우...
갖은주삼포 : 행공첨차를 첨가해서 외목도리와 장혀를 받는 경우
* 주두의 형태가 3가지(주심포계)-봉정사 극락전
*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 까지 계승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성불사 극락전, 응진전
*첨차의 형태 2가지,(직절, 사절)
직절의 첨차 마구리 : 봉정사 극락전
사절의 첨차 마구리 :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성불사 극락전,
관용사 약사전 # 2절의 공통은 연화두형수식(쌍s자 무늬)
*봉정사 극락전 : 외목도리를 받치는 장혀 밑에 행공첨차 없이 2제공 끝에 소로놓고,
장혀와 도리...출목 좌우로 행공첨차를 제공의 살미와 결구할 때
첨차 끝은‘쇠서’ 로 일반적....
*헛첨차(다포계 이전의 수법)
:기둥 머리를 뚫고 나와 소로를 얹고 주드위에 결구된 초제공을 받는첨차
헛첨차 有 : 수덕사 대웅전
헛첨차 無 :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조선초기의 무위사 극락전)
*제공 2가지 (외부, 내부)
-첨차형태 : 2가지
-쇠서형태 : 2가지
*내부 - 교두형 과 초각된 보아지형식
*순각판 : 출목과 출목 사이를 가리우는 부재 - 다포계에서 쓰이고, 주심포는없다
다포계
-다포계-
: 기둥위와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포작구성....
창방위에 평방을 놓고 주드, 소로, 제공, 한대, 쇠서등 포작....
*건물 외부에 출목수가 많다...내부도 마찮가지다.
예) 내5포 외7포, 외5포 내7포, 외7포 내9포, 외7포 내11포, 외9포 내11포등,,,,
*주드의 형태
:대부분 사절된 것이 쓰인다,
곡선으로 된 예로는 ‘경천사10층 석탑’
*장혀
:보통 통장혀가 쓰인다.
주심포는 단장혀, 통장혀.....
*제공
:초기에는 제공과 한대가 외부에서는 쇠서로 내부에서는 교두형으로 된다
-후기에는 쇠서 양식은 다양화 되고, 내부도 장식화된 운공이 쓰인다.
보아지도 초각화된 복잡한 무늬가 쓰임.....
*첨차
:마구리를 직절하는 경우 사절하는 경우
*안초공 : -주심 위의 공포 내외에 시설된 부재....
-공간포에는 없다.
-주드부터 창방, 평방 밑선까지 내려 붙인것...
익공계 : 조선초기-주드는 평굽이 일반적이다.
-초익공 : 제공이 하나.
-이익공 : 출목× :제공이 두개
출목○ :제공이 두개. 처음 大주드(초제공). 小주드(이제공)는 보를받는다
-행공첨차를 두고, 통장혀위에 외출목도리.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화반(花盤)을 둔다.
하앙양식
: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여-
*삼국시대--백제
--정리--
주심포
1) 주두형식 -굽의 단면이 곡선
-굽의 단면이 곡선이고 굽받침이 있다.
-굽의 단면이 직선으로 사절...
2) 첨차형식 -마구리 : 직절, 사절, 호형
-하단 : 연화두형(쌍s자), 사절형
3)행공첨차 : 첨차가 있는것, 없는것,,,
4)헛첨차 : 있는것과 없는 것
5)제공의 형태 -외부 : 쇠서형, 첨차형
내부 : 교두형, 양봉형.
6)장혀 : 통장혀, 단장혀
7)양두형식(보머리) : 삼분두형 , 초각형
다포계
1) 주두형식 - 굽의 단면이 곡선인 것
- 굽의 단면이 곡선이고, 굽받침이 있는것.
- 굽의 단면이 직선으로 사절된 것
2)첨차 -마구리 : 직절형, 사절형.
-하단 : 호형, 사절형, 초화지형?
3)살미형태 - 외부 : 수서 : 단수서
앙서 : 단앙서, 중앙서, 3중설앙
내부 : 교두형, 운궁형(운공)
4)출목 - 외부 : 1출목, 2출목, 3출목
내부 : 1, 2, 3, 4, 5출목 #내5 외7,등등...
5)포작 : 외부 : 3, 5, 7포. 내부 : 3, 5, 7, 9포작
6)안초공 : 있는것, 없는 것
7)양두(보머리) : 삼분두형, 초각형,
익공계
1) 익공형식 : 초익공, 이익공, 무익공
2)출목 : 무출목, 1출목
3)주두 : 대주두 하나, 대주두하나 재주두하나(외출목)
4)두공 : 있는것, 없는것....
5)행공첨차 : 있는것, 없는 것
6)양봉 : 초가지형?
7)양두 : 초각형, 금수형(봉황), 삼분두
8)화반 : 장화반, 복화반
9)운공 : 있는것, 없는것.
위 사진은 목수가 목재로 문틀과 마루 그리고 천장공사를 부탁받고 갔던 한 사찰인데 철근콘크리트로 짜여진 다포식 건물로 전통목조를 그대로 본떠 웅장하게 지어졌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다포식 건축의 기본적인 짜임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빠트리고 말았다.
사진에서 보듯 우리 건축에서 직각의 두 지점이 만나는 중앙 모서리에 45도로 결구되는 부재를 귀한대 혹은 한대(限大)라고 하는데
이 귀한대와 그 양쪽에서 짜여져 올라가는 공포부재(여기서는 기둥 사이에 있는 공포라 하여 주간포라 함)들이 만나게 될 때에는 최소한 지켜져야 할 법식이 모서리에서 양쪽 부재까지의 거리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군데의 부재가 만나 짜여지는 것을 삼분턱(三分턱)이라 하여 세 부재를 똑같이 나누어 턱을 따서 맞추게 되는데 이러한 맞춤 자체가 어긋나 버렸다.
이러한 사항이 지켜지질 않아 위 부재들의 짜임새가 한쪽은 붙고 한쪽은 벌어져 구조적으로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양새가 틀어져 단청칠을 하더라도 내내 눈에 거슬리게 되어버렸다.
굳이 황금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히 건축에 있어 "비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제대로 된 짜임들인데 확연히 시각적으로 비교가 된다.
창덕궁 선정전 내부 귀한대공포
해남 미황사 응진당 내부 귀한대 짜임
문경 김룡사 대웅전 내부 귀한대 공포
부산 내원정사 대적광전 내부 귀한대 공포
문경 대승사 대웅전 내부 귀한대공포
김해 주촌 선지사 영산전 내부 귀한대 공포
김해 은하사 범종루 내부 귀한대 공포
목수의 소견으로는 건축에 있어 안정성이라는 것이 꼭 구조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며 우리 마음의 심미적 구조의 안정 또한 매우 소중히 다루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연후에라야 파격도 멋지게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